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13화>
성지한이 무신의 머리 안에 들어오자.
번쩍……!
뱀의 몸뚱어리에 반사적으로 백색의 빛이 폭발했다.
그러자 공간을 또다시 뛰어넘는, 무신의 몸.
하나.
“나까지 딸려 가는군그래.”
텔레포트는, 무신의 영역에 완전히 들어섰던 성지한까지 포함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영역 전체를, 옮기는 것 같더니. 느낌이 맞았군.’
백색의 관리자가 개입한 텔레포트.
이건 무신이라는 한 개체를 이동시킨다기보다는, 그가 속한 영역 전체를 옮기는 것이라고 성지한은 판단했고.
그 추측은 지금 적중한 상태였다.
‘이것도 동방삭의 무재를 물려받아서 그런가.’
예전이라면, 파악하기 힘들었을 공간의 미묘한 비틀림.
하나 혼원신공이 무극멸신으로 발전한 이후부터, 성지한은 자신의 감각이 한층 증폭되었음을 느꼈다.
백색의 관리자가 행한 텔레포트가, 무신 개인이 아니라 영역 전체를 통째로 옮긴 거라는 걸, 파악할 정도로.
화르르륵……!
이동한 뱀의 입안에서, 또다시 적멸이 피어올랐지만.
‘죽기 직전에 금륜적보 간다.’
성지한은 그냥 코인 1개 쓰기로 하곤, 대놓고 흑색의 태극마검을 그의 머릿속에서 증폭시켰다.
파아아앗……!
거대한 뱀의 머리 위로, 흑색의 검광이 치솟고.
[카아아아악……!]
무신의 비명성이 투성에 가득 울려 퍼졌다.
한 번 죽을 생각으로, 작정하고 쓴 태극마검에.
안 그래도 무에선 성지한에게 밀리던 무신은 속수무책이었다.
번쩍! 번쩍!
성지한이 뱀의 머리 안에서, 그리 태극마검을 내뿜는 걸 보면서.
백색의 관리자도 무신을 따로 옮기기 위해 이리저리 수를 썼지만.
“어딜 혼자 가냐?”
성지한은 옮겨지는 영역과.
아닌 지역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곤 옮겨지는 영역에 몸을 던져 같이 딸려 움직였다.
그렇게 백색의 텔레포트로는, 성지한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자.
[크…… 크르르르……!]
뱀의 입에선, 아까보다 더 강력한 적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저 적멸에 완전히 대체하지 못해서 수없이 사라지고 재생되었던 성지한의 육신이었는데.
저것과 닿는다면, 더 이상 재생하긴 힘들어 보였다.
목숨이 아깝다면, 지금이라도 뱀의 머리 안에서 빠져나와야 했지만.
‘1코인 쓸 때가 왔네.’
여기서 도망간다면, 무신을 잡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 성지한은.
아예 금륜적보를 쓸 마음을 굳혔다.
화르르륵……!
전신이 완전히 타오르고.
마지막으로, 왼쪽 얼굴의 균열이 터져 버렸을 때.
스스스스…….
거기서 공허가 범람하면서, 적멸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성지한의 몸은 시커멓게 타올라, 움직이질 못했지만.
보랏빛의 공허는 한없이 증폭되며, 태극마검을 키워나갔다.
그래도 이 상황.
제3자가 보면, 다 죽은 상황에서 그냥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아직 의식은, 살아 있다.’
성지한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며, 단 하나만을 생각했다.
이 넘치는 공허로, 태극마검을 최대한 완성한다.
금륜적보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한 번 제대로 활용해 봐야겠지.
파아아앗……!
육신 태반이 사라졌음에도, 태극마검은 더 강렬하게 치솟고.
뱀의 등 뒤에 있는, 성좌의 무구는 계속해서 파괴되었다.
이쯤되면, 같이 죽자는 동귀어진의 태도나 다름없는 성지한의 공격.
[크. 크르르르…….]
뱀은, 그저 입에서 불길만 내뿜을 뿐.
더 이상의 대처를 하지 못했다.
파스스스…….
그렇게 뱀의 등 뒤에 꽂힌 성좌의 무구가 태극마검에 의해 사라지고.
뱀의 몸뚱어리가 잘리고 재생하기를 반복할 때쯤.
성지한의 마지막 남아 있는 파편.
왼쪽의 얼굴마저도, 결국 적멸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려고 했다.
