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457화 (457/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457화>

조금 전.

투성의 외곽.

평소보다, 새하얀 빛으로 번쩍이는 그 장소에는.

거대한 빛의 거인 형태의 태양왕이 뜻밖의 장애물에게 막혀,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우주천마…… 그만 앞을 가로막고, 비켜라!]

“그럴 순 없습니다.”

태양왕의 크기에 비하면, 태양 아래 반딧불이나 다름없는 동방삭.

하나 그는 홀로 우주 공간에 떠서, 빛의 거인을 막아섰다.

[무신은 나의 아들. 아비가 자식을 만나겠다는데, 무신의 종자가 이를 가로막을 셈이냐!]

“그래서 아직 제게 죽지 않은 줄 아십시오.”

[뭐, 뭐라고…….]

“조금 전 전투로, 느낀 바가 없으십니까?”

스으윽.

태양왕을 올려다보는 동방삭.

그의 손에는, 새하얀 빛으로 물들어 있는 태극마검이 자리했다.

그가 검 끝을 태양왕에게 겨누자.

번쩍!

태양왕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스윽.

그러자 동방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슬쩍 비웃음을 흘렸다.

“느낀 바가 있긴 한가 봅니다.”

[이놈이……!]

아들의 종 따위에게, 이렇게 굴욕을 당하다니.

태양왕은 동방삭의 비웃음에 분개했지만.

저 빛의 검에 대한 경계를 놓진 않았다.

동방삭의 태극마검.

저 검의 압도적인 파괴력은 이미 한 차례의 격돌로 체험해 본 바가 있었으니까.

‘대체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우주천마.

무신의 종자로, 배틀넷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초월적인 무인.

하나 태양왕은 그런 세간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가소롭게만 생각했다.

무패의 성좌?

그거야 얼마 안 살아서, 진정한 강자를 안 만나 봐서 그럴 뿐이지.

자신 같은 대성좌와 마주하면, 그대로 짓밟힐 존재라고 여겼는데.

‘……이 몸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투성의 위치를 알아채자마자, 급한 대로 본체의 일부만 강림한 태양왕은.

동방삭을 넘어설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도.

스윽.

동방삭이 대치 상황에서 아예 몸을 돌려, 뒤를 향하자.

태양왕의 빛이 폭발했다.

[지금, 날 눈앞에 두고 뒤를 본단 말이냐?]

번쩍!

태양왕에게서 강렬한 빛이 퍼져 나오자, 동방삭이 눈을 찌푸렸다.

“잠깐만 가만히 계시죠. 지금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러고는 한 차례 움직이는 태극마검.

동작은 단순히 한 번 베는 것에 불과했지만.

빛의 궤적은, 끝없이 어둠을 토해 내더니 태양왕의 육체를 잠식했다.

조금 전 맞부딪쳤을 때보다도 훨씬 강한 적의 검격.

빛의 거인 형태이던 태양왕은 순식간에 머리만 남았다.

[뭐, 뭐지 이 힘은…… 조금 전엔, 힘을 숨겼단 말이냐?]

“주인의 아비일지도 모르니, 죽이지 않은 겁니다.”

동방삭은 겉으론 그리 말했지만.

‘여기서 벌써 죽이면, 무신이 나를 투성으로 부를 테니까. 너는 남아 줘야 한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무신과 동방삭이 합공하면, 성지한은 어떻게 대항하더라도 죽을 테니.

투성에서 자리를 비우기 위해서라도, 태양왕을 지금 처단해선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태양왕을 무력화시키고, 투성의 상황을 지켜보던 동방삭은.

‘……아소카.’

아소카가 등장하자, 태극마검을 꽉 쥐었다.

그가 나섰다는 건, 무신을 거역할 때가 왔다는 뜻.

태양왕 따위야 내버려 두고, 동방삭도 투성으로 가 그를 조력하려 했지만.

[동방삭, 들리는가.]

그가 개입하기 전에, 아소카의 음성이 들려왔다.

‘들리네.’

[자네, 성좌의 무구를 일검에 얼마나 없앨 수 있겠나.]

‘한 번에? 지금으로선, 일검에 1할에서 2할 정도는 없애겠지.’

[그래…… 그럼, 아직 자네는 나서면 안 되겠군.]

‘아직도…… 나설 때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도?’

