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79화>
“할 말이라…… 그게 뭐지?”
“그 전에 일단. 당신의 뜻을 묻고 싶습니다.”
“내 뜻?”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껏 소피아의 몸에 강림하더니, 와서 물어본단 소리가 자신의 의중인가.
“네. 왜 청색의 관리자가 되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요.”
“소피아의 몸을 차지한 주제에, 너무 알려 달라는 게 많군.”
“그녀와는 예전의 인연으로 잠시 연결되었을 뿐. 저는 그녀의 몸에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예전, 무신의 충신일 때와는 사뭇 다른 얼굴로,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피티아.
성지한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피티아가 강림한 현 상태.
스탯 청으로 되돌릴 수 있나?
‘음…… 이 정도는 왜곡이라 하기도 미약하군.’
피티아가 지닌 힘은 미약해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질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굳이 왜곡을 깨기도 애매하겠네.
성지한은 일단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왜 청색의 관리자가 되었냐고?”
“네.”
“적이나 녹 고르느니 그게 나았거든. 그리고 생명의 은인도 그리 유언을 남겼고.”
“생명의 은인이면…… 아소카 말입니까?”
성지한의 말에 피티아는 반문했다.
“어, 빚은 갚아야지.”
“……그렇군요. 상시 관리자가 될 길을 포기하고, 목숨의 빚을 갚은 겁니까.”
“뭐 애초에…… 적색 골라 봤자 적색의 관리자의 숙주가 되었을 뿐이고, 녹색 되었으면 이그드라실에게 구애받아 귀속되었을 테니까. 선택지도 없었지.”
“아뇨, 상시 관리자에 대한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선택이 안 나왔을 겁니다.”
“상시 관리자? 그거 돼 봤자 뭐 하냐. 귀찮기만 할 텐데.”
“네…… 귀찮다구요?”
피티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시 관리자 자리를 그렇게 평가할 줄은 몰랐군요.”
“죽지도 못하고 평생 배틀넷 관리를 해야 하는데 당연히 귀찮지 않나?”
“……당신은 생각보다 야망이 없군요. 근데 어떻게 임시 관리자까지 달려온 겁니까?”
“네 주인이랑 적색의 관리자 때문이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무신 놈은 계속 이 세계를 리셋시키려고 하고.
적색의 관리자도 인류를 통해 초월자가 되려고 하니까.
이에 저항하다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치고는, 얼굴이 말이 아니군요.”
“이거?”
툭. 툭.
성지한이 자신의 왼쪽 얼굴을 두드리자, 피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놔두면, 일 년도 못 삽니다.”
“이, 일 년요…….”
“그래요. 공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걸 뒤집어쓴 이유는…… 살려야 할 대상이 당신이 아니라, 이분이기 때문이죠?”
스으윽.
그러며 피티아가 윤세아를 바라보자.
성지아가 얼른 앞에 나서서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어머. 그냥 쳐다봤을 뿐이에요. 애초에 그녀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어서, 빙의할 수도 없어요.”
[뭐든 조심하는 게 좋지.]
“참…… 같은 신안의 소유자끼리 너무하군요.”
피티아는 피식 웃으며 다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때요. 제 질문의 답은.”
“뭐, 가족을 살리려 드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런가요. 제 주변엔, 생각보다 그런 당연한 사람이 별로 없던데. 특히 자기 목숨줄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구하려는 케이스는 더 없죠.”
“삼촌, 저 말 진짜야…… 그 얼굴…….”
윤세아의 걱정스런 말에, 성지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이건 관리자의 능력으로 제거할 거니, 괜찮아.”
“그, 그런 것도 돼?”
“어. 될 거 같아.”
스탯 청의 기능 중, 단절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보았고.
이제 원래대로 되돌리는 수복 기능을 발전시키면, 이 공허의 균열도 해결할 실마리가 보였다.
살길이 보이는데, 굳이 죽을 필요 없지.
“무신 놈 목만 따면 알아서 잘 살 테니, 걱정 마라.”
“주인님의 목을, 말이죠…….”
목을 딴다는 이야기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피티아.
무신에게 충성스러웠던 예전을 생각하면, 의아한 태도였다.
성지한이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
“그거, 저도 도울게요.”
“무신을 치는 걸, 돕겠다고……?”
“네. 정확히는.”
