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32화>
한편.
성지한은 하프 엘프 전용 배틀넷 커넥터룸에 들어와 있었다.
기존의 것과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커넥터.
대기 길드에 있는 하프 엘프 커넥터는 총 10개였다.
“이게 하프 엘프용 커넥터군요.”
하프 엘프는 이 나무 재질 커넥터를 통해, 기존 인간 플레이어에 비해 훨씬 많은 보정치를 받는다고 했던가.
성지한은 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기존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접속 장치.
‘들어가 봐야 차이점을 알겠네.’
성지한 시절에야, 통각 차단 기능이 필요 없어서 커넥터를 쓴 적이 거의 없었지만.
하프 엘프가 된 ‘김지훈’은, 게임 내에서 보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여기 접속해야 했다.
그가 그렇게 빈 커넥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 남성형은 이쪽이에요!”
저 안쪽으로 간 이하연이,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그리로 가자, 거기엔 아까와는 달리 푸른빛깔이 감도는 목재형 커넥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커넥터의 주인이 드디어 나타났네요…….”
“술 드시다가 남자 하프 엘프가 언제 오겠냐며, 환불하시려는 걸 말린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야, 야! 내가 언제!”
임가영의 말에 버럭 한 이하연은, 얼른 커넥터의 문을 열었다.
“자자, 지훈 님. 들어가 보세요.”
“예, 잘 쓰겠습니다.”
겉보기에는 고급차 운전석과 같은 커넥터.
김지훈이 그리로 들어가 앉자, 문이 닫히더니.
드르르륵……!
사방에서 식물 줄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커넥터에 뭔…….’
성지한이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
솟아오른 줄기는 그의 몸을 곧 휘감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관리하는 플레이어입니다.]
[특별 보정치가 적용됩니다.]
꿈틀. 꿈틀.
보정이 적용되었단 메시지가 뜨자마자.
몸을 휘감던 줄기가 일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내로 생명의 기운이 들어온다 싶더니.
[육체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합니다.]
육체 능력.
김지훈이 지닌 걸로는, 힘, 민첩, 체력 스탯이 2배로 뛰어올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2배 버프를 받고 시작하네.’
남자 하프 엘프가 되면서, 청이 추가된 것 외에는 스탯 자체 숫자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같은 수치라도, 인간 시절보다 효율은 훨씬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근데 여기에 2배가 올라가다니.
‘그냥 처음부터 풀 버프 받고 시작하는군.’
이럼 무슨 미션에 걸리던, 너무 싱겁겠는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게임 스타트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대기했을까.
[서바이벌 맵, ‘쓰레기장’에 소환됩니다.]
‘쓰레기장?’
김지훈이 맵 이름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릴 즈음.
번쩍……!
그의 몸이 게임 맵 안으로 소환되었다.
* * *
서바이벌 맵, 쓰레기장.
이 맵은 인류가 세계수 연합의 식민지로 들어선 이후.
새로 추가된 서바이벌 맵이었다.
‘맵 이름과는 달리, 깔끔한데.’
더러울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흙빛 황무지만 황량하게 펼쳐진 ‘쓰레기장’.
그래도, 계속 이 상태는 아니겠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클래스 ‘청기사’입니다.]
[청검이 자동으로 형성됩니다.]
스스스…….
그의 오른손에, 푸른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성지한이 뭘 하지도 않았는데 나타난 빛의 검은.
‘이거, 동방삭의 태극마검이랑 좀 닮았는데.’
동방삭이 최후의 순간, 해저에 꽂아두었던 빛의 검과 형태가 매우 유사했다.
[청검의 유지 시간은 스탯 청의 수치에 비례합니다.]
[청검이 역소환될 시, 게임을 그 즉시 종료할 수 있습니다. 이때, 종료 시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청검이 사라지면, 게임 종료 권한도 주어지는 건가.
인간일 때와는 확실히 다르군그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청검을 바라보았다.
‘검으로서의 성능은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SS급쯤 되려나.’
원본의 태극마검에는 감히 비할 바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청검은 레벨 2가 만들었다기엔 확실히 괜찮은 성능이었다.
