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07화>
적색의 관리자의 붉은 눈.
무신은 그걸 직시하자, 왜곡되었던 기억이 되돌아왔음을 느꼈다.
‘태양왕의 실험실을 탈출한 건, 전적으로 그의 덕이었다.’
무신의 육체를 탐내, 수도 없이 이 몸에 들어오려 했던 태양왕.
그의 감시망은, 갓 태어난 무신이 도망칠 수 있을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거기서 나온 건, 저 붉은 눈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을 관리하던 태양왕의 노예가 갑자기 발작한 것도.
그로 인해 시험관이 깨져 틈이 생긴 것도.
모든 게 처음 보는 광경이건만, 본능적으로 모두 올바른 탈출 루트를 찾아 나간 것도.
[……네가 나에게, 지시를 내렸던 거군.]
“기억이 나나.”
[그리고, 지구에서 활동했을 때에도, 너는 언제나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탈출한 자신이, 지구에서 실험을 하던 ‘적의 일족’과 합류하고.
처음에는 그들의 실험을 돕다가, 나중엔 배신하여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앤 것도.
그땐 모두 자신의 판단인 줄 알았지만, 막후에는 적색의 관리자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 거지? 너의 일족은 충성스러웠을 텐데.]
“그들은 능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업을 위해 희생시키기로 했지.”
[대업이라면…….]
“명계 구축. 적의 일족의 쓸모는, 죽었을 때 가장 가치 있더군.”
자신의 출신 종족을 두고, 죽은 게 가장 쓸모 있다고 이야기하는 적색의 관리자.
이를 지켜보던 무신은 그에게 물어보았다.
[네 말대로라면, 나도 능력이 부족할 텐데…… 왜 내가 너의 작품이지?]
“네 능력 부족은 인지하는구나.”
[지금껏 해 온 일 중 많은 것이, 네 영향이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탈출할 때부터 시작하여, 무신이 되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로 속에서, 무신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무한회귀에 들어서기 전까지, 행했던 수많은 선택은.
대부분 적색의 관리자의 영향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무신이란 존재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적색의 관리자를 바라보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능력이 꼭 한 가지 분야에 국한된 건 아니지. 너는 내 작품이라 평할 만큼,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무슨 능력 말인가?]
“너는 태어날 때부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했지.”
[살고자 하는 욕구? 그건 모든 생명체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 이런 건 능력이라 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
적색의 관리자는 무신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태양왕이 네게 주었던 고통은 강렬하고, 집요했지. 그 누구도 차라리 죽기를 바랄 만큼, 그가 가한 고문은 지독했다. 하지만 너는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쳤지.”
[……그게, 내 능력이라고? 살고자 하는 게?]
“그래. 널 내 작품으로 선정할 만큼, 네 의지는 기준점을 넘었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게 싫어서, 살겠다고 발악한 것이.
적색의 관리자에게 ‘작품’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거였나?
무신은 그 말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지만.
스으윽…….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이런 무한회귀에서 잘도 제정신을 유지하지 않았나. 나 대신 말이야.”
적색의 관리자가 성좌의 무구를 둘러보며 그리 말하자.
두 눈을 크게 떴다.
[나 대신…… 무한회귀마저도, 네가 계획한 것이었나?]
“아니. 그것은 네 종의 능력이었지. 다만, 나는 그걸 들키지 않게 만들어 줬을 뿐이다.”
그러며 적색의 관리자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원래라면, 무한회귀는 배틀넷에서 금방 ‘에러’로 감지하고 즉결 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하나, 내가 시스템을 수정하고 성좌의 무구까지 만든 덕에, 넌 힘을 이렇게까지 모을 수 있었지.”
[허! 네가 이걸…… 그렇게 완성시켰구나.]
“그래. 나 대신 힘을 모아주는데, 케어를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이 무구한 회귀 속에서, 상시 관리자가 되겠단 희망 하나로 버텼건만…….]
무한회귀.
시간을 되돌려 계속 반복된 삶을 사는 건,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처음에야 성좌의 무구에 힘이 잘 모여서 할 만했지.
시간이 지날수록, 회귀를 거듭해도 힘이 거의 늘질 않아서.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를 버텨온 건.
