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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397화 (397/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397화>

“무신이 아니고, 당신이…… 시간을 돌리자고 했다고?”

성지한은 지금껏, 무신이 아소카의 금륜적보를 이용하여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있다고 추측했다.

‘성좌의 무구 속에는 그간의 힘을 저장해 두고, 계속 과거로 돌아가서 무구의 숫자를 늘린다…… 그러한 성좌의 무구는 모두 무신의 힘이 될 테니. 이게 쌓이고 쌓이면, 그는 압도적인 힘을 지니게 되겠지.’

애초에 지금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 무신인데.

성좌의 무구에 담긴 힘까지 사용하면,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정말 몇 없게 된다.

그 힘의 편린을 본 길가메시도,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성지한에게 협력하자고 먼저 제안하지 않았나.

“미래에서, ‘그’는 무신이라고 불립니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군요.”

무신이라는 칭호에 살짝, 비웃음을 머금은 아소카는.

“제가 그에게 제안한 것은 무한회귀無限回歸입니다.”

무한회귀를 거론했다.

“무한회귀…… 시간을 계속 과거로 돌린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대체…… 왜?”

“겁화에서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겁화라.

성지한은 붉은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저게 지구 전역을 불태우는 불길을 피워 올린다 이거지.

“그냥, 과거로 돌아가는 힘을 동방삭한테 써 주면 그가 부수지 않았을까?”

“그가 저 나무를 부술 정도의 마검을 꺼내면, 이 세계도 같이 무너집니다. 거기다.”

스르르릉.

아소카는 자신의 뒤에서 생겨난 황금의 수레바퀴를 매만졌다.

“지금 제가 지닌 힘으로는 동방삭을 과거로 계속 보낼 수가 없습니다. 무한회귀는 결국 무신과 협력을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시간을 돌리는 힘을 써먹기 위해서는, 결국 무신이랑 협업해야 한다는 거군.

결국 겁화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는 무신에게 무한회귀라는 당근을 건네준 건가.

“……인류가 그것 때문에 구원받았다면, 내가 태어난 것도 다 당신 덕이군 그래.”

“후후. 태어난 게 제 덕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손님의 부모님 덕이지요.”

“하지만 그 무한회귀 덕에 터무니없는 괴물이 탄생해 버렸어. 안 그래도 강력한 무신은, 과거로 돌아오면서 힘을 계속해서 축적해 나갔다…….”

“그렇군요. 그래도 인류…… 당신을 보아하니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 같은데. 그럼 된 것 아니겠습니까?”

멸망 위기에 놓인 인류를, 어쨌거나 수명을 연장시켜 줬으니.

자기 할 일은 다 했다 이건가.

“그럼 뒷일은 후손이 알아서 하라…… 이 뜻인가?”

“그랬다면, 미래의 제가 당신을 선택하지도 않았겠지요.”

“무신에 대항할 방책이 있다는 건가.”

“일단은.”

스으윽.

아소카는 가부좌를 튼 채 둥둥 떠올라 있는 동방삭을 가리켰다.

“이 세계의 봉인을 해제하여, 동방삭의 기억을 되찾아주십시오.”

“그의 기억을?”

“예. 무신이 인류 종을 버리려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동방삭 때문입니다.”

“……왜지?”

“한계가 설정되지 않은 종, 인류. 그 안에서 무수한 능력자들이 태어났지만, 그처럼 초월적인 무를 지닌 무인은 없었습니다.”

아소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행성 전역에 있는 적귀를 모조리 잡아 이곳에 봉인하고 세계수의 준동도 제어했습니다. 적귀를 통해 꾀하던 무신의 계획은, 동방삭 덕에 오랜 기간 저지당했죠. 그는 지금 동방삭이 수명을 다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떠도는 적의 일족 영혼을 잡아 와서, 세계수에 봉인하고.

이것들이 난리를 치지 않도록 600년간 여길 지키고 있는 동방삭.

저것은 인간 혼자가 했다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작업이었다.

