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87화>
성지한은 무신의 말을 듣곤, 귀를 의심했다.
싸울 생각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무신의 말이 이어졌다.
[너는 나의 일을 망친 주범이긴 하지만…… 나는 이제 온전한 자유를 찾았다. 이제는 무한회귀를 할 필요도, 상시 관리자로 올라설 이유도 없다.]
“…….”
[물론 싸움을 원한다면 언제든 받아 주겠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우리가 싸울 이유가 있을까?]
“흠…….”
[오히려 적색의 관리자가 널 견제하는 이상. 나는 네가 남아 있는 편이 낫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긴 하군.
성지한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무신을 제압하려면, 이쪽도 리스크가 크다. 특히, 무신도 무신이지만 동방삭이 문제야.’
저번에 목이 떨어졌던 미래의 모습도 그렇고.
무신에게는 동방삭이라는 최강의 칼이 있었다.
그를 이겨 내야, 무신에게 도전할 수 있을 텐데.
아마 동방삭을 이기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무신에게 갈 때쯤이면 만신창이가 되어 있겠지.
‘물론 아소카는 동방삭이 태극마검을 꺼내면, 기억을 되찾을 거라고 했지만…… 그것도 목숨 걸고 도전해야 될까 말까지.’
무신과의 전투.
이건, 아무리 청색의 관리자가 된 성지한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승산이 매우 희박했다.
지금은 관리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권능도 약하고.
얼굴의 공허는 언제나 암덩어리처럼 자신을 압박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내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뒤로 갈수록 내게 유리하다.’
얼굴의 공허는 구궁팔괘도에 봉인된 세계수를 통해 없애면 되고.
관리자의 권능, 청은 이제 시작이니 계속해서 발전시키면 된다.
공허가 문제였을 때면 모를까.
이를 해결할 수단이 생긴 이상, 시간은 성지한의 편이었다.
‘물론, 이놈은 못 믿을 존재긴 하다만.’
적색의 관리자가 죽었을 때 보았듯.
무신은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는 겉으로는 저렇게 말하고, 언제든지 기습을 가할 수 있는 상대였으니까.
‘그러니, 최대한 경계하면서…… 시간을 벌어야겠어.’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전투를 안 하는 게 낫다.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을 결론짓고, 켜두었던 배틀튜브의 앵글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좋다. 굳이 그쪽에서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도 싸울 의사는 없다.”
[현명한 판단이다. 청색의 관리자여.]
청색의 관리자와 무신이 그렇게, 배틀튜브를 통해 싸울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자.
-뭐야 안 싸우는 거임?
-아쉽네…….
-뭐, 솔직히 둘이 싸워봤자 자기들만 손해지. 영역이 겹치는 것도 아니고.
-에이 그래도 위에서 싸워 줘야 아래서도 올라가지.
-어차피 쟤들은 이미 저 멀리 있는 애들이라 상관없음.
외계의 시청자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오…… 좋다 폭탄 하나 사라졌네.
-이러면 인류, 그냥 배틀넷에 있어도 되지 않나? 평화협정 체결된 거잖아
-그러니까 이제 배틀넷 잔류하면서 꿀만 쪽쪽 빨면 되는데
-그냥 남아서 진화합시다!
-근데 무신 믿을 수 있음……? 저래 놓고 배신 각 재지 않어?
-다 성지한 님이 대비하시겠지 ㅋㅋㅋ
인류 시청자들은 이 평화협정을 크게 반겼다.
많은 배틀넷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무신의 변수가.
오늘의 방송으로, 일단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면 배틀넷에 계속 남는 게 좋지 않겠냐는 여론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말뿐인, 지켜질지 확신할 수 없는 휴전인데. 그거 가지고 바로 잔류하잔 이야기가 나오네.’
그냥 원래 배틀넷에 남고 싶었던 사람들이, 이걸 계기로 목소리를 높이는 거 같군.
성지한은 채팅창을 슥 바라보며 여론을 살필 즈음.
