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58화>
스으으으…….
백색 불꽃 안으로, 금륜이 사라지고 나자.
성지한은 몸의 감각이 일순간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이건…….’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태양빛이 내리쬐는 지상 위의 세상으로.
그런 성지한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거대한 나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소카를 닮았군.’
고생을 한 건지 삐쩍 마르긴 했지만.
외관상은, 성좌 아소카와 흡사한 사내.
성지한은 그가 무신에게 이름을 받기 전, ‘싯다르타’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던 그의 머리 위로.
화르르륵……!
갑자기 적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우리에게, 이런 것이…….”
눈을 감았던 싯다르타가 탄식하며 머리 위로 뜬 불꽃을 바라보았다.
황금의 빛이 은은히 감도는 그는 신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의 머리 위편에 피어오른 불꽃도 강렬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는가. 나를 인식하고, 벗어났구나.]
번뜩…….
허공에 뜬 불꽃은 서서히 꺼지더니, 하나의 눈동자를 만들어 내었다.
“너는…… 무엇이냐.”
[나는 너희의 창조주요. 너희는 나를 잉태한 어미이다.]
“…….”
인류의 창조주라면서, 인류보고 어미라고 하는 눈동자.
성지한은 이 자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적색의 관리자군.’
길가메시를 통해 적의 인자를 품은 인류를 만들어 내고.
이들을 번식시켜, 최종적으론 상시 관리자가 되려 하는 적색의 관리자.
그가 과거의 싯다르타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건가.
[깨달은 자여, 너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스윽.
눈동자는 싯다르타를 내려다보았다.
[나에게 협조할 것인가. 아니면, 외면할 것인가.]
“협조와 외면이라…….”
[협조하면 나와 융합되어 영생을 누릴 것이고, 외면하면 그대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성지한은 관리자가 제시한 선택지를 들으며 생각했다.
‘둘 다 별로지만, 그나마 외면이 낫나.’
협조는 해 봤자 적색의 관리자 몸뚱어리 일부밖에 안 될 거 같은데.
잘해 봤자 관리자 몸뚱어리의 눈동자 중 하나로 만들어 주지 않겠어?
그러느니 그냥 외면하고 살다 죽는 게 나을지도.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결국, 너라는 절대자의 일부로 속하게 되겠군.”
[그렇다. 그것이 너희가 태어난 이유이다.]
“‘나’라는 의식은 사라지는가?”
[깨달은 자는 존중한다. 너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깨닫지 못한 이는…….”
[그런 이들은, 관리자의 파편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것이다.]
깨닫지 못한 자는, 몸뚱어리나 되라 이거군.
[그래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협조와 외면 중에 말인가?”
[그렇다.]
그렇게 묻는 눈동자의 움직임은 권태로웠다.
사실은, 둘 중 뭘 택해도 상관없어 보이는 태도.
뭘 하든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본 거겠지.
하지만.
“세 번째를 택하지.”
[세 번째?]
“널 거역하겠다.”
[…….]
싯다르타의 선택에,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빛을 띠었다.
[거역…… 그것은 외면이나 마찬가지다.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그럴지도.”
[그럼에도 할 것이냐?]
싯다르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이 깜빡거렸다.
[네 이전 5명의 깨달은 자는 모두 다 외면을 택했다. 한데 거역이라…….]
“…….”
[좋다. 오랜 기다림 속에, 하나의 유흥거리가 생겼구나.]
세 번째 길, 거역에 오히려 기꺼워하던 붉은 눈동자는.
스스스스…….
갑자기 허공에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멀리서, 둘을 지켜보던 성지한에게로.
[너는, 어찌할 것이냐?]
눈동자는 그렇게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번 대, 나의 심장이여.]
그를 심장으로 지칭했다.
* * *
“……뭐?”
심장이라니.
이 눈깔이 갑자기 뭔 소리야.
[나의 심장은 관리자의 권능 적赤을 다루는, 핵심 기관. 내게는 가장 중요한 중심부다.]
“근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고대, 심장의 인자는 인류 중 뛰어난 이에게로 계승되었지만…….]
스윽.
붉은 눈은 싯다르타 쪽을 바라보았다.
