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62화>
“음…… 반응이 뭔가 시원치 않군요?”
성지한은 외계인들의 채팅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무신이랑 싸울 때 전력을 다하긴 했다만.
그거 때문에 토너먼트 참가 안 할 생각인가?
이래선 곤란한데.
“저 같은 인간이 어디서 무신에게 대항할 힘을 얻었겠습니까? 다 이…….”
성지한은 오른손을 들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소카가 관리자의 손을 흡수해 주지 않았나.
‘이러면 경품이 사라졌네?’
성지한은 힐끗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아소카가 마지막에 힘을 가져가긴 했지만.
약간 붉게 변한 피부색 하며, 눈동자가 있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봉인되었을 때랑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상태.
이러면 그냥 있는 척해도 되겠군.
성지한은 태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관리자의 손 때문이죠. 이게 정말 탐나지 않으십니까? 토너먼트 참가해서 졌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참가비만 좀 지불하는 건데요.”
없지만 있는 척하면서, 성지한이 열심히 토너먼트 참가하라고 홍보를 했지만.
-GP 날릴 게 뻔한데 왜 참가함…….
-레벨 9 성좌인데 저번 방송 보고 참가 신청 철회했습니다.
-레벨 9는 와 봤자 일검에 쓸릴 듯;
-그래도 대성좌들은 참가할 만하지 않나?
-성지한이 보여 준 힘 보면 토너먼트에서 꽝 붙기 좀 부담스럽던데…….
-근데 드래곤 로드 이제 보니 그냥 실력으로 발린 거드만 왜 조작이라고 입 텀?
-정신승리 해야지 ㅎㅎ
어째 분위기가 이번 토너먼트에선 참가자가 없을 것 같았다.
‘토너먼트에서 싸우는 게 나한텐 좋은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성좌와 싸워서 이겨야, 업적을 완료하고 ‘임시 관리자’가 될 수 있는데.
이러다 상대가 안 나타나게 되면, 방법은 드래곤 로드에게 자신을 소환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드래곤 로드가 미리 함정을 파 둔 장소에 소환당해서 고생 좀 하겠지.
‘금륜적보를 쓰면 내 육체가 하루 전의 위치로 돌아오긴 하겠지만…….’
육신의 상태와, 위치 정보까지 하루 전까지 되돌릴 수 있는 금륜적보.
이걸 쓰면 드래곤 로드한테 어디로 소환당하든, 귀환은 가능했지만.
1일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기에, 그 안에 드래곤 로드를 제거해야 했다.
드래곤 로드 놈이 함정만 파고 자기는 도망가 있다면.
저 제한 시간 내에 상대를 죽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웬만하면 토너먼트에서 대성좌와 싸우는 게 나았다.
“아, 여러분. 무신과 싸울 때는 제가 모든 걸 쏟아부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초신성도 사용해 버려서 지금 신성 버프도 사라졌다구요. 이리저리 소모한 게 많아서, 지금이 제가 제일 약한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성지한은 어떻게든 자신의 약함을 어필하려고 했지만.
-약해도 어차피 살아날 거 아님?
-그러니까 무신한테 그렇게 몸이 찢기고도 재생했잖아.
-1741번 재생했나?
-내 카운트 상으론 1837번이었음. 하여튼 엄청나게 살아나더라.
-재생력이 최고 무기 아님, 이렇게 따지면?
-ㄴㄴ 그 흑검도 완전 세던데 무신도 튀다가 결국 한 방에 베일이 벗겨졌잖아.
-그냥 공방이 다 됨 이 인간은 ㅋㅋ
이미 성지한이랑은 싸우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었다.
‘망했네, 이거.’
배틀튜브 생중계의 부작용인가.
하지만 스타 버프를 받기 위해선, 방송을 안 켤 수도 없었으니.
그는 외계인들의 반응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이 주제는 말하지 않는 게 낫겠어.’
괜히 말하면 말할수록, 자신의 강함만 더 어필될 테니.
성지한은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때.
[R.E.GATES가 1000만 GP를 후원했습니다.]
[성지한 오너. 혹시 저번에 레드 핸드가 한 이야기에 대해, 진실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류가 타올라, 초월자가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인류가 그것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마침 로버트 게이츠가 후원 메시지를 보내왔다.
-후원 메시지창에 글자 빽빽하게 담았네 ㅋㅋㅋ
-아무리 세계 최고 부자라 해도 메시지 한 방에 1000만 GP 날리긴 좀 아깝지…….
-ㄹㅇ 외계인 성좌들 그러고 보면 참 부자야 1억 10억 팍팍 쏘잖아.