당장이라도 개입하려는 동방삭을 말리던 그는.

성지한이 세계수 점화 장치를 부수자.

목소리가 한층 가벼워졌다.

[……장치를 부수어, 그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 주었네. 이젠 갈 때가 되었군. 성좌의 무구를 부탁하지.]

‘……아소카! 나도 돕겠다. 우리 둘이 힘을 합하면, 오늘 무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 말 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챈 동방삭은, 황급히 그에게 의념을 보냈지만.

[아니, 아직은 불가능하네. 오히려 지금은 자네를 더 숨겨야 하네. 무신의 충신이 되게.]

‘충신이, 되라니.’

동방삭은 아소카가 천수천안을 펼치는 걸, 아연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무신의 반응을 보니, 아소카의 금제를 발동시킬 게 확실한데.

자신이 개입해 돕지 않는다면, 그는 무조건 죽는다.

‘아소카, 나의 검이…… 부족했는가? 그래. 무신의 무구, 없앨 수 있네. 내가 다 없애겠네. 이 검에 전력을 다해, 투성의 하늘을 무너뜨리겠네. 그러니 제발……!’

태극마검을 쥔 손에서 피가 떨어지고, 동방삭의 눈에는 핏발이 섰지만.

[구세제민의 맹세를, 잊지 말게.]

아소카의 말을 듣곤, 힘이 탁 풀렸다.

두 사람이 무신의 종이 된 이유.

그것은, 둘의 목숨보다 우선시되어야 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우선은 그의 충신이 되어야 하네. 그리고…….]

동방삭은 그렇게 아소카의 마지막 전언을 듣고.

가만히 투성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천수천안을 꺼내어, 성지한을 보호하고 투성의 대지를 무너뜨리는 아소카.

그는 결국 무신의 진면목, 거대한 뱀의 머리까지 드러냈고.

그 머리에 집어삼켜지는 와중에도.

자폭을 하여, 무신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 모든 과정을.

동방삭은 멀리서, 멍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조금 더 강했다면.’

일검에 투성의 하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면, 아소카는 저렇게 죽지 않아도 되었겠지.

내 탓이다.

동방삭은, 아소카가 사라지는 장면 모두를, 자신의 눈에 담았다.

그때.

[저것 보아라! 무신, 저놈…… 역시 나의 아들 아니냐! 17777번째 아들! 아, 혹시 문자를 읽지 못하는가?]

“…….”

어느덧 몸을 상당히 회복하고.

본체의 힘을 더 끌어와, 육신이 더욱 거대해진 태양왕이.

투성을 지켜보다, 뱀의 머리에 적힌 문양을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우주천마, 당장 길을 비켜라. 고전하는 아들을 위해 내 기꺼이 힘을 보태지!]

“시끄럽군.”

휙!

태극마검이 뒤를 향해 뻗고.

[허, 아까처럼 무력하게 잠식될 줄 아느냐? 본체의 힘을 더 가지고 왔으니……!]

태양왕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몸이 암흑에 물들었다.

태양빛을 잠식한, 어둠은.

“조용히.”

동방삭이 검을 한 번 더 휘두르자.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아, 아니…… 본체의 힘을 급하게 더 끌어왔건만…….]

“조용히.”

스스스스!

거대한 태양왕의 머리까지 삼키는 어둠.

조금 전에는 무신의 아비라서 살려 뒀다고 하더니.

이제는 인정사정없었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규격 외…….]

“조용히.”

슈우우욱.

동방삭의 등 뒤에 있던, 태양왕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그의 소리도 사그라졌다.

그렇게 완벽하게, 동방삭에게 패배하여 사라진 태양왕이었지만.

“조용히…… 해라.”

그는 여전히 검을 뒤로 뻗었다.

단지 조용히 하란 말만 끝없이 늘어놓으면서.

눈으로는, 투성을 좇았다.

* * *

‘……음.’

성지한은 눈을 떴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자네에겐 성화가 있지 않은가. 나의 힘을 가져간다면, 무신에게 아까처럼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아소카가 자길 성화로 죽이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진다 싶더니, 자신만 영 생뚱맞은 공간으로 들어와 버렸다.

‘여긴…… 일단 투성은 아닌 거 같군.’

성지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 디딜 곳은 있으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흠…… 채팅 한번 봐야 하나.’

성지한은 배틀튜브의 채팅창을 열어 보았다.

