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55화>
-아니…….
-이 상태에서 아소카까지 오다니…… 진짜 끝인가?
-저 성좌, 시간을 돌리잖아. 무신이 진짜 계속 고문하려고 불렀나?
무신의 세 번째 종 아소카.
그를 토너먼트 경기에서 지켜봤던 시청자들은, 완전히 절망스런 분위기가 되었다.
예전에 토너먼트 때도, 레벨 8 성좌답지 않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 줬던 그가 개입한다면.
안 그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성지한은, 끝이 나게 될 테니까.
[……왜 왔지? 나는 널 부르지 않았다.]
하나 막상 그를 맞이하는 무신은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소카가 성지한이 반항하는 순간엔 오질 않고.
무신이 결국 투성과의 합일을 통해 그를 제압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그가 만약 일찍 이곳으로 왔다면, 무신이 굳이 투성이랑 합치지 않아도 성지한을 더 수월하게 제압했겠지.
‘이미 결착이 났는데, 이제 와서 뭘 할 생각인 건가.’
하늘에 떠오른 무신의 두 눈이, 붉게 빛날 무렵.
“이번에 관측자가 너무 많아,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아소카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고…….]
아소카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무신은 이게 회귀를 뜻함을 금방 눈치챘다.
“예. 성지한 채널을 통해 이곳을 관측하는 자들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거기에 그들 중에는, 관리자도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관측자를 무시하고 흐름을 거스르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거 결국, 회귀가 안 된단 이야기지?”
바닥에 처박힌 성지한은, 둘의 말을 듣고는 이죽거렸다.
“그럼 무한회귀라도 틀어막은 거군. 잘됐네?”
[무한회귀?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성지한의 말에, 대지가 성지한의 몸을 다시금 잠식했다.
꽁꽁 묶어 둔 것도 모자란지, 아예 몸을 압살하여 모든 조직을 짓눌러 버리는 대지.
일반 플레이어라면, 죽어도 진작 죽었을 거센 압박이 수 십, 수 백 번 성지한에게 들어오고.
[스탯 영원이 1 감소합니다.]
신체는 벌써 터지고 재생하고를 셀 수 없이 반복하다가, 스탯 영원까지 하나 더 소모해 버렸다.
진짜 무신이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사망하겠네.
성지한은 영원이 줄었단 메시지를 보고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렇게 짓누르면 대답을 할 수가 없는데?”
[……대답하라. 지금 당장.]
그러면서 잠시 헐거워지는 대지의 압박.
이러면 영원은 당장 소모되지 않겠군.
그래 봤자 대답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다시 죽일려고 압박을 가하긴 하겠다만.
‘시간을 조금이라고 끌기 위해선, 뭐라도 말하는 게 낫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무한회귀를 알려 준 장본인 아소카를 떠올렸다.
‘아소카 이놈, 이번에 전혀 도와주지 않기는 했다만…….’
자기랑 동방삭이 무신 잡는 일에 협조하겠다고 하더니.
협조는커녕, 아까 전엔 동방삭이 방해만 될 뻔했다.
그래도 아직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협조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니.
“네 무한회귀야, 희생당했던 내 귀신들이 알려 줬지.”
[……설마, 어비스의 주인을 말하는 건가?]
“그래.”
성지한은 이미 죽고 사라진, 어비스의 주인을 팔아먹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으니까.
그리고.
[……죽은 놈도 말썽이었군. 다음 회차에 돌아가면, 어비스도 밀어 버리겠다.]
성지한을 노려보던 무신의 눈이, 아소카를 향했다.
[그래서, 대책은 있는가?]
“일단, 관리자의 손이 필요합니다.”
[맞아. 손을 회수할 때가 되었지.]
쿠르르르…….
무신은 땅속에서 성지한을 꺼내더니.
치이이익!
“큭…….”
그의 오른팔을 단번에 절단해 냈다.
성지한의 다른 육체에 비해 훨씬 단단한 관리자의 손이었지만.
투성과 합일한 무신의 힘은 이기지 못하고, 무력하게 잘려 나갔다.
그러고는 둥둥 떠오르는 손과 팔.
그것은 무신의 두 눈이 있는 곳까지, 금방 승천했다.
그렇게 잘린 팔이 무신의 눈 가까이에 도달하자.
화르르르륵!
관리자의 손이, 시뻘건 불길에 물들기 시작했다.
[이건…….]
무신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콰콰콰쾅!
눈 근처에서, 그대로 폭발하는 관리자의 손.
거기서 야기된 폭발력이 상당하여, 무신의 두 눈이 잠시 불길에 잠길 정도였다.
그리고.
스스스스……!
