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5화>
‘아소카만 나오면 평정심을 잃는군.’
성지한은 무신의 반응을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아소카한테 워낙 크게 당해서 그런가.
무신은 그만 나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금륜적보를 통해 파괴된 육신은 회복했지만. 사용한 권한은 돌아오지 않았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동방삭과의 전투.
녹색의 관리자에게 받았던 관리자 권한은, 이제 대부분 써먹은 실정이었다.
물론 스탯 청 자체야 처음 동방삭과 조우했을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전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론, 그를 이길 수 없다.’
동방삭에게 된통 당했던 성지한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상대는 무투의 관리자 소리까지 듣는 최강의 무인.
그를 상대로, 투혼을 불사르는 것만으로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금륜적보도 이제 남은 횟수는 2회.’
관리자 권한은 대부분 써먹었고.
지금부터 24시간 전까지, 한 시점으로 신체를 되돌리는 금륜적보도.
이제 두 번 쓰면 끝이었다.
겉모습은 멀쩡하게 회복했지만, 실상 내부를 들여다보면 가진 게 거의 탕진된 상황.
‘무혼의 왜곡도. 기준을 40에서 45 정도로 올려야겠는데 이러면.’
성지한이 남은 관리자 권한을 보면서, 그리 계산을 할 때.
[아소카. 그의 유산이 아직도 영향력을 끼친다면…… 설마. 너도 무한회귀를 쓸 수 있는 것이냐…….]
아직도 안 사라지고 현신해 있던 무신의 머리가.
혼자서 심각한 목소리로 추리를 하고 있었다.
“……뭐?”
[생각해 보면 이상하군. 어떻게, 처음에 비해 이렇게 강해졌지…….]
“글쎄다?”
성지한이 어깨를 으쓱이자.
번쩍……!
뱀의 두 눈에, 빛이 서렸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네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
[내가 관대한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싸움을 원하는 것처럼 이를 뿌리쳤지. 그래서 숨겨 둔 수가 있나 했더니, 막상 동방삭과의 전투를 보니 그런 건 없었다. 너는 몇 번이고, 맥없이 제압당했지…….]
아니, 이쪽도 나름 계획은 있었는데.
그냥 동방삭이 미친 괴물일 뿐이었지.
성지한은 잠시나마 그렇게 진실을 답해 주고 싶었지만.
‘아니. 잠깐, 왠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어울려 줘 볼까.’
저걸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너는, 이 상황을 애초부터 바란 것이다.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걸 내가 바랐다고? 동방삭이 쳐들어오고, 그에게 얼굴이 박살 나는 상황을?”
[그래. 그 결과, 넌 처음에 비해 월등히 강해졌지 않은가. 아소카의 권능을 믿고,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전투를 택한 거군……!]
애초에 지가 쳐들어와 놓고는.
피해자 1명당 1만 GP씩 준다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이 침공을 자신이 설계한 것마냥 몰아가고 있네.
성지한은 그의 추론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러게?
-왜 굳이 동방삭이랑 싸우나 했더니 힘을 강화하려 그런 거였군.
-실제로도 그의 힘, 엄청나게 강해졌지.
-관리자가 지배 종족의 생사 따위에 뭐 저리 신경을 쓰나 싶었는데…….
-역시 실제 의도는 달랐나. 성장을 위해 일부러 좋은 제안도 거절한 거네.
외계의 시청자들은 무신의 추리에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관리자나 되는 존재가 인류를 위해 동방삭과 싸운다는 건, 그들 개념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무신의 생각이야말로, 그들이 보기엔 합리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동방삭이 청을 사용할 때마다 너도 강해졌지…… 청색의 관리자. 네놈은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노렸던 것이냐?]
인류를 지키기 위해, 동방삭과 전투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런 전제가 깔린 채, 성지한의 의도를 추리하니까 결론이 저렇게 나네.
성지한은 생각했다.
‘저 착각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금륜적보의 남은 횟수는 2회.
동방삭의 힘을 묶는 관리자 권한도 거의 떨어져 간다.
이 상황에서, 무신이 저렇게 착각해 주는 건 성지한으로서도 반길만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승부를 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착각하면, 동방삭에게 태극마검을 쓰라고 할 수 있으니까.’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전투를 지속할 여력은 많이 떨어져 버린 성지한으로서는.
