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9화>
[일단…… 내 머리를, 세계수의 가지에 가까이 대라.]
성지한이 붉은 세계수에 완전히 접근하자, 길가메시가 드넓게 뻗어 오른 나뭇가지를 보며 말했다.
“그래. 아, 만약 헛짓거리하면 바로 부숴 버릴 거다.”
[내, 내가 미쳤느냐? 네놈 손아귀에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나…….]
성지한의 경고에 잠깐 말을 더듬은 그는.
스으으…….
나뭇가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머리뼈 뒤로 붉은 사슬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멀리서 보면 그냥 벌레 다리 같은 길가메시의 사슬.
하나 그건 성지한의 천수강신과는 달리, 나뭇가지에 착 안착해서.
지이이잉…….
그 안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후, 후후…… 이게 왜 안 되지?]
자신이 성공한 걸 보곤, 성지한을 바라보며 득의에 찬 웃음을 짓는 해골.
그리고 그 두개골에선 금방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원래의 길가메시 머리로 변화했다.
확실히 세계수의 생명력이 엄청나긴 한가 보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역시 넌 내 능력을, 제대로 익히질 못했구나……!”
벌써 상반신까지 재생한 길가메시가 성지한을 보고 조소하고 있었다.
맨날 깨지다가 하나 잘하는 거 발견하니까 너무 좋아하네.
“그러게. 뭔 차이지?”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천수강신을 사용해 보았지만.
팅!
길가메시와는 달리, 그의 사슬은 세계수의 가지에 막혀 튕겨 나갔다.
“후, 후후. 내가 쉽게 알려 줄 것 같으냐? 일단은 날 평생 죽이지 않겠다고 약조해라. 그리고, 흠…… 그래. 내 아들로 정식 인정해 줄 테니, 아버지로 불러 보도록 하라.”
“그놈의 아버지 소리는 지겹지도 않냐?”
좀 살아났다고 신나 가지고 원래처럼 입을 터는 길가메시.
성지한은 그걸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사람 쉽게 안 변해.
“후후…… 네 얼굴의 공허, 금방이라도 널 집어삼킬 것 같은데. 그대로 놔둬도 괜찮겠나? 그냥 날 존중하고 대우하면, 해결해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스으으으…….
그렇게 말을 이어 가는 길가메시는, 어느새 전신이 다 회복되어 있었다.
반파된 두개골에서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원래 몸으로 돌아오다니.
세계수가 대단하긴 대단하네.
‘금륜적보 1회냐, 아버지 소리를 하냐 양자택일인가.’
저놈 저렇게 의기양양하게 있는 거 보면 전자가 낫겠는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다, 사고를 전환해 보았다.
“내 천수강신이 너한테 미치지 못한다는 건 인정하지.”
“후후, 그럼…….”
“근데, 이게 너한테도 안 걸릴까?”
“……뭐?”
슈슈슈슉!
성지한은 튕겨 나갔던 사슬을 길가메시에게 뻗었다.
“이, 이익……!”
그는 어떻게든 성지한의 천수강신을 피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동방삭까지 이겨 낸 성지한에겐, 전혀 상대가 되질 못했다.
콰직!
사슬이 금방 길가메시의 몸을 꿰뚫자.
“크, 크윽……! 자, 잠깐! 이건 아니지 않느냐……!”
“왜 아니야? 난 아버지 소리 하기 싫은데?”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서 세계수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러자, 폭삭 쭈그러들다 원래의 해골로 돌아온 길가메시와는 달리.
[공허가 50 감소합니다.]
[영원이 3 오릅니다.]
[불완전 스탯 ‘영원’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성지한한테는 이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스으으으…….
얼굴에서, 공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적색의 세계수가 지닌 생명력이 특이하단 말이지.’
공허를 없애 주는 생명의 기운이라니.
거기에 영원의 효율을 올려 주는 걸 보면, 확실히 뭔가 남달라.
“이야, 성능 좋네.”
[…….]
“길가메시. 넌 앞으로…… 그래, 변압기다.”
[……변압기라고? 그게 뭐지?]
“110v를 220v로 변환해 주는 장치야. 나를 위해 생명력 걸러서 주렴.”
[이놈이……! 내가 순순히 도와줄 것 같으냐?!]
몸이 생겼다가 사라지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길가메시.
지금 당장은,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공허도 어느 정도 괜찮아졌으니, 일단은 인벤토리에 넣어 둘까.’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인벤토리.”
[뭐, 잠깐…… 왜 인벤토리를…….]
“왜긴 왜야. 아이템 넣어야지.”
