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414화 (414/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414화>

성지한이 이번에는 태극에 잠길 것이라 확신했던 무신은.

전투가 마무리된 걸 보면서, 두 눈을 번뜩였다.

혹시나 그가 이기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금륜적보를 돌리려 했건만.

[팔이 확실히 안착했군.]

“……저자, 무모한 선택을 했군요. 인간이 관리자의 팔을 이식하다니.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입니다.”

아소카는 겉으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속은 개운치 않았다.

왜 저런 선택을 했는가.

태극을 운용하는 것만이라면, 저렇게 극단적인 수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설마 열쇠 때문인가?

‘누나…… 라고 했지. 분명.’

혈육의 정에 대의를 저버릴 뻔했군.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아 팔에 잠식당하면 이미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겠지.

‘……이번 세계는 끝이다.’

아소카는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성지한은 혈육을 살리려다 결국 관리자의 팔에 잡아먹히고.

인류는 멸망할 것이며, 이 세상은 과거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게 이번 회차에서의 종말점.

중간 과정은 평소와 많이 달랐지만, 결국 결론은 똑같이 귀결되겠지.

‘아니. 그래도 끝은 다른가. 무신이 황급히 금륜적보를 돌리려 할 테니까.’

무신은 성지한이 이기면 힘을 포기해서라도, 시간을 돌리겠다고 결심을 내보이지 않았나.

그러면 불행 중 다행히, 힘의 축적은 예정보다 느려지겠군.

‘이제 또 다른 후보를 찾아야 하는가.’

성지한은 무한히 돌아가는 이 세계에서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제 다음 회차부터는 무신에게 의해 즉결처분당할 테니.

새로운 인물이 필요할 터.

아소카는,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금방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사실 이번 회차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된 것이었으니까.

한데.

[저 팔을 가져가면…… 나의 숙원도 마무리된다.]

정작 회귀하겠다던 당사자는, 생각이 달라보였다.

“……금륜적보, 안 돌리십니까?”

성지한이 팔을 이식한 후, 그에게서 기대를 접은 아소카는 그리 물었지만.

무신은 두 눈을 번뜩였다.

[잠깐 기다려라.]

지금껏 신중하기 짝이 없었던 무신.

그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금륜적보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성지한의 위험성은 이제 꽤 올라와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도 예측범위 외로 행동했던 그는.

이제 적색의 팔과 공허의 힘까지 더 얻어 버렸으니, 얼마나 더 변수를 만들어 낼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저것을 얻으면 더 이상 회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관리자의 손.

이것의 가치가, 무신을 뒤흔들었다.

‘벌써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무럭무럭 성장하던 힘과 권능도 최근에는 답보 상태였으며.

이는 힘을 더 축적할수록, 심해질 것이 뻔했다.

무신은 인내심이 강한 편이었지만.

‘저것만 얻으면, 이 반복된 삶을 끝내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끝을 낼 수 있다.

이것이 무신에게 주는 울림은, 그의 평소 스탠스를 뒤흔들었다.

차라리 저것이 성지한의 인벤토리에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노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돌려 버렸을 텐데.

번쩍!

무신은, 계속해서 성지한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가 적색에 지배되면. 내가 가질 기회가 올 것이다.’

저 팔을 흡수하면, 모든 게 끝이다.

이 무한히 굴러가는 지긋지긋한 시간이 끝나고.

상시 관리자로서, 새로이 세상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바라왔던, 배틀넷의 최정상에 설 수 있다.

[잠깐 보류하지.]

무신은 결국, 금륜적보를 돌리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팔을, 내가 얻을 때까지.]

신중한 그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 * *

성지한의 갑작스러운 방송 이후.

[북한의 어비스 소멸. 던전 포탈도 같이 사라져.]

[소멸한 어비스의 주인의 정체는……? 성지한의 얼굴과 흡사해]

[인류 멸망 시나리오는 해결된 것인가. 어비스는 사라졌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들.]

[성지한. 배틀튜브 시청자 기록 경신! 자신의 기록을 자신이 갈아치우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이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졌다.

성지한이 맞서 싸운 적이 ,하필 그가 인류 멸망 시나리오 때 마주했던 어비스의 주인이었기에.

안 그래도 주목도가 높았던 성지한 채널은 역대 최고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아…… 기사 속보도 나오는데 삼촌은 왜 안 와?”

윤세아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성지한의 방송은 끝났고, 뉴스는 쏟아지고 있는데.