‘스탯 청은 현재 11이군.’
정밀 검사 때 ‘김지훈’의 육체에선 1이 더 오른 청.
적합도는 2퍼센트 오른 걸 보면, 스탯 청의 수치와 적합도는 2배 비율로 따라가는 것 같았다.
스탯 수치가 11밖에 안 되니, 검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테고.
검이 사라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는데.
‘지금은 맵에 아무도 없지만, 서바이벌이니만큼 뭐가 나타나겠지.’
서바이벌 맵.
이 게임타입의 기본 골자는, 플레이어들을 소환시켜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예전 콜로세움 때가 그랬듯.
이 쓰레기장에서도, 결국 맵의 본질은 플레이어들과 싸움을 벌이는 거겠지.
성지한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까.
지이이잉…….
[관리자가 관리하는 플레이어입니다.]
[배틀튜브가 자동으로 실행됩니다.]
[플레이어 ‘김지훈’의 배틀튜브 채널이 ‘남성 하프 엘프’카테고리에 소속되어 생성됩니다.]
배틀튜브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켜졌다.
-오, 진짜 김지훈 나왔네 ㄷㄷㄷ
-아까 기자 회견 때 게임하러 간다고 해서 그냥 핑계인 줄 알았는데 ㅋㅋㅋ
-20퍼센트 넘는 플레이어가 배틀넷 게임을 돌리다니…….
-남자 하프 엘프는 잠만 자도 레벨 업 하잖아. 왜 게임 함?
-그래도 게임 돌리면 더 빨리 성장하잖아.
그리고 배틀튜브가 켜지자마자, 주르륵 올라오는 채팅창.
배틀튜브 채널이 지금 급조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뭔 남자 하프 엘프는 채널도 맘대로 생기네.’
주는 것도 많은 대신, 제약도 많구만.
그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근데 맵이 쓰레기장이네…….
-왜 이렇게 어려운 맵 걸렸냐 처음부터;
-게임 하는 남자 하프 엘프 흔치 않은데…… 이러다 다신 안 켤 듯;
-맵 좀 좋은 거 배정해 주지 ㅠㅠ
사람들은 맵 풍경만 보고, 왜 하필 쓰레기장 맵에 걸렸냐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쓰레기장, 이거 안 좋은 맵인가요?”
김지훈의 물음에.
-지금 여기엔 아무것도 없는데…… 나중 가면 여기 키메라들이 랜덤으로 마구 소환돼요
-뭐가 떨어질지, 운빨이 가장 중요한 맵임.
-인류 플레이어들 만나서 빨리 처형시켜야 할 거 같아요.
-인간들만 나오는 맵에서 편하게 스타트하셔야 했는데…… ㅠㅠ
채팅창에서는 곧 강력한 키메라가 튀어나올 테니, 빨리 인간을 만나란 팁이 주로 나왔다.
‘흠. 키메라인가.’
맵 이름이 쓰레기장인 게, 키메라들을 버리기 위해서인가 보군.
근데 인간은 왜 이렇게 찾으라는 거야?
성지한이 그렇게 채팅창을 살펴보고 있을 무렵.
슈우우…….
청검의 빛이, 살짝이지만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스탯이 11이라, 오래 유지를 못 하나 보네.’
검 사라지기 전에, 몹 잡아야겠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고는,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몸으로는 무공 티를 낼 수가 없으니.
보법 없이, 그냥 전력으로 뛰는 달리기였지만.
휭! 휭!
김지훈의 뜀박질은, 레벨 2 플레이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와, 엄청 빠르네…….
-역시 하프 엘프.
-근데 다른 하프 엘프들보다도 더 빠른 거 같은데?
-남자 하프 엘프는 버프가 좋잖아. 더 관리해 주고.
-아니, 내가 아메리칸 퍼스트 남자들 뛰는 거도 봤는데 김지훈이 더 빠름.
-아무리 한국에서 20퍼센트 넘는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다고 해도, 벌써부터 국뽕은 좀…….
-아니 진짜 확연히 차이가 난다니까? 비교해 봐 ㅅㅂ;
김지훈의 전력질주를 보고, 이를 평가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남자 하프 엘프가 아무리 게임을 많이 안 한다지만.