[그 아이템이라는 게, 설마 나냐…….]
“어.”
[기, 기다려라. 그래. 아버지 소리는 안 해도 되니……!]
인벤토리가 그렇게 싫은가.
그러면.
“일단 들어가 있어.”
한 번 더 거기 놔둬서 기강을 잡아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곤 인벤토리에 길가메시를 다시 집어넣었다.
‘여기선 시간의 흐름이 빨리 흐르니, 일단 집 갔다 다시 와야겠군.’
지금 정도의 공허면, 청으로 어느 정도 틀어막을 수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청과 무혼을 합일하고, 다시 돌아와서 생명력을 한 번 더 흡수해야겠다.
그땐 길가메시도 인벤토리 안에서 정신 차렸겠지.
‘왜 그놈 사슬만 통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겉보기에는 자신의 사슬이랑 큰 차이가 나 보이지 않던 길가메시의 권능.
사실 안에 담긴 힘만 따지면, 성지한에 비해 길가메시의 것이 훨씬 미약했다.
근데 왜 그는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고, 성지한은 안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지만.
‘뭐, 좀 더 굴리다 보면 답을 내주겠지.’
성지한은 다음에 꺼낼 때 물어보기로 마음먹곤, 봉인지를 나섰다.
* * *
무신의 별 투성.
그곳에는, 성좌의 무구 7개와 연결된 붉은 눈이 짙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흠…… 동방삭. 상당히 까다로운 걸 만들어 냈구나. 과연, 이쯤 되어야 규격 외의 존재군.]
주화입마로 뒤바뀐 무혼.
적색의 관리자는 무신에게 이것의 제약을 자신이 해결해 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질 않았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해결해 주겠다더니,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군. 수치 1300에서 계속 멈춰 둘 것인가?]
[후후…… 나 아니면 해결 방법도 없으면서. 독촉이 심하구나. 빨리 해결하고 싶다면, 성좌의 무구를 좀 더 지원하는 게 어떻겠느냐?]
무신은 그 말을 듣고는, 두 눈을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직 7개의 무구도 성능을 다 끌어 쓰지 않았으면서. 왜 하나를 더 요구하지?]
[그야 나는 네가 아니니까. 무구의 성능, 어찌 주인도 아닌 이가 다 끌어내겠나.]
[……글쎄.]
무신은 붉은 눈, 적색의 관리자를 바라보았다.
맨 처음.
동방삭의 구궁팔괘도가 부서지며, 튀어나왔던 붉은 눈엔 힘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지만.
무신이 성좌의 무구를 지원하고 나서부턴, 힘을 급격하게 회복한 상태였다.
7개에도 저럴진대, 여기서 더 지원하면…….
‘이곳의 주인이 뒤바뀔지도 모른다.’
아직도 지닌 힘만 따지면, 적색의 관리자는 약하디약했다.
무신이 본체로 현신해서, 발로 짓밟기만 하면 저 눈알은 맥없이 터져 버리겠지.
하지만.
무신은 그래서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저 정도로도, 그는 주화입마를 변형했다.’
무신이 보기엔, 형편없는 적색의 관리자의 힘.
하나 그는 고작 그 힘만으로 동방삭의 주화입마를 개조하고 있었다.
동방삭이 얼마나 괴물인지를 잘 아는 무신으로선, 이걸 뒤바꾸는 적색의 관리자도 엇비슷한 괴물로 보였다.
그리고 저번에 목줄을 채웠던 괴물은, 결국 자신을 배신했지.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놔두질 않겠다.’
아소카랑 동방삭에게 이미 두 번 당한 배신.
그때의 일을 교훈 삼아, 적색의 관리자에겐 당하지 않아야겠지.
무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화입마의 제약이 풀리는 것보다.
적색의 관리자를 확실히 억제하는 데 더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무신의 경계 어린 기색을 본 적색의 관리자는.
번쩍……!
눈동자에서, 붉은빛을 발했다.
[쯧, 아직도 나에 대한 경계가 심하구나. 나는 청색의 관리자만 죽이면 된다고 그렇게 말했거늘.]
[청색의 관리자에게 상당히 집착하는군.]
[청의 권능은 태생부터 나와 상극이니까. 내가 구축한 명계 시스템에 가장 위협적인 게 바로 그다.]
[명계는 이미 파괴된 것 아니었나?]
[시스템은 창조하는 게 힘들 뿐. 한 번 만든 걸 복구하는 건 쉽다. 청색만 제거하면, 명계는 순조롭게 뻗어날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시스템, 명계에 집착하는 적색의 관리자.
