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30화>
“태양왕께서는 비정하시다.”
“네가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네 종족 모두를 불태울 것이다.”
“하나 태양왕께서는 또한 관대하시다.”
“손을 얌전히 내놓는다면, 너를 기꺼이 용서하실 것이다.”
뭔 헛소리를 이리 길게 하나.
성지한은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총 5명의 상대는 각자 종족이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머리 부분의 맨 끝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과.
[이것은 태양왕의 물건.]
[그분만이 소유할 수 있다.]
[탐하는 자, 삼족을 멸하리.]
얼굴과 몸 전체에, 노예의 낙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글귀는 성지한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죽은 별의 성좌가 이걸 보여 줬었지.’
하나 문구 자체는 동일해도.
이들의 낙인과 죽은 별의 성좌에게 찍힌 낙인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이들의 낙인에는 힘이 느껴진다.’
낙인만 남아 있던 죽은 별의 성좌에 비해, 이들의 문자는 샛노랗게 빛나며 강렬한 불의 마력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활성화 상태인 것 같은 예속의 문구.
그리고.
[‘죽은 별의 성좌’가 1000만 GP를 후원했습니다.]
[뭐야 얘들, 노예 문구가 살아 있네? 이거 태양왕이 힘 넣은 건데…… 머리야! 얘들한테 태양왕 어디서 봤는지 캐내 줘!]
이런 추측은 죽은 별의 성좌가 보낸 후원으로 인해, 사실이 되었다.
“공짜로?”
[‘죽은 별의 성좌’가 1000만 GP를 후원했습니다.]
[당연히 대가가 있지! 내가 태양왕 잡는 거 도와줄게!]
그건 그냥 자기 목적이랑 부합하는 것 같은데.
성지한은 피식 웃으면서, 눈앞의 상대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 태양왕께선 어디 있냐?”
“너 따위가 알아서 무엇하려고 그러느냐.”
“니네한테 손 줬다가 먹고 튀면 어떻게 해. 줘도 직접 줘야지.”
“노예는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
그러면서 태양왕의 노예는 자신의 낙인을 가리켰지만.
“아, 못 믿겠고. 어디 있는지 알려나 줘 봐. 그럼 태양왕 사이즈 보고 드리던가 할게.”
성지한은 귀를 후비면서, 건성으로 대꾸했다.
“건방진……!”
“그분께서 어디 계신지는, 우리도 알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전해 주려고?”
스윽.
성지한의 물음에, 노예 중 한 명이 자신의 머리 위에 타오르는 불길을 가리켰다.
“이리로 물건을 진상하면, 그분께로 갈 것이다.”
“진짜? 신기하네.”
“그러니 얼른 손을…….”
“그것만 있으면 되겠네?”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봉황기를 꺼내 들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용뢰龍雷
창끝에서 붉은 전류가 잠시 일렁이나 싶더니.
번쩍!
전방 다섯 플레이어의 몸이 순식간에 타오르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 뭐지?
-창 꺼내자마자 죽네?
-전기 반짝하긴 했음;
-지금 성지한 님 레벨 8 성좌랑도 싸우는 몸인데, 이런 잡졸들이야 원샷이지 ㅋㅋㅋ
-그래도 태양왕의 부하라고 해서 뭐 좀 있는 줄…….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5명의 부하.
그들이 남긴 건, 머리끝의 불길뿐이었다.
‘까닥 힘 조절을 잘못했으면, 이것도 태워 버릴 뻔했군.’
업그레이드된 적운봉황기가 강력한 건 이미 테스트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힘을 최소로 쓴 용뢰가 이리 강한 출력을 낼 줄이야.
[‘죽은 별의 성좌’가 1000만 GP를 후원했습니다.]
[으아아악, 머리야. 그렇게 죽이면 어떻게 해!! 태양왕 위치 어떻게 알아내려고……! 노예 각인 활성화 된 놈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
“기다려 봐.”
성지한은 죽은 별의 성좌의 메시지에 가볍게 대꾸하며, 저들이 남긴 불길을 모았다.
화르르륵…….
그러자 샛노랗게 불타는 불꽃.
숙주가 사라져서 그런가, 불의 크기는 사람 주먹보다 안 될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이리로 손을 넣으면, 태양왕한테 자동으로 전송된다고 했지.’
성지한은 그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휙.
