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24화>
“뭐,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끝났어?”
그림자여왕은 당황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레벨 8 성좌끼리 싸우는 이번 토너먼트에서, 아소카가 맞상대할 적은 거대한 바위였다.
멀리서 둘을 잡은 화면에서는, 아소카의 모습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엔, 압도적 크기 차이가 났다.
그냥 보이는 대로 승패를 가늠하면, 모두가 바위 쪽에 한 표를 던질 느낌이었다.
그런데, 빛이 한 번 번쩍하니 바위가 사라지다니.
“분, 분명 상대는 불의 반정령. 마그마돈이었는데……!”
그림자여왕은 경기를 앞으로 되돌리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탄했다.
“뭐냐, 그 공룡 같은 이름은.”
“공룡? 이름 가지고 얕보면 안 된다. 그는 불과 땅 속성의 힘을 동시에 지닌, 군림 성좌. 이번 토너먼트 우승자 예측 순위 중, TOP 20 안에 들어가는 강자다!”
“그런 놈이 왜 한 방에 사라졌어?”
“나도 알고 싶다! 인류가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질 게임을 아소카가 이렇게 끝내면 안 되는데…….”
평소 여왕으로서 군림자의 면모를 지키던 그녀는, 상당히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뭔가 너, 좀 절박한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아레나에서 이번 토너먼트 중계권 샀거든.”
“중계권?”
성지한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그림자여왕을 바라보았다.
아레나에서 그런 것도 팔았어?
“그래. 배틀튜브에서 광고 수익 정산받으려면 중계권 가져와야 하거든. 아레나에 협상에 협상을 거듭해서, 최대한 할인받고 가져왔는데…… 이렇게 경기가 진행되면 파산이야!”
“나는 배틀튜브 틀면서 그런 거 사 본 기억이 없는데.”
“넌 직접 플레이어로 참여했잖느냐. 참여자에게는 다들 권리가 있다.”
“아하, 넌 중계만 하니까 그런 거 없고?”
“그렇지…… 아, 이러다 망하겠다. 시청자들 다 떨어지겠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응?”
아소카의 빛 번쩍 승리 때문에, 절망에 빠져 있던 그림자여왕은.
경기가 중계되는 메인 화면에서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화들짝 크게 떴다.
“뭐, 뭐야? 시청자가 언제 이렇게 늘었지…… 아까 분명 30만도 안 됐는데…….”
아소카 나올 때만 해도, 30만이던 동시 시청자 숫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500만을 돌파해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오, 여기서 성지한 님 나옴.
-초심자의 아레나 끝나고 딴 거 뭐 하나 배틀튜브 뒤지고 있는데 이런 걸 다 보네 ㅎㅎ
-성지한이 해설자라니 ㅋㅋㅋㅋ 이건 봐야지 ㅋㅋㅋ
-와, 성지한 얼굴 비쳤다고 순식간에 30만이 500만 된 거 실화냐??
-500만으로 끝나겠음? 지금 유입 미친 듯이 되는데 ㄷㄷㄷ
성지한이 등장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시청자 유입이 폭증한 여왕의 채널.
이게 배틀튜브가 아니라 지구 통신망으로 하는 방송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서버가 터졌겠지.
그림자여왕은 성지한의 파괴력에 대해 실감하며, 그를 잘 데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근데 해설할 경기가 끝나버렸는데요?
-그럼 이대로 끝임?
-얼굴만 비추고 끝나면 좀 섭섭한데…….
-토크쇼라도 진행하시죠 성지한 님 모셔왔는데.
-ㄹㅇㅋㅋ
정작 해설해야 할 경기가 맥없이 끝나버리니, 할 컨텐츠가 없었다.
“음…… 어때. 토크쇼라도 할까?”
이 어두컴컴한 그림자 안에서, 뭔 토크쇼야.
성지한은 고개를 저으며, 메인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토크쇼까지 할 시간적 여유는 없고요. 아소카 경기나 좀 돌려보면서 복기할까 합니다만 괜찮으실까요? 다음 경기 보는 대신 말이죠.”
-좋아요 ㄱㄱㄱ
-우주 괴물들 싸움보다는 인간 성좌 보는 게 낫지 ㅋㅋㅋ
-솔까 죄다 불만 지르고 있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음.
적색의 손을 노리는 성좌들이 토너먼트에 참여해서 그런지, 참여한 이들은 대다수가 불 속성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권능이 발현될 때면, 경기장 전체가 죄다 불타기만 해서.
시청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전혀 흥미가 가질 않았다.
“성좌들의 대결을 그런 식으로 폄하하다니…… 보는 눈이 아직 멀었구나.”
“불만 타오르는데 그럼 재밌겠냐.”
