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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506화 (506/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506화>

무신의 별, 투성.

[이제 청색의 관리자가 오겠군.]

붉은 눈, 적색의 관리자는 띄워 놓은 배틀튜브를 보며 즐거운 듯 말했다.

[그가 수련을 끝낸 건, 가시적이 성과가 있어서겠지. 무신, 너는 강해진 그를 지금 상태로 대응할 수 있겠나?]

그 말에.

스으으…….

어둠 속에 스스로를 숨기던 무신이, 서서히 뱀의 머리를 꺼내 들었다.

태양왕의 아들 문양이 사라진 뱀의 형상은.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주화입마, 풀어야 하지 않겠나.]

빙글. 빙글.

그러면서 붉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성좌의 무구, 20개는 받아야겠네. 주화입마를 없애려면.]

[거절한다. 너에게 더 이상은 줄 수 없다.]

[호오. 이 상황에서도?]

성좌의 무구로 힘을 저장해 둔 무신의 전력은, 원래 성지한을 압도했지만.

동방삭이 죽기 전, 뒤바꾼 주화입마는 그의 힘을 완벽하게 봉인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봉인지에 꽂은 태극마검까지 성지한이 뽑는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무신에게, 승산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무구를 넘기란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신의 선택은, 의외였다.

[과연…….]

번쩍!

적색의 관리자의 눈에서, 붉은빛이 반짝이고.

이건 금방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그렇군. 도망칠 속셈인가. 투성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어.]

적색의 관리자는 무신이 뭘 하는지 알아챘다.

[굳이 지금, 그와 싸울 필요는 없다. 투성을 옮기는 것은 지금 상태로도 가능하니. 위치를 이동하여 그의 추격을 피하겠다.]

[무신이라는 칭호가 울겠군.]

무신의 칭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싸움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뱀.

하나 적색의 관리자의 지적에, 무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무신? 그것은 이제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애초부터 의미가 없었지…… 단지 성좌의 무구를 통솔하기 좋아서 써먹었던 칭호일 뿐.]

[그런가.]

[적색의 관리자. 너야말로 왜 성좌의 무구에 집착하지? 네 ‘위대한 후원자’…… 백색의 관리자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

[후후, 눈치챘는가.]

[그래. 내 힘이 봉인되었다지만, 투성의 지배력까지 잃은 건 아니다.]

투성의 외곽.

새하얀 빛줄기는 몇 번이고 반짝이며, 적색의 관리자와 교신했다.

이들의 소통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었지만.

적색의 관리자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던 무신은, 이를 겨우 포착할 수 있었다.

[백색의 관리자에게 직접 지원을 받으면 될 것을, 왜 성좌의 무구에 관심을 둘까. 그것이 의아한 거군.]

[그렇다.]

[성좌의 무구는, 네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값진 보물이거든.]

스으으…….

그 말과 함께, 붉은 눈의 근처에 7개의 성좌의 무구가 떠올랐다.

무신이 적색의 관리자에게 넘겨주었던 무구.

그것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거,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건.]

[인류가 배틀넷의 초대를 받았다가 강등당하고, 종족이 멸망했을 때. 모든 것이 파멸하는 시기에, 너는 지구에 강림하여 힘을 무구 안으로 갈무리하지 않았나.]

[……알면서 물어보는군.]

[힘을 보관하고 나서는, 다시 금륜적보를 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스으윽.

눈동자가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미치는 곳은, 하늘에 가득 자리한 성좌의 무구들이었다.

[이 일을, 무한히 반복해 왔겠지. 성좌의 무구가 저렇게나 많이 생길 정도로.]

[그렇다.]

[그런데. 의아하진 않았나?]

[……뭐가 말이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말이야.]

[그건…….]

[배틀넷의 탐지 시스템은 매우 뛰어나지. 영생의 가능성을 품은 종족들은, 아무리 멀리 있든 상관없이 모두 배틀넷 체계에 넣어 버릴 정도로. 그런데 무한회귀는, 왜 감지가 안 되었을까?]

영생의 가능성만 보여도, 일단 초대장을 보내는 배틀넷 시스템.

한데 그런 배틀넷의 체계 안에 있으면서도, 무신의 무한회귀는 전혀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그가 행한 일이야말로, 배틀넷의 세계를 뒤흔들 만한 중차대한 버그였음에도.

흑백의 관리자는 물론, 그 누구도 무신의 행위를 감지하지 못했다.

[……감지를 피하기 위해, 나는 대외활동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힘도 굳이 내가 흡수하지 않고 성좌의 무구에 저장했으니. 지금까지 걸리지 않았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투둑. 투둑.

