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59화>
뚜벅. 뚜벅.
“나는, 오랜 시간 고민했네.”
싯다르타가 성지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인류가 적에 해방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신이 무한회귀를 하는 동안 생각한 건가.”
“맞네.”
무신의 회귀.
아소카 시절의 그는 이를 수행하던 주체였으니.
회귀를 하면서, 힘도 같이 축적하고.
동시에 인류의 적을 없앨 방법까지 생각해 낸 건가.
‘진짜 초인이네.’
성지한이 새삼 감탄하고 있을 때.
스윽.
싯다르타는 허공에 떠 있는 붉은 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새삼 다시 사과하겠네. 자네를 이것으로 시험했으니.”
“뭐…… 이것도 시험이었나?”
“그래. 나는 이미 죽은 몸. 이 적색의 관리자는, 자네의 안에서 끄집어낸 것이네.”
싯다르타에게서 튀어나온 적색의 눈동자가 성지한 사정은 어떻게 아나 했더니.
사실은 저게 자신의 몸에 들어 있던 건가.
그가 눈동자를 만지자.
[6번째 깨달은 자여. 너는 네 말을 지켰구나. 네가 행한 건, 외면이 아니라 거역이 맞았다…….]
눈동자가 빛깔을 잃고 사라졌다.
그러면서 성지한의 육신으로 다시금 흡수되는, 적의 기운.
그는 이제 대강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적색의 관리자가 보여 준 환상. 그것에 넘어가는지를 보려 한 거군.’
사실 적색의 관리자가 되었을 때의 그 고양감은, 상당하긴 했으니까.
특히 성지한을 고생시켰던 투성을 손짓 발짓으로 부숴 버렸을 때는.
아, 이러니까 상시 관리자를 하지 싶었다.
물론 그 이후 지구에 돌아와서 윤세아와 성지아를 적의 일족으로 만들 때, 신난 기분이 급속히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 꼴 안 봤으면 살짝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네.’
성지한은 눈알 괴물이 되었던 윤세아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시험을 몇 번이나 하는 건가.”
“미안하네. 그만큼 내게는 중요한 일이라.”
“만약에 이번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지? 네 본신은 무신과 자폭했으니. 무한회귀도 끝이 났을 텐데. 몸뚱어리도 없고.”
스으윽.
성지한의 말에, 싯다르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몸뚱어리야, 있지 않은가.”
“……설마 나?”
“그래. 자네가 적의 유혹에 빠지면, 내가 대신 몸을 쓰고 돌려주려 했네.”
그러면서 싯다르타는 웃음 지었다.
“하지만 자네의 의지가 굳건한 걸 보니, 그러지 않아도 되겠어.”
관리자의 유혹에 빠졌을 때를 대비해서, 몸을 강탈할 준비까지 한 건가.
성화로 자신을 태우라고 했을 때, 몇 수까지 대비해 둔 거지?
성지한은 질린 기색이 되었다.
‘이러니까 무신 놈이 이 사람한테 그렇게 휘둘렸지.’
뱀 머리로 변해서 그를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네.
“자, 모든 시험을 통과했으니, 네가 고민한 결과나 들어 보지.”
“간단하네. 적에 대항할 능력을 만들었네.”
“능력이면…… 스탯인가?”
성지한의 의문에 싯다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깨달은 자는, 적에서 벗어날 수 있네. 하나 깨달음이란…… 인류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지. 인간은, 삶을 지탱하기에도 버거운 존재. 자신을 궁구하는 이는 드무니까.”
“뭐, 그렇겠지.”
개나 소나 깨달았으면, 진작 적이 알려졌겠지.
“나는 그래서 깨달음의 일부를 떼어 정리했네. 오로지, 적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그게 가능한 거냐?”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무한회귀가 이런 면에서는 순기능을 발휘했군.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리다, 예전에 녹색의 관리자가 한 이야기가 생각나 물어보았다.
“예전에 녹색의 관리자는 나보고 관리자가 되면, 인류에게 내재된 적을 지울 수 있을 거라 하던데. 그렇게 삭제하는 건 안 되나?”
“그 방법이 통용되면 그렇게 해도 좋네. 하지만 녹색의 관리자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하긴.”