-나도 근데 저건 궁금했음.
-ㅇㅇ 성지한이 버튼 눌렀으면 죽을 뻔한 거였잖아;
투성에서, 세계수 점화 장치를 꺼냈을 때.
관리자의 손이 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한테서 좀 격한 반응이 나오긴 했지.
‘이건……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긴 좀 그렇지.’
사람들에게 사실 당신들은 적색의 관리자입니다.
우리 모두 성화에 불타오르면 관리자가 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혼란만 가중될 테니까.
성지한은 최소한의 정보만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 그거. 버튼 누르면 전 인류를 불태워서 적색의 관리자로 부활할 수 있다고 손이 꼬드겼었습니다만.”
툭. 툭.
성지한은 오른손등을 두드려, 관리자의 손이 있는 척 제스처를 취한 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애초에 투성으로 절 던진 것도 손 때문인데요. 거기에 그놈 말대로 절대자가 된다고 해도, ‘나’는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부숴 버렸죠. 뭐, 인류를 희생시키려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 그 자체란 사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그 외의 사실들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다.
“아마 여러분들이 저랑 종족이 같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동족이면 왠지 힘 흡수하기 쉬워 보이잖아요.”
-어…… 그런가?
-뭔가 더 숨겨진 사실이 있는 거 같은데…….
-ㄹㅇ 다 이야기 안 한 느낌…….
-뭐 어쨌든 지한 님이 버튼 안 누른 게 중요하지.
-나 같으면 그 상황에서 눌렀다 ㅋㅋㅋㅋ
성지한의 설명에 의구심을 떨쳐 내지 못한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서 사실은 뭐임.
-형 알고 있는 거 더 있죠?
-그냥 이렇게 된 김에 다 까고 갑시다 ㅎㅎ
-ㄹㅇ 이렇게 끝나면 뭔가 시원찮다구.
여럿이 그에게 뭐 더 아는 사실 없냐고 물어봐도.
“글쎄요.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알면 말씀드렸죠.”
성지한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 새끼들아 그만 좀 질문해라 진짜 ㅡㅡ
-ㄹㅇ 오늘 뭐 청문회 함?
-성지한 님 얼굴 좀 봐 저렇게 갈라졌는데…….
-인류를 위해 힘 저렇게 쓰신 분에게 뭘 자꾸 캐묻고 있어
-버튼 안 누른 거만 해도 진정성은 이미 입증한 거 아님?
성지한이 대답할 뜻이 없어 보이자.
그의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문을 그만 제기하도록 했다.
얼굴이 평소보다 더 갈라져서 위험해 보이는 데다가.
자신이 죽을 위기에서도 스위치를 누르지 않은 것이 겹쳐서 그런가.
성지한의 팬들은 평소보다도 훨씬 강한 화력으로 채팅창을 점거했다.
‘뭐, 이쯤이면 되겠군.’
성지한은 그런 채팅창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이제 방송을 끝내기로 했다.
애초에 방송을 켠 목적은 토너먼트 때문이었으니까.
여기서 더 이야기해 봤자, 딱히 좋을 게 없다.
“오늘의 귀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성지한이 손을 흔들고 채널이 닫히자.
삑.
피티아가 보던 화면도 암전되었다.
“자, 됐지? 이제 안내해라.”
[…….]
“왜 대답이 없지? 설마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이냐?”
노년의 길가메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피티아의 신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 알고 있어?]
“뭘 말이냐.”
[이 세계에, 신안을 지닌 존재가 또 있다는 걸.]
“너 말고도…… 또 있었나?”
[그래. 그녀가 우릴 찾고 있어.]
“우릴……?”
[내가 세계수 탐색을 위해 신안의 힘을 쓰면, 바로 걸릴 거 같은데.]
길가메시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지금 실컷 방송 보여 줬더니, 다 보고 나서 이런다고?
“너…… 그거 진짜냐? 신안을 지닌 이가 하필 타이밍 좋게 지금 우리를 탐색한다고?”
[거짓말 같아? 알았어. 그럼 쓸게.]
“그래, 빨리 알려 줘라.”
[근데 너, 신안을 지닌 존재가 누군진 알아?]
“누군데 그래?”
[성지한 누나야.]
“…….”
그 말에 길가메시가 움찔했다.
“잠깐. 신안 쓰면, 바로 걸리는 거냐…….”
[어, 지금도 내가 우리 위치 숨기고 있는 거야.]
“……그럼 탐색이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 보자. 근데 설마 너, 허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도망친다든지.”
