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07화>
“저 엘프들이, 경험치라고?”
“네.”
녹색 머리칼의 엘프는 싱긋 웃었다.
“얼마든지 죽이세요. 제가 계속 부활시킬 테니까요.”
“부활이라니…… 그런 게 가능했나? 여기서.”
“제가 아바타를 통해 강림했으니, 이 하늘숲 맵에서는 가능해요.”
“……너, 이그드라실인가?”
“맞아요.”
이그드라실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이렇게 연약한 엘프의 몸에 현신하기 위해, 꽤 많은 희생이 있었답니다.”
“희생이라니…….”
“55번째 식민지에 설치된 세계수의 생명력을 거의 다 써 버렸지요. 인류는 좋겠네요? 상위권에 위치한 팀 하나가 떨어지게 되었으니까.”
“순위가 떨어진다고?”
“네. 세계수가 시들 테니까요.”
그래서 엘프 대신관이 감독실에서 그렇게 가라앉은 얼굴을 했던 건가.
성지한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얼 꾀하고 있는 거지?”
“어머. 이번엔 정말로 선의랍니다?”
“허. 내 레벨 업을 위해서 세계수를 포기한다고?”
“저에게야 널린 게 세계수이고 식민지인걸요. 하나 정도 포기해도, 저의 세계에선 미미한 손실이지요.”
그러며 이그드라실이 뒤로 손짓하자.
콰직! 콰직!
엘프들의 신체가, 내부에서부터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퓨슉!
그 안에서, 격하게 꿈틀거리는 심장이 튀어나왔다.
스으으…….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장기를 둥둥 띄운 채, 성지한의 눈앞에 스윽 나열하는 이그드라실.
“자, 제가 특별히 죽이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검 한 번 휘두르면, 심장이 터질 거예요.”
“엘프는 심장 따위 없어도 재생하는 존재 아니었던가.”
“맞아요. 하지만, 제가 죽으라는데 죽어야죠.”
스윽.
이그드라실은 입꼬리를 올리며, 심장 하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펑!
풍선처럼 터지는 장기.
그 안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며, 이그드라실의 얼굴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아아아…….
그녀의 뒤에 있던 엘프 하나가, 갑자기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자. 이렇게 만지기만 해도 죽어요. 참 편하죠?”
“……굳이 죽이기 쉽게 도와줄 필요는 없다만.”
“이렇게 제가 현신한 김에, 충분히 레벨 업 해야죠. 적어도 1만 정도는 죽여야 하지 않겠어요?”
“1만?”
“네. 음…… 역시 1만은 너무 적나요? 무리하면, 10만까지는 가능할 거 같네요.”
싱글싱글 웃으면서, 엘프를 계속 부활시켜 줄 테니 처형하라고 권유하는 이그드라실.
-인성 파탄 난 거 봐라 ㅋㅋㅋㅋ
-엘프 대빵이라 할 만하네…….
-엘프놈들 짜증 나긴 했는데, 저건 좀 보기 안 좋네
-ㄴㄴ 쟤네들 우리 처형시키려던 거 기억 안 나냐? 엘프에게 동정은 사치야.
-ㄹㅇ 거기에 세계수 엘프 하나 망하면 우린 개이득 아님? ㅋㅋㅋ
-근데 저 이그드라실 말을 믿을 수는 있나…….
시청자들이 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아니다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을 때.
“그렇게까지 해서,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그렇게까지라니…… 이게요? 이건 그냥 경험치 선물인데요.”
이그드라실은 의아하다는 듯, 성지한에게 반문했다.
엘프의 심장을 떼다가 주는 행위가, 뭐가 이상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
그녀의 입장에선, 그만큼 이들이 죽어 나가는 게 별거 아닌 건가.
‘하긴 세계수 엘프의 지도자니, 이 정도야 대수롭지 않겠지…….’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서 펄떡이는 심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비스로 가기까진 일주일.’
건드리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은 엘프의 심장.
이걸 1만 개 터뜨리는 건, 성지한에게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었다.
‘지금 레벨 업 속도로는, 약속한 기간까지 절대 500에 도달하지 못하니 이걸 부수는 게 편한 길이겠다만.’
