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400화>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운영자 메시지.
[애초에…… 그래! 페이크 코드라면, 네가 살아 있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 페이크였다면 분명히 함정이 있었을 텐데!]
[함정 있었지. 세계수가 불타면서, 세상이 소멸 코드로 뒤덮이더라.]
[뭣…… 근데 거기서 살아남았다고?]
[어, 아소카가 시간 돌려 줬거든.]
성지한은 윤세아의 아이디로, 그에게 일의 전말을 대강 알려 주었다.
[……날 속이는 건 아니겠지?]
[날 의심할 시간에 계약 확인이나 다시 제대로 해 봐라. 멍청한 놈아.]
[기, 기다려 보거라.]
그러면서 잠시 침묵 상태에 들어간 길가메시.
성지한의 말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했던 윤세아는 그제야 성지한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나름 큰일을 치르고 왔지.”
“아니…… 근데 뭔가 심상치 않은데. 말하는 게. 세계수에 소멸에, 무신에…….”
“역시 처남…… 중국전을 치르다 나간 이유가 있었구나.”
“아, 그건 걔들이 너무 상대가 안 돼서 그런 겁니다.”
국가대표 경기에 나가기엔 이제 수준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으니, 2경기까지만 승리하고 나간 거지.
한편 윤세아의 핸드폰에서 메시지를 함께 훔쳐보던 소피아는, 눈을 반짝였다.
“지한, 세계수를 찾으신 건가요? 그 세계수 연합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긴 그렇군요.”
“으음…… 히어로의 비밀…… 인 건가요?”
“삼촌이 말 안 해 줄 정도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음.”
성지한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렸다.
무한회귀 상태인 무신.
그는 원래도 강한데, 투성에 별처럼 띄워 놓은 성좌의 무구를 통해 엄청나게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상대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인류 중에선 최강이라지만 북한 땅에 있는 어비스의 주인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
태극마검은 단검을 뽑아내는 지경까지엔 이르렀지만, 아직도 전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패배하면.
‘이 세계는 파멸하고, 무신은 또 유유히 과거로 돌아가는 건가…….’
이 정도면, 보통 심각한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인류의 명운이 달린 문제네.”
그 말에 젓가락을 짚던 윤세아가 화들짝 놀라, 음식을 떨어뜨렸다.
“엑! 뭐 스케일이 그렇게 커? 그 문제에 인류가 걸렸다고?”
“어.”
“아니…… 지한이 현재 처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저희도 다 같이 망하는 건가요?”
“네.”
“……브론즈 리그에서 강등이라도, 당하는 건가?”
“그래도 멸망하겠지만, 이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망할 겁니다.”
무신이 시간을 되돌리면, 애초에 모든 게 리셋이니까.
지금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사라지는 거나 다름없다.
“아니…… 그럼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뒤풀이할 때가 아니잖아?”
“맞아요. 파티 할 때가 아니네요?”
“처남…… 내가 뭐 도울 방법 없겠나?”
그렇게 셋이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삑. 삑.
“세아야~ MVP 축하해~!”
“안녕하십니까.”
이하연과 그녀의 보디가드인 임가영이 술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웃는 얼굴로, 중국전 승리 기념 뒤풀이를 참석하려던 그녀들은.
“……분위기 왜 이래?”
“오늘 이긴 거 아니었습니까?”
심각한 분위기로 성지한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 *
“……아니, 오너님께 인류의 명운이 달렸다니. 그렇게 심각할 문제가 있나요? 사람들은 요즘이 제일 살기 좋다던데.”
배틀넷 진입 후, 종족 진화 효과를 톡톡히 받아 왔던 인류.
모두들 이제 예전으로는 도저히 못 돌아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삶의 퀄리티는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지금이 전성기긴 하지! 귀가 튀어나오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윤세아는 그 말을 받으면서 자신의 귀를 매만졌다.
그녀처럼 귀가 나오거나, 턱이 나오는 등 모습이 변한 사람이 적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대다수는 진화 전보다 진화한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만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체감 효과가 컸으니까.