성지한의 잘린 오른팔이, 금방 자라나더니.
“본체! 지금임!”
손과 팔 전체가 타오르며, 그 안에서 붉은 눈동자가 소리를 냈다.
* * *
“뭐야, 너 잘렸잖아? 왜 다시 튀어나와?”
“본체와 나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 우린 이제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
아니.
적색의 손 실컷 써먹고 나중에 잘라 버리려고 했더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예 몸뚱어리랑 합체해 버린 거야?
팔 떼 놔도 소용없을 정도로?
“거참…… 그거 끔찍한데?”
“끔찍하다니. 본체 너무함.”
“너무함?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이 고생이잖아.”
팍!
성지한은 왼손가락으로 오른손등의 눈동자를 찔렀다.
파스스…….
그러자 오른손에 휘감긴 불꽃이 약해지더니.
관리자의 손이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음, 미안함. 무신이 내 생각보다 셌음. 스위치 누를 시간도 안 줄 줄은 몰랐음.”
“미친놈아, 미안하면 다냐?”
“대신 내가 버튼 누를 시간은 끌겠음. 봐 보셈.”
화르르륵……!
손에서 다시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소멸 코드가 사방에 떠올랐다.
겁화를 사용했을 때보다, 몇 겹은 더 중첩된 소멸 코드의 영역.
이걸로도 무신의 압도적인 힘을 막지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점화 장치 누를 시간은 벌었음!”
버튼 누를 시간은, 충분히 벌 만했다.
“인벤토리.”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바로 세계수 점화 장치를 꺼냈다.
보랏빛 철판 위에 불쑥 튀어나온 붉은색 버튼.
아이템 설명대로라면.
이걸 누르면, 지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투성에서도.
지구의 세계수를 불태워 전 인류를 성화로 잠식하고.
그들이 지닌 적색의 인자를 성지한에게로 귀속시킬 수 있게 된다.
단 한 번 누르기만 한다면.
적색의 관리자로, 이 투성에 설 수 있다.
‘……내 직감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히 알려 주고 있어.’
성지한을 여기까지 이끌어 왔던 ‘감’.
그것이, 이 버튼을 보자마자 그에게 강력히 이걸 누르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살 거라고.
누르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고.
‘지금 내 수준으로는, 무신의 힘에 대항할 수 없다.’
무신은 무한회귀를 하면서, 회귀 때마다 축적한 힘을 성좌의 무구에 비축해 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무구가 벌써,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그가 이 힘을 모조리 동원해서 투성과 합일까지 하니, 정말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더 나아가 무신에게 승리하려면, 진짜 이제 남은 수단은 버튼을 누르는 것 밖에는 없었다.
[감히…… 여기까지 와서 발악을……!]
파지지지직!
무신의 힘에, 금방 사라지기 시작하는 소멸 코드의 영역.
무신이 투성과 합일한 이상.
이 세계 자체가 성지한에겐 적이었다.
무신의 강력한 압박이 계속되면, 적색의 손이 만들어 낸 소멸 영역도 금방 사라질 상황.
“본체! 대체 뭐함? 왜 이 상황까지 돼서 안 누름?! 이러다 다 죽음!”
“…….”
“설마 인류가 타오르는 걸 걱정함? 우리는 그들을 희생시키는 게 아님. 모두가 다 같이 초월자의 일부가 되는 거임!”
-?? 저게 뭔 소리임?
-왜 우리가 타올라?
-그러게. 저거 누르면 뭐 어떻게 되는 건데…….
적색의 손의 외침에, 어리둥절한 인류 시청자들이었지만.
“아, 그래. 동족이 마음에 걸리면 관리자가 되어서 다시 살리셈! 상시 관리자가 되면 그 정도는 가능함! 아니 지금보다도 더 종족 단계를 높여서, 중급. 더 나아가 상급으로도 바꿔 줄 수 있음!”
-어…….
-뭐야 뭔가 손이 말하는 게, 우리랑도 관련 있어 보이는데?
-버튼 누르면 설마 우리 다 타오르는 거야? ㄷㄷㄷ
-인류 불사르고 성지한이 신이 되는 거임…….
관리자의 손이 급하게 떠들자, 상황을 대강 파악하는 시청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말이 돼? 버튼 눌렀다고 우리가 타오르겠음? ㅋㅋㅋㅋ
-ㄹㅇ 저기 어느 별인지도 모르는 동네잖아…… 거리가 얼만데?
-근데 그러기엔 무신도, 관리자의 손도 분위기가 심각한데;
-애초에 성지한 채널에선 말이 안 되는 스케일이 매번 튀어나오잖아…… ㅡㅡ;;
-아…… 나 살기 위해 인류를 불태운다? 성지한님이 그럴 사람은 아닐 거 같은데…….
