<2레벨로 회귀한 무신 533화>
아무리 상대가 실버라고 해도 한 명을 죽였다고 레벨이 8이나 오르다니.
‘아무리 성장 버프가 주어졌다지만, 너무 초고속 성장인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로그아웃되어 사라지는 전사 플레이어에게서 검을 뽑아냈다.
그러자.
위이이잉…….
빛이 미약해져 가던 청검이, 처음 소환되었을 때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검이 원래대로 돌아왔군.’
현재 김지훈의 청은 11.
이 정도 스탯으론, 이제 청검이 서서히 약해지는 길밖엔 안 남았건만.
인류 플레이어를 처형시키고 나자, 검은 일시적으로 회복이 된 상태였다.
거기에 더 나아가.
윙. 윙……!
빛은, 더 강하게 발현하며 검을 더 강화하고 있었다.
-오, 검 회복됐네.
-처형하면 저러지?
-ㅇㅇ 일시적으로 세짐.
-잘 죽어 줬네 ㅎㅎ 아까 그놈.
그런 청검의 강화를, 흔히 있는 일인 양 지켜보는 시청자들.
성지한은 그런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류 플레이어에게 청을 흡수한 건가. 처형에, 청까지 뺏는 검이라.’
이그드라실.
이 검에 꽤 장난을 쳐 놨군그래.
‘김지훈을 이용해서 저쪽의 핵심에 다가가야겠군.’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상태창을 열었다.
레벨이 8 오르면서 잔여 포인트도 똑같이 +8 주어진 능력치 창.
하나 힘, 민첩, 체력, 마력 같은 일반 스탯은 다 올릴 수 있었지만.
‘청은 역시 안 되네.’
청은 잔여 포인트로 올릴 수 없는 능력치였다.
‘일단 모두 +2씩 올리고.’
4가지 스탯을 균등하게 올린 성지한은, 다음 타깃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이제 1킬 했으니 끝내도 되지 않나.
-검이 사라져야 로그아웃 가능하죠?
-아까 플레이어 죽은 덕에 좀 더 오래 계실 듯.
-키메라랑 조우하기 전에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게 나을 텐데 ㅠㅠ
-근데 분위기 보니까 싸우고 싶어 하는 거 같음 ㅋㅋㅋ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1킬도 했으니 키메라 나오기 전에 로그아웃하는 게 낫지 않겠냔 의견을 내보였지만.
‘그래도 키메라 한 마리는 구경해 봐야지.’
성지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을 때.
지지이잉……!
갑자기 하늘에서, 녹색의 포탈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거기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생명체들.
퍽! 퍽!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그런지, 몸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으으…….”
이들은 낙하의 충격에서 금방 몸을 추스른 채.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게 키메라인가.’
크기는 각양각색.
어떤 존재는 거인과 비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크고.
어떤 존재는 너무 작아서 멀리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하나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섞여 있네. 다들.’
크기가 크든 작든.
포탈에서 떨어진 키메라는 모두 여러 종의 모습이 섞여 있었다.
그중 가장 강해 보이는 건.
“카아아아!”
상체는 레드 드래곤.
하체는 이족보행 기계로 되어 있는 거대 개체였다.
그 존재가 입을 벌리자.
화르르륵……!
순식간에 그 주변으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와, 저 키메라 뭐임? 다리는 기계인데 상체는 드래곤이네.
-개 쎄 보임 ㅋㅋㅋㅋ 저 정도면 다이아급이 레이드 뛰어야 할 몬스터 아니냐?
-아니, 이런 맵에 2레벨을 보내면 어떻게 해 ㅡㅡ;;
-쟤들끼리 싸울 때 빨리 튀죠.
-ㅇㅇ 다행히 좀 거리가 있네 지금 런해야 함.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난동을 부리는 드래곤 키메라와.
그에 반항하는 다른 존재들.
아무리 남자 하프 엘프가 강하다고 해도, 저 지옥에 끼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김지훈이 당연히 도망칠 거라 생각했지만.
‘콩고물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겠군.’
성지한은 가만히 서서, 키메라들의 전투를 지켜보다.
“크르르르……!”
드래곤 키메라가 날개를 움직여 주변 키메라들을 날리자, 그때서야 움직였다.
그가 노리는 건, 저 괴물에 튕겨 나간 다른 키메라.
퍼퍽!
드래곤의 날갯짓에 튕겨 나간 키메라가 몸을 바둥거릴 때.