[그럼, 돌아와라. 동방삭.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알겠습니다. 주인이시여.”
무신은 동방삭을 다시 불러들였다.
“봉인…… 완전히 부술까요?”
[놔둬라. 앞으로 공식적으로 활동할 일이 많을 텐데, 굳이 징계를 더 받을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포위망을 구축한 적색의 관리자를 제거하곤.
다시 어둠으로 봉인된 투성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동방삭.
“머리야…… 저 할배도 갔으니 이제 끈다?”
스으으윽.
그리고 화면 속에 해골 머리, 칼레인이 나오자.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다.”
“뭐 몸 좀 많이 지져지긴 했지만, 덕분에 낙인은 사라졌네…….”
싸움 찍다가, 적색의 관리자한테 활활 타올랐던 칼레인.
그래도 그 덕에, 태양왕의 노예 낙인은 사라졌으니.
그로서는 결과적으론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았다.
그리고.
오늘 가장 수확이 많았던 건 성지한이었다.
‘난 관전만 했는데 대체 몇 번 업그레이드 된 거지?’
한 거라곤, 적색의 관리자랑 동방삭의 싸움을 구경한 거뿐인데.
화면 속 동방삭이 청을 깨달으며, 무혼을 발전시키더니.
성지한의 힘마저 결과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줬다.
‘조금만 더 싸웠으면 좋았을 텐데. 적색 놈 약해 빠져선…… 아쉽군.’
관리자란 놈이 그렇게 쉽게 소멸해서야.
성지한은 청색 기운을 발현하곤, 아쉬움에 혀를 찼다.
‘저 안에선 수련 안 하려나.’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무혼의 왜곡도가 1 낮아집니다.]
[청과 무혼의 연결점이 옅어집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계속해서 오르던 무혼의 왜곡도가, 동방삭이 투성에 들어가자마자 낮아지다니.
‘……이건, 무신이 개입한 건가?’
비록 무신이 적색의 관리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역으로 그를 제압하긴 했지만.
그의 말 중 새겨들을 건 새겨들은 것 같았다.
[청은 적을 제압하는 데서 끝나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의 본질은 왜곡의 파훼.]
[이건, 네가 저자를 지배하는 방법도. 청이 발전하면 저절로 무효화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방삭이 청을 발전시키다 보면, 지배가 풀릴 수도 있다는 지적.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저 투성의 내부에서 수정 작업에 들어가나 보군.
‘저 안에서 정확히 뭔 짓을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이러면 올랐던 내 능력도 저하되는 건가.’
그건 좀 아까운데.
성지한은 왜곡도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 그리 생각했지만.
[‘청’은 관리자의 관할 능력입니다.]
[관리자에게는 이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업그레이드 효과는 같이 봐도, 다운그레이드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럴 땐 관리자가 좋네.’
이득만 보고 손해는 보지 않다니.
관리자쯤 되면, 이런 일방적인 교환도 가능한 건가.
성지한은 이 결과에 만족했지만.
‘그래도 혹시 언제 저하될지 모르니까, 올라간 능력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련을 해야겠군.’
능력을 정착시키기 위해,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흠…… 근데 공허의 수련장은 좀 찝찝한데.’
아레나의 주인이 여러 번 개조를 해 주었던 공허의 수련장.
관리자 되기 전엔 잘 사용했지만.
아레나의 주인이 적색에게 붙은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찝찝한 느낌이 들어 그곳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힘도 갖추었으니 괜찮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공허의 수련장에 들어가려 했지만.
[‘공허의 수련장’은 폐쇄되었습니다.]
[수련장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폐쇄라. 아레나의 주인 때문인가.’
시간 느리게 가는 게 좋았는데, 아쉽네.
성지한은 수련장 폐쇄를 보곤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수련할 장소를 찾는 것도 일이겠는데.
‘일단은, 집 안 트레이닝 센터에서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겠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펜트 하우스 내부에 있는 트레이닝 룸으로 걸어갔다.