무신의 착각이 이어지길 바라야 했다.
그래야, 동방삭보고 태극마검을 꺼내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무신도 바보는 아니니까…… 잘 반응해야 한다.’
상대는 신중한 뱀.
여기서 그래, 네 말이 맞았다고 금방 맞장구쳐 주면 또 한 번 꼬아서 의심하겠지.
지금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오히려 무신의 생각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야 했다.
“전투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관전자의 헛된 추리인가.”
스으으…….
성지한의 등 뒤로, 태극이 떠오르고.
“동방삭, 전투를 지속하죠.”
그가 다시 거기서 흑색의 검을 꺼내 들었다.
누가 보아도, 화제를 전환하여 얼른 전투를 재개하고 싶어 하는 모습.
방금 전 패배했던 사람이라기엔, 너무나도 전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군요.”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성지한을 바라보다가.
“주인이시여. 수련의 한도. 조금 더 높여보아도 되겠습니까? 그의 몸이 정상화된 지금,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무신에게 요청했다.
* * *
[청을 배제한 채로 강해질 수 있는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은 중요치 않다.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그게 전부일 뿐이다.]
동방삭의 머리에서, 뱀은 눈을 빛냈다.
[네가 청을 성장시켜, 더 강한 힘을 지닌다면 결국 청색의 관리자도 성장하는 꼴……]
“…….”
[지금 가진 힘의 한도 내에서 해결하라.]
“알겠습니다.”
동방삭이 더 힘을 증폭시켜 봤자, 그것은 고스란히 성지한의 성장으로 이뤄지니.
무신의 이 판단에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존재했다.
물론.
‘청의 증폭이 제한된 건 좀 아쉽지만…… 권한도 부족한데 다행이네.’
성지한 입장에선 덕분에 한숨 돌릴 만했지만.
“그럼…… 다시 시작하지.”
스스스…….
동방삭이 빛의 검을 다시 소환하기 시작하자.
다시 질식할 듯한 압박감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아무리 지금의 동방삭이, 왜곡도가 40으로 봉인되어 있다 한들.
그의 초월적인 힘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니까.
거기에.
‘처음보다 저 광검도 더 발전했군.’
맨 처음 싸울 땐 하나로 합치질 못해, 빛의 기둥을 들고 싸우더니.
이제는 광검을 10개만 압축하고.
나머지는 일제히 사방으로 보내고 있었다.
광검은 그렇게, 성지한을 포위하나 싶더니.
슈우욱…….
일제히 바다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성지한이 바다 안으로 들어선 검을 보며 의아해할 때.
“내 지닌 힘의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네.”
동방삭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부글부글,
바닷물이 끓으며, 일제히 거품이 생기나 싶더니.
슈우우욱!
그 안에서, 일제히 물이 치솟으며.
-뭐야…….
-저건…… 검인가?
-수, 숫자가 몇 개야 대체;
-사방에 빼곡한데…….
성지한의 전방위를, 물로 이루어진 검이 완벽하게 포위했다.
그리고.
혼원신공混元神功
만검주萬劍主
폭풍검暴風劍
성지한의 뇌리에, 저절로 스치는 무공의 이름.
그간의 혼원신공에선, 한 번도 등록되지 않았던 무공명이.
갑자기 불현듯, 지금 입력이 되었다.
‘이건 무혼에 의해, 저절로 익히게 된 무공인가.’
무혼에 의해, 무신에게 언제나 권능을 복사당했던 동방삭.
폭풍검도, 그런 류 중 하나인가.
‘하지만…… 왜 이런 짓을?’
하나 성지한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동방삭이 오늘 그와 싸우면서 내보였던 무공 중.
폭풍검은 가장 화려했으되, 가장 실속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아무리 봐도 분석이 안 되던 광검이나, 빛 속에서 청백의 검을 압박해 오는 게 더 위협적이었지.’
애초에 무혼에 의해, 복사가 된다는 건.
저 무공이 이해할 수 있는 경지란 뜻이다.
당장 성지한도, 무혼의 힘을 빌려 이 자리에서 폭풍검을 따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힘을 집중시키지 않고, 오히려 퍼뜨리는 건.