상시 관리자가 돼서, 태양왕의 낙인을 없애겠다는 목표 단 하나 때문이었는데…….
“나는 지루한 것을 싫어하거든. 나 대신 그 오랜 세월을 버텨, 이렇게 많은 무구를 모아 줘서 고맙구나.”
적색의 관리자가 그러면서 눈알을 굴리자, 무신은 분을 참지 못했다.
[자기 대신이라…… 누구 마음대로! 이건 절대 넘기지 않겠다. 죽어라!]
그러면서 무신은 뱀의 머리에 힘을 끌어올렸지만.
“음, 확실히 다른 능력은 형편없군.”
번쩍!
적색의 관리자의 눈이 붉게 빛나자, 무신의 힘이 금방 와해되었다.
[아닛…….]
“넌 나에게 거역하지 못한다는 걸, 왜 모르느냐.”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동방삭이라는 칼로 날 베었기에 가능했지만.”
적색의 관리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은 그도 없지 않은가.”
[……이미 금제가 있었군.]
“그래, 넌 이 눈에 저항할 수 없다.”
적색의 관리자의 말대로.
무신은 저 눈앞에서, 그를 거역할 수 없었다.
저번에 적색의 관리자를 제압했던 건, 오로지 동방삭을 파견시켰기에 가능했지.
그때도 그와 1:1로 마주했다면, 꼼짝없이 그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날…… 먹어치울 생각인가.]
무신이 무력한 어조로 그리 말하자.
적색의 관리자는 뜻밖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라고?]
“그래. 네 몸으로 갈아탈 거면, 진작에 했겠지.”
하긴.
그럴 거였으면, 동방삭의 봉인진에서 적색의 관리자가 튀어나왔을 때.
바로 장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나 적색의 관리자는, 성좌의 무구를 주면 주화입마를 풀어 주겠다는 등.
시간을 끌었지.
“애초에 난 나설 생각이 없었다. 네가 도망치기 전까지는.”
[도망이라니…… 투성의 이동을 말하는 건가.]
“그래.”
지이잉…….
적색의 관리자의 눈에서 빛이 나자.
그 앞에, 성지한의 형상이 나타났다.
“청색의 관리자를 여기 불러들여서, 그를 확실히 죽여라. 그럼 네게 자유를 주지.”
[내 힘을 가져가서 죽이면 될 것을…….]
“내가 유일하게 못 하는 게 전투다. 거기에, 내 ‘적’은 그와 상극이고.”
적을 제압하기 위해 태어난 청.
그런 능력과 굳이 맞부딪칠 필요야 없었다.
“무신의 힘을 보여봐라. 17777번째여.”
[지금, 내 힘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성좌의 무구가 주화입마에 묶여 있으니…….]
“그건 내가 풀어 주지. 성좌의 무구, 100개만 넘겨라.”
[100개…….]
아까는 20개 달라더니, 요구가 과하군.
하지만 붉은 눈이 번뜩이자.
무신은 그에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무구를 넘기고 있었다.
“자, 그럼.”
화르르륵……!
무신이 넘긴 성좌의 무구 중, 반이 불타오르고.
허공에 수없이 많은 글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 그의 눈앞에.
[시스템 수정.]
[스탯 주화입마가 변경, 삭제됩니다…….]
[성좌의 무구와의 연결이 해제됩니다.]
[성좌의 무구와 새롭게 이어집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수도 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게, 관리자…….’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수정하는 상대를 보며, 무신은 거대한 벽을 느꼈다.
50개의 무구로, 자신을 완전히 봉쇄시킨 주화입마를 뒤바꾸다니.
이 정도는 되어야, 관리자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연결이 다시 되는군……!]
주화입마가 사라지고, 성좌의 무구와 연결이 다시 됨을 느낀 무신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니.
그가 그렇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자.
“끝났군. 남은 건 내가 좋은 곳에 쓰지.”
푹! 푹!
남은 50개의 무구를 자신의 몸에 꽂아 넣은 적색의 관리자는.
자신의 뒤로, 불로 이루어진 포탈을 만들어 냈다.
