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20화>
세계수 연합의 식민지가 된 지구.
엘프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 인류사회는.
“……생각보다 평화로운데?”
예전과 비슷하게,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번화가.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리로 온 성지한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쭉 살펴보았다.
‘종족 진화는 중하급으로 유지되어 있고.’
최하급에서 중하급까지 올랐던 종족 인류.
종족의 진화 현황은, 예전과 똑같았다.
“아, 옛날에 비하면 진짜 취하질 않네, 몸이~ 3차인데도 맨정신 같아.”
“새끼…… 그래서 토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냐?”
“미쳤냐? 세계수께서 어떻게 여기까지 진화시켜 주셨는데…… 도수 센 거 마시면 되지!”
멀쩡한 얼굴로, 다음 술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술 마실 때면 또 신체가 건강해진 게 체감이라도 되는 건가.
세계수를 찬양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자, 성지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인류를 최하급에서 끌어올린 공로를, 녹색 놈이 다 가져갔군그래.
‘임시 관리자 시절 땐, 협조적으로 나오더니…… 이놈을 어떻게 조져야 할까.’
사실 힘은 충분하다.
레벨이 2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지닌 능력은 그대로였으니까.
오히려 헤븐넷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청의 권능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적의 힘까지 더 강해졌으니.
아무리 상대가 녹색의 관리자라고 해도, 싸울 만했다.
하지만.
‘일단은 상황을 좀 파악해야겠지.’
헤븐넷에서 귀환한 지 이제 1일.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의중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내고 움직이는 게 더 나았다.
‘녹색의 관리자가 굳이 여길 식민지로 만든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성지한이 알고 있는 세계수 엘프는 잔혹한 종족이었다.
이그드라실의 지배 아래, 행성의 토착생명체를 싹 쓸어버리고 세계수 엘프 행성을 만들었지.
이렇게 굳이 통치하기 불편하게, 식민지화를 할 필요가 없는 이들이었다.
‘근데 막상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겉보기엔 5년 전이랑 비슷하게 평화롭단 말이지…….’
여기에는 분명 의도가 있을 터.
이걸 밝혀내기 전까지는, 청홍靑紅은 아직 아껴 둬야겠지.
달에서 떠오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나무 문양을 보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할 즈음.
끼이이익!
길가 한복판에 리무진 차량이 섰다.
“뭐, 뭐야. 갑자기 웬 리무진이 이 안쪽까지 와?”
“아…… 여기 클럽 있잖아. 그거 때문에 그런가?”
“누가 행차하셨기에 그래?”
길쭉한 리무진이 클럽 앞에 서는 걸 보고, 사람들이 흥미로운 시선을 보낼 때.
끼익.
클럽의 경호원이 손수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거기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한 여성이었다.
‘……뭐지, 저 모습은?’
흑발과 금발이 섞인 머리칼에, 살짝 튀어나온 귀.
귀 부근만 피부가 유난히 새하얀 여자는.
딱 봐도, 겉모습이 일반 사람이랑은 달랐다.
이목구비 전체가 약간씩 비틀린 그녀는.
‘흠…… 이건, 생명의 기운인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층 짙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성지한이 그녀를 유심히 바라볼 때.
“오…… 하프 엘프? 배틀튜브에서만 봤는데 오늘 실물을 보네.”
“와, 부럽다…… 저 사람 로또 됐네?”
“야이 씨, 로또가 뭐냐? 하프 엘프인데. 그 정도는 한 달 벌이일걸?”
“귀 쩐다…….”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하프 엘프’를 거론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프 엘프라.’
어쩐지 식민지 치곤 너무 평화롭다 했더니.
역시 세계수 연합 놈들, 가만히 있진 않았나.
‘일단은 저거부터 알아볼까.’
그렇게 여성 하프 엘프가 클럽으로 걸어갈 즈음.
스으윽…….
리무진 안에서, 한 명이 더 나왔다.
‘저놈은 또 뭐야?’
그러자, 그를 본 성지한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스으윽.
남성이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헐, 남자 하프 엘프다……!”
“와! 나 처음 봤어!”
사람들에게선 아까 여자 하프 엘프 때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 * *
‘저 남자…… 묘하게 날 닮았다.’
여성과는 확실히 다른 타입인 남자 하프 엘프.
그는 성지한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꽤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귀가 튀어나와 있다는 것과.
‘머리 색은 왜 저래?’
