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46화>
“너한테도?”
“그래.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서, 지구의 좌표를 물어보더군.”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드래곤 로드 이놈, 진짜 못 이길 거 같으니까 종족 동원해서 치졸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네.
“설마 여왕님…… 빚에 허덕여서 알려 주신 건 아니죠?”
“날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나! 그리고 드래곤 로드와의 전투가 꽤 장기전이어서, 적자 폭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도 투자를 받아야 하는 건 변함없지만…….”
“아메리칸 퍼스트가 투자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윤세아의 물음에 그림자여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협상 중이다. 아메리칸 퍼스트에선, 나보고 아예 미국에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
“헐, 미국으로 오라구요?”
“그래. 겉으로는 원활한 방송 협의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다른 속셈이 있어 보였다.”
“자국 내에 성좌를 데려오고 싶나 보네.”
그림자여왕이 이번에 토너먼트 해설을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친숙한 이미지로 변하긴 했지만.
그녀는 힘을 다 회복하지 못했을 뿐, 고위급 성좌였다.
채널 운영권에 투자하는 김에, 성좌까지 자국 내로 데려오려는 게 아메리칸 퍼스트의 노림수인 것 같았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여왕, 얼마 필요한데?”
“오, 설마 투자할 생각인가?”
“어, 어차피 대기길드도 돈 쌓아 두고 있거든.”
그림자여왕도 갈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는 게 좋으니까.
성지한은 대기 길드에 쌓여 있는 GP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럼 나야 고맙지. 사실 네 검 역할을 할 때도 있는데, 미국 가긴 무리다.”
“검 역할이라…… 근데 이제는 이클립스에 네가 없어도, 충분히 화력이 나오던데.”
“……뭐, 네 그림자검은 공허와 너무 밀접해져서 내 영역을 벗어나긴 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그림자권능과도, 궤가 많이 달라졌지.”
“그런가? 그럼 검에 굳이 들어올 필요는 없는 거네?”
성지한의 물음에, 그림자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다. 다만 내가 있고 없고에 따라, 힘의 차이가 10~20% 정도는 날 수 있어.”
“나중에 한번 정확하게 계산해 봐야겠네.”
큰 차이가 없다면, 굳이 성좌 그림자여왕을 검에 묶어 둘 필요는 없겠지.
성지한은 투자 건을 끝내고, 테스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하연 씨, 길드에 자금 많이 남아 있죠?”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하연에게 전화했다.
[아…… 네. GP야 계속 쌓여 있죠!]
“이번에 아메리칸 퍼스트에서 그림자여왕을 미국으로 빼 가려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저희가 여왕에게 투자할까 합니다.”
[아, 근데 여왕님한테 투자하면 패가망신…… 아니었나요?]
“다 들린다.”
[앗, 옆에 있었구나…… 그치만 실적이 너무 안 좋잖아요!]
“괜찮습니다. 제 개인 GP도 반 넣을게요. 이번에 드래곤 놈들이 하도 후원 빵빵하게 해 줘서, 넘치는 게 돈이니까.”
[아, 아니에요, 오너님. 일단 대기 길드 GP로 처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도움을 청할게요. 어차피 쓸 데도 없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죠.”
성지한은 GP가 부족하다면 개인 재산을 넣겠다고 했지만, 이하연은 이를 극구 사양했다.
“음…… 이야기를 들으니 돈을 버리는 분위기군. 내가 투자금을 불려 줄 거란 생각은 왜 안하는 거지?”
“하겠냐? 세계수 엘프한테 끌려가는 건 구해 줄 테니, 중계권 같은 건 다신 사지 마라.”
“…….”
“대답은?”
“아, 알았다.”
성지한의 물음에,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그림자여왕.
‘일단 이건은 해결했고.’
여왕 건은 대기 길드에서 투자하는 거로 처리가 되었지만, 정작 문제는 드래곤들이었다.
세계수 연합에게 무슨 도움을 받았는지,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용족은.
지구 위치를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솔직히 사람들 중에서 1천억 준다고 하면…… 좌표 불 사람 적지 않을 거란 말이지?’
지금이야 사람들이 배틀넷의 행성 좌표를 열람하는 법을 모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행성 좌표가 알려지면, 분명히 돈이 급한 일부 사람들이 저쪽에 좌표를 팔아넘길 수도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용족 건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
‘귀환 방법만 확실하면, 그냥 로드 놈 레어로 쳐들어가는 건데.’
