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10화>
투성에 착지한 성지한은, 일단 주변을 살폈다.
이 황량한 별의 하늘 위에는, 성좌의 무구가 빼곡하게 떠 있었고.
두 붉은빛이, 마치 눈처럼 움직이며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이미 무신은 투성과 동화된 상태인 건가.
‘주화입마는 풀렸나 보군.’
적의 왜곡도가 팍 치솟다 내려가더니.
동방삭의 주화입마도 해제된 건가.
성지한은 투성에서 느껴지는 무신의 힘을 가늠했다.
‘처음 소환되었을 때보다는 확실히 약해졌어.’
처음, 플레이어 시절 투성에 소환되었을 때에는.
무신에게 이보다 훨씬 많은 성좌의 무구가 있었고, 힘도 강력했다.
하나 지금은 아소카와 동방삭에게 두 번 타격을 입어서 그런가.
저번처럼 압도적인 힘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도,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인 건 변함 없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무한회귀로 모은 힘은 여전히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성지한이 청색의 관리자가 되면서, 그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확실히 저 힘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주화입마가 계속 작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하늘 위에 대고 물었다.
“무신, 적색의 관리자는 어디 있나?”
[그를 왜 나한테서 찾지?]
“네 주화입마를 풀어 준 게 그놈이잖아?”
[……왜 그 제약을 내가 풀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건가?]
“적색이 푼 거 맞잖아?”
[…….]
성지한의 단언에, 반박은 못 하고 하늘에서 강렬히 빛만 나는 두 붉은빛.
그는 그 빛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적색의 관리자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 적색 놈은.”
[나도 모른다. 그는 사라졌으니까.]
성지한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한 번에 처리하고 싶었는데, 귀찮게 됐네.
‘그래도, 두 놈이 협공하는 것보단 낫나.’
성지한은 그리 판단하곤, 배틀튜브를 켰다.
백색의 관리자가 업그레이드해 준 스타 버프와 초신성.
전투에 앞서, 그 효과를 보기로 한 것이다.
-오 수련장 이후 첫 방송인가.
-어 근데 여긴 어디죠?
-거기 아님……? 무신 살고 있다는 투성.
-하늘에 무기 졸라 떠 있는 거 보니 맞네;
공허의 수련장에서 나온 이후, 첫 방송을 보고 반가워하던 시청자들은.
화면 속에서 드러난 풍경을 보곤, 금방 여기가 어딘질 눈치챘다.
무신의 별 투성.
성지한이 저번에 죽을 뻔했던 장소로, 아소카가 아니었으면 실제로 여긴 그의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배틀튜브, 버프용으로 좀 켰습니다. 대답 없어도 이해 좀 해 주시길.”
성지한은 그리 말하면서.
스으윽…….
태극마검의 검 끝을 들어 하늘을 향했다.
“오늘, 무신을 잡을 겁니다.”
번쩍……!
그러면서, 강해지는 광검의 빛.
하늘 위의 무신은.
[너를 제압하는 건 내가 될 것이다.]
이를 보며 위엄 어린 음성을 발했지만.
스으으으…….
오히려, 성좌의 무구는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피해?’
검 끝이 가리키는 곳에 맞부딪치기보다는.
이를 피하려고 성좌의 무구를 사방에 흩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동방삭의 태극마검을 경계하는 건가.
‘……흠, 주의를 끌어서 은하검흔으로 한 번에 무력화시키려고 했는데.’
상대도 그렇게, 단순하게 대응하진 않는군.
심즉검행의 착지 지점과, 바벨탑이 올라오는 지역에 힘을 집결시키나 싶더니.
오히려 이건 내가 지금 널 대비하고 있다는 식의, 보여 주기였을 뿐이고.
사실 그는 태극마검이 내보일, 은하검흔을 경계하고 있었다.
동방삭이 무얼 남겼는지는, 그도 자세힌 모르겠지만.
그의 태극마검이 성지한의 손에 들린 이상, 분명히 강력한 일격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 거겠지.
‘그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하늘을 무너뜨린다 한들, 생각보다는 무신에게 타격이 없을 수도 있겠어.’
