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92화>
10분 전.
팔짱을 낀 채, 대기하고 있던 성지한은.
번쩍!
이마에서 빛이 번뜩이는 걸 느꼈다.
‘신안 이거…… 여기서만 발동하는군.’
저번에도 세계수가 있는 곳에서 목 떨어진 걸 보여 주더니.
이번엔 뭐야.
그렇게 신안이 보여 주는 광경을 기다리고 있자니.
지이이이잉……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성지한과 동방삭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다투는 두 사람의 그림이, 언뜻 보아도 수십 가지가 주변에 펼쳐져 있었지만.
‘……참 다양한 방법으로 죽네.’
전투 결과는, 모두 성지한의 패배였다.
목이 날아가고, 가슴에 광검이 일제히 꽂히는 등.
신안이 예견한 둘의 전투는.
100% 성지한의 죽음으로 끝났다.
삑……
그렇게 한참 자신이 죽는 광경을 보여 주고, 꺼지는 신안.
“……재수 없게 싸우기 전에 이런 걸 보여 주냐.”
성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티아가 준 신안.
그간 발동하려고 해도 안 되더니, 꼭 이럴 때 죽는 거만 보여 주네.
‘물론 신안의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하다 해도, 죽는 장면만 무더기로 나온 걸 보면 전투가 불리하긴 한가 보다.
나름, 최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긴 했는데 이거론 부족한 건가.
‘이거…… 배틀튜브도 켜야겠네.’
성지한은 자신이 죽는 모습을 보곤, 안 키려던 배틀튜브까지 틀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초신성이 사라져 스타 버프의 성능이 안 좋아진 데다가.
윤세아가 괜히 방송 보고 자기 도와준다고 공허의 사도가 될까 싶어서 이번엔 이거까진 안 키려 했지만.
‘아무래도 저렇게 처참히 죽어 가는 꼴을 보자니, 뭐든 총동원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성지한이 배틀튜브를 키자.
-오…… 오랜만에 방송이다
-관리자 되고 나서 게임을 안 돌리시니 아쉬웠는데 ㅎㅎ 오랜만에 생방이네요
-근데 일반 게임 안 돌리시면 뭘로 레벨업하지?
-관리잔데 레벨이 의미가 있나;
-ㄹㅇ 이미 클대로 큰 거잖아
오랜만에 성지한의 생방송이 켜진 걸 본 시청자들이 물밀 듯이 유입되었다.
한편.
‘이제 스타 버프는, 힘을 한 10% 올려 주는 느낌이군.’
성지한은 예전보다 스타 버프의 성능이 떨어졌음을 확실히 체감했다.
관리자의 능력이 엮여서 그런 건지.
원래 표기된 버프 효율보다도, 효과가 안 나오는 스타 버프.
하지만 그럼에도, 동방삭 상대로는 10%도 소중했으니.
‘쭉 켜 두자.’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여기서 손님을 맞이할 건데요.”
-?
-손님?
-지금 바다 위…… 아닌가요?
-저런 곳에 무슨 손님이 오지?
성지한의 말에 시청자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치이이익……!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안에서 동방삭이 모습을 드러냈다.
-헐 저 할배 ㅡㅡ…… 적색의 관리자랑 싸웠던 사람 아님?
-ㅇㅇㅇ 저번에 관전했을 때 본 사람이잖아
-근데 머리에 뱀 투구 뭐임 ㅋㅋㅋㅋ
-투구 같은 건 필요 없는 괴물 아닌가……
-저 사람이 손님? 뭔가 불길한데요
-무신이 안 쳐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나;
시청자들이 동방삭을 보고, 왜 그가 저기서 나왔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미 기다리고 있다니……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는가?”
동방삭은 성지한을 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관리자의 영역이니까요. 다 알 수 있습니다.”
실상은 관리자 권능을 통해 염탐한 결과였지만.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보다, 못 보던 투구를 쓰셨군요.”
성지한이 그렇게 말하며 뱀 머리를 가리키자.
[투구라. 그에게는 그런 게 필요 없지.]
스으으으……
거기서 검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무신이냐?”
[그렇다. 청색의 관리자여.]
“여긴 왜 왔지? 나와 싸울 생각이 없다더니.”
[난 아직도 그대와 적대할 의사가 없다. 다만.]
번쩍……!
뱀의 머리에서, 검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나는, 이곳에 두고 온 나의 물건을 찾으러 왔을 뿐이다.]