툭. 툭.
피티아는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신안을 드릴게요. 당신에게.”
* * *
“……무슨 변덕이지?”
“변덕이라뇨. 원래 여기 온 목적이, 이거였는걸요.”
“눈을 주러 온 게 목적이었다고?”
“네. 그것뿐만이 아니라.”
번쩍.
신안에서 빛이 반짝이자.
노인 길가메시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길가메시의 위치까지 알려 드리려 했어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군. 무신에게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웠던 네가 왜 갑자기?”
“그에게 충성을 바친 이유를, 당신이 달성해 줬거든요.”
내가 언제?
성지한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피티아가 살짝 웃었다.
“인류에게서 적의 인자를 제거해 줬잖아요. 당신이.”
“……적의 인자를 제거하는 게, 네가 충성하는 이유였나?”
“네. 적의 일족이 제 아이들 태워 버리던 게, 다 저 인자 때문이었으니까요.”
그 말을 하며, 피티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무신께서 언젠가는 해 주시겠다고 해서 믿고 충성을 바쳐 왔습니다만…… 당신이 해 줬네요.”
“……그거 때문에, 태도가 180도 바뀌어 눈까지 준다고? 쉽게 믿을 수가 없군그래.”
적의 인자를 없애는 게 그녀의 일생 소원이라는 건 그렇다 쳐도.
신안을 넘긴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지한이 의심을 거두지 않자, 피티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길가메시 위치만 알려 주려 했어요. 지금은 생식 능력을 잃었다지만, 그놈은 다시 적의 인자를 뿌릴 수 있는 종자가 될 수 있으니. 당신이 없애 줬으면 했죠.”
“그건 걱정 마라. 길가메시도, 내 입장에선 제거해야 할 상대니까.”
“네. 근데…… 죽을 생각을 하니, 당신 생각이 궁금해졌어요. 왜 청색의 관리자가 되었을까. 앞으로 그 힘을 지니고, 무슨 일을 하려 들까.”
“그래서 아까 그런 질문을 한 건가.”
“네.”
“들어 본 소감은?”
피티아는 피식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음…… 생각보다 더 시시한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 사람 하나 살리겠다고 관리자까지 됐다니.”
“뭐, 뭐가 시시해요!”
윤세아가 발끈하자, 피티아의 웃음이 짙어졌다.
“거기에 관리자까지 됐으면서 야망도 없구요. 초월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좌들이 보면, 허탈할 정도예요.”
“그렇게 평가하면서, 잘도 신안을 주려 하는군.”
“그래서예요.”
그녀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야망 넘치는 이들에겐, 질렸거든요. 인간 때부터.”
“…….”
“당신도 시간이 지나면 욕심이 생기고, 관리자로서 군림하려 들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이들보다는 낫겠죠.”
이미 그런 이라.
무신이나, 길가메시.
아니, 둘 다를 가리키는 건가.
성지한이 가만히 신안을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무신의 힘은 강대하니, 제가 신안을 드린다 한들 큰 도움은 안 되겠죠. 당신이 그를 제압하는 건, 여전히 어려울 겁니다.”
“내가 관리자가 되었음에도?”
“네. 그가 축적한 힘은 끝이 없어서, 여전히 당신을 압도합니다.”
하긴.
힘을 모으고 모아, 단숨에 상시 관리자가 되려던 무신이었으니.
아무리 성지한이 임시 관리자가 되고, 청을 발전시켰다 한들.
힘의 총량만 따지면 그가 우위일 것이다.
“그래도…… 제 신안이면, 그의 미래 예시는 방해할 수 있을 겁니다.”
“네 눈이 그 정도의 역할을 하나?”
“무신이 소환하는 신안도, 저의 것을 근간으로 했으니까요.”
성지한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무신 놈.
무혼도 동방삭의 능력을 착취해서 써먹더니.
신안도 그런 거였어?
‘이놈의 진짜 능력은 남의 힘에 기생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면?’
진짜 무신한테서 무신 타이틀, 빨리 떼 버리고 싶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고민하시나 보군요. 뭐, 절 못 믿는 것도 당연하겠죠. 그럼.”
지이잉…….
신안에서 빛이 뻗어 나오자.
[……피티아. 네 쓸모, 이제 슬슬 보여야 하지 않겠나? 세계수의 위치, 이러다 내가 특정할 수 있겠군.]