은하검흔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단 1번.
상대가 이렇게 조심히 나오면, 좀 싸워 보다가 나중에 진짜 전력이 모인 곳에 은하검흔을 쓰는 게 낫겠지만.
‘그러기엔, 태극마검도 오래 버티질 못해.’
봉인지에서 뽑아낸 태극마검은, 더 이상 힘을 유지할 원천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성지한이 여기다 영원의 힘을 주입한다면 조금은 더 버티겠지만.
태극마검이 적색의 세계수를 말라비틀어지게 한 걸 생각하면, 여기에다 힘을 투자하는 건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태극마검은 유지되기 위해, 요구하는 양이 많았으니까.
‘……저 하늘에 은하검흔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타깃이라면.’
하늘을 바라보던 성지한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배틀튜브를 켜며, 증폭된 힘.
그리고 은하검흔에 담긴 측정 불가능한 파괴력.
이 힘이라면, 저 하늘을 무너뜨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한 것도 노릴 수 있어.’
성지한의 시선이,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을 향했다.
무신이 지배하고 있는 별, 투성.
평상시라면, 이걸 벨 ‘대상’이라고 생각조차 하질 않았겠지만.
‘이 검이라면, 가능하다.’
성지한은 확신했다.
동방삭이 남긴 태극마검.
그걸로 펼치는 은하검흔이라면.
충분히 투성도, 벨 수 있다.
스스스스…….
성지한의 등 뒤로, 태극이 떠오르고.
태극마검의 빛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동방삭…… 죽어서까지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구나!]
슈우우욱……!
이를 보고, 무신은 노성을 토해 냈지만.
성좌의 무구는 빛을 피하듯, 질서정연하게 양옆으로 갈라졌다.
태극마검의 공격을, 무조건 피하겠다는 움직임.
-?? 저거 지금 피하는 거임?
-쟤는 저번에도 그렇고, 매번 도망친다니까.
-ㄹㅇ 성지한 플레이어 시절 때 튀는 거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ㅡㅡ
-이런 게, 무의 신…….
무신의 민첩한 회피 동작을 보고 시청자들이 그답다고 이야기할 즈음.
번뜩!
태극마검에서 치솟던 빛이, 한순간 멎었다.
그리고, 성지한의 등 뒤 떠올랐던 태극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흑백이 명확히 나뉘던, 음과 양이 하나로 합쳤다.
무극멸신武極滅神
태극마검太極魔劍
은하검흔銀河劍痕
파아아앗……!
그러자, 완전히 사라지는 태극마검의 형체.
-잉? 뭐지…….
-검이 사라졌는데?
-스킬…… 실패한 건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최후의 검이 이렇게 날아가나;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성지한의 공격이 실패한 것으로 생각했을 때.
[이…… 무슨…….]
하늘 위에 뜬, 두 붉은빛 중 하나가.
일순간,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투성의 대지와, 눈앞의 바벨탑.
그리고 하늘마저, 일제히 반으로 갈라졌다.
* * *
-와…….
-지금 뭘 본 거지?
-저 행성, 반으로 쪼개진 거임…….
-검 사라졌을 때만 해도 스킬 실패인 줄 알았는데;
-아, 서해에서 검에서 빛 나올 때 사진 찍었어야 했다…….
배틀튜브에 생중계된, 은하검흔.
그 검이 보인 위력은, 모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이거, 투성만 베려고 했는데…… 다 베어 버렸군.”
은하검흔.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네.
성지한은 아래를 바라보았다.
반으로 갈라진 대지는, 이제 더 이상 그를 안정적으로 지탱하지 못했다.
‘땅에서 발을 뗄 때군.’
휙!
성지한은 허공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지이이잉…….
은하검흔의 궤적이, 뒤늦게 빛났다.
푸른색 테두리가 선명한, 새하얀 빛무리.
그것은 투성을 완전히 가르고.
더 나아가, 하늘에 고고한 빛을 발했다.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갈라진 투성의 아래쪽에도, 저 빛은 선명히 뻗어 나가겠지.
‘이것이…… 은하검흔.’
검을 다루는 무공에 쓰기엔 광오한 이름이더니.