‘아무리 봐도 동방삭이 무신에 어울린단 말이야.’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아소카에게 물어보았다.

“동방삭이 강한 건 미래에도 여전하지. 한데 이거랑 무신이 인류를 버리는 데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

“그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강박적으로 싫어합니다. 한데 종의 한계가 설정되지 않은 인류는, 동방삭을 탄생시켰죠. 그는 제2의 동방삭이 나올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종을 재설정하려고 합니다.”

동방삭이란 변수가 인류에서 태어났다고, 지구 불태우고 다른 데로 실험하러 가려던 거야?

‘무신 놈…… 속이 좁군그래.’

그때.

가부좌를 틀던 동방삭이 눈을 떴다.

“그대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낯이 부끄럽군. 뱀이 가장 두려워하던 건, 당신이지 않은가.”

“어찌 제가 그의 두려움을 사겠습니까?”

“나야 그저 힘만 썼을 뿐. 뱀의 계획을 매번 막아선 당신이야말로 그가 가장 걱정하던 상대지…….”

그는 그리 말하면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미래의 내가 태극에서 빛의 검을 뽑아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만.”

“그럼 그것은, 영혼을 멸하기 위해 연성한 검이 아니네.”

“……그럼 뭡니까?”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 힘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면서 동방삭은 찌푸린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자네. 그러니까 미래의 나에게는 예의를 지키도록 하게. 마검을 전해야 할 상대는 아무래도 자네밖에 없어 보이니까.”

“워낙 배운 게 많아, 나름대로 예의를 지키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존댓말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무신의 종한텐 바로 반말하거든요.”

“허 참…… 자랑이군그래. 자네. 미래에 돌아가서도 내 눈앞에서 무공 빼앗았다고 신나지 좀 말게. 수염이 거꾸로 솟는 기분이니까.”

“음…… 그거 이미 했는데.”

“……그런데도 잘도 살아 있구나.”

성지한을 탐탁지 않다는 듯 노려보던 동방삭은, 아소카에게 이야기했다.

“뱀의 종이 되자는 자네의 제안, 따르겠네. 뭐 저 친구를 보아하니 이미 따른 것 같네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스으으윽.

동방삭은 허공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커다란 붉은 뿔이 딸려 나왔다.

“이건…….”

“달기의 뿔이네. 내가 유일하게 모셨던 주군을 죽음으로 내몬, 탕녀의 것이지.”

달기라면, 강상 시절의 이야기인가.

성지한이 그 뿔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치이이익!

그 위로, 한자가 새겨졌다.

구세제민救世濟民.

“내가 만약 뱀을 따르며, 미혹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자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 이 뿔과 글귀를 보여 주게. 그러면 정신을 조금 차릴 거야.”

그러면서 달기의 뿔을 아소카에게 건네주는 동방삭.

아소카는 이를 받아 들며, 깊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세상 사람들을 구한다니. 이는 당신이 계속해 온 일 아닙니까. 이제는 쉬셔도 되는데…… 제가 짐을 드린 것 같아 정말로 죄송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네. 괘념치 말게.”

“……저도 다시금, 뜻을 다지겠습니다.”

스르르르…….

아소카가 황금의 수레바퀴에 손을 가져다 대자.

그 위로, 두 글자가 새겨졌다.

“금각禁覺이라. 깨닫지 않겠다는 건가.”

“당신을 이 일에 끌어들였는데, 저 혼자 떠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든든하군. 앞으로 뜻을 같이할 텐데. 말을 편히 하게.”

“그래…… 그리하지.”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의 뜻을 다지는 사이.

성지한은 제3자의 입장에서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신의 종 중, 둘은 그나마 신뢰할 만하겠군.’

현재 살아 있는 무신의 종은 총 넷.

그중, 길가메시는 원래 신뢰가 가지 않고.

피티아는 최근 묘한 행동을 연속해서 보여 주어, 믿음을 잃었다.