* * *
-뭔 물건?
-그러니까 ㅡㅡ
-좀 꺼지라구요 ㅅㅂ 진짜
-왜 자꾸 못 괴롭혀서 안달임……
상대가 무신임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질린 기색을 보였다.
지구에서 빨대 실컷 꽂아 놓곤, 뭘 더 털어 가려고 저러는 건가.
한편.
“붉은 세계수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이미 알고 있군.]
성지한이 그 물건을 특정 짓자, 무신은 잘되었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만 뽑고, 얌전히 물러나도록 하지.]
얌전히라.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바다를 가리켰다.
“세계수를 뽑으면, 이 땅은 크게 뒤흔들리고 적귀가 튀어나올 텐데?”
[흠…… 그걸 어떻게 알았지?]
성지한이 자신의 이마를 툭툭 두드리자, 무신은 금방 그 제스처를 이해했다.
[신안인가. 피티아의 신호가 사라졌다 싶더니, 네가 흡수했군.]
“뭐. 그런 셈이지.”
사실은 그쪽에서 건네준 거지만.
성지한은 굳이 사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기에, 그렇게 둘러 댔다.
그러자, 뱀의 눈이 아까와는 달리, 새하얀 빛으로 반짝거렸다.
‘저 형태로 신안을 쓰네.’
지이이잉……
그렇게 신안으로 바다를 한 번 둘러본 무신은.
그걸로 무엇을 보았는지, 한층 더 위압적인 목소리로 성지한에게 말했다.
[신안을 지니고 있으면 알 것이다. 너는 동방삭을 이길 수 없다는걸.]
“글쎄다. 미래가 신안대로 됐으면 내가 투성에서 살아남진 못했겠지?”
[……정말, 굳이 싸울 생각인가?]
“이대로 다시 집에 간다면, 나도 굳이 싸울 필욘 없지.”
성지한이 그러며 하늘을 가리키자, 뱀의 눈에서 새하얀 빛이 사라졌다.
[좋다. 네 손해. 내가 보상해 주겠다.]
“손해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피해를 보는 인류…… 크게 잡아 20억으로 쳐주지. 1명당 1만 GP로 보상을 해 주겠다.]
그렇게 무신이 1명당 피해 보상 가격을 1만 GP로 계산해 주자.
-1명당 1만 GP……?
-우리 목숨값 천만 원임……?
-지금 환율로 따지면 1200만 원임 ㅎㅎ……
-하 ㅡㅡ 미친놈인가 진짜
-근데 세계수 뽑으면 먼 일이 일어나기에 20억이 피해를 봐;
-저기 위치가 정확히 어디임 근데……?
채팅창의 반응이 격렬해지며, 바다 위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하는 의견이 늘어났다.
20억이 피해 본다는 이야기는,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걸 의미하니까.
[20조 GP면, 네 손해를 보상하는 데는 충분하겠지. 어떠한가?]
한편 무신은 이러한 가격 측정이 합리적이라 여긴 듯, 성지한에게 보상액을 계산하여 제시했다.
“거절한다.”
[……이에 더해, 여기서 7일을 기다리지. 그 정도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일주일간, 이 서해에서 일어날 대지진을 피해 멀리 도망갈 시간을 주겠다고?
‘20억 이야기 한 거 보면 중국까지 피해가 끼치는 모양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로 튀라고.’
중국이 범위에 들어가면, 일본도 들어갈 테고.
세계수가 뽑힌 여파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인은 진짜 태평양 건너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일주일 만에 모두 대피해?
“거절한다.”
[……내 충분히 양보했건만, 이것마저 거절하다니. 청색의 관리자여,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스스스……
뱀의 형상이 서서히 옅어지더니.
[협상은 결렬되었다. 동방삭. 그를 죽이고, 세계수를 가져오라.]
사라지기 직전, 거기서 성지한을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알겠습니다, 주인이시여.”
한 차례 포권을 한 동방삭은.
“주인께서 충분히 양보했거늘, 굳이 전투를 택하는구나.”
성지한을 보며, 안타까운 듯 이야기했다.
“당신에게 대처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대처라.”
스으으윽……
동방삭이 손을 들자.
번쩍! 번쩍!
그의 주변으로, 광검이 하나둘씩 생성되기 시작했다.
“내 고향 땅을 위해, 싸울 선택을 했으니 하나 충고하지.”
“충고라…… 뭡니까?”
성지한의 물음에.