엘프의 심장을 터뜨려서, 1만을 죽이는 거야.
성지한에겐 그다지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저들 때문에, 저번 생에 인류가 리그에서 꼴등으로 밀려 결국 강등되지 않았나.
이그드라실이 건네주는 대로, 심장을 지속적으로 터뜨리면.
경험치를 손쉽게 올려서 목표했던 레벨 500에서, 그 이상까지 볼 수 있겠지.
하나.
‘엘프의 선의는, 믿을 수가 없어.’
누구와 접하든, 그 상대를 색안경 끼고 보지 말라고 하지만.
세계수 엘프 쪽과 상대할 땐,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봐야 했다.
‘어디 한번.’
스으으으…….
성지한은 꿈틀거리는 심장을 가까이 가져왔다.
아주 미약하게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
이걸 터뜨리면, 본체의 생명의 기운이 사라져 엘프가 죽는 건가.
하나 그러기엔, 기운이 약해도 너무 약한데.
‘추적을 해 볼까.’
성지한은 감각을 증폭시켜, 심장에 담긴 생명의 힘을 면밀히 살폈다.
순식간에 확장하는 그의 영역.
심장에 담긴 생명의 기운은, 이그드라실을 향해 아주 미세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성지한이 이걸 느끼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거, 안 터뜨리시나요?”
이그드라실이 웃으며 물어보았다.
“엘프의 호의는 일단 의심하라고 배웠거든.”
“흐응…… 배틀넷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정보에 밝으시네요.”
자기도 저 말에 부정은 안 하네.
그렇게 무혼의 영역이 이그드라실에게까지 닿자.
그녀는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자, 1단계는 통과하셨네요.”
“1단계?”
“네. ‘남이 주는 건, 아무거나 덥석 물지 않는다’라는 시험이요.”
햘짝.
이그드라실은 얼굴 입가에 묻은 핏물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디, 조사해 보세요. 뭐가 이상한지.”
“심장에 장난을 쳐 놨다는 건, 부인하지 않는군.”
“뻔히 아는 눈치인데, 굳이 부인할 필요 있나요? 영역도 그렇게 확장했는데.”
무혼의 영역은, 바로 파악했다 이건가.
성지한은 일단 생명의 기운을 계속 추적했다.
이그드라실 쪽으로 뻗어 나가는 생명의 힘은, 그녀에게 닿을 때쯤에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너무 힘이 미약해서 그런가.’
성지한은 심장 쪽을 바라보다가, 그 안에 자신의 생명의 기운을 살짝 넣어 보았다.
그러자, 확실하게 선명해지는 심장의 생명력.
아까와는 달리, 그 힘은 이그드라실에게 닿자마자 사라지지 않고.
확실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거기는 바로.
이그드라실의 아바타가 지닌, 녹색의 머리칼이었다.
“이거랑 연결되어 있었나.”
스으으.
무혼의 영역에, 잡힌 녹색 머리카락.
“……후후.”
하나 이그드라실은 웃는 낯으로,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뚝!
머리카락이 끊겨져 나가자.
“어머……! 몇 번째 머리카락인지, 어딘지 정확하게 알아내셨네요?”
이그드라실은 기쁜 탄성을 내지르더니.
“2단계 포상, 드릴게요.”
슈우우욱!
상을 주겠다는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펑! 펑!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터지는 심장과.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엘프들.
하늘숲의 나무들도 급격히 말라 비틀어져 가면서.
[상대 팀이 전멸했습니다.]
[1경기가, 곧 종료됩니다.]
곧 게임이 종료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 * *
-?? 뭐야?
-머리카락 끊었는데 게임 종료?
-졸라 허무하네;;;
1경기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게 뭐야?
성지한과 이그드라실이 대치하면서, 이야기를 몇 번 주고받더니.
이그드라실의 머리카락이 일부 끊기자, 갑자기 그녀의 몸이 쪼그라짐과 동시에 게임이 종료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성지한이 끝장내 버린 게임 중, 빨리 끝난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끝난 게임은 본 적이 없었다.
한데.
-근데 왜 안 끝나?
-아까 곧 종료한다고 했잖아.
-상대 팀 전멸하면 바로 끝나야 하는 거 아님??
-그러게…….
