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26화>
스으윽.
성지한은 약속대로 적멸을 쓰기 위해서 아소카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꼭 그에게 적멸을 써야겠음?]
‘왜.’
레이저를 쏴야 할 관리자의 손이, 바로 명을 듣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음. 그가 우리의 대업을 망칠 거 같음.]
우리의 ‘대업’이라면, 적색의 관리자가 되는 걸 말하는 건가.
그게 망하면 나야 좋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관리자의 손에게 명령했다.
‘괜찮아. 내 감은 괜찮댔다. 걍 쏴.’
[하지만…….]
‘말 들어라.’
[후회할 거임. 분명.]
적색의 손은 그리 말하면서도, 결국 힘을 한 곳으로 모았다.
적색권능赤色權能
적멸赤滅
지이이잉……!
붉은빛이 전방으로 터져 나가고, 강렬한 빛줄기가 순식간에 아소카를 뒤덮었다.
피티아도 길가메시를 방패로 삼아서, 겨우 막아 냈던 강력한 일격.
적멸은 태극마검을 제외하곤, 성지한이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수단이었지만.
“적의 힘, 잘 응축시켰군.”
아소카는 평온한 얼굴로 붉은빛의 공격을 한 손으로 받아 냈다.
-아니, 뭐임?
-같은 8레벨 성좌인데 이브랑은 하늘과 땅 차이네 ㄷㄷ
-싯다르타 더 검색해 봐야 하나?
-이미 해 봤는데 별로 나오는 게 없음 ㅡㅡ
적멸을 너무 손쉽게 막아 낸 아소카에 대해, 사람들이 또다시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본격적으로, 살펴보겠네.”
스스스스…….
아소카의 뒤로, 두개골로 만들어진 수레바퀴.
금륜적보가 떠올랐다.
“천수천안千手千眼.”
번뜩.
수레바퀴 속, 두개골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고.
치이이익!
붉은 수레바퀴에서, 암적색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총 1천 개에 달하는, 그림자줄기는.
어느 정도 확장한다 싶더니, 일제히 적멸을 향해 퍼졌다.
그리고.
‘손…….’
파직!
일천 그림자는 모두 손 모양으로 변하여, 일제히 적멸의 빛줄기를 붙잡았다.
‘이거, 완전히 봉쇄당했군. 적멸의 힘이 샅샅이 분해되는 느낌이야.’
뭔 놈의 레벨 8이 이렇게 세냐?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관리자의 손은 더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미친……! 내가 뭐랬음! 불길하다 했잖슴!]
“아냐. 아직 힘 다 안 썼잖아? 더 써. 적.”
[알겠음. 능력 더 끌어내겠음!]
파파팟!
그림자에 잡혔던 적멸에서, 다시금 기운이 치솟고.
1천 개 중 일부가 여기서 떨어져나가자.
“아직 여유가 남아 있었나. 힘을 다 써야 할 걸세.”
아소카는 성지한에게 충고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번뜩!
일천 그림자에서 일제히,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그림자를 밝히는 듯하면서도, 서로 기묘하게 공존하는 빛의 구체는.
‘저거 어째, 신안이랑 비슷하게 생겼군.’
피티아나, 성지아가 소환하던 신안과 흡사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구체가 떠오르자.
파스스스……!
강화되었던 적멸은, 아까 보다도 훨씬 빠르게 분해되고 있었다.
-뭐 저리 세 저 성좌;
-천수천안은…… 관세음보살 뜻하는 거 아니었음?
-불교 관련된 건 맞나 봐, 저 사람?
-아니 근데 관세음보살 거라기엔 너무 불길하게 생겼는데 ㅡㅡ
-ㄹㅇ 그림자 저거 악마의 손 같음.
관세음보살의 것이라기엔, 너무나도 불길하게 생긴 천수천안.
하나 그것의 위력은 확실했다.
전력을 다한 적멸도, 그를 뚫지 못했으니까.
‘저 권능에, 나름 대처법을 찾아야겠는데.’
시간을 돌리는 건, 이쪽에서도 회광반조를 사용하는 것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천수천안은 또 달랐다.
일천 개의 팔과 눈은, 적멸을 대번에 분해하여 분석할 정도로 강력했으니.
만약 그와 싸우는 상황이라도 온다면, 저걸 이겨 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본체! 이 자는 적의 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음……! 다른 형식의 힘. 공허, 공허를 사용해야 함!]
‘언젠 공허 견제하더니.’
[지금은 그렇게 여유부릴 때가 아님!]
그렇긴 하지.
스스스…….
성지한은 얼굴에서, 공허의 힘을 끌어올렸다.
