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24화>
[플레이어 ‘김지훈’이 ‘적성검사실 – 한국 1 구역’에 들어섭니다.]
적성검사실로 소환된 성지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사실이라더니 그냥 숲속이군.’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빽빽하게 자리한 숲 안.
맵 이름만 떼놓고 보면, 그냥 열대우림 안에 조난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때.
저벅. 저벅.
세계수 엘프 한 명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성지한에게 웃음을 지었다.
“플레이어 ‘김지훈’ 님, 반갑습니다. 저는 안내를 맡고 있는 ‘엘프 신관’입니다.”
스스로를 엘프 신관이라고 칭한 그녀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성지한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후, 그를 숲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잠깐 걸었을까.
그는 엘프에게 녹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나무 앞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럼 김지훈 님,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해 주시면, 검사 때 호출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엘프가 가리키는 ‘대기실’이란.
거목의 건너편에 빼곡하게 의자가 놓인 자리였다.
약 30개 정도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대기실에는.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내가 1구역의 마지막이었나.’
성지한이 빈자리르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남자다.”
“이번 1구역은 남자 5명이네요. 꽤 많네.”
“오늘은 어쩌면 남자 하프 엘프가 나올 수도 있겠어요.”
“이번 기수는 이종친화를 가진 남자들이 많네요?”
“B등급 이상이 이렇게 많았나…….”
30명 중, 25명이 여자인 대기실.
사람들은 김지훈의 껍데기를 쓴 성지한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1구역부터 10구역까진, 이종친화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만 소환된다고 했지.’
적성검사실에 배정된 구역의 넘버는, 하프 엘프가 될 확률이 높은 플레이어 순으로 배정되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하프 엘프가 될 확률이 높았기에, 1 구역에는 대부분 여성이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특히 1구역에는 이종친화가 최소 B등급 이상만 올 수 있었기에.
이렇게 남자들이 5명이나 모이는 경우는 흔치가 않았다.
그렇게 성지한이 주변의 시선을 집중시킨 채로, 빈 자리에 가서 앉자.
“오, 마지막 분이 오셨군요!”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들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성지한에게 다가왔다.
“저기…… 혹시 어디 길드 소속이십니까?”
성지한에게 다가온 남자는,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
머리가 반쯤 벗겨진 그는, 이마에도 주름이 적잖이 보였다.
인류종이 두 단계 진화한 걸 생각하면, 저 정도의 노화는 거의 60대가 넘어야 다다라야 가능한 수준.
한데 그 아래 얼굴은, 성지한의 이목구비를 불쾌하게 닮아 있었다.
딱 봐도 성형 티가 나는 얼굴.
‘아…… 진짜.’
성지한은 이 사람이 왜 이런 얼굴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남자 하프 엘프의 외모를 닮아야, 적성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는 미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재.
인류가 중하급으로 진화하면서 다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계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분야는 바로 성형외과였다.
모두가 남자 하프 엘프의 이목구비를 닮으려고, 얼굴에 칼을 대는 세상이었으니까.
‘이쯤 되면 인류가 식민지 된 거보다, 이게 더 짜증 날 지경이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겉으론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길드요? 길드는 없습니다만.”
“아니, 자네. 길드가 없다고??”
길드가 없다고 하자마자 바로 하대로 나온 상대는.
“허허, 그거참…… 대체 왜 그랬는가?”
성지한에게 인생 선배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기프트를 받자마자, 일단 길드와 계약해서 계약금을 받았어야지! 그렇게 맨몸으로 왔다가 적성검사 탈락하면 어쩌려고!”
“기프트 각성한 지 며칠 안 돼서요.”
“쯧쯧, 되자마자 바로 5대 길드에 연락을 돌렸어야지! 어휴. 이 친구 로또 날렸네……!”
툭. 툭.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더니, 한숨을 쉬는 중년 남성.
단지 길드랑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인데.
바로 반말로 태세를 전환하더니 충고하는 걸 보자, 성지한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취급은 참 간만이네.’
성지한 시절에는 이렇게 반말 찍찍 당할 일이 없었는데.
확실히 ‘김지훈’이 되고 나니 다르군그래.
‘사실, 내용 자체는 맞는 말이다만.’