배틀튜브에서 영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김지훈의 속도를 보면서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거, 안 되겠네.’
성지한과는 달리.
김지훈 육체엔 무신 칭호도, 무극멸신도 적용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조종자가 신체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 김지훈에게선 과한 출력이 나오고 있었다.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지닌 힘의 반 정도만 써야겠어.’
성지한이 그렇게 김지훈 육체를 조절해 나가며, 5분 정도를 뛰었을까.
번쩍……!
황량한 대지 위에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오 플레이어 소환인가.
-김지훈 님, 이제 대기하시면 될 거 같아요.
-ㅇㅇ 이제 멈추고 처형 준비 ㄱㄱ
-누군진 몰라도 운 좋네. 여기서 남자 하프 엘프 만나고 ㅋㅋㅋ
-ㄹㅇㅋㅋ 쓰레기장 걸렸는데 다행히 처형당하네.
‘처형당하는 게 운이 좋아?’
남자 하프 엘프가 어떻게 게임 하는지도 자세히 조사할 걸 그랬나.
맨날 잠만 자면 레벨 업 한단 이야기만 들어서, 이쪽에 대해선 그다지 알아보지 않았던 성지한은.
시청자들이 영문 모를 소리를 하자,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이들의 말대로 대기했다.
그러자.
“아…… 개망했네. 왜 쓰레기장이야 진짜.”
빛 속에서, 갑옷을 장착한 전사가 튀어나오더니.
바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하…… 레벨 떨어지겠네…….”
그러면서 키메라를 실버가 어떻게 이기냐고 혼잣말을 하던 그는.
“어, 어?”
이제야 김지훈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눈을 크게 떴다.
“호, 혹시…… 남자 하프 엘프십니까?”
“네.”
“와아!! 살았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전사.
“저. 저. 처형당하겠습니다!”
그는 화색이 된 얼굴로, 기쁘게 죽겠다고 말했다.
-개 좋아하네 ㅋㅋㅋㅋ
-레벨 다운될 걸 막았으니 저럴 만도 하지 ㅋㅋ
-ㅇㅇ 실버면 제일 약한 키메라 한 마리도 못 잡을걸?
-그러느니 페널티 없이 죽어야 이득임.
‘남자 하프 엘프에게 죽으면, 페널티가 없는 건가.’
배틀넷 게임 시스템이, 완전히 이상하게 변질되었네.
청색의 관리자 시절엔,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게임을 왜곡시킬 수 없었는데.
임시 관리자랑, 정규직은 확실히 다룰 수 있는 권능 차이가 있는 건가.
‘일단은. 저렇게 죽고 싶어 하는 데 죽여 줘야겠군.’
어차피 죽고 죽이는 맵, 서바이벌.
상대가 자진해서 죽겠다는데, 이쪽으로선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다.
성지한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처형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근데 처형하는데 뭐, 따로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오늘 처음이라.”
“아…… 그냥, 그 검으로 찔러 주시면 됩니다! 청검에 찔리면, 인간은 즉결 처형당해요!”
청검에 그런 기능이 있었나.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청검을 들어 그대로 전사의 몸을 향해 나갔다.
치이이익!
그리고 그가 SS급이라고 평가했던 청검은.
전사의 갑옷을 가볍게 꿰뚫더니, 그의 몸도 그대로 뚫어 버렸다.
그러자,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대상의 종족이 인류입니다.]
[청검의 패시브 스킬, ‘처형-인류’가 발동합니다.]
스킬 ‘처형-인류’의 발동과 함께.
전사의 몸이 금방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오오……! 청검에 죽는다! 업적 달성……!”
물론 상대는 죽어 가는데도 업적 깼다며 기뻐하고 있었지만.
‘청검에 이런 스킬이 있다고…….’
정작 그에게 검을 꽂아 넣은 김지훈의 두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패시브 스킬이, 인류 처형이라니…….
뭐 이딴 게 다 있지?
[레벨이 8 오릅니다.]
그때.
상대가 죽으면서, 그에게 레벨 업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