이렇게 제3자가 느끼기엔, 인류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막상 이를 가져와 준 성지한이 명운을 이야기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괜히 한마디 꺼냈다가, 새삼 분위기가 심각해졌군그래.’
성지한은 좌중의 모두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걸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말조심을 좀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근데 어차피 지면 모든 게 끝인데…… 딱히 숨길 필요도 없지 않나?’
앞으로의 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가용할 수 있는 힘은 모조리 써먹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힘 중에 가장 쓸 만한 게 스타 버프였으니.
‘그럼 무신과 싸우던, 어비스의 주인과 싸우던 결국 공개는 해야겠지…….’
그렇게 배틀튜브로 다 내보낼 거면.
지금 이들의 궁금증도, 어느 정도 풀어 주는 게 낫나.
성지한이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부르르르르……!
윤세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으아아아아! 무신 이 망할 뱀 새끼가……!]
하프 엘프 커뮤니티 운영자, 길가메시에게서 온 메시지는.
뱀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당했다. 당했어. 뱀이 나를, 농락했다……!]
[뭐 어떻게 당한 건데?]
[……아들에게, 아버지의 허물을 다 밝힐 수는 없다.]
성지한은 문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은, 뭐 이런 상황에서 아들 타령이야.
[네놈 같은 아버지 안 뒀으니까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말해.]
[절대, 절대 말할 순 없다……! 아아아악……!! 내가 미쳤지……!! #$**#$#퍼센트!#]
어떻게 사기를 당했는지, 멘탈이 붕괴한 것 같은 길가메시.
“……이 인간 진짜 그 성좌야? 태초의 왕이라면서 으스대던?”
“그냥 길가메시인 척하는 사람한테 속고 있는 거 아닐까요?”
“진짜 사칭일지도 몰라요. 요즘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윤세아의 핸드폰을 보던 사람들이 이거 가짜 아니냔 추리까지 하고 있을 무렵.
[……아들아. 안 되겠다. 융합하자. 그래야 무신에게 대항할 수 있다.]
[아들 소리 한 번만 더하면 너부터 죽인다.]
[큭…… 이건, 너무 계획 외다…….]
길가메시는 패닉에 빠졌는지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멸망이야. 인류는 그저 뱀의 먹이가 될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자식과 후손들이, 모두 다 그의 뱃속에 들어간다고!]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일을 해결하지…….]
태초의 왕이라면서 으스댈 땐 언제고 왜 저리 망가졌어.
‘봉인지에서 보았던 둘과는 너무나도 다르군.’
세계 전역의 적귀를 봉인하고, 세계수에서 귀신들이 나오지 않게 수백 년을 지켰던 동방삭이나.
일이 여의치 않자, 종국에는 세상을 겁화로 물들이려던 무신의 계획을 막은 아소카.
그 둘에 비하면, 길가메시는 어째 볼수록 무게감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성지한은 신세 한탄하는 그의 메시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만 징징거리고. 투성 상황은 어떻지?]
[징징이라니…… 무엄하구나!]
[니가 보낸 메시지나 나중에 한 번 다시 정독하고 판단해 봐라.]
성지한의 말에 진짜 자기가 보냈던 메시지를 보는지, 한동안 답이 없던 그는.
[……투성은 별다를 게 없다. 깨어난 아소카를 만나 보려고 해도, 무신이 접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지.]
화제를 투성으로 전환했다.
[동방삭은?]
[그도 여전하다.]
[그래?]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봉인을 해제했으니, 기억을 찾은 거 아니었나.
‘……아니면 설마, 핵까지 부숴야 찾는 거야?’
뭔 놈의 기억을 제일 안쪽까지 봉인해 놨어.
안 그래도 어비스의 주인 넘어서도 무신이 남아 있는 지금.
동방삭은 우군으로 포섭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적은 아니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예전 기억을 되찾게 해 주는 게 필수적인데 말이지.
