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6화>
‘……동방삭의 팔이 잘리다니.’
무신은 전투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동방삭의 강함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청색의 관리자가 된 성지한한테도, 시종일관 우위를 점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데 금륜적보로 새로 회복한 성지한한테 이렇게 완벽하게 팔이 잘려 버리다니.
‘폭풍검은…… 빼어난 절기였다.’
혼원신공에 추가된 폭풍검.
그건 무신이 보기엔, 상당히 뛰어난 무공이었다.
특히 그가 성좌의 무구를 통해 써먹기에도 좋아, 동방삭이 이번에도 충분히 능력을 보였구나 싶었는데.
그 검으로 힘이 분산된 덕에, 성지한의 태극마검에 광검이 완벽히 베어 나갈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청색의 관리자. 그는 확실히 처음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어.’
동방삭이 기운을 증폭시킬 때마다 강해지더니.
어느덧 힘을 압도하는 지경까지 와 버렸는가.
이렇게 되면, 결국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동방삭에게, 기존에 설정했던 힘의 제한을 풀어 주든지.
태극마검을 꺼내라고 하는 수밖엔 없었다.
‘하지만 힘의 제한을 풀면…… 결국은 저놈도 같이 성장하게 되는 꼴.’
지금까지, 성지한은 동방삭이 힘을 증폭시킬 때마다 비례해서 강해져 왔다.
한데 힘의 제한을 풀어 버리면.
그의 성장 속도만 더욱 빠르게 만들어 주겠지.
저자가 금륜적보를 얼마나 더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방삭을 베기 위해, 망설임 없이 자신의 얼굴을 박살 내 버린 걸 보면 그렇게 횟수가 제한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설마 한두 번의 기회가 남았는데, 저런 자살행위를 할 리는 없을 테니까.
무신은 그렇게 자신의 ‘상식’ 속에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거기에 동방삭이 더 수련을 하다간…… 나의 제어에서 풀릴 수도 있다.’
사실.
지금도 약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확실하게 그가 반기를 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청을 깨우치고 나선, 하는 행동이 왠지 꺼림칙했다.
그래서 세계수를 얻고 나면, 당장 자살을 명하려 했는데.
‘……그래. 힘의 제한을 푸는 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여기선 태극마검을 쓰는 수밖에 없어.’
태극마검.
그 검이라면, 아무리 상대에게 금륜적보가 있다 한들 끝을 낼 수 있다.
그만큼 그 검은, 지금 성지한이 들고 설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규격 외의 힘이었으니까.
다만 그에겐.
지금껏 태극마검을 꺼내지 못하게 했던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 검을 쥘 때면, 동방삭은 늘 별을 보았다.’
무한한 회귀 속에서.
무신은 동방삭의 기억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리고 그가 태극마검을 수련하는 장면에서는.
그는 꼭, 검을 꺼내기 전에 하늘과 별을 보곤 했다.
그리고 투성의 하늘과 별에는.
어디에나 성좌의 무구가 자리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태극마검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
동방삭이 이걸 수련할 때마다 하늘을 본 것은, 단순히 습관이겠지.
힘의 제한을 풀어, 청색의 관리자에게 힘을 더 퍼 주느니.
여기서 태극마검으로 끝을 보는 게 낫다.
무신은 그렇게 결론을 짓고는, 동방삭에게 명령했다.
[태극마검을 사용하라, 동방삭.]
“……알겠습니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스스스스…….
기다렸다는 듯, 동방삭의 등 뒤로 태극이 바로 떠올랐다.
역으로 되돌아가는 태극.
세상이 종이 구겨지듯이 접히며.
저 안으로, 천지만물이 모두 빨려 들어갔다.
-어 이거 뭐야 또 ㅡㅡ 다 이겼나 싶었는데 저런 걸 꺼내.
-성지한 님의 태극, 저 노인도 하네;
-그, 애초에 저쪽이 원조인 거 같습니다만…….
-성지한의 역태극보다 세상이 구겨지는 게, 뭔가 초자연적인데…….
-더 강한 거 아냐…….
성지한이 팔을 잘라 냈을 때만 해도 다 이겼다고 환호성을 내지르던 채팅창의 분위기도.
동방삭이 태극을 띄우자 급변했다.
태극이 단지 반대로 돌아가기만 하는데.
성지한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바닷물에 빠졌던, 동방삭의 잘린 팔마저도.
저 역으로 돌아가는 태극 속에, 들어가 버렸다.
“나의 검과 자네의 검…… 무엇이 강할지 궁금했는데, 잘되었군.”
스으윽.
동방삭은 왼손으로 수염을 한 차례 쓰다듬더니.
손을 서서히 태극의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성지한은.
‘……뭐야, 왜 저렇게 말해? 기억 찾은 거 맞아?’
반밖에 남지 않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분명 아소카가 태극마검을 꺼내게 하면 되냐고 했는데.
이거 설마 태극마검을 든 동방삭이랑 정면 승부 하는 상황 생기는 거 아니겠지?
무신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겉보기에만 여유 있는 척했을 뿐.
성지한에게 남은 자원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관리자 권한은 5천. 금륜적보도 내 얼굴을 부쉈으니, 실질적으론 1회밖에 안 남았다.’
한 번만 더 삐끗하면, 정말로 죽는 상황.
성지한은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동방삭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그가 태극 안에서 검을 쥐자.
“……아아.”
노인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예상외로구나.”
“……뭐가 말입니까?”
“내가, 왼손으로 검을 꺼낼 줄이야.”
그러며 동방삭은, 태극에서 검을 꺼냈다.
