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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410화 (410/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410화>

평양의 어비스 너머.

그곳은 보랏빛의 공허만 자욱히 낀 채, 맨 뒤편에는 거대한 어비스의 주인이 주저앉아 웅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둘.

성지한의 모습을 하고 있는 태극의 망혼과, 석상 상태의 성지아였다.

“저 몸뚱어리는 아직 남아 있네.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거냐?”

성지한이 거인의 형체를 보고 말하자, 망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흡수할 수는 있지만 효율이 좋지 않아. 대신 저것의 힘은, 공허의 문을 열 때 쓰일 거다.”

동방삭이 설치한 태극 덕에 주도권을 쥐긴 했지만, 그 힘은 어디까지나 탈출에 쓸 거라는 태극의 망혼.

그는 점혈이 찍혀 잠들어 버린 윤세아를 힐끗 보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설득은 안 되었나 보군.”

“어. 확실히 안 간다고 해서, 점혈 찍었다.”

“점혈…… 그런 게 먹혔나. 세아도 꽤 강력한 플레이어일 텐데.”

“동방삭이 가르쳐 준 게 효과가 좋거든.”

“……그래. 동방삭이.”

망혼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자에 의해 내가 주도권을 찾게 되었지만, 설치한 태극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른다. 일을 빨리 진행하도록 하지.”

“어떻게 진행시킬 생각이냐?”

“일단은 종족 변형을 해야 한다.”

망혼이 그러며 성지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손바닥을 폈다.

[소환.]

스으으윽.

그러자, 보랏빛 운무로 가득한 바닥에서 거대한 유리 시험관이 튀어나왔다.

“……뭐야 저거?”

[종족 변환 키트야. 경매장에서 팔지.]

“경매장에 그런 물건도 있다고…….”

[너는 검색해도 안 나올 거야. 공허 쪽에서만 검색이 가능한 거라서.]

성지한은 윤세아가 열 명은 들어갈 법한 크기의 시험관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저거 안전하긴 해?”

[세아한테 사용하는 건데, 안정성부터 따졌지. 최고급 중에서도 가장 좋은 품질이야.]

성지아는 그러면서 시험관의 문을 열고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뭐야 그거?”

[종족 변환 키트에서 기본적으로 세팅된 성공 확률이 95퍼센트인데, 여기서 확률을 더 높이는 물건이야.]

툭. 툭.

어떤 생명체의 것인진 모르지만, 머리뼈와 살점부터 시작해서.

보석류에 광석까지 별별 물건들이 다 들어가는 시험관.

그렇게 들어간 물건들은.

위이이잉……!

믹서기에 들어간 음식처럼 순식간에 갈리더니, 유리관의 색을 변환시켰다.

[됐어. 100퍼센트야 이젠.]

“뭐 넣은 거야 방금?”

[강화 성공 확률 올려 주는 재료. 보기엔 그래도 몸에 좋은 거야.]

몸에 좋은 거면 옛날부터 다 믹서기에 갈아서 주더니, 성좌급인 공허의 마녀가 된 지금 상태에서도 저러네.

성지한은 윤세아 점혈 찍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탈출을 결심해도, 물건들 갈린 거 보면 저 믹서기 안으론 들어가고 싶지 않을 테니까.

[자, 그럼 시작할까?]

“……그래. 이상하면 바로 부순다 저거.”

[물론이지. 문제 생기면 내가 먼저 부술 거야. 하지만 검증된 업체 물건이니 그럴 일은 없을걸?]

성지아는 자신만만하게 유리관의 문을 열었다.

‘누나가 저렇게까지 보증하니까, 괜히 믿음이 안 가네.’

성지한은 뭐 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폭파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든 윤세아를 시험관에 일단 보냈다.

그러자, 금방 안에서 물이 차오르나 싶더니.

삐릭!

[변환 대상, 종족 판별…… ‘인류’로 판정.]

[인류, 최신 업데이트로 ‘변환 금지 종족’ 리스트에 포함. 종족 변환 불가능]

시험관 위에서 경고 메시지가 떠오르며.

치이이익…….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윤세아를 다시 밖으로 밀어냈다.

* * *

[아니…… 금지라고? 예전엔 분명 주의 종족이었는데…….]

성지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메시지가 뜬 유리관을 향해 다가갔다.