“대처가 아니라, 날 이기려 들어라.”
동방삭은 서서히 손을 내렸다.
그러자.
“안 그러면, 금방 끝이 날 테니까.”
어느덧 수십 개 만들어진 빛의 검이, 일제히 쏘아지기 시작했다.
* * *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동방삭이 적색의 관리자와 싸우는 영상도 완벽히 분석하고.
여기서 어떻게 하면, 그에 대항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나.
직접 그와 상대해 보니.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하. 또, 팔이 떨어졌군.’
치이이익……!
성지한은 오른팔이 날아가는 걸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스으으으……
물론 떨어진 팔 자체야, 영원의 힘으로 금방 재생되긴 했지만.
‘사지 떨어져 나간 게, 벌써 몇 번째야.’
동방삭과 격돌한 지 5분.
성지한은 대비했다는 게 무색하게, 밀리고 있었다.
팔다리는 벌써 수십 번 잘렸다 다시 재생되고.
[스탯 영원이 1 감소합니다.]
신체를 재생해 주는 스탯 영원은, 벌써 1이 줄어들었다.
예전 무신과 싸울 때도 비슷하게 밀리긴 했지만.
그때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짓눌렸다면, 이번엔 무의 운용에서 밀렸다.
“네 움직임, 상당히 괜찮구나.”
한편 성지한을 상대하는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를 칭찬하는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면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번쩍! 번쩍!
하나둘씩, 더 만들어지는 광검.
어느덧 성지한을 포위하는 검은, 50개에 달했다.
이 검은, 크기 자체는 평범한 장검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가, 번뜩일 때마다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이기어검 자체야. 매형 걸 상대해 본 적은 있었지만…….’
검왕 윤세진도 예전에 펼쳤었던 이기어검.
하지만 그것과 동방삭의 검은 하늘과 땅.
아니 그 이상의 차이였다.
번쩍!
광검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바다가 갈라지고, 대기가 요동쳤으니까.
-와 바다 쩍쩍 갈라지는 거 봐라 미쳤네……
-해저까지 보이네; 뭐야 저거
-저기 위치 어디임?
-위성으로 위치 알았다는데…… 서해 중심이래
-서해? 대피해야 하나;
-벌써 미국행 항공편 매진이라는데?
한편 군사 위성을 통해, 성지한과 동방삭의 격돌 지점을 알아낸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피해 인구 20억이라는 추정치는, 한중일이 모두 사정거리에 포함되고 그 이상까지 뻗어야 가능한 숫자였기에.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가 이 방송을 보고는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거 아니냐고 들썩였다.
그렇게 잠깐의 격돌 동안, 제삼자가 보기에도 완벽하게 열세에 놓인 성지한이었지만.
‘이제 슬슬, 때가 온다.’
그의 두 눈은, 기세를 잃지 않은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색을 읽은 동방삭은.
“숨겨 둔 수가 있다면, 꺼내 보게.”
52개의 광검을 움직여, 성지한을 포위했다.
검의 포위는 언뜻 보기엔 빈틈이 많아 보였지만, 하나하나가 천지를 가르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아까처럼, 팔다리만 희생하고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곧.
지이이잉……
광검에서 빛이 퍼져 나가며, 사방이 구궁팔괘도의 문양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적색의 관리자를 제압했을 때처럼.
도망칠 구석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려는 동방삭의 검진.
“안 그러면, 이걸로 끝을 보지.”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말하자.
스으으으……
성지한의 등 뒤에서 태극이 떠오르더니.
그가 어둠에 물든, 태극마검을 꺼내 들었다.
“아까 분명 이기려 들라, 하셨죠.”
5분간의 전투 동안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태극마검.
이를 본 동방삭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랬지. 하나 자네는 대처조차 못했네.”
“이제, 이것으로 이기겠습니다.”
“좋군. 해 보게. 자네의 태극마검, 궁금했으니까.”
자신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극마검을 보면서, 동방삭이 호기심 섞인 반응을 보이자.
성지한이 씩 웃었다.
“그 전에.”
“……?”
“시스템, 무혼의 왜곡도. 40까지 낮춰.”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파스스스……
순식간에 빛이 멎은 채, 사라지는 광검.
성지한을 물샐틈없이 포위하던 구궁팔괘도도, 저절로 와해되어 갔다.
“아니. 이건……?”
동방삭이,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잠시 당황할 때.
치이이익……!
태극마검이, 동방삭의 수염을 반으로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