단순히 스케일만 클 뿐, 효율 면에서는 안 좋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폭풍검이라…… 그새 새 무공을 창시했는가. 그래, 지닌 힘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
동방삭의 머리에 있는 뱀은, 이를 보면서 만족하고 있었다.
‘……허, 저건 진짜 무신 칭호 떼야겠네.’
집단을 상대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한 개인에게 힘을 집중시키기에는, 효율이 좋지 않은 폭풍검.
하나 무신은 이걸로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동방삭의 머리에서 전투를 보았음에도, 보는 눈이 그거밖에 안 되나.
‘물론, 저 폭풍검 속에서 나를 베었던 청백의 검이 만들어진다면 피곤하겠지만…….’
그런 거야, 언제든지 감수해야 하는 위험.
성지한의 신경은 그것보다, 동방삭이 들고 있는 검에 집중되었다.
‘10개의 광검만 모인 동방삭의 검. 지금까지 중 가장 약하다.’
폭풍검을 사용하기 위해, 서른 자루의 광검을 바닷속에 넣어 버렸으니.
동방삭이 들고 있는 저 검은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건, 확실히 끊어 내야 한다.’
저렇게 약해졌는데도 못 끊는다면.
무신이 동방삭에게 태극마검을 꺼내라 할 리가 없지.
저 검을 끊어 버리고, 확실하게 위협을 가해야 했다.
그러려면.
‘……이거밖에 없군.’
푹!
성지한은 들고 있는 태극마검으로, 자신의 왼쪽 얼굴을 꿰뚫었다.
-어?
-검으로 얼굴을 찔렀…… 어?
-아, 아니 얼굴 겨우 회복하셨는데 왜……!!
조금 전 박살이 났을 때처럼, 금방 공허에 뒤덮이는 성지한의 얼굴.
이걸 보고 동방삭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껏 회복한 얼굴을, 스스로 부수다니…….”
“이거야, 되돌리면 그만이고.”
금륜적보의 기회는 이제 두 번밖에 없었지만.
무신을 의식한 성지한은 그렇게 언제든지 가능한 양, 여유를 보였다.
스으으으…….
그의 왼쪽 눈과 뺨이 공허에 가려지고.
금방, 입가도 뒤덮이려고 했다.
공허가 이를 가리기 직전,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을 때.
슈우우우……!
얼굴에서 휘몰아치는 공허가, 태극마검과 연결되며.
이를 아까처럼 강하게 증폭시켰다.
“검은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한데 폭풍검이라…… 이런 맥없는 검을 꺼내다니.”
성지한이 주변을 바라보며 검을 들자.
[동방삭…… 뭣 하느냐! 왜 가만히 보고만 있어!]
슈우우욱!
폭풍검이 뱀의 명에 따라, 일제히 쏘아졌지만.
“모두, 단번에 베어 드리죠.”
그가 검을 한 차례 움직이자.
전방의 모든 것이, 일제히 잘려 나갔다.
수천의 폭풍검과.
동방삭이 들고 있는, 광검.
그리고, 그의 팔마저도.
“…….”
풍덩!
잘려 나간 오른팔이 바다로 떨어지자.
동방삭이 그리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팔이, 그것도 검에 의해 베이다니.
‘잘린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나.’
항상 상대를 베기만 했는데 말이지.
이런 느낌, 참 생소하군.
동방삭은 오른손을 들어, 수염을 쓰다듬으려다.
‘아, 오른손…… 떨어졌지.’
왼손을 들어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성지한이, 다시금 검을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저 검에, 맞설 수단은…….’
와해된 폭풍검.
그리고 잘려 나간 채, 자신의 팔처럼 금방 복구가 되지 않는 광검.
현재 상태론 이어지는 공격도, 막아 내는 건 힘들어 보였다.
무신에 의해 답보상태인 자신에 비해.
지속된 전투로 능력이 성장한 데다가, 자신의 얼굴까지 부숴 공허를 강화한 성지한에겐.
이제 힘으로 완벽히 밀려 버린 것이다.
다만.
그에겐 아직, 이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게 하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그리고 이는, 무신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태극마검을 사용하라, 동방삭.]
“……알겠습니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스스스스…….
기다렸다는 듯, 동방삭의 등 뒤로 태극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