[말도 안 돼…… 주의 종족이면, 일부 진화된 상태면 바꿀 수 있는 거였잖아? 내가 이거 정품이라서 샀는데!]

“저런 거에 정품이고 정품 아니고가 있어?”

[어. 세아한테 하는 건데, 확실한 물건을 샀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정품을 안 사야 했나?

아니. 그럼 위험했어.

성지아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최신 업데이트로 막히다니…… 인류가 변환 금지까지 될 종족인가?”

종족 변환 후, 이세계로 대피시킨다는 계획이 초장부터 어그러지자 망혼은 황당하다는 듯 시험관을 바라보았다.

인류가 대체 뭐라고, 최신 업데이트로 종족도 못 바꾸게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성지한은 짚이는 곳이 있었다.

‘최신 업데이트로 변환 불가 판정이라…… 그러고 보면, 녹색의 관리자도 인류에 적색의 관리자가 스며들었다고 판단한 것이 종족 진화 이후라고 했지.’

종족이 진화된 이후, 인류에게서 발견되었던 적색의 관리자의 흔적.

이를 알아냈다면, 변환 금지 조치도 충분히 줄 만했다.

“저거 만든 곳이 정확히 어딘데?”

[……공허의 종족연구소야.]

“그럼 공허도 파악한 건가.”

[뭘?]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와 엮여 있다는 걸.”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성지아가 그 말에 화들짝 놀라자, 성지한은 덤덤하게 답했다.

“녹색의 관리자가 적색은 인류 그 자체라고 했거든. 그 말이 완전히 신뢰가 가진 않았는데, 공허에서 변환 불가까지 해 놓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맞는 거 같군.”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라고……?”

“그래.”

“인류가…… 그랬단 말인가.”

망혼은 성지한의 말을 듣고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는지.

한동안 적색의 관리자만을 읊조렸다.

“……종족 변환도 막혔다면, 공허의 문은 더 강하게 막혀 있겠지.”

[그럼, 탈출은 불가능한 거야?]

“현 상태에서는 불가능해.”

뒤편의 거인.

그리고 성지한과 성지아를 돌아보던 망혼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방식이 막힌 이상, 방법은 하나다.”

“그게 뭐지?”

저벅. 저벅.

성지한의 물음에, 주저앉은 거인의 육신에 다가간 망혼은.

그의 몸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쩌어어억!

저절로 갈라지는 거인의 육신.

망혼은 그 안으로 스스로 발을 디뎠다.

스으으…….

망혼의 몸이 곧, 거인의 육체에 들어가 사라지고.

거인의 신체에 있던 붉은 눈 하나가 번뜩이며.

그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성지한…… 우리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이상, 이 세계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금제를 뚫기 위해선, 힘을 합쳐야 한다.]

쩌어어억!

그러면서, 또다시 갈라지는 거인의 육신.

성지한은 그 균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힘을 합친다는 게, 나도 저기 들어가라는 거냐?”

[맞다.]

“그래…… 들어갔다 치면, 일을 어떻게 진행시킬 거지?”

[막힌 공허의 문을 힘으로 부수고, 목표했던 곳으로 공간을 뛰어넘는다.]

“방법 자체는 심플하군.”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막대한 힘이 필요하다…….]

번뜩! 번뜩!

거인의 신체에 박혀 있던 눈이 하나둘씩 떠지면서, 짙은 공허의 기운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와 합세하면, 적색의 관리자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겠지. 그럼 인류도, 충분히 에너지원이 된다.]

“인류를 탈출의 에너지원으로 쓰겠다고…….”

[그래. 어차피 적색의 관리자라는 게 밝혀진 이상, 인류는 금방 정리될 운명…… 이왕 죽는 거, 우리 가족 둘이라도 살려 주는 게 낫겠지.]

“멸망의 주체를 해 봐서 그런지, 스케일이 크군.”

인류 멸망 시나리오 때, 어비스의 주인이 태극을 발동했던 걸 떠올리며.

성지한은 왼손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태극의 망혼이 꾀하는 방법이 어떤지는 알겠지만.

‘실패한다. 이 방식은.’

성지한은 확신했다.

공허의 문을 부수고, 공간 이동을 하겠다는 계획은.

지금 망혼의 행동은 일이 처음부터 틀어진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가 그렇게 검을 꺼내 들자, 망혼이 탄식했다.