“너라면 저 거대한 불길 속에서, 성좌들이 치열하게 힘겨루기하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나는 볼 수 있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긴 힘들지. 왜. 뒷경기 중계 욕심 있어? 그럼 난 가고.”
“으, 으흠! 누가 그랬댔나. 같이 보도록 하자. 오늘은 아소카 특집이다.”
그림자여왕은 성지한을 황급히 붙잡았다.
중계권료 본전은 뽑아야지.
“자, 그럼 경기 시작 시점으로 돌아가, 멈춰 보자.”
휘리리릭.
메인화면 영상이 뒤로 돌아가고.
아소카와 마그마돈의 대치 화면이 나타났다.
흰 얼굴에, 긴 흑발을 늘어뜨린 남자.
고개를 들어 불타는 바위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와…… 근데 아소카왕 존잘이네 ㄷㄷ
-근데 이 사람 얼굴 왜케 하얌? 인도 사람 아님?
-인도 사람 중에도 하얀 사람 많어 ㅡㅡ;
-이브에 외모로 안 밀린다 야.
-길가메시만 중년 아저씨네 ㅋㅋㅋ
아소카의 외모가 워낙 인상적이었는지, 그렇게 한참 품평회가 벌어질 무렵.
슬로우 카메라로 대결 영상이 천천히 재생되었다.
둘이 대치하고, 아소카의 몸에서 빛이 번쩍이려고 할 때.
“이거 느리게 해 봐. 최대한.”
“알았다.”
성지한의 지시에 따라, 그림자여왕은 영상 재생 속도를 가장 느리게 바꾸었다.
그러자.
스스스…….
아소카의 등 뒤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낸 금륜적보.
-뭐야 저 해골 수레바퀴는?
-가장 느리게 재생한 게 아니었으면 못 봤겠네 이거.
-저건 얼굴이랑 너무 안 어울린다 ㅠㅠㅠㅠ 신성한 외모인데 ㅠㅠ
시청자들은 살벌하게 생긴 황금 두개골 수레바퀴를 보고는 이미지랑 안 어울린다고 품평했지만.
드륵.
그것이 살짝 돌아가자, 찬란한 빛이 번졌다.
“최대한 어둡게 해 봐. 빛 속에서 마그마돈 어떻게 죽었나 좀 보게.”
“알았다.”
성지한의 말에 그림자여왕이 충실하게 따라서, 화면을 가장 어둡게 설정하자.
거대한 불 바위, 마그마돈의 크기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더니.
최종적으론 돌멩이와 불로 나뉘어 사라졌다.
“음…… 저건 반정령이 되기 전의 모습 같군.”
“그래?”
“그렇다. 마그마돈의 출신 종족, 불의 반정령이 형성되기 전엔 저런 모습을 띤다고 하는군. 예전에 잠 안 와서 본 다큐멘터리에서 그러더군.”
배틀튜브로 교양 좀 쌓았네.
“그러면 저게, 태어났을 때 모습으로 봐도 되는 건가?”
“뭐, 그 다큐멘터리가 맞다면?”
성지한은 그 말에 아소카가 어떤 수를 썼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시간역행으로 상대 신체의 시간을 돌린 건가.’
그림자여왕 말이 맞다면, 저 모습은 인간으로 따지면 갓난아기로 되돌린 격이었으니.
아소카는 시간을 다루는 힘을 이용해서, 상대를 탄생 때로 되돌린 것 같았다.
‘그가 토너먼트를 별로 걱정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군.’
수레바퀴 살짝 돌리면, 상대가 다 저렇게 태초의 때로 변해 사라져 버리니.
상대가 누가 나오던 걱정이 되겠나.
“수레바퀴 조금 돌리면, 아기 때로 돌아가게 만들다니. 이거 완전 밸런스 파괴네요.”
“네 입에서 밸런스 이야기를 듣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게임 밸런스 파괴 플레이어론, 자기가 압도적인 원탑이면서.
그림자여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ㄹㅇ 이 토너먼트 애초에 성좌도 아닌 성지한과 싸우려고 레벨 8 성좌끼리 모인 거잖아 ㅋㅋㅋ
-그래도 지한 님이 저리 말할 정도면 세긴 한가 봐요, 아소카가.
-인류에 이렇게 인재가 많았나? ㅎㅎ
-근데 아소카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임……?
-인도에선 유명한 왕인데 그 정도 급은 아닌 거 같은데.
성지한은 아소카에 대해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분명.
[아소카? 그게 제 이름입니까?]
구궁팔괘도의 두 번째 봉인에서 만난 아소카는, 성지한에게 그리 반문했지.
‘그의 진짜 이름이 아소카가 아닌 건 분명해.’
