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99화>
‘마검의 낙인이라면…….’
어비스의 주인이 부여했던 마검의 낙인.
그것은 성지한이 이 세계에서 마검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세계수까지 파괴하는 데 성공하면서 사라진 상태였다.
그와 함께.
[스킬 태극마검이 미완성 상태에서 벗어나. 스킬 창에서 사라집니다.]
사용할 때마다 확률적으로 무혼을 소모했던 스킬 태극마검도 사라졌다.
‘이제 검을 터득했으니까, 알아서 쓰라 이거군.’
그래도 아직은 단검만 뽑아내는 경지인데, 미완성은 벗어났다 이건가.
‘그럼…….’
어둠에 잠긴 세계를 보며, 성지한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낙인이 사라지고, 태극마검 스킬도 미완성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남은 건, 어비스의 주인에게 도전하는 것.
성지한은 어비스의 주인을 내부에서 장악하고 있던 자신의 파편을 떠올렸다.
태극마검에 의해 갈려 나갔던, 성지한이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 모여 있었지.
‘그들은 결국, 반복되는 무신의 무한회귀 속에서 희생당한 나였던 거군.’
성지한은 이번에 구궁팔괘도에 들어오며 알게 된 무신의 무한회귀를 떠올리며.
자신이 어떻게 해서 저 꼴이 되었는지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왜 다들 태극마검에 죽은 건지, 그리고 시간을 되돌리는 과정 속에서 어비스의 주인에 왜 축적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에 대한 의문점은, 어비스의 주인을 상대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
성지한은 인류 멸망 미션 때, 어비스의 주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던 거인.
그때는 그가 성지한을 상대하지 않았기에 가까스로 일격을 먹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가 대처를 할 테니, 상황이 다르겠지.
성지한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그때에 비해선 나도 많이 강해졌지만, 아직 확실히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군.’
예전에 미션을 받았을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성장한 성지한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비스의 주인에게는 확실히 이길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힘 자체만 놓고 보면, 아직도 그가 강력했지만.
변수가 있다면, 이번에 단검을 뽑아낸 태극마검이 그 역할을 해 주겠지.
‘……이 녀석에게만큼은, 확실하게 준비를 해서 가야 한다.’
만약 어비스의 주인과 싸우는 공간이 배틀넷 게임 속이었다면. 이 정도 전력 차로도 한 번 바로 도전을 해 볼 만했지만.
그는 엄연히 현실 세계의 북한 땅에 존재하는 상대였다.
거기에 또한 그는, 성지한의 누나인 성지아를 억류하고 있기도 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이길 자신이 있을 때 전투에 들어가야 했다.
‘이번에 대폭 강화된 적과 영원을 잘 활용해 봐야겠어.’
태극마검의 연성에 공을 들인 나머지, 그간은 좀 소홀했던 스탯 적과 영원의 권능.
이번에 두 능력이 붉은 세계수를 통해 대폭 강화되었으니, 이를 써먹을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야, 어비스의 주인도 이겨 낼 수 있겠지.
그렇게 성지한이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가십니까.”
뚜벅. 뚜벅.
어둠 속에서, 아소카가 걸어 나왔다.
분명 시스템 메시지에서 내진은 붕괴했다고 나왔는데, 아직도 형체를 유지하다니.
성지한이 신기한 듯 아소카를 바라보자, 그가 살짝 웃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잠시나마 소멸을 유예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할 게 뭐지?”
“스스로의 목숨을, 중히 여기십시오.”
“……뭐?”
기껏 남아서 이야기한다는 게, 살라는 이야기였나.
“당연히 중하게 여기지. 나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알아.”
“……조금 전, 공허의 마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시더군요.”
“그거야, 네 우려와는 달리 내가 거기에 잡아먹힐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금의 동요라도 있기 마련이건만…… 검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전혀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저하지 않아도 됐거든.”
자신은 괜찮다는 데에도, 묘한 확신을 지닌 채 그에게 말을 지속하는 아소카.