새하얗게 빛나는 순백의 검.
그는 자신의 검과, 성지한의 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궁금증은 풀 수 없겠군. 물론, 부딪쳤다면 내가 이겼을 테지만 말일세.”
[……동방삭? 지금 뭐라고 했나?]
스으으…….
그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뱀의 머리가 다시 나왔을 때.
“시끄럽군.”
뚜둑!
동방삭이 검을 쥔 손을 들어.
뱀의 형상을 그대로 뜯어냈다.
* * *
-??
-갑자기 왜 저래…….
-저 뱀 아까까지만 해도 극진히 모시더니;
-태극마검인가 꺼내자마자 태도가 달라지네.
-뭐가 됐든 우리한텐 좋은 거 아님??
-일단은 계속 두고 봐야지…….
동방삭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하는 사람들.
아무래도 그가 지금껏 보여 준 태도랑 180도 달라졌으니, 이런 의구심은 당연히 나올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된 건가.’
성지한은 자신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방삭을 보며, 아소카의 말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정신…… 차렸습니까?”
“그러네. 참으로, 고생 많았네.”
성지한의 물음에 동방삭은 싱긋 웃었다.
“그래도 자네도 내 덕, 많이 보지 않았는가?”
“뭐, 없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전투는 또다시 하고 싶진 않군요.”
“왜 그런가? 난 재미있었는데.”
그야 당신이야 즐거웠겠지.
분명 힘으로는 압도한다는 걸 아는데, 무의 차이로 밀리는 걸 체감할 때마다.
아.
나는 정말 이 사람에 비하면 재능이 없구나라고.
계속 실감하지 않았던가.
“……다신 그런 발악, 하고 싶지 않군요.”
“후후. 그거 미안하군. 그럼 일단…….”
주르르륵…….
동방삭이 말을 하다 말고.
그의 입가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영감님?”
스으으으…….
그러고는 또다시 떠오르는 뱀의 얼굴.
그것은 동방삭의 머리에서 올라와, 그를 노려보았다.
[동방삭, 네가 날 배신하다니.]
“배신이라…… 정신을 차린 것뿐이지.”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자살을 명령하려 했건만…… 차라리 좋다. 투성에서 반역했으면 처리하기 더 힘들었을 테니. 거기서 얌전히 죽거라.]
그 말을 끝으로, 뱀의 형상이 서서히 옅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쿨럭……!”
동방삭이 입가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무신, 행동이 빠르군. 바로 금제를 발동했어.”
“……그렇습니까. 그놈답군요.”
아소카 때도 그렇더니, 동방삭도 마찬가지인가.
아무리 동방삭이 초절한 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당하다니.
무신도 저런 면에선, 준비가 철저하군.
“한가로이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겠군. 가세.”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 동방삭은, 바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슈우우욱!
순식간에 해저의 봉인지로 내려선 동방삭.
성지한도 그의 뒤를 따라, 발을 땅에 디뎠다.
바닷물이 가득해야 할 봉인지는.
동방삭이 발을 디디자.
그 공간만 모두 물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서해에서 오직 이곳만이, 바다와 유리되어 있었다.
“싯다르타의 희생 이후로. 무신은 내게 가해진 금제를 10배 이상 강화했네.”
저벅. 저벅.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동방삭의 전신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해저에 이것이 떨어질 때마다, 바닥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깊은 균열을 만들어 내었다.
“내 이 검으로, 직접 투성을 멸하고 싶었지만…… 내게 허락된 수명이 곧 끝이 나는군.”
전신이 눈에 띄게 쇠약해지는 와중에도, 태극마검을 쥔 채 흔들림 없이 걸어가던 동방삭은.
금방 구궁팔괘도가 그려진 봉인진에 도착했다.
“…….”
이를 잠시 지켜보던 동방삭은.
푹!
태극마검을, 그 위에 꽂았다.
그러자.
파아아앗……!
새하얀 빛이, 폭발하며.
해저에서 하늘 위까지 뻗어 올라갔다.
“나의 검, 자네가 써 주게.”
“태극마검을…… 말입니까?”
“그래. 저기에 꽂아두었으니, 얼마간은 유지될 거야.”
구궁팔괘도에 꽂힌 태극마검.
검은, 그렇게 동방삭의 손을 떠났음에도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방삭은 이를 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미 입에서 흐른 피로, 피범벅이 되어 새하얀 빛을 잃은 수염.
그는 이를 매만지다,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능력……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능력이라면, 무혼 말입니까?”
“그렇다네. 1000은 넘지 않았겠지?”
“천은 안 넘었습니다.”
“다행이군.”
동방삭은 그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뱀이여. 내 무공을 지금껏 가져다 썼으니, 그 대가를 지불해야겠지…….”
동방삭이 해저에 앉자.
스스스스…….
그의 몸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무혼은, 뒤바뀔 것이네.”
그리고 그가 그리 말을 하자마자.
[스탯 ‘무혼’이 ‘주화입마’로 변화합니다.]
성지한의 눈앞에서, 무혼이 변화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화입마라니.’
이거, 내공 수련하다가 꼬였을 때 나오는 거 아니었나.
성지한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무혼이 뒤바뀌며, 힘이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청과 많은 부분 결합해 와서 그런가…… 청이 빈자리를 많이 대체해 줬네.’
기존의 무혼 능력을 아예 구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한테는 큰 이상이 없긴 한데…… 무신한텐 다를지도 모르겠군.’
무혼 스탯이 1000을 넘지 않는 자신과 달리.
무신은 이 기준치를 넘었을 테니까.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이…… 무슨…….]
투성에서는, 주화입마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