의식을 잠깐 잃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위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

한데.

-와 ㅅㅂ…… 뭐야, 낚은 거야 무신?

-일부러 말을 한 거구나. 성지한한테 힘 물려줄 테니까 급하면 전력 다하라고;

-근데 저렇게 덤벼 오면 저기서 어떻게 살아요??

-어, 무신이 성지한이 없다는데…… 근데 우린 어떻게 보고 있는 거임? ㄷㄷ

-아. 터, 터진다!

-자폭한 거야…… ㅠㅠㅠㅠ

-와, 아소카 혼자서 무신 힘 40퍼센트 가져간 거네;;;

정신을 잃은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한참 채팅이 길게 나타나 있었다.

‘자폭했다고…… 아소카가?’

아니 대체 무슨 상황이야.

영상 다시 봐야겠네.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배틀튜브 채팅창이 멈춘 걸 보고는 생각했다.

‘따로 끈 기억이 없는데…… 저절로 꺼졌나?’

성지한은 배틀튜브를 다시 켤까 하다가.

일단 이 장소가 어딘지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저벅. 저벅.

얼마나 걸어갔을까.

‘빛이 보이는군.’

어둠을 밝히는, 미세한 황금빛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빛을 따라 더 다가가니.

“이건…….”

드르르륵…….

황금빛의 작은 수레바퀴가, 허공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금륜.

‘이건, 아무리 봐도 아소카의 것이군…….’

이걸 보니, 이 공간에 자신을 데려다 놓은 건 아소카가 확실했다.

자폭하기 전에, 자신만 이리로 보낸 건가.

‘혼자서 무신의 전력 40퍼센트를 없앴다니…… 신세만 지네.’

성지한은 자폭한 아소카에 대해,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가만히 금륜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돌아가던 금색 수레바퀴는.

성지한이 도착하자, 바닥에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화아아아……!

주변의 풍경이 변화했다.

‘여긴…… 바벨탑이 설치되었던 선릉이군.’

성지한을 투성으로 납치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바벨탑.

피티아와 길가메시의 목적 달성은 실패했지만, 적색의 손이 제대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무신에게 끌려가 버렸었지.

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되었던 장소.

바벨탑을 중점으로, 풍경이 변화한다라…….

‘흠…… 설마, 투성의 바벨탑과 연관되어 있나.’

지구에 설치된 바벨탑 주변을 공명해서 보여 주는 어둠 속 공간.

성지한은 여기가 투성의 바벨탑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가 주변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즈음.

드르르륵…….

작은 금륜이 한 바퀴 더 역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번쩍……!

선릉 풍경을 비추던 이 공간에서.

하나의 포탈이 불쑥 떠올랐다.

‘이거, 혹시 선릉으로 가는 포탈인가…….’

어쩌면.

저 금륜은 시간을 뒤로 돌려서, 길가메시와 피티아가 쳐들어왔을 때를 재현한 거 아닐까.

성지한은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포탈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원래라면, 아무 포탈이나 들어가질 않지만.

만약 여기가 투성의 바벨탑과 연관되어 있는 공간이라면.

자폭의 충격에서 벗어난 무신이 추격해 오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 아소카는 믿을 수 있다.’

목숨도 살려 주고, 무신 힘 40퍼센트를 빼 줬는데.

그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나.

성지한은 포탈에 들어서려다, 문득.

움직임을 멈춘, 황금 수레바퀴를 바라보았다.

저거…….

동작은 멈추긴 했어도, 아직도 존재감이 상당한데.

‘그러고 보면. 성화 이야기를 아까 그 긴박한 순간에 꺼냈었지…….’

그게 단지 무신을 낚으려고만 한 이야기였을까?

성지한은 금륜을 보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성화를 거론한 건.

어쩌면 이때가 왔을 때, 금륜을 태워 힘을 얻어 가란 이야기 아니었을까?

‘……그래, 성화를 쓰자.’

성지한은 적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조금 전 무신과 싸울 때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불의 기운만 그에게 호응했다.

‘……버프가 다 끊겨서 그런가? 그래도 너무 약해졌네.’

성지한은 나중에 능력 점검을 좀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손끝에 성화를 피워 올렸다.

그러자.

드르르륵……!

금륜이 이에 호응하듯 움직이면서.

백색 불길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