하나 동방삭과 아소카는, 이 봉인지에서의 행적이 사실이라면.

그나마 앞의 둘보다는 믿을 만한 상대인 것 같았다.

그때.

“미래의 손님께선, 어떤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까?”

“마음이라니?”

“무한한 회귀 속에서, 제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글쎄…… 구세제민처럼 그렇게 숭고한 뜻은 없는데.”

성지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그저 나랑 내 가족이 살기 위해서였으니까. 무신 놈이랑 어떻게든 대항하기 위해 이리저리 뛸 뿐이지.”

“살기 위해서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당신 정도면, 이 세계를 버리고 도주할 수도 있을 텐데요.”

도주라.

아마 어비스의 주인은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만.

성지한은 그러고 싶진 않았다.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 그냥 무신을 이기면 될 일이잖아?”

“그렇군요…… 맞습니다. 그냥 이기면 될 일이지요.”

씨익.

아소카는 그런 성지한의 대답을 들으며, 그 어느 때보다 기쁘게 웃었다.

“제가 당신을 잘 선택했군요.”

“……이런 대답에서 그런 결론이 나오나?”

“예, 충분히요.”

아소카는 그러면서, 세계수를 가리켰다.

“이제 그럼, 봉인을 해제해 주십시오.”

* * *

봉인 해제라.

저 뜻은, 길가메시가 가르쳐 준 암호를 작성하라는 건가.

‘이럼 구궁팔괘도의 외진을 풀어냈을 때보다, 더 쉽게 끝나네.’

아소카가 나와서 교통정리를 해 줘서 그런지.

이번엔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문자를 쓰면 봉인이야 손쉽게 해제가 되겠지.’

길가메시가 알려 준 문자는 ‘뱀의 목을 벨 시간이다’였다.

여기서 뱀은 이들도 거론한 대로, 무신이겠지.

그걸 작성하면 이번 진도 쉽게 해제할 수 있겠지만.

‘뭔가 아까워.’

이렇게 글자만 쓰고 끝을 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성지한은 나무를 묵묵히 바라보다, 동방삭에게 고개를 돌렸다.

“동방삭, 가르침 좀 줄 수 있습니까?”

“허, 뭘 더 강탈하려고 드느냐? 미래의 나한테 배우거라.”

“그 양반은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요. 다른 무공 말고, 이게 좀 궁금합니다만.”

스으으으…….

그러면서 성지한의 등 뒤에 태극이 떠오르자, 동방삭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태극마검…….”

“예, 여기서 전 이렇게 검을 만들어 내는 데 말이죠…….”

슈우우우!

성지한의 손에, 암검 이클립스가 피어오르더니.

태극 안에서 공허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허 속에서, 마검을 뽑아내는 것이 성지한이 태극마검을 만들어 내는 원리였지만.

‘스타 버프가 없으니 잘 안 되네.’

능력을 크게 증폭시켜 주는 스타 버프가 없어서 그런지 그의 검은 쉽사리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럼에도 관찰하기에는 충분한지.

“호오, 이건…….”

동방삭은 태극 속에서 힘이 요동치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았으며.

“아니……! 이 위험한 힘을 쓰면 어떻게 합니까?”

아소카는 크게 놀라며, 성지한을 얼른 만류했다.

“공허는 당신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킬 힘입니다. 이것은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을 갉아먹을 겁니다. 이것은, 절대 다뤄서는 안 될 힘입니다!”

“아니, 아소카.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보니까 태극에서 검이 곧 완성될 거 같은데…….”

“동방삭! 그는 무한회귀에 들어간 무신에게 대항할 사람으로서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그가 이렇게 소멸하도록 놔둬서야 되겠습니까?”

마검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동방삭에게, 아소카는 언성을 높였지만.

“그래? 아소카, 당신이 이걸 권했다만.”

“……예?”

“당신이, 마검에 공허를 쓰라고 가르쳐 줬다고.”

“제가…… 말입니까?”

성지한의 대답에, 항상 웃는 낯이던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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