머리카락 일부가 하늘색으로 염색되어 있단 점이었다.
“와, 얼마 만이냐 이게?”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뽑히는 거 거의 3개월만 아냐?”
“그러니까…… 이건 찍어야겠다.”
찰칵. 찰칵.
앞선 하프 엘프 때와는 달리, 더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찍지 마세요!”
클럽 경호원들이 우르르 나와 남자 하프 엘프를 가린 채, 그를 안으로 인도했다.
“에이…… 더 찍고 싶었는데.”
“하늘색 머리카락 신기하다…… 한 10%? 저 정도로 염색된 거면 꽤 뛰어난 하프 엘프인 거 아냐?”
“그럴걸? 염색 정도에 따라 힘의 차이가 있다던데.”
그렇게 사라진 남자 하프 엘프를 보고 사람들이 아쉽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툭. 툭.
누군가가 옆에서 성지한을 건드렸다.
“……?”
그가 고개를 스윽 돌리자.
“오오, 완전 닮았는데……!?”
얼굴이 새빨개진 남성 한 명이, 몸을 비틀거리며 성지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기! 혹시, 성형 어디서 했어요?”
“무슨 소립니까.”
“남자 하프 엘프랑 비슷하게 성형한 거 맞잖아요! 내가 한 곳보다 더 좋네…… 히끅!”
남자 하프 엘프랑 성형을 비슷하게 했다고?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술에 꼴은 눈앞에 남자도 뭔가 자신과 비슷하게 얼굴을 깎은 거 같았다.
‘이그드라실…… 무슨 생각이냐.’
성지한의 기록은 다 말살당했는데.
왜 자신을 닮은 남자 하프 엘프를 만들려 하는 거지?
그가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남성을 내려다보자.
“죄, 죄송합니다. 이놈이 술이 약해서……!”
“야, 신기하잖아! 완전히 남자 하프 엘프랑 닮았는데! 저래야지 ‘시험’ 통과한다고!”
“아, 미친놈아. 적당히 꼴아야지, 진짜. 뭐가 닮았어. 전혀 안 닮았는데!”
“눈 삐었냐? 자세히 봐 봐……!”
“야! 일로 와!”
남자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 그를 급히 데리고 갔다.
그렇게 일행이 물러나자,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
강남 길거리를 꽤 오랜 시간 배회했음에도.
남자 하프 엘프랑 닮았단 이야기를 들은 건 저 만취한 남자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성지한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갔지.
‘이것도 기록말살형 때문인가.’
제정신인 사람한테선 안 보이고, 만취자한테서 오히려 얼굴이 자세히 보이나?
뭔가 이상한데.
‘남자 하프 엘프에 대해서 더 조사를 해 봐야겠군.’
자신과 닮은, 하늘색 머리의 하프 엘프.
녹색의 관리자가 굳이 지구를 식민지로 만든 건, 저 존재랑 연관이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알아볼 것도 생겼으니, 슬슬 돌아갈까.’
성지한은 등을 돌렸다.
강남 시내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소드 팰리스.
하지만 현재 그의 수준에서는.
스윽……!
단 한 발자국만 떼어도, 귀환이 가능했다.
그렇게 그가 펜트하우스의 창문으로 들어서자.
“삼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뭐 볼 게 있다고.”
소파에 앉아 있던 윤세아가 일어났다.
시계를 힐끗 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성지한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나 기다렸냐?”
“당연하지. 얼마 만에 찾은 삼촌인데! 아직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거든? 나가서 찾으려다가 엇갈릴까 봐 계속 대기하고 있었어.”
“그럼 연락…… 아, 연락이 안 되네.”
폰도 없고, 배틀넷에서의 기록도 사라졌으니.
윤세아가 성지한한테 연락할 방도야 없었다.
“폰부터 사야겠다. 어때. 5년 동안 핸드폰 성능 좀 좋아졌냐?”
“어…… 좋아지지 않았을까? 나도 삼촌 찾는다고 워싱턴을 배회해서 잘 모르겠네.”
“워싱턴을?”
“응. 아, 삼촌은 모르겠구나? 미국 수도 옮겼어. 뉴욕으로.”
“……그래?”
“워싱턴이 폐허가 되어 버렸거든.”
헤븐넷 때문인가.
성지한의 표정이 굳자, 윤세아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영역이 커지는 속도가 느려서, 사람들은 다 대피했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삼켜지는 걸 보면서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래? 뭐, 안 죽은 게 어디야.”