성지한은 그가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지,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포기한 것은 영원이지, 삶이 아니지. 목숨줄은 끝까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이상한 걱정은 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그래도, 언제나 자신을 우선하십시오. 그것이 생명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성지한은 그렇게 대답하며, 멸신결을 떠올렸다.
‘멸신결의 세 번째 권능인 회광반조. 그 권능도 그럼 아소카의 것이겠지?’
어떻게 써먹는지 감도 안 오는 회광반조.
성지한은 상대가 이렇게 걱정해 주는 김에, 이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무신의 권능 중, 회광반조란 것이 있는데…….”
성지한은 멸신결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회광반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아소카는 심각한 얼굴로 이를 경청했다.
“회광반조…… 입니까. 무신이 저를 흉내 낸 권능이라.”
“무신의 다른 멸신결은 그래도 써먹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겠는데. 이것은 영 감이 안 오더군. 이걸 써먹을 방법 없을까?”
“……방법을 말씀드리기엔, 제게 주어진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다만.”
푹!
아소카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금각禁覺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조각이 나왔다.
조금 전에 부서졌던, 금륜의 파편인가.
“이 물건을 지니고 계십시오. 그러면 한 번은 회광반조를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냥, 가지고만 있으라고?”
“네. 때가 되면, 알아서 발동할 것입니다.”
그렇게 아소카가 건네는 금륜 조각이 성지한에 닿자.
스으으으…….
금각이 새겨진 조각은, 빛이 되어서 성지한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그걸 보고 아소카가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저도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군요.”
스으으으…….
발끝부터 사라져 가는, 아소카의 육체.
그는 성지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며,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미래의 저에게, 왜 제가 금륜에 금각禁覺을 새겼는지 잊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뭐 언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만나게 되면 이야기하지.”
“그럼…….”
화아아아!
아소카의 모습이, 새하얀 빛에 잠겨 사라지자.
성지한은 구궁팔괘도가 원래 위치했던, 해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진이 붕괴되었는데도, 진이 남았군…….’
육합, 오행, 사상이 해제되었다는 구궁팔괘도.
외진이 파괴될 때도 3개씩 사라졌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진이 하나 있는 건가.
성지한은 이제 핵심부만 남은 구궁팔괘도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문양의 진이 대부분 해체되고.
중심부의 적색 점과, 이와 연결된 여러 선만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상황.
‘들어가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갈 수 있겠다만…….’
하나 성지한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핵을 깰 자신이, 아직은 없군.’
내진과 외진이 파괴되자, 진면목이 드러난 구궁팔괘도의 핵은.
성지한으로서도 아직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일단은 귀가해야겠군.’
아직은, 여기에 도전할 때가 아니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해저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펜트 하우스에는.
‘아무도 없네.’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설마 중국전이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중국전을 치르다 중간에 나왔던 성지한.
하나 구궁팔괘도 안에서 보낸 시간이 상당해서, 당연히 국가대표 게임은 끝난 줄 알았다.
‘봉인진도 안에 한 번 들어가면, 시간 개념이 영 혼란스러워진단 말이지…….’
TV 켜서 경기하나 확인해 봐야겠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리모콘을 찾을 때.
삑. 삑.
펜트 하우스의 문이 열리고.
“어, 뭐야. 삼촌이 먼저 왔네?”
윤세아가 일행과 함께 들어왔다.
* * *
중국전 5경기를 금방 마치고, 귀가한 윤세아와 윤세진.
거기에 같이 출전했던 소피아까지 껴서, 나름 조촐한 뒤풀이가 이뤄지고 있었다.
“처남, 일은 잘 끝났나?”
“네, 중국전은…… 승리했나 보군요.”
“처남 아니었으면 졌겠지. 운이 좋았어…….”
“진짜 4경기 졌을 때만 해도 언데드 버프 쓰고 가 주지 삼촌 원망했다니까? 다행히 이겨서 해피 엔딩이지.”
윤세아는 TV에서 중국전 리플레이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즈 MVP도 따고 말이야. 헤헤.”
“나도 따고 싶다…… 서포터는 정말 MVP 따기 힘든 거 같아요. 직업이 너무 수동적이야.”