그때.
바닥에서 그림자가 퍼지더니.
스으으……
“일생의 부탁이다. 어릴 때 사진! 그거만 있으면 화제의 영상 하나 만들 수 있어.”
[아. 진짜. 본인한테 허락받았어?]
“허락? 당연히 해 주겠지. 우리 채널의 주 투자자신데.”
[……허락부터 받고 와.]
그림자여왕과 성지아가 그 안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어, 지한아.]
“오. 관리자! 마침 잘되었다. 그대에게 허락을 구할 일이 있다.”
“……뭔데?”
“그대 어릴 때 사진 좀, 내가 써도 되겠나?”
“뭐?”
뭔 소릴 하는 거야 얘는.
성지한이 미간을 찌푸리자, 그림자여왕이 눈을 반짝였다.
“지금 배틀튜브 전역에서, 그대를 주목하는 건 아는가?”
“그거야 뭐. 매번 화제의 영상으로 올라가잖아?”
“맞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한 번 올라가기도 힘든 걸, 그대는 매번 하고 있지. 그만큼 지금 생긴 지 얼마 안 된, ‘청색의 관리자’에게 배틀넷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근데?”
성지한이 떨떠름한 어조로 반문하자, 그림자여왕의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바로 이때가 기회다! 청색의 관리자 특집을 방영하는 거다! 그대의 어릴 때 사진부터 시작해서, 성지한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일대기를 만드는 거다!”
“……어릴 때 별거 없지 않나, 나? 공부도 운동도 보통이었잖아.”
[음…… 그래도 활기찬 아이였어!]
칭찬할 거리가 없어서 애써 덧붙인 거 같은데.
성지한은 피식 웃다가, 손을 흔들었다.
“이상한 특집 하지 말고, 그냥 원래 하던 일이나 해.”
“윽…… 이건 진짜 대박 아이템인데! 아쉽지 않나?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응. 지금은 관리자라 아쉬울 게 없네.”
“큭…… 부러워하기에도, 이젠 너무 급이 높군…….”
성지한의 거부에, 아쉬움을 토해 내는 그림자여왕.
그는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것보다 누나.”
[응?]
“신안 쓰는 법 좀 알려 줘.”
[……신안을?]
“어. 양도받은 게 있는데, 발동할 줄을 모르겠거든.”
툭. 툭.
성지한이 그러며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자.
[어쩐지 묘한 느낌이 들더라니…… 알았어. 바로 가르쳐 줄게.]
성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무신의 별 투성.
동방삭은 초췌한 얼굴로, 무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청에 대한 잡념, 잊어버렸는가.]
“……예, 주인님. 잊고 있습니다.”
[아니. 아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씻어 내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알겠습니다. 다시, 잊겠습니다…….”
[그래.]
사아아아…….
무신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뱀의 형상이 나타나며, 동방삭의 몸을 통째로 삼켰다.
청을 일부 깨달은 동방삭.
그가 이를 더 알아내서 정신지배를 스스로 깨뜨리기 전에.
이걸 잊게 해야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동방삭을 집어삼키며, 그에게서 청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무신이었지만.
‘쉽게, 사라지질 않는군.’
청에 대한 깨달음이 동방삭에겐 꽤 크게 다가왔던 건지.
이에 대한 기억을 소거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 몸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
스스스…….
무신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솟구치더니, 하늘에 자리한 성좌의 무구와 연결되었다.
보다 완벽하게 청을 없애기 위해, 성좌의 무구에 담긴 힘마저 이용하는 무신.
그는 그만큼, 이 일에 진심이었다.
[완벽하게 지워야…… 흔들리지 않을 터.]
스스스스…….
뱀의 머리에서, 검붉은 기운이 더 강렬히 뿜어져 나오고.
[저들의 경계가 약해졌을 때…… 세계수를 회수한다.]
그 안에서, 무신의 목소리가 음산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