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09화>
-부전승?
-뭐야 이건;
-스페이스 리그 개막 첫해에 별 걸 다 보네 ㄷㄷ
브론즈 리그 1등이었던 세계수 엘프 55.
성지한이 있기에 이길 거라곤 생각했지만, 밴의 유무에 따라 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었는데.
1경기 때 이그드라실의 아바타가 강림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상대 종족이 사라지자,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아…… 상대 플레이어가 모두 소멸했다고 뜨는군요!
=아까 상대 팀에 강림한 이그드라실 때문일까요? 갑자기 세계수 엘프 55의 전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들이 차후 리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재기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떻게 될지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만, 한동안은 회복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세계수 엘프 55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소멸했다고 뜨며, 강제로 승리 처리된 인류.
해설자들은 현 상황에 황당해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다.
-녹색의 관리자가 강림한 대가가 이 정도인가??
-채팅창에서 뻘소리만 하길래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모습 잠깐 드러냈다고 상대 종족이 멸망하네 ㄷㄷ
-ㄹㅇ…… 근데 와서 진짜 레벨 업만 시켜 준 거임? 대화하는 건 별로 못 봤는데.
-ㅇㅇ 성지한 채널로 봐도 별 이야기 없던데.
-게임이 평소보다 좀 늦게 끝나긴 했음 사라지면서 뭔가 한 듯?
채팅창에서는 맨날 제안만 하다가 까이던 이그드라실이라 그렇게 대단한 존잰가 싶었지만.
관리자는 강림하고 난 후 후폭풍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그드라실의 격이 얼마나 높은지 자각했다.
그리고.
‘결국 망했군…….’
세계수 엘프 55 소속 플레이어가 죄다 사라진 걸 보고, 성지한은 생각했다.
‘근데 저런 결과를 야기한 관리자의 아바타를 죽였는데도, 놀라운 업적은 아닌 건가.’
아무래도 이그드라실이 죽어 준 것에 가까워서 그런지.
그놈의 ‘놀라운 업적’은 미동도 없었다.
‘그럼 뭘 깨야 해?’
임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놀라운 업적.
하나 그 조건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가 없었다.
‘아마 성좌 이기는 정도론 안 될 거 같고…….’
성좌가 안 된다면, 그 위는 대성좌인데.
성좌가 되기 전의 몸으로, 대성좌를 이기라는 건가.
‘하긴 그 정도는 보여 줘야, 임시라도 관리자 직을 제안하겠지…….’
배틀넷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최상부에 있는 관리자 자리.
아무리 임시라고 해도 거기까지 한 번에 점프하려면, 그만큼의 업적이 필요하겠지.
성지한은 3경기까지 순식간에 끝나는 스페이스 리그 경기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남, 안 가나?”
“아, 매형. 가야죠.”
그런 그에게, 윤세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참 경기가 쉽게 끝났군.”
“이그드라실의 강림이 그만큼 세계수 엘프에게 타격이었나 봅니다.”
“저들이 저런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리그 꼴찌는 세계수 엘프 55가 확정적이겠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되살아날 수도 있으니, 대비는 해야겠죠.”
“그렇지. 어쨌거나 관리자가 뒷배인 종족이니까.”
그렇게 성지한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윤세진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성지한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근데 처남. 세아 요즘 행동이 이상하던데…… 혹시 알고 있는 거 있나?”
“세아가 그랬나요?”
“응, 나한테 뭘 말하려다가 자꾸 주저하던데…….”
성지한은 곤란한 듯 턱을 매만지는 윤세진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매형도 사실 이세계로 보낼 수 있으면 보내는 게 좋은데.’
누나 성지아는 비록 윤세아가 이세계를 가도, 마왕까지 토벌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거야 힘이 계속 유지될 때 이야기고.
막상 거기로 탈출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지수긴 했다.
물론 망혼이 같이 가긴 하겠다만.
윤세진까지 탈출하는 게 안전을 위해선 좋을 거 같은데.
‘인간이라서 안 된다고 했나.’
종족을 바꿔서 옮겨야 하는데, 윤세아처럼 귀가 튀어나오는 등의 진화를 보여야 종족 변경을 할 수 있다고 했지.