[음, 무신이 종들을 호출했군…….]
[종종 이리로 투성 소식 좀 전해라. 나한테 직접 성좌 메시지로 보내면 더 좋고.]
[그건 힘들다. 무신이 널 상당히 경계하니까.]
[날?]
[그래…… 배틀넷을 통해 보내는 것보다, 오히려 이렇게 커뮤니티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게 그에게 포착되지 않을 거다.]
[하프 엘프 커뮤니티가 배틀넷보다 보안이 잘 된다고?]
[무신이 이런 사이트까지 검열하진 않으니까.]
[그럼, 무신은 배틀넷 메시지까지 검열할 수 있단 이야기인가?]
[……혹시나 해서 조심하는 거다. 이리로 추후 소식을 보내지.]
그러면서 연락을 끊은 길가메시.
‘이럼 투성의 첩자가 피티아에서 길가메시로 바뀐 건가.’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윤세아의 폰에서 손을 떼었다.
나중에 소식 받아 보려면, 이거로 계속 연락해선 안 되겠네.
“세아야. 이 사이트 아이디 좀 알려 줘.”
“삼촌 폰으로 로그인해 놓게?”
“어. 조심성 많은 투성의 주인께서 그리 원하시니까.”
“주인은 무슨…… 종이잖아 그냥?”
윤세아는 그러면서, 성지한의 핸드폰에 하프 엘프 커뮤니티를 자동 로그인해 놓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 인류 명운과 관련된 이야기는…… 역시 비밀인 거지?”
“그렇지는 않아. 나중에 어차피 배틀튜브로 다 생중계해야 하거든.”
“그, 그래?”
“어, 어차피 버프 받으려면 배틀튜브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해야 하니까. 다만.”
성지한은 그러면서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좀 정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남, 난처한 이야기면 굳이 이야기 안 해 줘도 괜찮아. 부담 주고 싶진 않네.”
“아니에요. 다들 제가 패배하면 왜 죽는진 알아야죠.”
“……그, 그런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체 있다가 죽는 게 나을까요?”
성지한의 물음에.
“……아니요.”
“이유는 알아야죠.”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 * *
투성의 중심부.
거대한 신왕좌가 놓인 그곳에선.
방랑하는 무신이 자리에 앉아 자신의 종들을 모두 호출한 상태였다.
[관리자들의 견제가 생각보다 집요하군…….]
종들을 둘러보며, 그리 말문을 연 무신은.
[길가메시.]
“……왜.”
[피티아에게 미리 명했다. 그녀의 길안내를 따라, 적을 상대해라.]
“적…… 누굴 말하는 거지?”
[네가 상대해야 할 건, 백색의 관리자의 졸개다.]
“내가 왜 그런 일을…….”
[우리의 계약, 잊지 않았겠지?]
사기당한 계약을 언급한 무신을 보며, 길가메시는 두 눈을 부릅떴지만.
“……알겠다.”
그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일단 무신의 명에 따랐다.
번쩍!
피티아가 연 포탈을 따라서 사라지는 길가메시.
두 종이 나간 걸 잠시 지켜본 무신은.
[동방삭.]
“예. 주인이시여.”
[어비스의 주인에게, 태극을 부여해라.]
“어비스의 주인이라면…….”
지이이잉.
동방삭의 반문에, 북한 땅을 띄워 주는 무신.
동방삭은 이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슈우우우…….
서서히 사라지는, 동방삭의 신형.
어느새 남은 무신의 종은, 아소카 한 명뿐이었다.
[…….]
가만히 그를 내려 보는 무신과, 웃는 낯으로 서 있는 아소카.
[너는, 명이 내려지는 대로 금륜적보를 돌릴 준비를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가 보겠다.]
슈욱!
무신의 형체가 사라지고.
‘……동방삭이 태극을 부여하면, 이번 회차도 실패인가.’
아소카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상황을 그리 판단하고 있을 때.
[아소카. 금각은…… 아직도 지키고 있나?]
분명 사라졌던 동방삭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