적색의 눈동자는, 성좌의 무구에서 힘을 흡수하더니.

점차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좋아. 성좌의 무구를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깨우쳤느냐. 배틀넷의 감지를 완벽하게 피하면서, 힘을 저장하는 수단을.]

[그건…… 내가 고안한 것이다. 시스템의 감지 방법을 알아, 교묘하게 비틀었지.]

[그래? 그런데 말이다.]

파아아악……!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눈동자가 터지고.

그 안에서, 하나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붉은 피부를 지닌 채, 눈동자가 여럿 박힌 얼굴.

그것은 적의 일족이 지녔던 것과 온전히 똑같았지만.

중앙부에, 안구 전체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눈이 그를 다른 존재와 차별화했다.

그리고, 입이 움직였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뭣…….]

“넌 그런 능력이 없지 않느냐.”

[…….]

“넌 이 강력한 성좌의 무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화입마도 혼자 못 풀잖나.”

푹! 푹!

생겨난 머리 아래로, 7개의 성좌의 무구가 일제히 꽂히더니.

스으으…….

그 아래로, 적색의 관리자의 육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크기 자체는, 무신과 엇비슷한 적색의 관리자.

비록 몸을 되찾아도, 지닌 힘 자체는 무신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기에.

제압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하지만.

[……넌 그런 능력이 없지 않느냐, 고.]

무신은, 적색의 관리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되뇌며.

멍하니,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소카가 제안했던 무한회귀.

이건, 사실 문제가 많았다.

배틀넷의 절대자들은 무신이 이런 방식으로 힘을 기르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감지를 피할 방법을 알았다.’

배틀넷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런 걸 감지할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걸 피할 수 있을지.

무신은, 아소카의 제안을 들은 순간.

이걸 급속도로 깨우쳐 버렸다.

그전에는, 분명히 없던 정보였는데.

무한회귀의 실마리가 나온 그 순간부터.

이를 통해 힘을 저장할, 방법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예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이다.

‘……왜 이상한 점을 못 느꼈지?’

무신의 두 눈이 떨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의 깨달음은.

마치 누군가가 정보를, 필요에 의해 급히 주입해 준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설마…… 너냐?]

“후후…… 거기에 이상한 건, 또 있지 않느냐.”

지이이잉…….

적색의 관리자는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새하얀 구체가 떠오르더니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태양을 닮은 형상.

그건, 무신도 잘 아는 것이었다.

[태양왕의…… 실험실.]

“그래. 여기서, 너는 어떻게 탈출했을까?”

씨이익.

그 말을 하면서, 적색의 관리자는 웃음을 지었다.

“갓 태어난 네가, 무슨 수로?”

그 말을 듣자.

무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태양왕의 실험실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탈출했던 기억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까진 시험관 속에서 갓 태어난 존재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겨우 실험실에서 탈출한 게 원래의 기억이었다면.

지금은.

[그것도, 설마…… 너냐?]

“그래.”

과거의 탈출기가 모두 허상이 되어 사라지고.

저 안구가 모두 시뻘건 눈만, 기억 속에 떠올랐다.

“너는 나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시뻘건 눈은, 지금처럼.

[너는 나의 작품이다.]

시험관 속에 있는 자신을.

‘작품’이라고, 똑같이 칭했다.

*   *   *

서해의 중심.

동방삭의 태극마검이 꽂혀, 새하얀 빛이 하늘 위로 가득 뻗는 그곳 주변엔.

여객선이 수십 대 멈춰 서 있었다.

거대한 크루즈선부터, 작은 배까지 총출동한 그 현장에선.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지 됐네. 아주.”

성지한은 태극마검의 빛을 관광 스팟으로 삼은 이들을 보며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저 사람들은 무섭지도 않나.

저기서 뭔 난리가 났었는지, 배틀튜브로 다 봤는데도 셀카를 찍고 있네.

“엇…… 저기!”

“서, 성지한 님이다!”

“검 회수하시는 건가?”

“와, 대박. 오늘 오길 잘했어!”

“오늘로 끝인가 봐! 빨리 더 찍자 자기야!”

성지한이 등장하니까, 이번에 라스트 찬스임을 알고 더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자. 멀리 물러들 나세요. 검 뽑고 무슨 일이 생겨도, 피해 보상 안 합니다.”

“네!”

“오. 녹음했어?”

“성지한 님 육성을 실제로 듣네. 대박…….”

한국말 이외에도, 중국어와 일본어.

