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13화>
[뭔 일임? 오, 여긴…… ]
흑색의 봉인함에서 나온, 붉은 눈동자는 바로 문자를 띄웠다.
[여긴…… 본체의 세상임?]
이미 성지한을 본체라고 확신하고 있는 관리자의 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에 대답했다.
“그 소린 여전하군.”
[확신함. 본체는 본체임. 근데.]
스으으.
관리자의 손은, 성지한이 처리하려던 붉은 구체를 바라보았다.
[저건 뭐임?]
“이 세상을 집어삼킬 골치 아픈 물건이지.”
[힘이 필요함?]
“잘 아는군.”
성지한은 붉은 눈동자를 든 채,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나를 풀어 줄 열쇠를 챙기고, 태극을 막기 위해선.
여기서 스탯 적의 힘을 얻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단시간 동안, 많이.
그러려면.
‘이걸 흡수해야겠지.’
예전에는 적의 힘에 완전히 휘둘릴까 봐, 흡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를 모두 얻기 위해서는.
위험쯤은 조금 감수해도 된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자, 눈에서 메시지가 올라왔다.
헌데, 거기선.
[본체…… 설마 나 먹을 거임?]
“그래.”
[본체가 나를 아직 온전히 지배하기에는, 힘이 부족함. 적의 힘에 휘말릴 수 있음.]
“그럼 너한테 좋은 게 아니었나?”
[좋지 않음.]
예전엔 자신을 흡수하길 바라던 붉은 눈동자가, 오히려 그를 만류하고 있었다.
“왜지?”
[본체가 원래 생각했던 대계가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내가 본체를 장악해 봤자 계획엔 도움이 안 됨.]
“……그럼에도 나는 힘이 필요하고, 너를 흡수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선, 입장이 완전히 변한 둘.
관리자의 손은 성지한의 확고한 의지를 읽었는지, 절충안을 내보였다.
[음. 그럼…… 날 본체의 육체에 이식만 하셈.]
“이식?”
스으으으…….
눈동자는 무럭무럭 자라더니.
사람의 팔로 변했다.
언뜻 보기엔, 성지한의 팔과 똑같은 크기의 팔.
하나 그 손등에는, 붉은 눈동자가 자리하고 피부에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오른팔을 자르고, 이걸 붙이셈.]
“정말로 협조적이군. 의심스러울 정도로.”
[나도 먹히면 본체를 지배할 수 있음……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확신함. 왜냐면 본체는 본체이기 때문임. 본체가 본체로 있어야지, 내가 주가 되면 대계가 어그러질 것임.]
“그놈의 본체 소리에, 처음으로 득을 보는 느낌이네.”
성지한은 본체 타령하는 관리자의 손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투두둑!
대번에, 오른팔을 뜯어냈다.
-어, 어…….
-아니, 성지한 님 뭐 하시는 거지?
-설마. 저 팔 붙이려는 거야?
-으 저거 관리자의 팔 아냐? 저런 거 붙였다간 큰일 날 거 같은데 ㅡㅡ;;
-아니 왜 저런 위험한 일을…….
-저 태극을 막으려고??
-그럼 대피 안 해도 되는 거임?
성지한의 행동을 보고, 처음엔 인류 시청자들이 깜짝 놀랐지만.
푹.
그가 관리자의 손을 이식하고.
스스스스…….
아무렇지도 않게, 이것이 융합하자.
-??
-뭐야. 뭐 저렇게 쉽게 붙어?
-관리자의 팔 아니었던가 저거…….
-그런 게 저렇게 아무 문제 없이 이식된다고?
-말이 돼? 성지한 이 인간은 대체 뭔…….
-아니, 이미 지배를 받고 있을 수도 있어.
-지배받았으면 적의 일족처럼 몸이 변해야지 그대론데?
외계의 시청자들한테서 오히려 난리가 났다.
적색의 관리자의 팔.
그 엄청난 것을 이식했는데도, 어떻게 인간의 육신이 계속 유지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으니까.
그리고.
[‘적색의 관리자의 팔’을 이식합니다.]
[스탯 ‘적’이 300 오릅니다.]
‘미친.’
성지한의 눈앞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스탯 상승 수치가 나타났다.
대번에 300이 오르다니.
이놈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올 줄 알았다면 진작 이식할 걸 그랬나.
‘아니.’
그러기에는, 적색의 관리자의 손이 지닌 위험성이 만만치 않았지.