오른손을 넣었다가 뺐다.
그러자.
화르르륵……!
미약해져 꺼지려던 불길이, 한층 강렬해졌다.
“흠. 딱히 전송된다는 느낌은 없는데.”
성지한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계속 손을 넣었다가 빼자.
[드래곤 로드가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성지한, 설마 태양왕에게 손을 넘길 생각이냐? 경거망동하지 마라. 그는 거래할 상대가 아니다.]
[태양왕이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내게 자비를 구하고 싶다면, 관리자의 손을 계속 넣고 있어라. 지금처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손에 관심이 많은 대성좌 둘이 10억 GP씩을 쏘면서,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했다.
* * *
-와, 대성좌들은 후원 단위가 다르네 ㅋㅋㅋ
-ㄹㅇ 죽은 별의 성좌가 1천만 GP 후원 쏠 때만 해도 엄청 많아 보였는데 ㅋㅋ 백 배 차이 실화냐?
-성지한 GP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달러로 환산하면 인류 최고 부자 수준 되지 않겠어?
-길드로 벌어들이는 액수도 만만치 않으니까…….
대성좌들의 후원 액수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새삼 성지한의 재산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일 즈음.
“야, 드래곤 로드. 너한테 이거 넘겨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성지한은 자신의 손을 흔들면서, 그리 물어보았다.
[드래곤 로드가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나에게 줄 것인가?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널 후원하는 성좌이니, 성좌에게 ‘특별 진상’을 하면 넘길 수 있다.]
“아하, 그래? 간단하네. 봉인됐는데 괜찮겠어?”
성지한의 물음에, 지체없이 올라오는 후원 메시지.
[드래곤 로드가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괜찮다. 손을 넘긴다면, 저번에 한 약속대로 100년간 용족의 통솔 권한과 1경 GP를 주지.]
확실히 안 내놓으면 죽여 버린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태양왕보다는, 드래곤 로드 쪽이 더 협상 파트너로는 좋은 상대였다.
“봉인돼도 조건은 똑같네? 거래할 줄 아는구나.”
스윽.
그러며 태양왕의 불에다가 손을 넣었다 뺀 성지한은.
“하지만 내가 아레나의 토너먼트에서 얻어 갈 게 있어서. 바로는 못 주겠다 야.”
드래곤 로드에게 최종적으로, 손을 넘기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진상을 안 하겠다는 건가…… 이거, 결국 드래곤 로드를 농락한 거 아닌가?
-일개 플레이어가 대성좌한테 무슨 객기를 부리는지 모르겠군…….
-이러다가 용족 동원하면 어쩌려고?
외계의 시청자들은 이런 성지한의 대응을 보며, 처음엔 간이 부었다고 평가했지만.
“야, 그래도 태양왕이 진짜 지구로 쳐들어오면, 너한테 바로 넘겨줄게. 침략자 좋은 일은 시켜 주고 싶지 않으니까.”
성지한이 추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그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자기네 행성 쳐들어오면, 반대편에 넘기겠다고 하는 거군.
-언제든지 나는 너의 경쟁자에게 넘길 수 있다…… 이걸 보여 주는 건가?
-에이…… 근데 설마 진짜 넘길까?
-저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름.
외계의 시청자들이 성지한이 진짜 줄까, 안 줄까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태양왕이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허, 감히 나를 능멸하느냐? 이런다고 내가 침공하지 않을 것 같나?]
태양왕 쪽에서도 후원이 터져 나왔다.
대성좌들이 메시지를 보내니까, 오늘 무슨 특별 수금하는 날이네.
“그럼 와 보시든가. 뭐, 내가 너 같으면 굳이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느니, 그냥 날 챌린저 리그 5까지 올리도록 도와줄 거 같다만.”
성지한이 그렇게 챌린저 리그 5를 거론하자, 외계의 시청자들은 이에 주목했다.
-챌린저 5는 왜?
-그거야 뭐 안 도와줘도 금방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저 괴물을 누가 막음?
“챌린저 5가 되면, 대성좌들도 토너먼트에 참여 가능합니다. 거기서 저한테 이기고 가져가면 되죠.”
[태양왕이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하나 네가 그 전 토너먼트에서 패배하겠지.]
“그게 싫으면 빨리 리그 5로 올려 주든가.”
성지한은 태양왕의 후원 메시지를 가볍게 받았다.