그도 심장의 인자 중 하나였나?
[저자처럼, 깨달음을 얻어 적의 인자를 스스로 버리는 경우가 생겨났다. 뛰어난 이에게 심장의 인자가 결합되어 생긴 부작용이지.]
“그래서?”
[나는 가장 뛰어난 이에게 계승시키는 방침을 바꾸어, 무작위로 심장이 될 이들을 선정했다.]
뭐야.
그러니까 싯다르타는 한 시대의 인류 중 제일 뛰어난 사람이어서, 심장의 인자로 선정되었고.
그가 저렇게 깨닫고 거역하고 나서니까, 나중엔 랜덤으로 심장 인자 선정이 바뀐 건가?
“난 그러니까 싯다르타처럼 잘나서 선택된 게 아니고 운빨로 됐다 이거지?”
[그렇다.]
“……그럼 너희들 문자를 읽고, 적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던 거도 심장이어서 그런 건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눈동자가 그리 말하자.
두근.
묘한 감각이 성지한의 전신에 퍼져 나갔다.
‘이건…….’
[심장의 인자는, 최적의 선택을 하도록 널 도왔지.]
이것은 항상, 최적의 선택을 하게 해 주었던 성지한의 감.
이 덕에 여러 번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세계수 점화 장치를 꺼내던 시점에서는, 버튼을 눌러야 살 수 있다고 엄청나게 경고했지.
‘이 감각도. 내가 심장이어서 그런 거였나.’
적색의 손이 왜 그렇게 자신을 본체라고 노래를 불렀는지, 이제야 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묻겠다. 너는, 어찌할 것이냐?]
“스위치 부순 거 못 봤냐?”
[보았다. 하나 그것은, 네가 무지해서 그렇다.]
“무지…… 라고?”
[그건 네가 관리자의 힘을 몰라서 행한 선택.]
탁!
붉은 눈동자가 성지한의 이마에 붙었다.
그러자.
풍경이 다시 한번 뒤바뀌며.
이번에는 투성에, 성지한이 갓 소환되었을 때로 전환되었다.
[보라.]
그러며 또다시 펼쳐지는 전투 시뮬레이션.
무신은 투성과 결합하여, 성지한을 매섭게 압박했지만.
이번의 그는 인벤토리에서 스위치를 꺼내, 바로 눌러 버렸다.
꾹.
그러자.
화르르르……!
성지한의 전신이 불타오르더니, 곧.
몸이 끝도 없이 팽창해 나갔다.
그와 함께, 전신의 감각이 확장하며 차오르는 충만감.
[과, 괸리자로 부활하다니……!]
투성과 합체한 무신은 당혹한 음성을 내질렀지만.
쿵!
적색의 관리자가 된 성지한이 발로 한 번 투성을 짓밟자.
별이 움푹 파이고.
그가 손을 움직이자 성좌의 무구가 일제히 불타올랐다.
무한회귀를 통해 아무리 힘을 축적한 무신이라 할지라도.
감히 대항할 꿈도 못 꾸게 만드는, 강렬한 적색의 관리자의 권능.
쾅! 쾅!
결국 투성은 박살이 나 버리고, 무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 보라.]
그리고 관리자가 된 성지한이 한 차례 뜀박질하자.
스윽!
그의 몸은 순식간에 지구에 도착했다.
버튼을 눌러서 그런지, 완벽하게 전소된 지구.
인류만 타오른 게 아니었는지, 서울 시내도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하나.
[파괴된 세상은, 되돌리면 된다.]
관리자가 된 성지한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스스스스…….
서울의 풍경이 시간을 거꾸로 움직이듯,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사라진 사람은, 살리면 된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재생된 서울 시내에서 하나둘씩 살아나는 사람들.
“……삼촌?”
“지한이…… 지?”
그중에는 성지한의 가족도 살아나, 바닥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총애하는 이에겐 권능을 내릴 수도 있지.]
번쩍!
관리자의 권능이 발현되자, 윤세아와 성지아의 몸에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두두두둑……!
두 여자의 몸이 변형되면서, 적의 일족의 몸뚱어리로 변했다.
[와 삼촌! 나 거인 됐어!]
[이거…… 대단한데…….]