지금처럼 비상 상황이 아니면, 아무리 능력을 올려 준다고 해도 이러지 않았을 거다.
지금도 겉으로는 협조적일 뿐.
속내는 아직, 알 수 없는 존재니까.
하나 지금은.
[괜찮으심? 지금 능력도 지배하기 힘들 텐데.]
성지한의 오른손 등 위로, 친절하게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전혀 이상이 없는데?”
그리고 원래 팔을 뽑고 적색의 것을 이식한 성지한은.
새로운 이물질이 들어왔음에도 너무나도 빨리 적응하는 몸을 보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면 진짜 내가 본체 같잖아.
그리고.
[역시 본체. 님 본체 맞음. 확신 확신 또 확신함.]
관리자의 손은 그런 성지한을 보면서 본체가 맞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 소리 좀 그만해라. 일 처리 좀 할 테니까.”
[알겠음. 나도 세상 나온 김에 좀 둘러보겠음.]
지이이잉…….
손등의 눈에서 [정보 취합 중]이라는 문자가 떠오르고.
관리자의 손은 그 후로 더 이상 글자를 띄우지 않았다.
‘그럼 내 할 일을 해야겠군.’
성지한은 오른팔을 붉은 구체에 가져다 대었다.
* * *
10분 후.
스으으으…….
거인의 몸에서 불길하게 번지던 태극이, 서서히 멎어 갔다.
-오오…….
-뭔가 되는 거 같은데?
-저 망할 태극이 사라진다…….
-손 이식해서 되는 거임?
-성지한 님에게 부작용이 있거나 하진 않겠지…….
인류 멸망 시나리오에 나왔던 태극이 없어지는 걸 보고, 사람들은 안도하면서도 관리자의 손이 성지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해했지만.
‘……너무 매끄럽네.’
성지한은 +300이나 오른 스탯을, 스무스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까 자신이 알고 보면 진짜 적색의 관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애초에 이그드라실은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라고는 했지만, 그 안에서도 재능이 다를 수 있겠지…….’
성지한은 그렇게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도.
일단은 발현된 태극을, 하나하나씩 거두어 나갔다.
그래도, 이미 돌아가는 태극을 되돌려서 그런가.
스스스스…….
거인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공허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대부분이 성지한이 쓰고 있는 반가면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안에서 뭔가 충돌하는군.’
순순히 흡수되는 건 아닌지, 가면의 안쪽에서는 나름 격렬한 충돌이 있는 것 같았다.
‘부서져도 어쩔 수 없지. 태극을 놔둘 순 없으니까.’
고엘프 때 입수해서 그동안, 참 잘 썼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구체의 조종에 박차를 가했다.
쩌저적……!
반가면에 금이 완전히 갈 때쯤.
“후우…….”
태극이 사그라지고, 대신 거인의 뻥 뚫린 몸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육신이 이미 사라져 있는 태극의 망혼.
남아 있는 부분은, 망혼이 필사적으로 지키던.
열쇠가 있는 곳밖에는 없었다.
‘…….’
저벅. 저벅.
이를 본 성지한은, 그리로 걸어갔다.
거기엔.
얼굴 반쪽이 부서지고.
사지 중, 왼팔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망혼이.
왼손으로 열쇠를 꼭 쥔 채 누워 있었다.
“너…… 지금껏 지켰나.”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무너지는 팔로, 열쇠를 넘긴 망혼은.
쓰게 웃음을 지었다.
“네가 태극과 열쇠, 둘 다 택할 줄은…… 몰랐다.”
“능력이 되는데, 굳이 하나만 선택할 필욘 없지.”
“……그 대신, 네가 위험할 텐데.”
“어차피 평소에도 위험했어. 등에 짐 하나 더 얹었을 뿐이다.”
관리자의 손을 이식한 것을 단순히 짐이라고 말한 성지한은.
불그스름한 손을 쥐었다 피었다.
“그리고 지금까진, 그 짐이 아주 협조적이고.”
“그런가…….”
성지한이 열쇠를 받자, 눈에 띄게 안도하는 표정을 짓던 망혼은.
시선을 그의 가면으로 돌렸다.
“그럼…… 짐 하나, 더 받겠는가?”
“도움이 되나? 이 팔처럼.”
“도움은 될 것이다. 위험부담은 크지만.”
“그럼 얼마든지.”
“핵을, 그 가면에 이식해라. 성화를 사용하여.”
“여기에?”
툭. 툭.
성지한은 자신이 쓰고 있는 반가면을 두드렸다.