‘여기까지인가.’
태극마검에 공허는 충분히 담았건만.
무신의 안에서 마무리가 안 되네.
힘만 불어넣어서는, 완성되지 않는 건가.
‘…….’
그렇게, 설지한이 소멸하기 직전.
그의 등 뒤로.
드르르륵……!
하나의 황금 수레바퀴가 떠올랐다.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24시간 전까지.
자신이 시간대를 설정하여, 몸 상태와 육체의 위치 정보를 옮겨줄 수 있는 금륜적보.
‘빛의 장막은 뚫지 못하지만, 이 영역 안에서 재생은 충분히 가능하다.’
성지한은 그렇게, 이제는 2번 남은 기회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거꾸로 돌아가는 수레바퀴.
시간을 역행하고,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
‘아.’
성지한의 정신이. 더할 나위 없이 맑아졌다.
아소카의 깨달음을 강제로 구현해 주는 금륜적보.
그것이 제대로 발동하자, 그도 이에 동화되며 일순간이지만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자.
‘이러면 되겠구나.’
그간 공허만 불어넣었을 뿐, 완성하지 못했던 태극마검의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왔다.
금륜적보를 쓰는 지금 이 순간만 가능한 방법.
‘해 보자.’
스으으으…….
한없이 증폭되던 태극마검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검 안에 응축된 공허는, 크게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크르…….]
자신의 머리를 꿰뚫던 태극마검이 사라지자.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내뱉던 뱀은 한순간 안도했지만.
슈우우우욱!
검의 형태가 무너진 채, 일점에 모인 태극마검은.
이 안으로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뱀의 입안 모든 것뿐만 아니라.
성지한의 등 뒤에서 움직이는 금륜적보까지 빨아들이려는 공허의 일점.
‘이러다 나까지 빨려 들어가겠네.’
드르르륵……!
빠르게 금륜적보가 회전하고, 성지한의 모습이 사라지자.
뱀의 안에 있는 공허의 일점에서.
스으으으…….
백색과 흑색이 분리되며, 태극의 문양이 떠올랐다.
태극마검이 뽑혀 나올 때만 해도 역방향으로 돌았던 태극은.
이번엔, 원래의 순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슈우우욱……!
뱀의 육신이, 그 안으로 천천히.
하나 확실하게, 빨려 들어갔다.
* * *
“저게…… 태극마검의 완성형인가.”
반 갈라진 투성 위에서 다시 살아난 성지한은.
위를 바라보았다.
번쩍! 번쩍!
뱀의 몸뚱어리는 몇 번이고 빛에 뒤덮였지만.
손쉽게 텔레포트를 하던 저번과는 달리, 그는 꼼짝도 하질 못했다.
공허의 태극마검이 일점으로 모여 만들어 낸, 태극 문양에.
뱀의 몸은 완전히 포획되어 버렸다.
‘내가 사용했지만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네.’
무극멸신으로, 동방삭의 무재를 일부 이어받고.
금륜적보로 아소카의 깨달음을 잠깐이나마 이해했을 때.
본능적으로 완성시킨 게, 바로 저 일점의 태극이었다.
저걸 다시 써먹으려면, 아까처럼 금륜적보를 쓰는 타이밍에만 가능하겠지.
‘쓸 일 없었으면 좋겠군.’
이제 남은 금륜적보의 기회는 1번뿐이었으니까.
더 이상 목숨 걸 일은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뱀에게 다가갔을 때.
[도…… 동. 방. 삭……! 끝까지 나를……!]
이성을 잃은 그에게서, 처음으로 한 무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아, 그건 아소카도 도와준 거라 봐야 해.”
[아소카…… 그, 그놈이야말로 문제의 원인이었다……!]
아소카의 이름까지 언급해 주자, 더 발악하는 무신.
적색의 관리자가 걸어 둔 광화가 끝났는지, 그는 꽤 명료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애초에, 네놈을 그때 투성에서 죽였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러게. 근데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냐? 이미 뒤진 걸.”
[크르…… 이, 렇게 죽을 순 없다…… 내가 어떻게 살려 했건만…….]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슈우우우……!
태극은 서서히 더 빠르게 돌아가며, 뱀의 머리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이제 남은 건, 뱀의 뒷부분인 몸통뿐.
‘드디어 뒤지나.’