붉은 눈을 가득 담은, 거인의 몸.
성지한만큼은 아니지만, 남산 크기는 되는 두 거인은.
자신의 커다래진 몸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게 총애냐.’
정작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자 차게 식었다.
누나랑 조카를 상상 속이라지만, 적의 일족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저 눈동자 가득한 거인, 나중에 꿈에 나올 지경이네.
한편.
지이잉…….
붉은 눈동자는 세상의 풍경을 되돌린 후.
[어떤가? 관리자의 힘은.]
성지한의 이마에서 다시 떼어져 나와, 그에게 물었다.
“세긴 하네. 내가 스탯 적을 너무 헛 다룬 거 같다.”
잠깐이지만, 적색의 관리자가 된 경험은, 성지한에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그 몸이 적의 능력을 다루는 건, 현재 성지한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이걸 좀만 따라 해도, 현재 스탯 적의 숙련도를 확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성지한의 대답에.
[그럼.]
지이이잉…….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쏘아지며.
성지한의 오른팔에, 무언가가 형성되었다.
“이건…… 세계수 점화 장치?”
[그렇다. 지구로 가서 눌러라. 그러면 아까의 일이 환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스으윽.
성지한은 스위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랏빛 철판에, 붉은 버튼이었던 저번 세계수 점화 장치.
이번에 형성된 건, 철판 색만 붉은색으로 달랐다.
공허가 없다 이건가?
근데.
“이거 디자인이 저번 거랑 너무 비슷한데. 아니, 완전 똑같잖아.”
아레나의 주인이 준 버튼이랑.
적색의 관리자가 만들어 낸 버튼은 똑같아도 너무 똑같았다.
철판에만 공허가 있냐 없냐가 다를 뿐.
“너랑 아레나의 주인, 설마 협력하는 사이냐?”
[아니, 스위치는 네 것을 참조했을 뿐이다.]
“그래?”
[공허에게 협력을 받았으면, 이렇게 일을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었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관리자의 대답.
하나 성지한은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스위치를 굳이 똑같이 만들 필요가 있나.
거기에, 공허가 협력하지 않았다곤 했지만…….
‘점화 장치 준 게 아레나의 주인이긴 하잖아.’
뭔가 한번 찔러 볼 건덕지는 생겼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그래서, 대답은?]
적색의 관리자는 답을 요구했다.
“아, 대답?”
그러자.
파스스!
성지한은 주먹을 꽉 쥐어, 세계수 점화 장치를 단숨에 부쉈다.
“조카 시집은 보내야지. 저래서 누가 데려가냐?”
눈알 거인이 된 윤세아.
최근 본 끔찍한 광경 중에 단연 1등이다.
거기에.
‘그냥 복제품이더만.’
저렇게 살린 인간들은, 예전과는 확실히 별개의 존재였다.
권능을 발현할 때, 시간을 뒤로 돌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위치를 눌러 사라진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살아나질 않았다.
그냥 비슷한 존재들을, 다시 찍어 냈을 뿐이지.
성지한의 확답에.
[힘을 느꼈음에도…… 이번 심장은 어리석구나.]
눈동자는 예상했다는 듯, 덤덤히 말했다.
“뭐, 덕분에 적의 능력은 잘 다루겠어. 체감 상당하더라.”
[힘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뭐?”
[나의 손이 널 억죌 것이니.]
“손이?”
[그는 그릇된 심장을 터뜨리고, 새로운 심장에 안착할 것이다.]
성지한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적색의 손.
저번에 무신이 잘라 가도 몸에서 재생하던데.
아주 독버섯이 몸 안에 생긴 꼴이구만.
오른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면 이건 좀 성가신데.
근데.
“새로운 심장은 뭐냐?”
[너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에게, 재능이 있다.]
“나랑 가까이…….”
가까이 있는 이라 해 봤자 몇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손이 세아를 자꾸 지켜보지 않았나.’
설마, 윤세아가 새로운 심장이 되는 건가?
성지한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 갈 때쯤.
스으윽.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몸을 일으켰다.
“결합은 내가 풀어 주겠네.”
“당신이…….”
“그러기 위해 남긴 힘이니까.”
그러며 그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