-나라면 누름. 되살릴 수 있대잖아!
-아 ㅅㅂ 성지한이 죽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내가 죽는 거야? ㄹㅇ??
성지한이 패배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인류 전체가 불타오를지도 모르게 되어 버리자 채팅창은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설마 성지한이 버튼을 누를까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자기가 죽게 생겼는데, 거기에 관리자가 되어 살릴 수 있다는데 안 누르겠냐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리고.
“아 진짜…… 본체가 안 누르면, 내가 누름!”
성지한이 왼손으로 이걸 들고만 있자, 성지한의 오른손가락이 저절로 버튼을 향해 움직였다.
관리자의 손이, 제 의지를 듬뿍 담아 행하는 손동작.
하나.
“멈춰라.”
성지한의 뒤로, 어느새 다가온 아소카가 그리 말하자.
스스스스…….
버튼을 향해 나아가던 손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을 돌리는, 아소카의 권능이 발현된 것이다.
[아소카! 잘해 주었다!]
혹시나 버튼을 누를까 초조해 하던 무신이 기쁜 탄성을 터뜨리고.
치이이이익……!
소멸 영역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소카에겐 뒤를 잡혀 버렸고.
무신의 힘이, 다시 성지한을 붙들 것 같은 상황.
-아…… 끝났다…….
-성지한님이 버튼을 누르는 게 나았을까…….
-아니 그래도, 나 죽긴 싫어…….
-죽고 살면 되는 거 아님?
-살려 준단 보장은 있고??
이렇게 마지막 수단도 무산되자.
시청자들은 모두 끝이 다가왔다고 느꼈다.
그때.
“성지한, 넌…… 이런 상황에서도 누르지 않는군.”
“뭐, 그렇게 됐다.”
“왜 그랬는가?”
“손의 말대로, 눌러서 상시 관리자가 되고 나면…….”
성지한은 버튼을 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줄 수도 있는 물건.
지금도 왼손가락을 뻗으면, 당장 세계수부터 불태우겠지.
하지만.
“초월자가 된 내가 가족들을, 인류를 되살렸을까?”
“그렇지 않을 거다. 상시 관리자가 된 너는, 성지한이라는 자아를 초월할 테니. 적색의 관리자가 된 너는, 이번 일을 필멸자 때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여기고 인류를 잊어버릴 거다.”
“그럴 것 같아서 안 눌렀어.”
인류란, 적색의 관리자를 상시 관리자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종족.
그들을 모두 불태워서 상시 관리자가 되면.
인류란 종족이 만들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 되니.
상시 관리자가 된 성지한은, 절대로 그 종족을 살릴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상시 관리자가 되고 나면, 성지한이라는 자아가 유지되지도 못하겠지.
“……하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너는 온전히 너를 유지하고, 인류도 되살리며. 투성을 박살 낼 수도 있었다. 너는, 그런 가능성을 포기한 거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아깝네?”
꾹!
성지한은 왼손으로 세계수 점화 장치의 버튼 아래.
철판을 꽉 눌렀다.
그러자 재빠르게 금이 가더니.
펑……!
세계수 점화 장치가 박살이 나 버렸다.
“미련을 버리기 위해, 부숴 버려야겠군.”
스스스스…….
부서진 세계수 점화 장치에서.
막대한 양의 공허와.
적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성지한의 신체에 닿았다.
[스탯 공허가 150 오릅니다.]
[스탯 적이 50 오릅니다.]
점화 장치에서 기운을 일부만 흡수했는데도, 엄청나게 오르는 능력치.
하나 상시 관리자를 포기하고 얻은 능력이라고 본다면.
이는 보잘것없는 보상이었다.
[하하! 미쳤구나. 정말로 미쳤어……! 동족? 가족? 그따위 것 때문에, 상시 관리자가 되는 걸 포기한단 말이냐?]
무신은 득의에 찬 소리를 내질렀고.
“아…… 미친…… 이딴 게 본체라니…… 하…… 죽자. 그냥.”
적색의 손은 절망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때.
저벅. 저벅.
“……미안하군. 마지막까지 널, 시험했다.”
성지한의 앞으로.
아소카가 걸어 나왔다.
“장치를 부수어, 네 의지를 보여 주었으니.”
스스스스…….
그의 등 뒤로, 붉은 수레바퀴가 떠오르고.
“나도 이에 응당 답하겠다.”
치이이익!
거기에서, 암적색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천수천안千手千眼.”
그리고 곧, 1천에 달하는 그림자 손이.
성지한의 앞을 지키듯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