이그드라실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야 없지.
적을 없앨 방법이야, 이것저것 다 가지고 있으면 나쁠 게 없다.
성지한이 수긍하자.
“그럼, 능력을 넘기지.”
스으으으…….
싯다르타의 몸에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곧.
성지한의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FFF등급 능력, ‘청靑’을 얻습니다.]
[스탯 청을 1 올릴 시, 적의 인자가 사라집니다.]
[인류에게서 적의 인자가 사라질 시, 종족 인류의 진화 한계가 ‘중상급 종족’을 기준으로 재설정됩니다.]
청이라.
적색과 대비하라고 만든 건가.
싯다르타의 깨달음 중, 적을 없애는 데 국한되어 전수받은 이 능력은.
스탯을 겨우 1 찍는 것만으로도, 적의 인자를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FFF등급이네.”
“시스템에서 보기엔, 이보다도 쓸모없는 능력이 있을까. 상시 관리자로 승화할 적의 인자를 봉쇄하고, 인류의 가능성을 중상급으로 제한하지 않는가.”
“하긴.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배틀넷 시스템 측면에서 보기엔 그럴 수 있겠군.”
절대자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봉인하는 능력이 청이다 보니.
시스템 측면에서는 평가가 박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성지한은 청이 제대로 안착되었는지, 상태창을 열었다가.
“어…… 뭐야.”
눈을 크게 떴다.
상태창에 뜬 능력치는, 그의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 * *
성지한은 눈을 깜빡이고는, 다시 한번 상태창의 능력치 쪽을 살폈다.
레벨 : 650
무혼 : 700
공허 : 695
적 : 50(봉인)
영원(불완전) : 30
청 : 0
‘무혼과 공허는 대폭 발전했는데…….’
635에서 잘 오르지 않던 레벨은, 투성에서 성좌의 무구를 집어삼켜서 그런 건지 어느새 650이 되어 있었으며.
무혼과 공허도 예전보다 크게 발전한 상태였다.
거기에 영원은, 무신에게 하도 죽어서 그런지 10이나 감소한 상태.
여기까지는, 저번의 전투를 떠올리면 이해할 만한 범주에 속했다.
하지만.
‘적…… 벌써 봉인된 거냐?’
500에 가까웠던 스탯 적은, 투성에서 한 차례 더 능력치를 수급했으니.
원래대로라면 무혼, 공허 라인과 비슷하게 700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하나 상태창에 뜬 능력치는 50에, 뒤엔 봉인이라고 써 있기까지 했으니.
이건 못 써먹는 건가.
“청 스탯 0인데도, 적은 바로 봉인된 건가?”
“그건 청 때문이 아니네. 네 팔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아, 그거 때문이군.”
관리자의 손이, 자신을 옥죄고 새로운 심장으로 갈아타기 위해 움직일 거라 했었지.
그게 벌써 스탯상으로 나타난 건가.
“청을 올려 보게.”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탯을 한 개 올려 보았다.
FFF등급이라 그런지, 잔여 포인트가 1개만 소모되는 청.
그러자 상태창에서 적이 100으로 변하고, 봉인 글자가 사라졌다.
“봉인이 풀리긴 했는데, 적이 700으로 돌아오진 않네.”
“그것은.”
싯다르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화르르륵……!
성지한의 오른손에서, 눈알이 튀어나왔다.
[성지한, 무슨 짓을 한 것임? 나의 억제에서 벗어나다니.]
“이젠 본체라고 안 하는군.”
[넌 본체 자격 없음. 관리자의 뜻에 따라 폐기처분임. 새로운 육체로 갈아탈 거임.]
“새로운 육체는, 세아 말하는 거냐?”
[맞음. 그 정도면 새롭게 안착하기 좋아 보임.]
윤세아에게 갈아탈 생각을 대놓고 드러내는 관리자의 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은 여기서 꼭 처리하고 가야겠군.
“관리자의 손이 자네와 적대하니, 그를 통해 얻었던 능력도 다 저리로 간 것이네.”
“700 중 600이 다 저놈 소유란 건가.”
“그런 셈이지.”
성지한은 그 말에, 관리자의 손을 이식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손 이식한 것만으로도 스탯이 300 올랐지.