-게임 돌아가는 게 이상하네 진짜 ㅡㅡ
-이그드라실이 강림해서 그런 건가…… 뭔 개짓거리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상대가 전멸했는데도 ‘곧’이란 단서가 달리더니.
게임이 계속 종료되지 않는 걸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시청자들.
그리고.
‘……애초에 이걸 노린 거였나.’
이그드라실과 마주한 당사자였던 성지한은, 왜 게임 종료에 ‘곧’이라는 단서가 달렸는지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을 탐색했던 루트 그대로, 이그드라실의 힘이 들어오는군.’
[스탯 '영원'이 5 오릅니다.]
녹색 머리칼 엘프가 지니고 있던 생명력이.
성지한이 알아내던 길을 통해, 그대로 성지한의 영원에 들어오고 있었다.
[스탯 ‘영원’이 5 오릅니다.]
참 올리기 힘들던 영원이, 벌써 10이나 올라 버린 상황.
능력이 오른 거야 좋았지만.
[안녕하세요?]
성지한의 내부에 담긴 세계수에선.
[하나가 되어 기뻐요.]
이그드라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게 목적이었냐?”
[아뇨. 진짜 대화하러 온 거예요. 관리자의 눈도 설치된 당신과는, 대놓고 이야기를 못 할 테니. 제가 안으로 들어와야죠.]
“뭔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데?”
[와 이 세계수. 엄청 잘 자랐네? 먹음직스러워라. 성지한. 당신 이러지 말고 저랑 진짜 하나가 되는 게 어때요? 나무 너무 잘 키웠는데요?]
영원 속에서, 해맑게 조잘거리는 이그드라실.
성지한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안에 언제 기생충처럼 들어와서, 이젠 하나가 되자고 그러네.
[영원의 주도권만 넘겨 주시면, 바로 일 착수할게요. 이그드라실의 정원사.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그게 네 본론이냐? 바로 쫓아낸다.”
[참나…… 왜 이렇게 거부해요? 관리자의 반려로 삼아주겠다는데.]
그러고도 몇 번이고 성지한을 꼬드기던 이그드라실은.
[에이. 아직은 안 넘어오겠네…… 알겠어요. 본론을 꺼낼게요. 당신. 적색의 관리자를 막고 싶지 않나요?]
“……어디, 말해 봐라.”
이게 그녀의 본론인 건가.
성지한은 입으론 일단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론 내부의 영원에 들어온 이물질을 어떻게 정리할지 방법을 찾고 있었다.
‘성화로 지져 버릴까?’
배틀튜브가 틀어져 있는 상태에선 대놓고 쓰긴 그래서, 자제하던 성화.
하지만 내 몸속을 불태우는 거야, 남들에게 들키진 않겠지.
[이제는 영원으로 의념만 보내세요. 백색에게 들킬라.]
‘알았다. 그래서, 관리자를 막을 방법이란 게 뭐지?’
성지한이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내부의 이그드라실을 내쫓으려고 하고 있을 때.
[진짜 막을 생각은 있나 보네요?]
‘말장난 할 거면 지금 당장 불태우지. 본론으로 들어가라.’
[아~ 알았어요. 당신의 불은 위협적이니. 바로 용건을 꺼내죠.]
이그드라실은 본론으로 간다더니, 또 서론부터 시작했다.
[근데 그 전에 먼저. ‘적색의 관리자’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나요?]
‘적색의 관리자라…… 난 무신으로 추정 중이다만.’
[무신…… 그도 물론, 물론 적색의 후보 중 한 명이죠. 하지만. 저는 이번에 인류가 진화하면서, 그들을 납치, 감금, 실험해 보며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냈어요.]
이 놈은 언제 사람들을 납치해 간 거야?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인류! 인류종 자체가 적색의 관리자였어요!]
‘……뭔 개소리야?’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어이가 없네.
인류가 적색의 관리자라고?
‘그렇게 잘난 종족이 최하급이냐?’
[확실해요.]
‘확신의 근거가 뭐지?’
[제가 예전에 이거 관련해서, 도와줬거든요. 적색의 관리자를.]
‘……뭐?’
이그드라실은 그렇게 해맑은 목소리로, 자신이 공범자임을 성지한에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