아소카가 아니면 뭐지.
아무래도 이번 토너먼트는 그가 올라올 게 확실시되니, 그를 만나기 전에 정보 좀 얻으면 좋을 거 같은데.
‘인도 쪽은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추리를 못 하겠네.’
그렇게 아소카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던 성지한의 눈에, 채팅창이 들어왔다.
아, 그래.
혼자서 못 맞출 거면.
“여러분. 집단지성으로 한번 추리해 볼까요.”
벌써 천만까지 유입된, 시청자들의 머리를 빌리면 되지.
* * *
“일단 제가 확신하는데, 아소카는 아소카가 아닙니다.”
성지한은 아소카가 금륜적보를 띄운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어 두었다.
“그게 뭔 소리야?”
“저건 표면적인 이름이고, 진짜 정체는 따로 있어. 그래. 피티아처럼.”
“아하…… 근데 누군지 모르겠으니 추리 같이하자는 건가?”
“어, 인도 쪽은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거든.”
-오…… 1초 만에 끝난 아소카 경기로 이렇게까지 컨텐츠를 이어 가네 ㅋㅋㅋㅋ
-ㄹㅇ 여왕 채널 성지한 혼자 다 살림 ㅋㅋㅋㅋ
-아소카의 정체라…… 힌트 없나요?
“힌트라면…… 아소카 왕보단 전대의 사람인 거 같네요. 인도 출신은 맞는 거 같고요.”
성지한의 말에, 본격적으로 추리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아소카 이전에 인도 사람이면 누구 있음?
-아소카랑 동급의 군림 성좌는 길가메시와 피티아…… 아담과 이브라고도 비유됐지.
-그리고 포스로 보면 그 둘보다 훨 세 보이긴 해 ㅋㅋㅋㅋ
-그럼 웬만한 위인들 가지곤 비비지도 못하겠는데…… 힌두교 신급이나 신화속 영웅이면 되려나?
-그럼 라마? 크리슈나?
그렇게 힌두교 속의 영웅 이름이 튀어나오다가.
-아…… 설마 부처님 아니야?
-저기요 선 넘지 마시죠 ㅡㅡ 부처님이 무슨 저런 불길한 황금 해골을 띄워요.
-ㄹㅇ 불교신자로서 불쾌합니다.
-뭐 어때 아담과 이브도 나왔는데 추리는 할 수 있는 거지.
-부처는 너무 나갔고. 전륜성왕 아닐까?
-아미타불? 미륵?
-에라이 그냥 신들 다 꺼내라 그냥 ㅋㅋㅋㅋ
급기야는 불교의 창시자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브도 나온 마당에, 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성지한은 일단 그렇게 드러난 이름들을 죄다 저장해 두었다.
“확실히 집단지성이 좋네요. 이렇게 검토해 볼 이름 리스트가 많아졌으니.”
“음……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이러다가 인도의 신 이름 다 나올 기세인데.”
“뭐, 그건 그렇다만…… 여기서 하나는 걸리지 않을까?”
“근데 물어본다고 과연 본인이 알려 주긴 해?”
스으윽.
그러며 그림자여왕은 메인화면에 손가락을 향했다.
아소카 이름찾기 때문에 시간을 좀 보내서 그런지, 어느덧 128강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도.
-어, 벌써 끝났어.
-실시간으로 보니까 ㄹㅇ 1초네 ㅋㅋㅋㅋ
-번쩍! 하더니 게임 종료 뭐임 진짜 ㅡㅡ;
-성지한이 밸런스 파괴라고 한 게 이해될 거 같아…….
아소카는 빛 한번 번쩍이더니 상대의 시간을 탄생의 때로 되돌리고 있었다.
“저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데.”
“흠…….”
과연, 이름 리스트 쫙 띄우고 물어본다고 대답을 들을 거 같지는 않군.
후보군을 최대한 추려서, 물어봤을 때 조금이라도 동요하는지 알아봐야겠는데.
성지한은 사람들이 추리한 이름을 쭉 둘러보다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동방삭은 구세제민救世濟民. 아소카는 금각禁覺의 맹세를 했지…….’
[금각禁覺이라. 깨닫지 않겠다는 건가.]
[당신을 이 일에 끌어들였는데, 저 혼자 떠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동방삭과 아소카 간에는, 그러한 대화가 오갔었다.
여기서 깨달음은 아무래도 불교 쪽에 더 가까운 용어 아닌가?
‘……좋아. 그럼 그쪽으로 간다.’
성지한은 집단지성으로 얻어 낸 수많은 이름 중, 찔러볼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며칠간 진행된 토너먼트에서.
[플레이어 ‘아소카’가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우승한 이는, 아소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