‘그거 생각하면, 600이 다 저기 있을 만하군…….’
적 능력 600어치를 지닌 손과 싸워야 하는 건가.
이거 쉽지 않겠네.
성지한이 자신의 몸에 기생한 관리자의 손을 노려보고 있을 때.
“이건 내가 처리하지.”
싯다르타가 관리자의 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화르르륵……!
손의 불이, 그에게로 번지더니.
스으으으…….
성지한의 오른팔에서, 적의 힘이 싯다르타에게로 모조리 흡수되었다.
[이, 이건 뭐임. 네놈 몸엔 안 있을 거임. 아니 애초에 육신이 없잖음…… 뭐임, 이건?]
싯다르타를 불태우면서도.
여기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인 관리자의 손이었지만.
스으으으…….
싯다르타의 육신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 안에서 금륜이 모습을 드러내자, 불길은 그 안으로 흡수되었다.
[이건…… 나를 처음부터 없애려고…….]
차츰차츰 목소리가 약해지는, 관리자의 손.
금륜은 불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 수레바퀴를 굴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적의 기운이 모두 멎자.
‘……돌아왔군.’
성지한은 처음, 금륜에 성화를 지폈던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까와 너무 상황이 똑같아서,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의심스러운 지경.
하지만.
‘상태창을 보니 헛것은 아니네.’
100에 달하는 적과, 1밖에 없는 스탯 청.
이 두 능력치는 아까 일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적이 100으로 대폭 깎이긴 했다만…… 아까 관리자가 되었던 경험 때문인지. 출력은 비슷하게 내겠어.’
능력은 1/7 토막 나도.
관리자의 몸으로 적을 다뤄봤던 경험이, 이 손해를 메울 만했다.
성지한이 그렇게 자신을 점검할 때.
스으으…….
금륜이 움직이더니, 성지한의 몸에 빨려 들어갔다.
[멸신결 ‘회광반조回光返照’가 ‘금륜적보金輪赤寶’로 바뀝니다.]
[금륜적보를 굴려, 사용자는 육신의 상태를 하루 전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에는 위치 정보도 포함됩니다.]
[금륜적보는 총 3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회광반조에서 금륜적보로 변했군.’
하루 전의 몸 상태로 뒤바꿔 준다는 옵션도 좋지만.
위치까지 되돌려 주는 건 상당히 쓸만하네.
‘이러면 투성에 쳐들어갔다가 하루 지나기 전에 굴리면 지구로 돌아올 수 있겠어.’
그리고 이건 꼭 투성이 아니더라도, 다른 데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가령.
‘드래곤 로드의 레어를 쳐들어가도, 돌아올 길이 막막했는데. 이걸 쓴다면 되돌아올 수 있다.’
정말 현 상황에 딱 맞는 물건을 주고 가셨군.
성지한은 아소카의 포석에 감사할 때.
쿠르르르……!
땅이 크게 울렸다.
그러자 한층 약해지는 포탈의 빛.
‘이제 가야겠네.’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 지구로 귀환할 때다.
성지한이 포탈에 발을 들이밀 때.
금륜이 위치한 곳에서, 금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성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네. 다만…… 걸리는 점이 있어.]
“걸리는 거? 뭐지?”
[동방삭.]
“그가 왜?”
[그는 무신에게 자신의 진의를 들키지 않기 위해, 태극마검에 자신을 가두었네.]
태극마검에 자신을 가두다니.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지?”
[자네가 동방삭에게서 태극마검을 이끌어 내야. 그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네.]
아.
동방삭이 태극마검을 펼치기 전엔, 무신의 충신으로 있을 테니까.
그에게서 그 최후 절기를 이끌어 내야, 동방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가.
‘그 할아버지가 괴물이긴 하다만.’
성지한은 무혼 능력을 떠올렸다.
700에 도달한 스탯.
웬만한 이는 다 찍어 누를 힘이다.
“뭐,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도 많이 발전했으니까.”
[……꼭, 해내야만 하네.]
아지랑이 속에서, 아소카의 목소리가 미약해졌다.
[그러지 못하면, 자네와 인류는 모두 동방삭의 손에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