그럼 이제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
성지한이 그렇게 팔짱을 낀 채, 빛의 장막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렇게…… 죽을 순……!]
파아앗!
뱀의 몸통에서, 머리가 하나 또 불쑥 튀어나왔다.
분명 머리는 태극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는데.
저렇게 증식할 수도 있는 거였어?
“아…… 새끼 진짜 끈질기네.”
성지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그 머리를 바라볼 때쯤.
[왜, 왜 분리가 되지 않는가?]
정작 튀어나온 뱀의 머리는,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오질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올 수 있었으면, 이전에 백색의 관리자가 써 준 텔레포트부터 먹혔겠지. 아. 그땐 정신 놓고 있었으니 기억 안 나려나?”
[이 태극이, 이미 날 장악한 건가…….]
“그래. 그러니까 좀 빨리 죽어라.”
[……네놈은 내가 생을 구걸해도, 살려 줄 생각은 없겠지.]
“당연하지. 나도 목숨 하나 깠거든. 거기에, 사실 해 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성지한은 그러며 뱀을 빨아들이는 태극을 가리켰다.
“저거 거둬들이는 법, 나도 모르거든.”
[……하.]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안 뱀은, 탄식만 흘리다가.
스으으으…….
기껏 빼내었던 머리를, 다시 몸 안으로 거둬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가.
무신의 몸뚱어리는, 더 빠르게 태극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10분도 채 안 돼서 무신이 사라지겠군.
‘그래. 빨리 죽고 무신 칭호나 내놔라.’
‘무신’의 칭호.
그건 성지한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EX급 스킬, 무극멸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신’의 칭호를 활성화하는 게 필요했으니까.
성지한이 그렇게 무극멸신의 완성을 기대하며, 뱀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을 때.
번쩍……!
그의 등 뒤로, 새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짝. 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제법이다, 청색의 관리자. 저 짐승, 충분히 관리자의 힘에 닿을 만했건만…… 이렇게 빨리 제압하다니.”
위압감이 넘치는 강렬한 음성.
성지한은 이를 듣자마자,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선 맨 먼저 커다란 입과 턱이 보였다.
‘……뭐야, 이놈은.’
그리고 턱 아래엔.
목 대신 두 팔이 대롱대롱 달려 있는 기괴한 생명체가 그에게 계속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관리자란 놈들 왜 다 이따위로 생겼냐? 적색 놈은 눈깔이더니. 백색은 입만 둥둥 떠 있네.”
“나는 백색의 관리자가 아니다. 그 완성된 분과, 내가 어찌 같을까.”
“그럼 넌 뭔데?”
“나는…….”
박수를 멈춘 입은.
스으으으…….
입술을 벌리며, 이빨을 내보였다.
하나하나가 새하얗게 반짝이는 이빨.
“백색의 마지막 종.”
“마지막 종이라…….”
“그리고…… 무의식이자 본능이지.”
그러면서 그는 박수를 멈췄다.
“인류. 너희들의 개념을 가져오면, 그분의 이드Id라고 보면 되겠지.”
“이드?”
“그래. 날, 이드라 호칭하면 될 것이다.”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가 백색의 무의식이자 본능이니, 이드라 하는 거 같은데.
어쨌든 결국 그놈이 그놈 아냐?
“백색의 본능이면 결국 백색일 텐데. 어디서 말장난이지?”
“아니. 그분은 이성적이고, 위대하신 분…… 절대 적색의 관리자 같은 범죄자를 도우실 분이 아니다.”
스으윽.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다만 나 같은 ‘본능’이 그분의 숭고한 뜻을 거스르고, 그에게 작은 투자를 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적색의 위대한 후원자는, 백색이 아니라 너다? 백색께선 죄가 없다?”
“정확히 그렇다.”
짝. 짝.
다시 박수를 치는 이드.
성지한은 그를 보며 두 눈을 가라앉혔다.
“결국 백색 놈이 책임 회피하려고 널 써먹는 거잖아.”
“정확히는 아니다. 그저 이드가 일탈하고 있을 뿐.”
되지도 않는 수작질을 하네.
성지한이 그를 노려보고 있을 때.
“이런 나의 일탈이, 너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뭔 도움?”
“네 회귀.”
‘회귀’를 거론한 이드가.
“누구 덕인 거 같으냐? 무성 성지한.”
빛나는 이빨을, 다시금 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