여성에 비해, 확실히 되기 힘든 남성형 하프 엘프.
여자들은 이종친화 기프트가 없어도 하프 엘프가 되는 경우가 종종 나온 반면.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이종친화’ 기프트를 지녀야 했으며.
그럼에도 될 확률은 1퍼센트가 채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남자 중, ‘이종친화’기프트를 얻은 플레이어들은.
적성검사가 있기 전, 거대 길드와 접촉하여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는 선계약을 체결하곤 했다.
1퍼센트도 안 되는 성공확률에 대박을 노리느니, 실패할 걸 대비하여 미리 땡기자.
이것이 현재 ‘이종친화’ 기프트를 받은 남자들 중 대다수가 하는 생각이었다.
“선계약을 안 하고 오다니…… 저 사람 부잔가 봐.”
“얼굴이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그러니까. 돈 많으면 미리 성형 싹 했겠지.”
둘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대기석에서 서로 쑥덕거리는 사람들.
하나 이야기가 더 지속되기 전에.
반짝……!
대기석의 앞쪽에서, 초록색의 빛무리가 반짝였다.
“이런, 시작하나 보군.”
그걸 보곤 한참 오지랖을 떨던 중년 남성이 자리로 돌아가고.
스스스…….
대기실의 앞에서.
엘프 신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인원이 모였으니, 이제부터 적성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고 그녀가 뒤로 손을 가리키자.
쩌저적……!
나무의 기둥이 일부 파이더니.
사람 하나 들어갈만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럼 대기번호 1번부터 호명하겠습니다. 1번, 정윤하 플레이어.”
“네…… 네!”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맨 앞의 여성 플레이어가 일어나자, 긴장감에 휩싸이는 대기실.
그리고.
지이이잉…….
나무의 옆쪽으로, 메시지 창이 커다랗게 뜨더니.
[1구역 검사결과]
[적성자 : 0 대기자 : 30]
[1구역의 검사 진행상황을 배틀튜브로 중계합니다.]
배틀튜브 중계를 시작한다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1구역 열렸다!!
-오, 남자 5명 ㄷㄷㄷ 저번 달엔 2명이었는데.
-오늘 큰 거 오나요?!
시청자들의 메시지도 저 메시지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적성검사.
하프 엘프가 되냐 안 되냐를 가르는, 이 중요한 테스트는.
막상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저기에 들어갔다 나오면 끝이네.’
검사자가 파여 있는 나무기둥에 들어가면.
나무 전체에서 초록빛이 번쩍이며 검사가 시작되었다.
하프 엘프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은, 좀 오래 나무 안에 있었고.
없는 사람은, 1분 만에 퇴출되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21번. 이무열 플레이어.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예. 옙! 알겠습니다!”
번호가 금방금방 빠지면서, 어느새 검사는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자비로운 세계수시여…… 비고 또 비나이다. 염원컨대, 제게 하프 엘프가 될 영광을 주십시오…… 제발, 제발……!”
“신실한 신도시군요. 하지만 이제 기도는 끝내고 들어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예, 옙……!”
검사 전, 한참을 침 튀기며 기도하던 중년 남성은.
엘프 신관의 말에 계속 세계수를 연호하며, 나무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번쩍……!
그가 들어가자, 빛나는 거대 나무.
성지한은 옆에 떠 있는 메시지 창 쪽을 바라보았다.
[1구역 검사결과]
[적성자 : 4 대기자 : 9]
지금까지 총 4명만 통과한 적성시험.
그리고 통과자는 모두, 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여자였다.
-이번에도 죄다 여자만 하프 엘프 된 건가…….
-3개월 전에 남성형 나온 게 기적같네;
-남자 하프 엘프 계속 안 나오면 던전 포탈 억제기가 꺼진다는 게 사실인가요?
-이미 그거 뉴스 타고 집값 떨어짐 ㅡㅡ;
이 결과를 보고, 시청자들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엔 1구역에 남자 5명이라 1명은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번에도 꽝인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1분 후.
드르르륵……!
나무기둥에서 공간이 다시 열렸다.
“아, 아니. 왜 벌써…….”
설마 설마하면서, 자신의 귀를 매만지는 중년 남성.