이렇게 원수지간인 거치고는, 아직도 성지한의 후원 성좌인 드래곤 로드.
그에게 자신을 특별 진상하면, 드래곤 로드의 레어로 갈 수 있었지만.
이 방법은 지구로 돌아올 수단이 없기에 지금 써먹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레벨 업 좀 하고 와야겠군…….’
성지한은 드래곤들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하다가, 일단은 레벨을 먼저 챙기기로 했다.
635에 도달한 레벨은 이제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매일 꾸준히 매칭을 돌려줘야 했으니까.
“나 레벨 업 좀 하고 올게.”
“아, 매칭 돌리게? 응, 잘 갔다 와~”
그렇게 게임을 돌린 성지한은.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드래곤 로드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넌 또 왜 나와?”
배틀튜브에 접속하자마자 이그드라실의 메시지까지 받게 되었다.
* * *
게임 시작하자마자, 튀어나온 이그드라실의 메시지.
-요즘 용족이 맨날 후원 메시지 날리더니 이제 이그드라실까지 나오네 ㅡㅡ;
-뭔 난장판이여 진짜…….
-엘프랑 드래곤이랑 쌍으로 ㅈㄹ이네 진짜 ㅋㅋㅋㅋ
-근데 이그드라실은 왜 후원도 안 했는데 글씨 색깔 다르고 후원창처럼 따로 뜸?
-관리자라 그런 듯;
엘프와 드래곤의 조합에 인류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외계의 종족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비호감도 1, 2위를 다투는 두 종족.
하필 저 둘이 엮여서 뭔 짓거리를 하려는 건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흥미로운 제안이 뭔데?”
[드래곤 로드가 용족 행성 22개와 해츨링 1만 마리를 지급하는 대신, 행성 위치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너 지구 어딘지 알어?”
[이그드라실이 관리자 권한으로 위치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지한은 그 말에, 예전에 고엘프가 쳐들어오려고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고엘프는 좌표 잘도 파악해서 쳐들어오려고 했었지.
‘그게 관리자를 뒷배로 둬서 가능한 거였나.’
대성좌랑 관리자.
확실하게 권한 차이가 나는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채팅창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쩔 생각이지?”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자신은 성지한 편이지만, 그래도 저쪽에서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해 왔다고 말합니다.]
“내 편은 무슨. 본론이나 말해라.”
[22년간 성지한이 세계수 엘프 소속이 된다면, 용족의 제안을 바로 거절하겠다고 이그드라실이 말합니다.]
-아 이 징글징글한 것들 ㅡㅡ
-근데 왜 22년이야?
-용족이 행성 22개 준다고 했으니 그거로 가치 판단한 듯.
-행성 1개당 성지한 1년 사는 거야? 가격은 높게 쳐줬다? ㅋㅋㅋㅋㅋ
-이 제안 거절하면 그냥 지구 좌표 알려지는 건가…….
행성 1개당 1년으로 쳐서, 성지한을 세계수 연합으로 끌어들이려는 우주수 이그드라실.
드래곤 꼬장에 이어, 엘프 수장의 협박까지 이어지자 성지한은 표정을 굳혔다.
“싫다면?”
[이그드라실이 그럼 내키지는 않지만 용족의 거래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답합니다.]
“그래…….”
협박할 거리가 나서, 신나셨군그래.
‘드래곤 피하자고 세계수 연합에 들어갈 수야 없지.’
드래곤이야 쳐들어오면 싸울 수라도 있지, 저기는 들어가면 그냥 끝이다.
녹색의 관리자가, 성지한을 성심성의껏, 철저히 관리해 줄 테니까.
한편.
“여기 적이 있다!”
매칭된 게임에선, 성지한의 적팀 플레이어가 그를 찾아 공격하려 했지만.
“아, 지금 좀 바쁘다.”
성지한은 귀찮다는 듯이, 검을 한차례 휘둘렀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촤아아악!
그러자 각양각색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플레이어들이 일거에 쓸려 나갔다.
-챌린저 6에서도 그냥 파리 쫓듯 쓸어버리네;
-드래곤 로드도 족치고 왔는데 이런 애들쯤이야…….
-너무 세게 족쳤음 ㅠㅠ 드래곤 로드 쫄아 가지고 뒤에서 개짓거리만 하잖아.
-ㄹㅇ;; 지금 생각했으면 좀 맞아 줬어야 했음.