-성지한 속도 정도면, 챌린저 5도 금방 될 거 같은데…….
-이다음 토너먼트는 아니더라도, 다다음 토너먼트에선 가능하지 않을까?
-솔직히 저쪽 행성 갈 시간에 토너먼트 준비해서 나가는 게 더 현실적이겠네
-근데 성지한은 진짜 대성좌랑 토너먼트에서 싸울 생각인가? 제정신임?
-나 같으면 드래곤 로드한테 진작 넘겼다.
-ㄹㅇ 1경 못 참지 ㅋㅋㅋ
챌린저 리그 -5.
원래는 최상위의 리그로, 그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단계였지만.
성지한 정도의 초월적 괴물이면, 이 정도는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가 챌린저 5가 되면, 토너먼트에서 대성좌랑 싸운다는 건데.
이를 피하려고 하진 못할망정, 빨리 챌린저 5로 만들어 달라고 역으로 제안하다니.
대체 이 인간은, 무슨 생각인 걸까?
외계의 시청자들은, 설마 성지한이 임시 관리자를 노릴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의문만 품고 있었다.
그때.
[드래곤 로드가 10억 GP를 후원했습니다.]
[좋다. 네가 리그 5로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지. 기대하라.]
드래곤 로드가 먼저 성지한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이쪽이 대화는 잘 통하는군.
성지한이 그렇게 한참 채팅창과, 메시지들을 보면서 조율을 해 나갈 때쯤.
“저…… 지금. 저희 팀이 밀리고 있습니다만.”
“참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벅. 저벅.
그의 옆으로, 외눈박이 거인 플레이어 둘이 다가왔다.
“아까 다섯 죽였는데요.”
“그래도, 그쪽이 저희 팀 에이스이신데 아무 움직임이 없으시니…….”
“이대로면 전장에서 밀립니다. 전진하셔야 합니다.”
챌린저의 인베이드 게임, ‘대전장’.
100 대 100으로 난장판이 되어 싸우는 이 맵에서, 성지한이 속한 팀은 상대에 비해 전반적인 전력이 열세였다.
대신 이 힘의 추를 보완해 주는 게 바로 리그를 초월한 플레이어, 성지한이었는데.
그가 초반에 다섯만 잡고, 계속 대성좌랑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으니 승리의 추가 저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서바이벌이 이래서 편한데 말이지.’
인베이드나 디펜스나.
팀원이 있는 게임 형식은 이래서 성가시단 말이지.
“잠시만요.”
성지한은 채팅창에서 시선을 떼곤, 하늘 위로 올라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한참 치열하게 다투는, 챌린저 리그 5의 현장.
그는 거기서, 곧 상대의 핵심 전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애들 정리되면 할 만하겠습니까?”
“저쪽…….”
“예, 저기가 상대 팀의 핵심입니다.”
성지한이 가리킨 것은,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상대 팀 부대.
각양각색의 종족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군을 손쉽게 요리하고 있었다.
저들만 사라져도, 밀리던 게임은 다시 균형점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럼 일단 저거만 잡죠.”
스윽.
성지한은 그리 말하며, 봉황기를 하늘로 던졌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천룡뇌화天龍雷火
창이 사라지자, 곧 붉게 물드는 하늘.
그 안에서, 빛이 바닥으로 내리치자.
30명의 챌린저 8 플레이어들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두가 적광에 잠겨 사라졌다.
예전에는 하늘에서 불줄기가 쏟아져 내렸다면.
이제는 붉은빛이 모든 걸 소멸시키고 있었다.
“어…….”
“저, 저기…… 저, 저희 팀도 다, 전사했습니다만…….”
“아, 이거 미안합니다. 다 쓸어버렸네.”
힘 조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적운봉황기가 스탯 적을 뻥튀기하는 성능이,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았다.
“이러면 저희랑 저쪽 전력 차, 어떻게 됩니까?”
“그, 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금 있다 다시 전투 참여할게요. 먼저 가 보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성지한이 손가락으로 전장을 가리키자, 황급히 떠나는 외눈 거인들.
성지한은 그런 팀원을 잠시 지켜보다가, 바닥에 남겨 두었던 불길로 시선을 돌렸다.
숙주가 없어져, 거의 꺼져 가는 태양왕 노예의 불꽃.
그는 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태양왕. 너도 나 후원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