하지만 귀가 그대로인 게 촉감으로 확인이 되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 하, 한 번만 더 안 되겠습니까…… 이번엔, 잘 할 테니……!”
“나오세요.”
엘프 신관이 냉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자.
슈우우우……!
중년 남성의 몸이 기둥 안에서 멀리 날아갔다.
“으…… 으…….”
땅바닥에 떨어진 그가, 추락의 고통에 신음성을 내고 있을 때.
[1구역 검사결과]
[적성자 : 4 대기자 : 8]
대기자 숫자가 한 명 더 줄었다.
-이번에도 꽝인가 보다 ㅡㅡ……
-ㄴㄴ 아직 남자 하나 남긴 했음.
-저 사람 성형도 안 했던데?
-아니, 계약금 땡겨서 성형을 해야지 뭐 했대?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서 성의가 없네.
-성형 근데 그거 효과있긴 함? ㅋㅋㅋㅋ
-ㄹㅇ 그냥 미신 아닌가 ㅋㅋㅋ
남자 5명 중 4명이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후보 ‘김지훈’도 얼굴이 매우 투박한 걸 보고는.
많은 사람들은 이 후보도 꽝이라고 미리 단정 짓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야.
‘머리 염색 정도를 몇 프로까지 하는 게 낫나.’
하프 엘프 되는 거야 당연한 거고.
머리색을 얼마나 염색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25퍼센트가 최고 기록이라고 하던데. 이걸 넘어 말어?’
신기록을 달성하면 세간의 주목도가 급상승할 테고.
조용히 식민지의 지구와 세계수 엘프를 조사하는 건 보다 힘들어지겠지.
대신, 가장 뛰어난 하프 엘프가 된다면.
저들이 이렇게 남성형에 주목하는 이유를, 내부에서 알아낼 건수가 더 생길 수도 있다.
‘흠…… 한 20퍼센트를 할 거냐, 30퍼센트를 할 거냐가 고민이네.’
다리를 꼰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성지한은.
“30번, 김지훈 플레이어. 이쪽으로 들어가세요.”
“…….”
엘프 대신관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성지한이 생각에 잠긴 동안, 여자 하프 엘프가 한 명 더 나온 1구역.
“아…….”
“망했네, 진짜…….”
“될 줄 알았는데…….”
탈락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언니, 역시 언니도 될 줄 알았다니까?!”
“와…… 내가 하프 엘프가 되다니……!”
“세계수님의 말씀…… 아직도 귀에 선명해.”
하프 엘프가 된 다섯은 서로 모여서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남성형이 더 희귀하다지만, 여성형도 일단 되면 복권 당첨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적성자와 탈락자 간, 천국과 지옥이 확 나뉜 대기실 안에서.
“바로 들어가면 되죠?”
마지막 순서로 나선 성지한은, 열린 기둥 속 공간을 손으로 가리켰다.
엘프 신관은 급히 들어가려는 상대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런데 신도님. 세계수께 기도는 안 하시나요?”
누구 맘대로 신도냐.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싱긋 웃었다.
“기도는 아까 대기하는 중에 다 해 뒀습니다.”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엘프 신관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큼성큼 기둥 안으로 들어가는 성지한.
-오 뭔가 여유 있는데…….
-그냥 다 포기한 거 아냐? ㅋㅋㅋㅋ
-ㄹㅇ 성형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고;
-이렇게 성의 없는 놈은 돼도 문제야.
-1분 내에 퇴출당할 듯
그런 ‘김지훈’을 보고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탈락을 예측했지만.
그가 나무 안쪽에 들어가자.
번쩍……!
“엇…….”
거대한 나무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푸른빛이 반짝였다.
-??
-아까와는 빛깔이 다른데?
-이거…… 성공했을 때 나오는 빛 아냐?
-ㅇㅇ 맞음 푸른색 나와;;
-헐, 설마 성공……?? 저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푸른빛을 보고는, 채팅이 급작스럽게 폭주할 무렵.
나무 안쪽에 들어간 성지한은, 자신의 몸을 감싸는 푸른빛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스탯 청이잖아?’
저 빛에 담긴 힘은.
청색의 관리자, 성지한의 능력.
‘청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