이미 금이 갈 만큼 가서, 금방이라도 박살 날 거 같은 공허처리장.
여기에 핵을 이식하면, 제대로 폭발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녹색의 관리자의 공허처리장이면…… 우리의 핵은 적색이 공허를 처리하는 방식.”
“적색이 공허를 처리하는 방식이, 저거였다고?”
“그렇다. 공허는 관리자에게 있어, 그래…… 암세포와도 같은 것. 적절한 처리를 요했지.”
“그럼 적색과 녹색의 공허처리장이 합치는 거군.”
“맞다. 부작용은 예측할 수 없지만…….”
바스스스…….
망혼의 얼굴이 서서히 먼지가 되어 갔다.
“힘은, 얻을 수 있겠지.”
“그럼 해야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망혼의 반쪽 남은 얼굴이 다 사라져 가고.
그의 입만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둘을, 부탁하지…….”
둘이라면, 성지아와 윤세아인가.
“알겠다. 나한테 맡기고 쉬어.”
성지한의 대답을 들었는지, 완전히 사라지는 망혼.
그는 착잡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뚜벅. 뚜벅.
그가 향한 곳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는 어비스의 주인의 핵.
그는 그것을 움켜쥐곤.
푹!
바로 가면에 찍어 눌렀다.
그러자.
화르르륵……!
그 안에서 솟구치는 백색의 불길 성화.
[공허처리장이 융합합니다.]
구체에서 타오르는 성화는, 금방 가면을 불살라 버렸다.
새하얀 불길은 곧, 성지한의 얼굴에 옮겨붙더니.
[융합된 공허처리장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부서지던 가면에, 핵까지 합쳐진 공허처리장을 먹어치우겠냐고 물어보았다.
관리자의 팔에 이어, 이건 또 다른 폭탄이군.
하지만.
“흡수한다.”
이미 무리를 하기로 한 성지한은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자.
쩌적……!
가면을 쓰던 얼굴 반쪽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 성지한 님 얼굴이…….
-아까 그 상대랑 비슷하게 금이 갔네…….
-뭐, 뭐야 이것도 지배당하는 건가?
시청자들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반가면을 쓰던, 성지한의 얼굴 반쪽엔.
망혼의 것처럼, 금이 가 있었다.
물론 그처럼, 사방에 틈새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턱 끝에서부터, 뺨까지 올라오는 선은.
언제라도 그의 얼굴을 조각낼 것 같은 균열이었다.
하나.
‘……흡수가 잘되었군.’
성지한은 이를 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팔에 이어, 일부 갈라진 얼굴의 변화상.
점점 사람이 아닌 육체로 몸은 변해 갔지만.
이를 흡수한 보상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공허가 300 오릅니다.]
[공허 스탯의 수용 한계치가 999로 설정됩니다.]
관리자의 팔이랑 통하는 게 있는지, 300이나 올라간 공허.
거기에 지금껏 성지한의 발목을 가로막던 공허 한도까지, 999로 대폭 상향된 상태였다.
공허처리장이 이렇게 몸 안으로 들어왔으니, 그리된 건가.
하지만.
[공허의 힘을 사용할수록, 공허 잠식이 서서히 진행됩니다.]
추후 뜨는 메시지에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공허 한도는 999인데, 공허 잠식은 왜 진행되는 거야.
이래서야, 시한부로 설정된 힘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뭐, 시한부는 이것뿐만이 아니다만.’
불완전한 얼굴 반쪽.
불완전한 팔.
거기에 내부의 영원까지.
모든 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지금 당장, 자신을 잠식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둘은 걱정 마라.”
성지한은 자신이 넘겨받은 열쇠를 바라보았다.
둘을 살리기 위해 70억을 버리겠다는 망혼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결말은, 70억도 둘도 모두 살리는 거겠지.
“이번에 꼭, 온전하게 끝을 낼 테니.”
그러기 위해 좀, 무리해서 얻은 힘.
이것들은, 그저 무신과 싸우기 전까지만 폭발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버텨 준다면, 이들은 그에게 도전할 때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겠지.
그리고.
‘이그드라실이 말한 놀라운 업적이란 걸…… 시도할 수 있다.’
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 * *
한편.
무신의 별, 투성에서는.
[……허.]
성지한의 팔을 보면서, 무신이 탄식을 흘렸다.
그가 이기든 지든 관계없이, 무조건 금륜적보를 돌리려고 했는데.
[팔을, 저렇게 받아들이다니.]
변수가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