평양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이면 달려올 성지한은 아직도 귀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지한이는, 수련실에 들어갔겠지.]

“엄마…… 역시 그런가?”

[그래. 관리자의 팔에, 망혼의 힘까지 이식했으니. 여기에 부작용이 나타나진 않는지 테스트를 하고 귀가할 거야.]

“응. 근데 엄마 집에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그러니?]

윤세아는 집으로 자신을 데리고 온, 성지아를 보고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엄마랑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될 줄이야.

“이제 같이 사는 거지?”

[응.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니.]

“응응! 어딜 가, 나랑 살아야지! 근데…… 왜 그렇게 둥둥 떠 있어?”

[그야.]

공허의 기운에 넘실거린 채,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성지아는.

윤세아의 의문에 살짝 내려왔다.

그러자.

콰지지직……!

금세 금이 가는 대리석 바닥.

[내가 좀 무거워서.]

“아, 돌이라서…….”

[응. 거기에 공허도 흐르니까. 집 망가뜨리면 안 되지.]

“삼촌이 얼른 열쇠 가지고 와야겠네.”

[열쇠? 그건…….]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눌 무렵.

삑. 삑삑!

황급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윤세진이 얼른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석상 상태의 성지아를 보자.

“지, 지아야! 돌아왔구나……!”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이리로 달려왔지만.

[윤세진. 다가오지 마.]

스스스…….

윤세진과 성지아 사이로, 보랏빛의 운무가 쳐졌다.

개중에서도 특히.

“엄마. 왜 얼굴을 더 집중적으로 가려…….”

윤세진의 얼굴이 보이는 쪽에는, 더 강력한 보랏빛 안개가 그를 가리고 있었다.

“여, 여보……?”

[후우. 벌써 당신을 볼 줄 몰랐는데.]

“그건…… 무슨 뜻이지?”

[당신 얼굴은,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 때만 볼 거야.]

“이, 이혼……!?”

그 말에 화들짝 놀라는 윤세아.

하나 성지아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래. 여자에 홀려서 딸을 버린 아빠랑 어떻게 같이 살겠니?]

“그. 그건 아빠도 세뇌에 걸려서 그런 건데……!”

[엄마한테 원인은 중요하지 않단다. 결과가 중요하지.]

그렇게 말하는 성지아는.

석상 상태임에도, 두 눈에서 살기마저 느껴졌다.

[나는 많은 세계를 봐 왔단다. 저 인간은 늘 시즈루에게 넘어갔고, 널 버렸지. 너는 여기 이 집에서 쫓겨나, 지한이랑 반지하에서 살다가 언제나 일찍 세상을 떴단다. 윤세진의 딸이어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힘들어했지…….]

“그건…… 지금은 그러지 않았잖아! 그 언젠지도 모를 세계를 본 거 때문에 아빠한테 바로 이혼장 날리는 건 좀…….”

[나도 알아. 그래서 너희 아빠에게 살의를 드러낼 뿐, 죽이진 않잖니.]

스스스…….

이 자리에서는, 성좌로 가장 강한 성지아는.

공허의 기운을 내뿜으려는 것을 애써 참고 있었다.

[지금의 윤세진은 그래도 널 죽음으로 몰아넣진 않았으니까. 네 삼촌 덕에, 정신을 차리고 너에게 최소한의 속죄는 했으니까. 그러니 애써 저 머리통을 부수고 싶은 걸 참고, 이혼만 하려는 거란다.]

“저, 엄마…… 좀 과격해지셨는데요…….”

[과격? 난 정말 많이 참고 있어. 네 삼촌 때문에도 화나 죽겠는데, 저 인간까지 보니까 눈이 뒤집힐 거 같거든.]

“사, 삼촌은 왜.”

[난 괜찮다는데! 누나 말은 무시하고 무릴 하잖아!]

콰드드득.

성지아가 주먹을 움켜쥐자, 보랏빛 돌가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전 재산을 후원해서 하지 좀 말라고 했는데 굳이 팔 이식하고! 얼굴에 금은 또 왜 가게 한 거야? 진짜…… 미쳐 내가! 우리 집안 남자들은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아빠도 집안 남자로 인정해 주는 거야?”

[아, 맞어. 아니지. 이제 아니야 저 인간은.]

성지아가 화를 터뜨리는 걸 보면서, 멍하니 서 있던 윤세진은.

털썩.

보랏빛 운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그때의 일은, 평생토록 사과해도 모자라겠지. 지금도 세아 얼굴을 보면, 그때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파.”