아소카가 그렇게 적대적인 성좌는 아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순 없었으니까.
그때.
[천수를 공허의 검으로 베게. 내가 자네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성지한의 머릿속에, 아소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술을 조금도 달싹거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뜻을 전달하는 상대.
‘……적의는, 확실히 없어 보이는군.’
슈우우우…….
성지한은 암검 이클립스를 피워 올려, 그 안에 공허의 기운을 담았다.
그리고 가볍게 일검을 휘두르자.
촤아아악!
적멸을 가볍게 제압하던 천수의 그림자가, 대번에 베였다.
“대처 방법을 금방 찾았군…….”
그러자 안타까운 듯 나직이 탄식하는 아소카.
자기가 가르쳐 줘 놓고는, 연기도 수준급이었다.
“하나, 나에게도 수가 있다.”
쿠르르르…….
금륜적보가 돌아가자, 곧.
시간이 멈추었다.
공허를 담고 있는 암검도.
적멸을 뿜어내고 있는 오른손도, 모두 움직임이 멈춘 채.
저벅. 저벅.
아소카만 멀쩡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평온한 마음으로 있게. 그러며 회광반조를…….]
그러면서 뇌릿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소카의 목소리.
이번에도 아까처럼, 자신이 이를 파훼할 힌트를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스…….
“이렇게, 저항이 가능하군.”
성지한은 아소카가 방법을 알려 주기 전에, 먼저 시간을 다루는 권능에 저항했다.
그 방법이야, 그저 회광반조를 같이 사용했을 뿐이었지만.
드륵.
그로 인해 금륜적보의 움직임이 멈추고.
파스스……!
황금 두개골 하나의 색이 붉은빛으로 바래졌다.
-뭐지? 랙 걸린 것도 아니고, 갑자기 휘리릭 하면서 진행되네.
-뭔가 화면이 일시정지된 거 같았는데…….
-오, 설마 이거 시간 돌리기 쓴 거였나?
-성지한 역시 대책이 있었네!
멈췄던 채팅창에서도, 순식간에 올라오는 채팅.
아소카는 살짝 놀란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저번에 재능이 애매하다고 이야기한 것, 사과하지.]
예전에 태극마검 완성하지 못해서, 한참 뭐라 하더니.
가르쳐 주기도 전에 회광반조로 시간역행을 이겨 내는 거 보고 생각이 바뀌었나.
아소카는 그렇게 머릿속으로는 뜻을 보내면서도.
“손의 회수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 주인, 두 번째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입으론 무신의 종으로서 충실한 태도를 내보였다.
“두 번째 명?”
“그 손을, 봉인하겠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르르륵!
금륜적보가 두 바퀴를 돌았다.
그러자, 멈춰 버린 시간.
성지한은 아까처럼 회광반조를 사용했지만.
‘이건…… 아까처럼 바로 대응이 안 되는군.’
금륜적보의 힘을 더 사용한 건지, 성지한은 몸의 제어권을 바로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스스……
그가 잠깐 멈춰 있는 사이, 어느덧 지척으로 다가온 아소카는.
“좀 자거라.”
툭.
손가락으로, 성지한의 손등에 있는 붉은 눈을 찔렀다.
[네가 뭐라고……! 아니. 뭐, 뭐임. 이거. 왜?]
스스스…….
처음엔 저항하나 싶더니, 금방 축소되는 적색의 눈.
눈이라기보다는, 점처럼 보일 정도로 크기가 작아지고 나서야 축소는 끝났다.
“음……!”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제어권을 찾은 성지한은, 순식간에 봉인된 적색의 손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린 건 동방삭 이후로 간만인데.
거기에 관리자의 손은, 뭐 이렇게 쉽게 봉인되고 있어.
‘……상대는, 공허에 약했지.’
성지한은 수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허의 기운을 더욱 끌어올리려 했다.
하나.
“그러지 말게. 공허의 기운을 더 끌어올렸다간, 이야기할 시간이 줄어드니.”
“이야기를…… 하자고?”
“그래. 자네와 나, 직접 만날 기회는 별로 없으니.”
그러면서, 아소카는 두 손 모아 합장을 했다.
그러자.
쿠르르르!
경기장 바닥에서 거대한 손이 올라오더니, 두 사람의 모습을 외부에서 가리듯 감쌌다.
“이건…….”
“시간을 멈추어도, 관리자들은 우리를 관측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준비했네.”
이 손바닥 안에 있으면, 관리자도 여길 못 본다는 건가?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성지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아소카를 바라볼 때.
“이제 준비는 다 되었으니. 이야기를 하지.”