[지금 눈 하나 남았는데 허튼 생각을 어떻게 해?]
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제공하는 생명의 기운이 아니면, 어차피 오래 버티지 못하는 피티아.
그런 그녀가 이 상황에서 딱히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어차피 들키면 둘 다 죽은 목숨이니까.
“……알겠다. 탐색 좀 막고 있어라. 난 인간 놈들한테 돈이나 받겠다.”
[너무 티 나게 세뇌하지 마. 그러다 걸린다.]
“세뇌가 아니라 지배다.”
길가메시는 그리 말하며, 서해 바다 앞에서 등을 돌렸다.
쑤욱.
그리고 그런 길가메시의 옷 주머니로 들어간 피티아는.
안에서 생각했다.
‘사실 위치야, 이미 알고 있지.’
세계수의 위치.
그건 피티아가 성지한과 협력할 시기에.
그와 함께 탐색해서 이미 찾았었다.
위치야 아직도 정확히 기억나니, 알려 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놈은 세계수에 데려가면 날 죽이려 들 거야.’
길가메시는 토사구팽을 당연하게 할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눈 하나 있는 상태에서 정보를 제공할 순 없지.
‘일단은, 생명력을 갈취하면서 투성과 연락하자.’
길가메시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피티아는.
성지한의 방송을 떠올렸다.
그의 얼굴, 예전에 비하면 완연히 공허에 잠식되어 있었지.
저렇게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끝까지 스위치는 누르지 않은 건가.
‘그 뜻은 존중할 만하지만, 능력이 아쉽네…….’
성지한이 비록 강하긴 했지만.
인류 모두에게 남겨진 적색의 인자를 제거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신처럼 투성과 합일할 정도는 되어야, 그런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만약 능력이 되었으면…….’
어쩌면, 그를 도우고 있었을지도.
피티아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고, 지금 일에 집중하자.’
현실성 없는 가정은 그만두기로 했다.
* * *
3일 후.
[‘성지한 배 3차 성좌 토너먼트’의 참가자는 0명입니다.]
“이런.”
성지한은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자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1차 2차는 그렇게 인기 폭발이었는데.
어떻게 3차에 와서 한 명도 참가를 안하냐.
‘약해졌다고 그렇게 어필을 했는데 소용이 없네.’
하아.
그가 한숨을 푹 쉴 무렵.
벌컥!
“삼촌. 왜 갑자기 한숨이야?! 어디 아파?”
윤세아가 다급한 얼굴로 성지한의 방문을 급히 열고 들어왔다.
“……너 내 방에 도청기라도 달았냐? 뭔 한숨소리를 다 듣고 있어.”
“아니…… 뭐 그냥 혹시 삼촌 쓰러지기라도 하나 싶어서.”
쓰러져?
성지한은 피식 웃었다.
“지구에서 내가 제일 건강할걸? 수천 번 죽어도 살아나는 인간인데.”
“아, 그거 때문에 그렇지……! 수천 번 죽다 살아났는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잖아. 얼굴도 그렇고……!”
그러면서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는 윤세아.
얘 또 울라 그러네.
성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무신과의 전투 이후 귀가했을 때, 자신보고 대성통곡을 하더니 과보호가 심해졌어.
“그래서, 왜 한숨 쉰 거야?”
“아, 토너먼트 참가자가 없어서.”
“없으면 좋은 거 아니야? 안 싸우잖아.”
“아니. 나는 꼭 대성좌랑 싸워야 하거든. 곤란하게 됐네.”
이러면 역시 방법은, 드래곤 로드한테 쳐들어가는 것뿐인가.
‘태양왕이 날 소환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놈은 있는 것 자체로 무신을 견제할 수 있으니 일단 후순위로 패스하고…….’
성지한이 그렇게 다음 스탭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아레나의 주인’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성지한님. 토너먼트 개최 불발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련장에서 뵙죠.]
아레나의 주인 쪽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쪽에서 먼저 보자고 하다니. 흔치 않은데.’
토너먼트 불발 건이 그렇게 컸나.
“나 수련장 좀 갔다 올게.”
“응, 삼촌.”
성지한은 윤세아에게 손을 흔들고는, 공허의 수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안에선.
“오셨군요.”
중절모 아래, 우주 형상이 보이는 아레나의 주인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어. 토너먼트 어떻게 하냐.”
성지한이 아레나의 주인에게 가볍게 대꾸하며, 그를 쳐다보았을 때.
스으으…….
성지한의 몸 안에서, 하나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응? 이게 왜…….’
아소카에게 받았던.
FFF급 스탯, 청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