“세아 문제는 집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데 매형, 종족 진화하면서 뭐 변화한 거 없습니까? 세아처럼 귀 튀어나온 거 같이 말이죠.”
“나? 글쎄. 더 건강해진 느낌밖엔 없던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지만, 진화해도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던 윤세진.
그럼 여기서부터 이세계 탈출 조건에서는 탈락이군.
하지만.
‘……왠지 저건, 사감이 섞여서 저런 거 같은데.’
공허의 문을 넘기 위해선 인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냉정히 생각해 보면, 성지한도 진화했는데 인간의 몸에서 변한 건 없지 않던가.
처음엔 같이 탈출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조건이면 자신도 탈락 아닌가?
‘매형은 안 된다고 하는 게, 워낙 악감정이 쌓여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윤세진한테 배신당한 기억만 가지고, 뭉쳐 있는 태극의 망혼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자신도 저번 생에서의 기억만으로도, 윤세진에게 이를 갈았었는데.
태극의 망혼은 그런 기억이 엄청나게 중첩이 되어 있을 테니.
현재의 윤세진이 반성하고 윤세아에게 헌신한다고 한들, 인정할 수가 없을 거다.
‘탈출 전에 진짜 안 되는 건지 확실히 확인을 해야겠어.’
그리고 그 전에.
윤세진에게는 사정을 어느 정도 설명할 필요가 있겠지.
“일단 집에 가서 이야기하실까요?”
“그래. 세아는 아처 플레이어들과 함께 저녁 먹고 온다니까. 우리끼리 먼저 가지.”
“예. 그러죠.”
* * *
“……이것이 누나와 망혼의 계획입니다.”
“그래. 탈출이라…….”
집에 돌아와 성지한의 설명을 들은 윤세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남이 보긴 어떤가. 그거, 안전한 거 같나?”
“확신은 없지만, 여기보단 낫겠죠.”
“……여기가 그렇게 위험하나? 오히려 요즘 상황이 배틀넷 튜토리얼 때보다 좋아 보이는데.”
튜토리얼 시기 때에는, 던전 포탈의 몬스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터전을 잃었지만.
오히려 본 게임에 들어간 요즘은, 던전 포탈을 제거해서 빼앗긴 땅도 되찾고.
리그 내 순위도 올라 던전 자체가 덜 생성되고 있었다.
거기에 인류는 진화까지 경험했으니, 그야말로 최전성기라고 할 만한 상황.
윤세진은 왜 이런 황금기 때 피신을 가는지 이해하질 못했지만.
“지금은 평화로워도, 위험한 순간이 올 겁니다. 그때만 잠시 피신해 있으면 되죠.”
“……그래. 처남 말이 맞겠지. 처남이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
“매형도 같이 가는 게 어떻습니까?”
“나도?”
“네.”
“…….”
성지한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윤세진은.
“지아는 뭐라던가.”
“종족 진화시 변화가 없어 안 된다고는 했는데, 설득 한번 해 보려구요.”
“일단은 안 데려간다고 했나 보군.”
성지한의 말에 씁쓸히 웃었다.
“내가 몹쓸 짓을 많이 하긴 했지…… 물론 그것이 세뇌 때문이라고는 해도, 과거 저지른 잘못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뭐…….”
“거기에,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줬어.”
윤세진은 창가에 다가가, 야경을 바라보았다.
강남 한복판이 그대로 보이는 화려한 풍경.
그는 반짝이는 도시를 눈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조국에서 내게 기대하는 바가 클 때,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 버렸으니까. 그때 사람들에게 주었던 실망감과 절망에 대해선, 아직도 죄스럽네.”
“…….”
“검왕가에선, 안타깝게도 자살한 사람까지 여럿 있다고 했지…….”
검왕의 팬클럽이던 검왕가.
지금은 성지한의 인기에 밀려 아래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한때는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검왕가에 가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근데 그런 그가 갑자기 일본으로 가서 격한 발언을 쏟아 내니.
우상의 배신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여럿 나왔었다.
“나까지 다른 세계로 탈출하기엔…… 염치가 없지.”