[그때 일이라. 뭐. 시즈루랑 뒹굴던 때?]

“아. 엄마! 진짜 딸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너도 성인인데 뭘. 그래서 당신. 미안하면 끝이야?]

“……아니. 이혼서류, 준비해서 가지고 올게.”

윤세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시즈루에게 세뇌를 당했다고 해도, 이것이 야기한 결과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성지한과 윤세아가, 생각보다 쉽게 그를 용서해 주었을 뿐이지.

그는 성지아가 자신을 비난하자,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이것은 마땅히…… 받아야 할 비난이다.’

차라리 그녀가 자신을 더 매도했으면 싶었다.

“그리고…… 이 집도 나가지. 당신 살아야 하니까.”

“아, 아빠! 어딜 가서 살아!?”

“……소드팰리스 아래에, 빈방이 몇 있긴 한데. 거기서 좀, 살아도 될까?”

[하, 여기 아래층? 마음 같아선 제주도, 아니 지구 반대편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아, 엄마! 뭔 지구 반대편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그건……!”

성지아는 윤세아의 만류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아가 그래도 당신을 따르네. 너도 참. 바보니? 니 아빠가 뭔 짓을 했는지 기억 못 해?]

“그건 세뇌 때문이잖아!”

그러면서 윤세아는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사실 삼촌 땜에 별로 안 힘들었어. 그때 딱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모든 일을 처리해 줬거든.”

[지한이가……? 그래. 이번엔 참 마음에 들어. 누나 말 안 듣는 거 빼고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너무 몰아가지 마 아빠. 무슨 지구 반대편이야 진짜!”

[……알았어. 당신. 세아 덕인 줄 알아. 어디 살든 상관 안 할게. 내 눈에만 보이지 마.]

“고맙다…….”

성지아의 말에, 윤세진이 고개를 푹 숙였을 때.

“……다들 뭐합니까?”

스으윽.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성지한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온전히 모인 가족들을 살펴보았다.

* * *

스으윽.

성지아는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온 성지한을 보고는, 팔짱을 끼었다.

[지한아. 너는 저기 문도 있는데 왜 베란다로 다니니?]

“여기가 더 빨라.”

[너 진짜…… 사람들이 깜짝 놀라잖아!]

“누나가 요즘 여기 안 살아 봐서 그런데. 내가 이리로만 다녀서 다들 그러려니 해.”

[어휴…… 정말 한 마디도 안 져!]

“아, 잔소리는 됐고. 자.”

휙.

성지한은 본격 잔소리를 가동하려는 성지아에게 열쇠를 던졌다.

“돌멩이로 그만 있고, 사람으로 돌아와.”

[너, 너. 이것도 그래! 누나가 전 재산 투자해서 후원했잖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부수라고! 근데 그거도 무시해?]

“1021만 GP가 전 재산이야? 무슨 성좌가 돈이 그리 없냐?”

[종족 변경 키트 사느라 돈 다 썼어!]

“그 쓸모없는 거? 어휴…… 자랑이다.”

[뭐! 야!]

“됐고 돈 다시 돌려줄게.”

성지한이 GP를 전송해 주자, 이건 또 얌전히 받는 성지아.

둘의 모습을 보고는, 윤세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엄마랑 삼촌은 오자마자 싸우네.”

“그래. 익숙한 풍경이네.”

“근데 뭔 일이에요? 매형 무릎 꿇고.”

[우리 이혼하기로 했어.]

“아, 그래요?”

성지한은 성지아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아무렇지도 않아?”

“기억을 지녔다고 들었을 때, 예상은 했거든.”

“그, 그래?”

자신도 회귀 전의 그 암울한 기억을, 하나도 아니고 여럿 가지고 있었으면.

윤세진이 세뇌를 당했건 말건 잡아다 족쳤을 테니까.

오히려 이 정도에서 끝난 게, 윤세진 입장에선 다행이지.

“……처남. 아니, 이젠 그냥 지한이라 불러야겠군. 몸은 좀 어때? 그 손…… 괜찮아?”

“아, 이 손요.”

성지한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등 위에서, 불길하게 번쩍이는 붉은 눈.

그의 팔에서 불그스름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스스스…….

피부색이 원래의 성지한 것처럼 돌아왔다.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알 빼고는 어느 정도 제어되는 것 같은 손.

성지한은 자신의 오른팔을 보면서.

‘그래. 아직까진…….’

집에 오기 전 들렸던, 수련장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