그 외에 여러 나라 언어가 섞여 들리는 걸 느낀 성지한은 한숨을 쉬었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경고했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곤.

휙!

빛이 치솟아 오르는, 해저의 봉인지로 이동했다.

‘다행히 멀쩡히 잘 있네.’

작아진 구궁팔괘도 위에 꽂힌 태극마검.

청과 무혼의 합일로 인해, 꽤 오랜 시간 방치해 두긴 했지만.

이 검은 그동안 빛 한 점 잃지 않고, 여전히 팔팔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대신, 이 힘의 원료 역할을 적색의 세계수가 해서 그런 건지.

구궁팔괘도의 봉인진은 어째 예전보다 더 쪼그라져 있었다.

‘전투 전에, 마지막으로 세계수의 생명력이나 흡수해야겠군.’

얼굴의 균열도 이제는 자체 회복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다익선이라고, 생명력 더 얻어 가면 좋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구궁팔괘도의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거기엔.

“……이야, 진짜 거의 끝났네?”

백색의 빛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적색의 세계수가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저번에 볼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태극마검의 유지 때문인지, 생명력이 엄청나게 빨렸나 보다.

‘이거 수련이 늦었으면, 세계수는 사라지고 태극마검도 힘을 잃었겠네.’

윤세아보고 아레나의 주인 후보 때려치우라고 계속 말하긴 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수련장 덕은 톡톡히 봤네.

성지한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거 같은 적색의 세계수를 보며,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태극마검도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일단 변압기부터 꺼낼까.’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길가메시를 꺼냈다.

그러자.

[으, 으아아……! 바, 밖이다!!]

그에게서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야, 천수강신 써 봐.”

[네, 네놈…… 또 나를 그, 변압기로 쓰려 하는 거냐?]

“응. 이제 저거 거의 다 끝났어. 마지막으로 빨고 끝내게.”

[아, 안 돼! 세계수가 저렇게 사라지다니……!]

“아쉽지?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흡수하고 끝내자.”

성지한이 그러면서 두개골을 들고 세계수에 다가가자.

길가메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네놈…… 또 힘만 쭉 빨아먹고 인벤토리에 처박을 거 아니냐!]

“아니야. 안 그래. 살려줄게.”

[네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나?]

“응, 내 이름 걸게.”

이름 까짓거 좀 걸지 뭐.

성지한이 건성으로 대답하자, 길가메시가 금세 그의 속내를 눈치챘다.

[……안 되겠다. 네 가족. 가족을 걸고 해라!]

“미쳤냐? 뭐 이런 일에 가족을 끌어들여?”

[역시…… 약속을 안 지킬 생각이군! 그, 그럼 안 해!]

“흠, 반항이 심하네.”

그동안 하도 퍼줘서 그런가.

얘가 눈치가 생겼어.

‘그냥 흡수하지 말까?’

길가메시 놈 풀어놓느니, 그냥 생명력 안 먹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인벤토리.”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인벤토리를 열자.

길가메시의 말이 빨라졌다.

[이, 인벤토리는 왜 여나?]

“다시 넣으려고. 생명력 포기하지 뭐.”

[그, 그러지 말고! 나도 그냥 막 살려 달라는 건 아니다……!]

“그럼?”

[내, 내가 힘을 회복하면, 투성에 있는 바벨탑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다! 그래. 그걸 통해, 투성의 위치를 알 수 있단 이야기다!]

“아, 그거 동방삭이 검을 쥐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뭐, 뭣…….]

투성의 위치를 알려 준다는 게, 나름 회심의 설득 수단이었는지.

이게 막히자, 길가메시는 당황한 채 말을 이어 나가질 못했다.

성지한은 그런 두개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흠. 혹시 모르니, 예비 수단으로 잠깐 살려 둘까.’

플랜 A만 믿고 가다가, 일이 틀어질지도 모르니까.

“일단, 알았어. 숨통은 잠깐 붙여 둘 테니. 힘 흡수해 봐.”

[……맹세는?]

“인벤토리.”

[아, 알았다! 할 테니까, 그놈의 인벤토리 좀 열지 마라……!]

인벤토리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는 길가메시.

성지한은 피식 웃곤, 두개골을 적색의 세계수에 가져다 댔다.

“자, 마지막이니 싹 다 흡수해.”

[알겠다. 살려…… 주는 거다?]

“하는 거 보고.”

[끝까지 확답은 안 하는군…….]

성지한의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충실하게 사슬을 뽑아내는 길가메시.

그 사슬이 적색의 세계수에 닿자.

스으으으…….

길가메시의 머리뼈가, 급속도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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