써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성지한이 그렇게, 사그라지지 않는 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슈우우우……!
은하검흔의 빛을 향해, 멀리 위치한 성좌의 무구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익……! 나와라! 왜, 왜 제어가 되지 않는 거냐……!]
하늘 위에선, 붉은빛 하나가 번뜩이며 무신이 성좌의 무구를 제어하려고 했지만.
그 시도가 무색하게, 성좌의 무구는 일제히 은하검흔의 안으로 모이고 있었다.
‘아니…… 저런 효과도 있었어?’
투성을 반으로 쪼갠 걸로 모자라서.
미처 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성좌의 무구까지 모아서 없애 주다니.
동방삭이 작정하고 만들어서 그런지, 진짜 위력이 말이 안 되는구나.
“끝까지 신세를 지는군요, 동방삭.”
빛을 향해 잠시 목례를 한 성지한은.
무신의 기세를 살펴보았다.
처음 조우했을 때만 해도 강렬했던 그의 힘은, 어느새 반.
아니 그 이상으로 힘이 축소되어 있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하겠지.
은하검흔이 약해지긴커녕, 계속 빛나며 성좌의 무구를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이거, 동방삭이 거의 혼자 다 처리해 준 셈인데?’
성지한은 성좌의 무구와, 갈라진 투성도 점차로 끌어당기고 있는 빛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기 전에,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는걸?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무신의 빛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동방삭이 이렇게 판을 깔아줬으니,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야지.
그렇게 그가 하늘 위로 올라서자.
[크…… 으으…….]
별처럼 반짝이던 붉은빛 주변으로.
거대한 뱀의 형상이 드러났다.
정확히는, 은하검흔으로 인해 반으로 갈라진 뱀이.
붉은 눈동자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검, 대체 무엇이냐…….]
성지한을 보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묻는 무신.
“동방삭이 남긴 검이다. 그는 이를 은하검흔이라 이름 지었지.”
[은하검흔…… 이런 검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그를 이용할 생각하지 말고 제거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지.”
[…….]
치이이익…….
갈라진 뱀의 상흔에, 빛이 번뜩였다.
재생을 막는, 검의 흔적.
가까이서 보니, 무신은 자신의 상처조차 치료하질 못하고 있었다.
이러니 성좌의 무구가 컨트롤이 되겠나.
‘이거 나는 완전 막타만 치겠네.’
스으으윽…….
성지한의 등 뒤로, 태극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를 본 뱀은 몸을 움찔했지만.
그의 손에서, 흑색의 태극마검이 나타나자.
[그건, 네 검이군…….]
확연히 안도하는 기색을 띠었다.
‘자식, 반응이 바로 티가 나네.’
동방삭의 태극마검이 아니라서 안도한다 이거지?
사실 저 반응이야, 무신이 당한 걸 생각하면 당연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나오니 꼭 이 태극마검의 힘도 보여 주고 싶어지는군.
‘하지만 그러기엔, 뭐 벨 게 별로 없어.’
반으로 갈라진 무신.
은하검흔에 베여, 땅으로 떨어진 뱀의 반신은 어느새 빛에 빨려 들어간 상태였고.
반 남은 무신의 육체도, 검에 베인 상처도 치료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제 그냥, 저 남은 반쪽 뱀의 몸뚱어리만 베면 투성에서의 전투는 끝나겠지.
‘빨리 없애자.’
파아아앗……!
성지한의 검에 푸르른 청의 기운이 감돌고.
검은 곧 무신의 남은 몸뚱어리마저 베려 했다.
그때.
화르르르륵……!
갈라진 뱀의 머리 앞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말로, 너무하구나.]
피어올랐던 불이 멎고.
그 안에서, 거대한 붉은 눈이 나타났다.
[어떻게 무신이라는 자가, 일검도 막질 못한단 말이냐? 시간조차 벌질 못하다니. 쯧쯧…….]
“……넌.”
[오랜만이군, 청색의 관리자.]
“적색의 관리자인가.”
[그래. 내 작품이 네 기대에 영 미치질 못했군.]
번뜩……!
붉은 눈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주르르륵…….
그 안에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이제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