“솔직히 5경기는 소피아 덕 많이 봤는데. MVP 평가가 아무래도 딜러들에게 치중되는 거 같아.”
성지한이 빠졌던, 중국전의 후반기.
그 게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하이라이트 영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특히 TV에서 많이 얼굴을 드러내는 건 윤세아.
공허의 힘을 사용하는 그녀는, 활시위를 놓을 때마다 상대 진형을 폭격하면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너 공허 꽤 세졌네.”
“응. 나도 삼촌처럼 초고속 성장은 못 하지만, 나름 발전은 한다고. 다만 엄마가 자꾸 공허 능력 더 이상 올리지 말라고 해서, 그게 아쉽긴 한데…….”
“누나가 다 너 생각해서 그런 거다. 공허…… 상당히 위험한 힘이거든.”
“에이. 근데 삼촌은 뭐 그리 공허를 마구 쓰고 다녀?”“나야 케이스가 다르지.”
성지한의 말에, 윤세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도 맨~날 한탄한다니까. 동생이 정말 말 안 듣는다고. 어릴 때도 저러더니 커도 똑같다고. 너는 제발 저렇게 자라지 말라고 성좌님께서 교육까지 하고 있어.”
“그건 세아 네가 어릴 때부터 누나가 맨날 하던 이야기잖아. 아직도 하냐?”
“응, 지겨워 죽겠어.”
“아빠 이야기는 안 하니?”
“……어, 응.”
“그래…….”
괜히 물어봤다가 본전도 못 찾은 윤세진은, 울적한 얼굴로 자신의 잔에 술만 따랐다.
“지한! 근데 무슨 일 하고 왔어요?”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있어서, 그거 좀 하고 왔습니다.”
“거기서 또 업그레이드요…….”
“1등 자리 계속 지켜야죠.”
“아니, 누가 삼촌 자리를 위협해…….”
“너?”
“대기만성 10개 있어도 안 되거든?”
윤세아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성지한을 바라볼 때.
부르르르…….
그녀의 폰이 진동했다.
“아, 진짜.”
그리고 진동에 핸드폰을 든 윤세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세아, 왜 그래?”
“저번에 쫓겨난 하프엘프 커뮤니티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삼촌이랑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나?”
“하프엘프 커뮤니티라면…… 그 길가메시를 추종하는?”
“스팸 차단해. 세아야.”
“했는데도 번호 바꿔서 계속 연락 와. 내가 바꿔야겠어, 그냥.”
길가메시가 엮여 있는 하프엘프 커뮤니티.
성지한은 거기서 윤세아에게 연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거기서 정확히 뭐라는데?”
“그냥 성좌께서 일이 잘되었냐고 물어보신다나? 할 이야기 있으면 운영자에게 쪽지 보내 달라고 하네.”
“그래? 그럼, 나 쪽지 하나만 보내자.”
“엑…… 진짜?”
“어, 길가메시한테 할 말 있어.”
성지한은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길가메시가 가르쳐 준 코드, [뱀의 목을 벨 시간이다]는.
페이크 코드로 판정났었지.
처음에는 이놈이 함정으로 그런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단, 무신의 음성대로 이놈이 그냥 우둔한 고객이라 당한 거 같아.’
성지한은 길가메시가 자신을 속였다기보단, 그도 속아넘어간 피해자라고 판단했다.
그럼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줘야겠지.
[길가메시. 니가 가르쳐 준 거 페이크 코드던데? 나무에서 불나더라.]
[무신이 너보고 우둔한 고객이란다.]
[권한을 빌려준 게 아니라 이미 넘어갔대.]
“……삼촌. 정말 이렇게 보내?”
“어.”
“성좌끼리의 대화인데, 너무 품위가 떨어지지 않아?”
“그딴 거 없어. 우리 사이엔.”
“……알았어. 보낸다?”
그렇게 윤세아는 하프 엘프 커뮤니티에서, 성지한이 말한대로 메시지를 보냈고.
[뭐라고……!? 내 권한이, 이미 무신에게 넘어갔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영자 직속 메시지가 윤세아 아이디로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