[역시…… 협조하지 않을 생각인가? 70억보다 둘이 소중하다는 걸 아직 모르는구나…….]

“아니, 그렇진 않아. 그 기분은 알 것도 같다만.”

스으윽.

성지한은 70억보다 2명이 가치 있다는 망혼의 계산을 일견 긍정하면서도.

“확실한 감이 왔어.”

[감?]

“너랑 합치면, 그걸로 이번은 끝이라는 감이.”

그의 제안은 완전히 거부했다.

[지한아! 감이라니. 아직도 그 이야기니?]

“어. 확실히 느꼈어.”

[그러지 말고, 우리 방법을 찾아보자. 종족 변환 키트, 정품 아닌 걸로. 업데이트 적용 안 된 거로 테스트해 보면 어때? 그리고 이세계로 가는 것도, 꼭 공허의 문을 통하지 않아도 방법은 있을 거야.]

성지아는 싸우려는 둘을 어떻게든 말리려는 듯,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말했지만.

“누나가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불가능하다. 지금껏 여러 방법을 찾고 찾아, 결국 도출해 낸 결론이 그것이었으니.]

성지한의 물음에, 단칼에 안 된다고 대답한 망혼은.

스으으으…….

그가 들어오라고 갈라 놓았던 육체를 다시 원래대로 수복했다.

[네 감…… 지금까지 최적의 선택을 해 왔던, 그것인가.]

“그래.”

[……알겠다. 네 선택은 존중하지.]

거인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쿠르르르!

어비스 공간이 일제히 뒤흔들리며.

짙은 공허가 성지한을 순식간에 잠식해 나갔다.

[하나, 결국엔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설득은 포기하고, 힘을 쓰기로 한 태극의 망혼.

천마신공天魔神功

일검파천一劍破天

하나 성지한의 검이 일점을 찌르자.

짙게 밀려오던 공허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걸 보고, 잠시 몸을 흠칫 떠는 거인의 신체.

[그건…… 이 육체가 기억한다. 동방삭의 검인가.]

“그래. 그에게서 아낌없이 배웠지.”

[……그 검을 이 육신에서 펼친다고 생각해 봐라. 그럼 무신도 이겨 낼 수 있을 텐데?]

성지한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어비스의 주인, 눈알 거인의 육신이 강력하긴 했지만.

“그 정도론 안 돼.”

[안 된다고…….]

“그래.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었다면 진작 갈아탔지.”

무신의 벽을 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나 그런 그의 대답을, 거인의 육신에 들어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라 생각한 망혼은.

[부족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지.]

스스스스……!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려 했다.

그렇게 전투가 촉발되기 전.

“보여 주는 건 좋은데.”

스윽.

성지한은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누나랑 세아는 여기 내버려 둘 거냐? 전투의 여파로 휩쓸릴 텐데.”

[그래선 안 되지.]

애초에 두 사람 살리려고 일어난 싸움인데, 여기 휘말리게 할 수는 없지.

지이잉!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열리고.

[세아 데리고 나가 줘. 누나.]

[……아니, 정말 너희 둘 싸울 거야? 분명 방법이 있을 건데……!]

[싸우는 게 아니라, 두 의견이 하나로 통합되는 거라고 보면 돼.]

[그래도!]

[……어비스의 주인이 명한다. 세아를 데리고, 안전한 곳에 있어.]

[그건…… 하아, 알았어.]

성지아가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명령까지 내렸다.

[세아…… 계속 점혈한 상태로 둘 거야?]

“풀어 줄게.”

타닥!

성지한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축 처진 상태에서 퍼뜩 정신을 차리는 윤세아.

“엑? 여긴…… 아 삼촌! 내가 안 간다고 했잖아……! 기절시키고 데리고 오는 게 어디 있어 진짜!!”

주변을 둘러보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녀였지만.

“아, 미안. 근데 안 가게 됐다. 일 다 어그려졌어.”

“에? 그게 무슨 소리야?”

“누나랑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봐.”

“에? 에?”

[……가자. 세아야.]

성지아가 그녀를 짐짝처럼 들고, 포탈에 나설 때까지.

주변만 바라보면서 영문을 몰라 했다.

그리고 둘이 들어가자, 사라지는 포탈.

[다…… 잘 갔군.]

포탈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기다리던 망혼은.

[그럼, 시작하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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