바다를 바라보던 길가메시에게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서해 바다 안의, 세계수를 찾으려 드는 건가.
참 끈질겨. 저놈도.
“그부터 빨리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성지한은 피티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안을 얻는 건 좀 더 고민해도 되니까.
“그래. 위치는 정확히 어디지?”
일단은 길가메시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무신의 별, 투성의 상공.
성좌의 무구가 자리한 하늘을 넘어선 윗부분에는.
투성마저 밝게 비출 정도로 강렬한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제 모든 힘이 모였다.]
빛의 정체는, 태양왕.
동방삭에게 격퇴당했던 그는, 전력을 총동원해서.
투성을 침공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다만 투성이 관리자의 처벌로 세 달간 봉인되어서, 쳐들어가질 못했을 뿐.
‘세 달의 봉인. 오히려 잘되었다. 힘을 모아 올 수 있었으니까.’
배틀넷 전역에 뻗어 두었던, 태양왕의 힘.
그걸 한데 모으는 데는 아무리 그라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 달간 투성이 봉인당한 건, 그가 전력을 모을 수 있는 준비 기간으로 활용되었다.
[봉인이 풀리면 그 괴물이 또 막으러 오겠지…….]
태양왕은 자신을 제압했던 우주천마를 떠올렸다.
비록 그때의 자신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우주천마에게 이렇다 할 대항도 하지 못하고 썰렸지.
이번엔 전력을 끌어모았지만, 우주천마의 강함을 생각해 보면 그때 같은 결과가 또 나올지도 몰랐다.
[굳이, 그와 싸울 필요는 없다…….]
태양왕은 측정 불가능한 무력을 지닌 우주천마와의 전투는 피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무신의 육신을 차지하는 것.
17777번째 아들에게 새긴 낙인만 발동시키면 되니까.
어떻게든 투성에 진입해 그와 접촉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 무신의 몸을 차지하면, 저 강대한 우주천마도 내 종으로 부릴 수 있을 테니…….]
그러니까 굳이, 그와는 싸우지 않는다.
태양왕은 그렇게 전략을 짜곤.
한데 모인 빛을 넓게 흩어 놓아 투성을 포위했다.
아무리 우주천마라 해도, 모든 방위를 막을 순 없을 테니.
단번에 사방에서 들이쳐서, 무신을 차지한다.
태양왕은 그렇게 침공 준비를 마쳤다.
그럼 이제 해야 할 것은, 봉인이 해제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
‘외부에 별일은 없나 살펴보아야겠군.’
태양왕은 배틀튜브를 켜보았다.
수많은 채널이 난립하는 그 세계에서.
단연 독보적인 화제를 불러오는 영상이 있었다.
‘관리자가 되었음에도, 영상을 올리나.’
청색의 관리자 성지한.
그는 관리자라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배틀튜브 채널에 영상이나 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품격 없는 놈이 관리자가 되다니.
태양왕은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끼면서도, 영상을 틀어 보았다.
그리고.
‘적색의 관리자…… 아레나의 주인까지 포섭했었나.’
영상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흥미롭게 살피던 그는.
‘저건…….’
화면에서 붉은 눈이 떠오르고.
저것이 ‘명계’를 이루자, 홀린 듯 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후후…… 한낱 짐승도 굴을 하나만 파진 않지…….]
적색의 관리자가 성지한에게 죽기 전, 그리 유언을 남기자.
꿈틀.
태양왕의 빛무리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 이, 이건…….]
빛무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거인.
그건 동방삭과 싸웠던 거인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툭. 툭.
붉은 눈이,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스, 스승…… 대체 언제부터……!]
태양왕은, 순식간에 변하는 몸을 보며 어떻게든 이에 저항하려 들었지만.
[언제부터라니. 너는 내가 왜 제자를 두었을 거라 생각했느냐.]
[그, 그건…….]
[다 이럴 때 쓰려고 한 것이다.]
푹! 푹!
새하얀 빛의 거인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고.
스으으으…….
투성을 포위한 빛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쓸만하구나, 제자야.]
그리고 옛 제자의 ‘몸’을 차지한 적색의 관리자는.
투성을 바라보며, 즐거운 듯 말했다.
[하지만, 저기에는 더 쓸 만한 것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