[투성에서 나갈 셈인가?]
“그래. 청색의 관리자를 잡아야 하는데, 내가 여기서 방해하면 안 되겠지.”
정말 성좌의 무구를 저거만 챙기고 떠난다고?
자신을 눈빛만으로 지배하는 존재가 가져가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소소하다.
무신이 그렇게 적색의 관리자의 행동을 보며 혼란스러워하자.
그가 그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왜 이것만 가져가는지 의아하느냐?”
[그래. 더 욕심낼 수 있을 텐데?]
“후후, 네가 능력이 있었으면 더 가져갔겠지. 하나 네 재능은 생존 욕구를 제외하곤 형편없으니, 내 신경 써서 무구를 더 남겼다.”
[허…….]
그러니까 성지한을 못 잡을까 봐, 무구를 최소한으로 가져간다 이거군.
무신이 언짢은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러니, 이번에 청색의 관리자를 꼭 죽여라. 그래야 자유를 얻을 것이다.”
적색의 관리자는 화염의 포탈 속으로 들어가며, 다시 한번 그에게 명령했다.
청색을 잡는 데, 누구보다도 진심인 적색의 관리자.
[……알겠다.]
무신은 그의 명령을 따랐다.
* * *
봉인지 내부.
적색의 세계수는, 이제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동방삭의 태극마검에, 길가메시의 천수강신까지 겹쳐지니.
무한한 생명력을 지닌 것 같던 세계수도 결국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거 더 놔두다간 태극마검이 먹을 것도 사라지겠네.’
길가메시를 매개체로 생명력을 빨아들이던 성지한은.
“야, 이제 그만 먹자.”
툭!
길가메시의 몸을 뒤로 뺐다.
“왜, 왜…… 아직 난 더 생명력을 더 흡수해야 한다!”
“뭐? 몸은 다 재생했잖아?”
저번이랑은 달리, 성지한이 길가메시의 신체 재생을 허용한 덕에.
그는 원래의 성인 육체를 되찾은 상태였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
하지만.
“아직 번식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상대는, 중요한 게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거 사라졌잖아, 너한테.”
“아니다! 저 세계수에서 희망을 보았다. 저기서 생명력을 더 흡수하면, 후손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해골 될래?”
“아, 제발……!”
“인벤토리.”
“히익!”
인벤토리 소리에, 경기를 내는 길가메시.
‘하…… 왜 이렇게 추해.’
이딴 게 아담이라니, 말세다 진짜.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그를 강제로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거의 회복하긴 했군.’
성지한은 길가메시를 통해, 얻은 수확을 떠올렸다.
[영원이 7 오릅니다.]
[불완전 스탯 ‘영원’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천수강신으로 그에게서 생명력을 뽑아냈을 뿐인데.
영원 스탯이 7이나 오르고, 효율까지 증가해 있었다.
박살 났던 얼굴도 예전처럼, 금 간 수준까지 회복되어서.
지금 몸 상태는 완벽하다고 봐도 되었다.
‘이젠, 검을 뽑아야겠군.’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는 무신을 잡아야 할 때.
성지한은 봉인진 위에 꽂힌 태극마검을 바라보았다.
“……동방삭, 정말 괴물이었군. 저런 검을 어떻게 구현한단 말인가? 그놈도 내 아들로 삼기 충분했구나. 진작 그리 불러 줬어야 했거늘…….”
“지랄 좀 그만해라. 어딜 비벼.”
“아, 맞지 않느냐! 너흰 다 내 후손……!”
빡!
그는 뒤에서 헛소리하는 길가메시의 머리를 후려친 후.
검에 다가갔다.
‘과연…… 청이, 빛과 공명한다.’
무혼과 결합한 스탯 청.
이 힘은, 태극마검이 내뿜는 빛과 함께 반응하며.
성지한을 무사히 안으로 들여보냈다.
청과 무혼이 결합하지 않았다면, 여기 들어왔다가도 튕겨 나갔겠군.
성지한은 태극마검을 쥐었다.
그러자.
[멸신결의 마지막 구결, 은하검흔銀河劍痕을 이어받습니다…….]
태극마검의 빛이 그에게로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