그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편안히 앉았다.
* * *
“……뭔 이야길 하자는 거지?”
“적멸을 분석해 보았네. 자네는…… 합일에 전혀 욕심을 내지 않았더군.”
“합일이라면.”
“적색의 관리자가 되는 걸 말하네.”
성지한의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도 인류 종 자체가 적색의 관리자라는 걸 알고 있었나?
한데.
“적멸을 분석한다고,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나는 알 수 있지.”
“거참 잘나셨군.”
“칭찬 고맙네.”
여유롭기 짝이 없는 아소카를 보면서, 성지한은 봉인지의 아소카를 떠올렸다.
그는 참 예의가 발랐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면.’
그 아소카가, 자신에게 준 물건이 있었다.
금각禁覺이 새겨진, 금륜의 조각.
성지한은 인벤토리 안에서 이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건…….”
“봉인지에서 만난 네가 나에게 준 물건이다. 미래의 자신에게, 금각의 맹세를 잊지 말라 전하라더군.”
“금각…… 억겁의 세월 속, 그 맹세는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네.”
“그래?”
“맹세를 잊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 싯다르타가 붓다가 되었을 테고…… 제자 사리푸트라의 자리를 대신했겠지.”
성지한은 진지하게 말하는 아소카를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자기가 뭐라고 깨닫기만 하면 부처 자리를 대신한대.
“하…… 넌 내가 불교 신자가 아닌 걸 감사해라.”
“후후. 그거 아쉽군. 그 안에는 참으로 좋은 말씀이 많은데 말이지.”
아소카는 그 말을 듣고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이 웃었다.
그러더니.
“잠깐, 그 물건을 건네주겠는가.”
“왜?”
“과거의 내가 한 것이라 엉성하군. 좀 더 완성시켜 주겠네.”
업그레이드는 환영이지.
성지한은 아소카에게 금각이 새겨진 금륜 조각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지이이잉…….
금륜조각은 작은 황금의 바퀴로 변했다.
“이제,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네. 자네 정도면, 하루 전까지는 가능할 거야.”
“……이걸로?”
“그래. 위험할 때 이걸 부수면 되네.”
시간을 하루 전으로 돌리는 기물을, 이렇게 손쉽게 뚝딱 만들어 내다니.
성지한은 아소카가 보이는 놀라운 권능을 보며 생각했다.
‘깨닫기만 했다면 부처 사리푸트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던 게 허풍만은 아닌 건가…….’
그랬다면, 부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되었겠군.
성지한은 완성된 금륜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소카에게 질문했다.
“당신…… 아쉽지 않나?”
“뭐가 말인가.”
“부처가 안 된 거.”
“전혀.”
스윽.
아소카는 성지한에게 금륜을 넘겨주면서, 진지한 눈으로 물어보았다.
“그런 자네야말로 아쉽지 않나?”
“나? 난 그런 거 없는데.”
“그런 게 없다니. ‘적색의 관리자’ 자리가 있지 않은가.”
“아, 그거.”
합일에 왜 욕심내지 않느냐고 하더니, 또 물어보네 이 주제로.
손도 봉인되었겠다.
성지한은 본심을 털어놓았다.
“60억 인류를 다 태워야 관리자가 되는데, 그걸 미쳤다고 하겠어?”
“관리자가 되면, 태웠던 인류를 다시 살릴 수 있어도?”
“오…… 그래?”
관리자가 대단하다고 하더니, 그런 것도 가능했어?
“관리자의 권능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소멸했던 이들의 신체정보를 가져와, 똑같이 복제할 수 있네.”
“복제라…… 그럼 원래 사람과 완전히 똑같진 않은 거 아닌가?”
“본인이 아니고, 타자의 시선에서야 똑같은 거나 다름없지.”
그거야 그렇지만.
성지한은 생각했다.
‘누군가가 날 죽이고, 그런 과정으로 다시 날 복제해서 살리면…… 그게 진짜 나라고 할 수 있겠나.’
남들이 보기에야 복제인간이 원래랑 똑같으면 그러려니 할지 모르지만.
죽는 입장에서는, 목숨은 하나다.
자신의 여분 복제인간이 있든 없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그렇게 살리는 거면 안 해.”
“그런가…….”
“그래. 남들은, 뭐 그렇다 쳐도. 내 가족이 그렇게 죽었다가 부활하는 꼴은 못 보겠거든.”
“결국은, 가족 때문인가? 관리자를 포기하는 이유가?”
“뭐 그렇게 되는군…… 왜. 문제 있나?”
아소카는 즐거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문제없다. 자네야말로…… 내가 기다려 온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