“응. 그래서 삼촌이 희생해서 미국을 살렸다고 생각해서, 뉴욕에 짓는 대통령 관저는 블루 하우스로 하려 했대.”
“아니, 블루 하우스면 청와대 영어 이름 아냐?”
성지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자.
“응. 근데 지금은 그린 하우스로 바뀌었어…… 미국을 구한 공로도 녹색의 관리자가 가져갔고.”
윤세아가 어두운 얼굴로 그리 답했다.
화이트에서 블루, 그린까지 간 건가.
미국 대통령 관저도 이름이 참 파란만장하게 변하네.
“뭐, 그건 그렇고. 나 아까 신기한 거 봤는데.”
“신기한 거?”
“어, 클럽 앞에서 남녀 하프 엘프를 봤는데. 여자는 예전에 봤던 엘프랑 비슷헀는데, 남자는 나 닮았더라?”
“잉? 삼촌이랑 닮았다고? 하프 엘프가?”
“어, 너도 몰라?”
성지한의 물음에 윤세아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지구가 식민지 된 이후엔, 삼촌 찾으러 워싱턴 뒤지러 갔거든. 공허의 힘을 잔뜩 끌어모아서. 그래서 식민지 초창기의 변화 빼곤 잘 몰라.”
“워싱턴에서 몇 년을 뒤진 거야?”
“어, 글쎄? 2년쯤 됐나? 바닥부터 샅샅이 뒤졌으니까…….”
성지한이 부수기 전까지는, 전혀 단서도 안 나왔을 탐색.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보다 더 힘든 작업을, 2년간 한 건가.
“고생했겠네.”
“고생은 삼촌이 더 했지.”
“나는 뭐, 별거 없었는데. 적색의 관리자를 부려 먹기만했지.”
“부려 먹어…….”
“어. 그놈, 나한테 모든 권한을 주고 명계에 몸을 바쳤거든.”
헤븐넷의 완성에 진심이었던 적색의 관리자.
그는 마지막에 스스로를 연료로 삼아 새로운 시스템을 유지하려 했다.
특히 이 시스템의 상극이 될 성지한을, 오히려 이곳의 주인으로 삼음으로써.
약점까지 없애려 했다.
‘스탯 적의 유혹, 상당히 강력했지…….’
9999에서 2까지 레벨을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했던 스탯 적.
그 능력을 올릴 때마다, 헤븐넷과 일체화되는 감각은 확실히 강렬했다.
청으로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는 헤븐넷의 주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기껏 그걸 봉인하고 왔더니, 배틀넷에서 추방당할 줄은 몰랐다만.”
“추방…… 삼촌, 추방된 거야?”
“어. 추방된 관리자라고 뜨던데.”
“……와, 진짜 너무하네. 그냥 그 헤븐넷? 주인 되지 그랬어.”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건 안 되지. 그럼 적색의 관리자랑 한 몸이 되는 거나 다름없거든. 그게 녀석의 의도였으니까.”
“아, 그렇구나…….”
“근데 흑색의 관리자는 그동안 뭐 한 거냐? 백색이 그렇게 나섰는데 구경만 한 거야?”
백색의 관리자가 이번 일에 개입한 게 알려진 이상, 행동을 취해야 했던 흑색의 관리자.
하나 그가 나섰다기엔, 어째 변화가 체감되질 않았다.
오히려 인류가 녹색의 식민지가 되질 않았는가.
성지한의 물음에 윤세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메신저’가 알려 주길, 흑색의 관리자께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셨다던데…… 그 이후엔 연락이 안 됐거든.”
“그래?”
“응, 나중에 메시지로 ‘잘 해결되었습니다’라고만 왔는데. 체감이 전혀 안 돼.”
“흠…….”
아무리 공허의 상위 서열인 ‘아레나의 주인’으로 내정되었다 한들.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는 건가.
‘이거, 이그드라실을 족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군.’
흑백의 관리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너무 드러내 놓고 행동해선 안 되겠다.
진짜 재수 없으면, 공허와 백색의 관리자.
둘이 다시 협력 관계로 돌아섰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공허가 저쪽 편을 들었다면 세아랑 이렇게 접촉했을 때 바로 반응이 왔을 테니……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완전히 파악되기 전까지는, 힘을 숨기고 있는 게 낫겠어.
그리 생각한 성지한의 왼쪽 눈이.
“어? 삼촌, 눈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