“그렇습니까.”
“그래. 지아와 또 다른 처남이 같이 간다면, 굳이 나까지 안 따라가도 되지 않겠나.”
성지한은 윤세진의 뜻이 확고한 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윤세아와 같이 가 줬으면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저러니, 어쩔 수 없지.
그때.
삑. 삑삑.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이 새빨개진 윤세아가 집으로 들어왔다.
“삼촌!!”
“술 먹었냐.”
“헤헤. 나도 성인인데 뭐 어때!”
“세아야. 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플레이어가 취하긴 쉽지 않은데.”
“언니들이 그래서 독한 술만 줬어!”
성지한에게 쪼르르 달려온 그녀는.
흐리멍덩하게 풀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와락 껴안았다.
“나, 나. 결심했어! 안 갈 거야!”
“그래?”
“나 혼자 도망쳐서 뭐 해! 이세계에서 외계인들이랑 살라고? 안 가. 안 가!”
성지한의 품에 얼굴을 묻던 윤세아는.
스윽.
주변을 바라보더니, 윤세진을 발견하곤 히죽 미소를 지었다.
“헤, 아빠도 있었네?”
“아까부터 있었는데…… 삼촌만 보이니?”
“에이, 아니지……!”
아빠보다 삼촌에게 먼저 달려드는 윤세아를 보고, 윤세진이 섭섭하다는 듯이 그리 말하자.
슉!
성지한에게 떨어진 윤세아가 이번엔 윤세진에게 안겼다.
“아빠랑! 삼촌만 놔두고 이세계 안 갈 거야!”
“……대체 얼마나 먹인 거야. 하연주한테 한마디 해야겠군.”
“그래! 우리 팀 리더, 연주 언니도 놔두고 어떻게 가!”
궁수진의 리더, 하연주 이름이 나오자 오히려 더 안 간다고 주정을 부리는 윤세아.
그녀는 그렇게 한참 안 간다 안 간다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뜨끔한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아, 삼촌……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아빠한테는?”
“이미 했어. 매형도 안 가신대.”
“그래? 역시 아빠! 나도! 나도 남을게!”
윤세진이 알고 있다고 하자, 윤세아는 안심하면서 그 후로도 절대 피신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소리를 질렀다.
‘설득은 불가능하겠네.’
지금까지 계속 고민하는 거 같더니, 술에 취하고는 본심을 이렇게 털어놓는 윤세아.
그녀는 이세계로 도망칠 생각이 없는 게, 확고한 것 같았다.
이러면 뭐.
‘말로는 설득이 안 되겠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겉으로 싱긋 웃었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 안 가도 되는 거야?”
“그래. 안 가겠다는데 억지로 어떻게 이세계에 보내겠냐.”
“진짜? 진짜지? 나 안 가도 되는 거지?”
“어, 진짜다. 누나랑 망혼에게도 내가 따로 이야기할게.”
“와……!”
성지한이 그렇게 이야기하자, 윤세아의 얼굴이 안심한 듯 풀렸다.
“그래…… 나만 혼자 도망치라는 거, 스트레스야…… 어떻게 가족이랑 친구들 다 버리고 떠나냐고.”
“여행 간다고 생각하라니까 그러네.”
“여행은 무슨! 피신시키는 거 다 뻔히 아는데……! 어쨌든 진짜 안 보내는 거지? 진짜지?”
“그래그래. 안 보낸다.”
“휴우…….”
성지한의 확답에, 윤세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촌에게 이렇게까지 확답을 받았으니까,
이제 이세계 탈주는 없는 일이 되겠지.
“안심하니 졸리다…… 나 자러 갈게…….”
“그래. 들어가서 쉬어.”
성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씻으러 가는 윤세아.
윤세진은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성지한을 힐끗 바라보았다.
“……정말 안 보낼 생각인가?”
“글쎄요.”
그저 씨익 웃기만 하는 성지한.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윤세진은 그 표정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극의 망혼과 약속한 당일.
[왔나.]
“그래, 문 열어. 시작하자.”
성지한은 어비스에 도착했다.
“…….”
점혈이 찍혀 잠든 윤세아를 대동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