-그치만 로드가 약한 걸 어떻게 해 ㅠㅠ
이제 이런 결과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성지한은 횡소천군 한 방에 현재 팀에서 스코어 1등이 되자,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스코어는 벌었으니, 이제 나도 협박을 좀 해야겠군.’
당하고 살 수만은 없지.
성지한은 우주수 이그드라실의 이름을 보았을 때, 생각난 협박 수단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를 열어, 한 물건을 꺼낸 그는.
“이그드라실. 이게 뭔지, 알아보겠냐?”
화면을 향해 이를 흔들었다.
* * *
-뭐지 저건…….
-뭐 대단한 물건 꺼내나 했더니, 그냥 붉은 버튼이네.
-허세를 부리는 건가?
-쯧. 이그드라실 상대로 그런 게 통할 거라 생각하는 건지…….
성지한이 꺼낸 물건은, 하나의 스위치였다.
보랏빛과 적색이 뒤섞인 철판 위에, 불쑥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이 인상적이지만.
그저 그것뿐인 물건.
외계의 시청자들은 처음엔 저런 물건 가지고 뭘 하겠냐고 비웃었지만.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그런 물건이 왜 EX등급을 받았냐며 의아해합니다.]
-EX?
-저딴 버튼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데 그런 등급이 매겨져…….
이그드라실이 아이템 등급을 알아내자, 놀란 반응을 보였다.
“등급은 알아채도, 아이템 정보까진 못 보나 보네?”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배틀튜브로 관측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고 묻습니다.]
“이 많은 시청자들한테 공개하긴 그렇고…… 그래. 아이템 정보, 너한테만 보여 줄 수 있나?”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지한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우주수 이그드라실에게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시겠습니까?]
배틀튜브에 이런 기능도 있었나?
‘상대가 관리자라 이럴 땐 편리하군.’
성지한이 예를 누르자, 그가 들고 있던 아이템의 정보가 고스란히 이그드라실에게 건너갔다.
[세계수 점화 장치]
-아이템 등급 : EX
-버튼을 누를 시, 지구의 세계수에서 성화가 피어오릅니다.
-적색의 손을 지닌 상태에만 활성화되며, 손의 주인에게 성화로 흡수한 힘이 모두 귀속됩니다.
-해당 효과는 거리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해당 아이템은 1회용 아이템입니다.
아레나의 주인이 주었던 아이템, 세계수 점화 장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계수에 성화가 붙어서 전 인류를 다 불태우고.
그 성화의 힘을 성지한이 흡수하여, 적색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그냥 제발 관리자 되라고, 떠먹여 주는 수준.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뭐 이딴 아이템이 있냐며 경악합니다.]
이그드라실이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그드라실은 적색의 관리자가, 자기보다 먼저 올라가는 걸 경계했지.’
상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 세계수 엘프를 가지고 별의별 짓거리를 다 벌이는 이그드라실.
그녀는 그런 와중에, 적색의 관리자가 자기보다 먼저 상시 관리자가 되는 걸 경계했다.
그래서 성지한에게 임시 관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 것도, 이그드라실이었지.
‘그러니 이 세계수 점화 장치는 이그드라실에게, 가장 기겁할 만한 물건이다.’
누구는 상시 관리자 되려고 뼈 빠지게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성지한은 버튼 누르면 적색의 관리자가, 그것도 상시를 넘볼 수 있는 관리자가 될 수 있으니.
이그드라실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내가 원래는, 이런 거 안 누르고 네 말대로 할까 했는데…….”
성지한은 세계수 점화 장치를 들어, 버튼 쪽을 스윽 쓰다듬었다.
“요즘 하도 귀찮게 하는 애들이 많아서 말이야. 이거 급 누르고 싶더라? 특히 우리 우주수께서 협박하셨을 땐. 다 때려치우고 누를까 싶었어.”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침착하라며 당신을 달랩니다.]
[아까 한 말은 그저 농담이었다며, 어떻게 자신이 용족에게 인류의 행성 좌표를 팔아먹겠냐며 자기 못 믿냐고 어필합니다.]
“널 믿어? 내가?”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버튼 옆을 툭툭 두드리다가.
버튼을 손가락으로 스윽 쓸었다.
“우리 사이에 신뢰가 어디 있냐? 아. 그래…… 니가 만약 용족 문제 처리하면, 믿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그러면 정말 버튼 안 누르는 거냐고 묻습니다.]
“어. 쟤들이 안 나대면, 굳이 버튼을 누를 필요야 없지.”
성지한은 그러며 씩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 대신, 쟤들 좀 처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