성지한은 그에게 다가가.
푹!
청검을 목에 쑤셔 넣었다.
‘검 좋네.’
꽤 단단한 피부를 지닌 것 같았지만.
SS급 성능을 보이는 청검에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꿰뚫린 상대.
“컥…… 크륵…….”
우르크 베이스에, 여러 괴수몸이 혼합되어 있는 상대는.
쓰러진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고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놔두면 금방 재생하겠지.’
김지훈의 검은, 무력화된 상대를 가만두지 않고.
상대를 수십 토막으로 잘라 냈다.
꿈틀. 꿈틀…….
어느새 피범벅이 된 대지에서, 키메라의 몸이 어떻게든 서로 붙어 보려 했지만.
‘최후의 발악도 아니지. 이건.’
성지한은 거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래봤자, 이미 상대가 끝났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상대의 꿈틀거림이 끝나자.
[레벨이 1 오릅니다.]
레벨 업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류를 처형했을 때와는, 확연히 느린 성장 속도.
‘사실 이 정도가 정상이지.’
배틀넷에서는 원래 게임이 끝나고 나서 정산할 때, 경험치를 더 많이 주었으니까.
인간 한 명 죽였다고 8레벨이나 오른 건,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였지.
거기에.
‘청검도 재생하진 않는군.’
인류와는 달리, 청을 지니고 있지 않는 키메라라 그런지.
상대를 완전히 죽였음에도, 청검은 아까처럼 힘이 보충되지 않고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남자 하프 엘프에게, 가장 좋은 사냥감은 결국 인간인 건가…….’
아무리 드래곤 키메라의 날갯짓에 추락한 키메라라 해도.
상대는 아까의 실버 등급 전사보다는 훨씬 강했다.
그런데 경험치는 인간이 더 주고, 청검까지 강화해 준다 이거지.
‘일단, 몇 놈 더 잡아 보자. 인간과 보상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봐야지.’
성지한은 빛이 약해지는 청검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아직은 몇 분 더 써먹을 수 있겠지.
쿵! 쿵!
그는 떨어지는 키메라를 면밀하게 살피더니.
‘다음은 저놈을 잡아야겠군.’
가라앉은 눈으로, 다음 타깃을 포착했다.
* * *
10분 뒤.
-어…….
-벌써 5마리째네;
-아니, 막타 왜 이렇게 잘 침?
-해체 솜씨 미쳤는데 칼로 개 잘 썰어 ㅋㅋㅋㅋ
-이번에 처음 게임 하는 거 맞아?
시청자들은 김지훈이 키메라를 5마리째 마무리하는 걸 보곤 감탄했다.
드래곤 키메라한테는 절대 접근하지 않고.
그가 튕겨 내는 이들 중, 가장 약해진 애들에게 가서 마무리를 꾀하는 하프 엘프.
청검을 이용해서 상대를 자비 없이 수십 토막 내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간의 하프 엘프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추락하는 키메라 무리 중, 타깃 선정이 기가 막히네.
-ㄹㅇ 위치 진짜 잘 잡음 ㅋㅋ 어떻게 가는 곳마다 딱 고립된 애들만 잡지?
-근데 남자 하프 엘프가 저렇게 열심히 몹 잡는 거 처음 보네.
-그러니까 아까 실버 잡고 그냥 로그아웃까지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데…….
-김지훈, 이 플레이어는 그냥 인간 전사했어도 성공했겠다.
대부분의 남자 하프 엘프들이 게임을 거의 진행하지 않고.
하더라도 그냥 처형당하려는 인간들이나 죽이고 끝내는 것에 비해.
김지훈의 플레이는, 보는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시청자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을 즐기고 있을 때.
스스스…….
김지훈이 들고 있는 청검의 색이, 옅어져 가더니.
검 끝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청검 사라져 가네.
-벌써 끝인가?
-ㅇㅇ 무기 없으니 로그아웃해야지.
-김지훈이 다음에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남자 하프 엘프가 이렇게 열심히 뛰는 건 잘 못 보긴 함 ㄹㅇ
시청자들이 그걸 보고 아쉬워할 즈음.
‘확실히 결론지을 수 있겠군. 하프 엘프에겐, 인간이 최고의 사냥감이다.’
성지한은 아까까지만 해도 검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바라보며, 결론을 내렸다.