그는 관리자의 능력 ‘청’이 이에 상극임을 알아채곤, 청색의 관리자를 어떻게든 없애려 했다.
[그러니 너도 얼른 지구를 침공할 채비를 갖추고, 이를 널리 알려라.]
진짜 쳐들어갈 거면, 널리 알릴 게 아니라 기습을 해야 하는데.
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건 역시.
[그가 여길 오게 유인하는 건가?]
[그래. 청색의 관리자는 분명 투성에 공격을 막으러 올 테니…… 그때 우리가 힘을 합쳐 그를 제압하는 거다.]
[우리라고 해 봤자, 거의 내 힘만 사용하게 될 것 같은데.]
[후후…… 나도 나름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네 주화입마를 풀어 주듯이.]
자신의 상극인 청색의 관리자를 죽이기 위해, 강한 열의를 보이는 적색의 관리자.
하나 무신은.
[……그래. 생각해 보지.]
적색의 관리자만큼의 의지가 보이진 않았다.
‘청색의 관리자와 엮이면, 결국 손해만 보았다…….’
아소카 때나, 동방삭 때나.
성지한을 제압하려 들었을 때면, 항상 일이 틀어지곤 했다.
이번에도, 괜히 투성으로 유인했다가 여기만 털려 버리는 거 아닐까.
거기에.
‘……동방삭은 검을 남겼지.’
세계수에 꽂힌 태극마검.
그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성지한이 그걸 들고 투성에 쳐들어왔다간, 이 별만 초토화되겠지.
적색의 관리자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성지한을 꼭 제거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무신은 생각이 달랐다.
‘무혼이 주화입마로 묶여 버린 이상, 적색의 세계수를 손에 얻는다 한들 힘을 얻을 수 없다.’
동방삭을 파견 보냈던 이유였던 적색의 세계수.
이게 자신에게 쓸모없어진 이상, 굳이 청색의 관리자와 싸울 이유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물론, 적색의 관리자와 협력해서 주화입마를 이겨 내고.
이를 통해 힘을 다시 회복해서 청색의 관리자와 겨루면 싸울 힘이야 생기겠지만.
‘……내 본거지에서 싸우면 나만 피해를 본다. 차라리.’
적과 청.
두 관리자를 싸움 붙이고, 이쪽은 그냥 빠질 수 없나.
성지한과 분쟁을 일으켰다가, 손해만 본 무신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
적색의 관리자는, 무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의 실패로, 소극적인 자세가 되어 버린 상대.
‘벌써, 의지가 꺾어 버렸군…… 잘되었다.’
적색의 관리자는 그런 상대방의 태도를, 오히려 기꺼워하고 있었다.
* * *
한편.
언제나처럼 현관 창문으로 귀가한 성지한은.
“아…… 사, 삼촌. 왔어?!”
거실에 앉아 있던 윤세아가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걸 보곤, 눈썹을 꿈틀거렸다.
“왜 그렇게 놀라냐?”
“아. 그게…….”
“공허의 사도 때문에 그래?”
성지한의 물음에, 윤세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응…….”
“그렇게 죄지은 표정 할 거면 왜 했냐.”
“삼촌이 공허에 먹히는 줄 알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성지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사실 저 마음이야 이해 안 가는 바가 아니다만.
그래도 성급했다.
“그래서, 취소 안 된대?”
윤세아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슈우우웅……!
그녀의 옆에 불가사리, 메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색의 관리자이시여. 이미 윤세아 님은 아레나의 주인으로 반쯤 내정된 상태입니다. 이를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반쯤 내정이면 아직 가능성은 있다는 거네.”
[아니, 말이 반이지…… 그냥 연수 기간만 끝나면 바로 아레나의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뭘 했다고 벌써 확정이야? 아무리 대기만성이 뛰어나다 해도…….”
그렇게 성지한이 메신저를 보며 뭐라 이야기하려 할 때.
스으으으…….
그의 얼굴에서 넘실거리던 공허가, 윤세아에게로 스윽 빨려 들어갔다.
저번에 윤세아가 흡수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어, 효과 좋긴 하다?”
성지한의 입에선,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다.
[역시 청색의 관리자께서도 인정하시는군요. 윤세아 님께서는 아레나의 주인이 될 재능을 지니고 계십니다.]
“재능 있다고 꼭 할 필욘 없잖아.”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받아들이시지요.]
“됐고. 되돌려 달라고 전해. 그리고.”
성지한은 그리 이야기하며, 하나를 덧붙였다.
“투성에 적색의 관리자가 부활한 거 같은데. 그것도 흑색의 관리자에게 알려. 메신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