남자 하프 엘프에게 가장 큰 보상을 안겨 주는 건, 인간.
우르크 혼합 키메라부터, 더 강력한 몬스터가 혼합된 이들까지 제압해 봤지만.
레벨은 많이 올라 봤자 1이었고.
아니면 아예 메시지가 뜨질 않았다.
‘원래 내가 청을 인류에게 부여했던 건, 아소카의 생각이었는데…….’
인류를 적색의 관리자에게서 구원하기 위해, 성지한에게 방도를 알려 주었던 아소카.
청의 부여로 인해, 인류는 비로소 적의 인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종족을 구하는 데 쓰였던 능력을.
이그드라실은 이딴 식으로 개조하고 있는 건가.
‘무조건 내가 다 강탈해야겠군.’
성지한은 사라진 청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김지훈’은 남자 하프 엘프로 지내며 청검의 완성에 협력하고.
그것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탈취한다.
‘그러려면 남자 하프 엘프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야겠지.’
특별 관리 대상이라면서 이렇게 관리하고 있을 때.
확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겠군.
성지한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슬슬 로그아웃해야겠네.’
조금 전, 하늘에서 한 차례 포탈이 더 열리더니.
키메라가 또 쏟아져 내려왔다.
이제는 무기도 사라진 이상, ‘김지훈’에게는 더 이상 버틸 수단이 없었으니.
여기서는 빠지는 게 맞았다.
그가 그렇게 로그아웃을 하려고 할 때.
스스스스…….
키메라가 가득한 황무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드래곤 키메라의 불꽃이 내는 연기와는, 확연히 다른 운무.
땅에서부터 올라온 이 연기에 휩싸인 키메라들은.
“크…… 르…….”
“으, 으으…….”
처음엔 격렬히 반항하는가 싶더니.
푹. 푹…….
금세 움직임을 멈추곤, 하나둘씩 쓰러졌다.
-엇, 독가스다 ㄷㄷ
-쓰레기장 소독되나 보네.
-로그아웃 ㄱㄱㄱ
-이젠 진짜 튀어야 해요.
-저거 나오면 그냥 끝임 ㅇㅇ
그걸 보자, 황급하게 올라오는 채팅.
거기선 하나같이 김지훈보고 로그아웃하라 말하고 있었다.
과연.
“카…… 카아아악……!”
아까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던 드래곤 키메라도.
어떻게든 버티려다가, 결국 쓰러졌으니까.
그 거체는 순식간에 검은 연기에 파묻혀, 어떻게 됐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하나.
‘뭐야. 저거…….’
성지한은, 저 연기를 보곤 오히려 로그아웃하려던 걸 멈추었다.
‘그림자기운이잖아? 그것도 공허랑 섞인.’
그림자여왕이 사용했던 그림자기운.
저 검은 연기엔, 그 힘과 공허가 섞여서 키메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여왕의 소식은 못 듣긴 했지…….’
세계수 연합과는 가장 원수진 상태인 그림자여왕.
성지한이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지구에 머물며 힘의 회복을 꿈꾸었다.
배틀튜브 채널도 공격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몇 번이고 파산하려다 살아남았지.
‘인류가 연합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살길 찾아 도망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어째.
저기서 피어오르는 그림자기운이 다가올수록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한번 봐 보자.’
성지한이 그렇게 김지훈의 육신을 가만히 놔두자.
-아니, 왜 갑자기 얼었음??
-로그아웃해야지 뭐 해요;
-저 연기에 뭐라도 있나?
-닿지만 않으면 괜찮을 텐데…….
채팅창에선 안 튀고 뭐 하냔 의견이 계속 올라왔지만.
그는 그걸 무시하곤, 뻗어 오는 검은 연기에 접촉했다.
그러자.
흑색 운무는 김지훈을 붙잡나 싶더니.
[……아직, 재활용 쓰레기.]
그 한마디를 남기곤 그를 다른 키메라들과는 달리 멀리 하늘 위로 튕겨 냈다.
슈우우욱!
그러자 허공 위로 치솟는 김지훈의 몸뚱어리는.
금세,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파악!
[플레이어 ‘김지훈’이 사망합니다.]
로그아웃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검은 연기에 의해 결국 사망한 김지훈.
성지한은 눈앞에 뜬 사망 메시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쟤는 왜 저기 있냐.’
‘재활용 쓰레기’라고 김지훈을 칭하던 목소리.
그건, 분명 그림자여왕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