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92화>
어느덧 10월에 들어선 지금.
동북아시아 지역 리그는 완연히 2강으로 나뉘어 있었다.
바로 한국과 중국으로.
전승 무패의 한국과, 한국에게 1패 한 것을 제외하곤 모두 승리를 달리고 있는 중국은.
동북아시아 리그의 1위를 결정지을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드디어 1위를 확정 지을 중국전이 열립니다!
=전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과, 저희에게 1패를 한 중국…… 하지만 여기서 중국이 승리를 가져갈 경우, 리그 1위 결정전을 또다시 치를지도 모릅니다.
=예! 저희나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는 1패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경기를 앞두고, 열성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해설진.
시청자들도 긴장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오늘 경기가 ㄹㅇ 중요하네.
-성지한 없이도 지역리그 1위 잘 수성했다 그래도 ㅎㅎ
-검왕 부녀랑 소피아가 큰 역할을 했지.
-큰 역할? 그 선수들이 다했지 뭘 ㅋㅋㅋ
-ㄹㅇ 다른 선수진은 아직 중국에 훨 밀리잖아.
-사실 저번 경기도 성지한 없이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어.
-ㅇㅇ 맵 운이 좋았지 ㅋㅋㅋㅋ
-아 이번에 제갈헌 엄청 세졌던데 솔직히 쉽지 않아보임…….
성지한 없이 중국을 이기긴 했지만.
사실 한국 시청자들도 모두 인정할 정도로, 그 경기는 운이 매우 많이 따라 줬었다.
이번에도 그런 운이 따라 주길 바라는 건 무리가 있었으니.
사람들은 자연히 국가대표팀에서 비어 있는 한 자리.
성지한을 떠올렸다.
-성지한님이 한 번만 나와 주면 안 되나…….
-애들 싸움에 어른 부르는 격인데 그거.
-에이 딱 한 번만 부르자 ㅎㅎㅎㅎ 빽 좋다는 게 뭐겠음?
-빵즈들은 성이 치르는 대업을 사소한 경기로 발목 잡지 마라.
-그래 인류를 위해 우주를 오가는 그를 국가대표 경기 따위에 부를 셈이냐?
-중국놈들 성지한 올까 봐 경계하는 거 봐라 ㅡㅡ
-정론이긴 하네 ㅅㅂ ㅋㅋㅋㅋ
한국 사람들은 성지한이 한 번 나서 줘서 1등을 확정 지었으면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스페이스 리그에서 인류의 승리를 책임지고 있는 데다가, 성좌 후보자가 되어서 홀로 아무도 밟아보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가.
이미 우승도 해 본 국가대표 경기를 나올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중국이 성지한 선수를 밴할지 안 할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번 경기에서도 중국은 확신을 지닌 듯 1경기부터 성지한 선수를 밴하지 않았죠? 다른 나라들은 1, 2경기는 성지한 선수를 밴하던 모습과는 대조되게 말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배틀넷 센터의 보안이 잘 안 지켜지는 거 아니냔 이야기가 많았죠.
=그래서 해설자님이 보시기엔, 성지한 선수께서 오늘 출전하실 것 같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근래 성지한 선수께서 큰 경기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이 경기까지 챙겨 주실지…….
해설자까지도, 성지한의 출전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상황.
하나 배틀넷 센터에서는.
“지, 지한아……!”
성지한이 그러한 예측을 뒤엎고 급작스레 방문한 상태였다.
“아, 감독님. 잠깐 놀러 왔습니다.”
성지한은 노영준 감독에게 꾸벅 인사하며.
“1경기에서 저 밴 안 하면, 가볍게 1승만 따 놓고 가겠습니다.”
“오, 저, 정말인가? 그럼 너무 고맙지!”
온 김에 1경기 출전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노영준 감독의 얼굴에, 대번에 화색이 돌았다.
‘안 그래도 제갈헌이 강해져서 걱정이었는데, 지한이가 출전한다면 이번 게임 쉽게 이기겠어……!’
성지한이 벌어 온 종족 보너스 덕분에, 엄청난 수혜를 보게 된 중국 대표팀.
이에 반해 한국 대표팀은 원래 약점이 마법사 클래스였던지라, 전력 차이가 더욱 커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지한이 출전하다면 다르지.
“아, 그런데 지한아. 이왕 출전할 거…… 잠깐 여기 감독실에 있다가 1경기 시작 전에 나와줄 수 있겠니?”
“감독실에 있다가 말입니까?”
“그래. 사실 저번 중국과의 경기 때, 저쪽에서 우리 쪽 전략을 상당히 많이 파악해 뒀었거든. 네가 없는 것도 실시간으로 알았는지, 밴도 안 하고 말이지.”
“내부에 중국에 정보를 넘기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아마도. 몇몇 사람이 의심되기는 하는데, 아직 확실하진 않아.”
노영준 감독을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하나 지금 당장은 스파이 색출보다, 이번 경기 승리가 더 중요하니까. 감독실에 잠시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센터의 선수 대기실로 와 줬으면 하네.”
“그렇게 하죠. 감독실 구경이나 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편히 쉬고 있게. 금방 경기 시작할 거야.”
스으윽.
노영준 감독이 그렇게 감독실에서 나가고.
성지한은 감독실을 잠시 둘러보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들 내가 출전할 거라 생각은 안 하는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피식 웃던 성지한은.
똑똑.
“……계십니까?”
밖에서 스태프로 추정되는 사람듸 목소리가 들리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가 들어오면, 없는 척하면 되겠지.
일반인을 상대로 기척을 숨기는 거야, 성지한 정도 경지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똑똑똑.
“……성지한 님. 계십니까?”
그 스태프는 성지한의 이름을 콕 집어, 다시 노크를 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이제 경기가 시작될 거라서 감독님이 코칭스태프에게 호출을 부탁한 건가?’
아직 시작하려면 몇 분 더 남았는데.
성지한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그에게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코칭스태프.
평범한 인상의 청년은, 지친 안색으로 성지한 쪽을 향해 걸어왔다.
“감독님이 지금 출전하시랍니까?”
“아니요. ‘그분’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분? 그분이 누구죠?”
“그분은…….”
코칭스태프는 누가 있는지 확인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성지한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길가메시 님…… 입니다.”
* * *
‘길가메시…… 그놈 참 활동 한번 활발히 하는군.’
성지한은 스태프에게 길가메시의 이름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길가메시의 위험성에 대해서, 여러 번 대중들에게 알렸음에도.
그는 어째 음지에서 계속 세력을 키워 온 것 같았다.
이렇게 한국인 스태프까지, 길가메시의 말을 전한다고 하는 걸 보면.
“그래…… 뭐라고 합니까?”
성지한은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보잔 심산으로 스태프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투성의 비밀에 대해 알려 주겠다…… 고 하셨습니다.”
“투성의 비밀?”
“예. 듣고 싶다면 이번 중국전에 꼭 나오시라고 하십니다.”
“거기야 뭐, 나갈 생각이었습니다만.”
왜 콕 집어 중국전에 나오라고 하는 거지?
‘중국 선수들을 이미 후원하고 있나.’
저번에 종족 진화 때 다이아 TOP 100을 후원했던 성지한.
그 안에는 중국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근데 길가메시는 그 중, 성지한에게 후원받지 않은 이들에게 손을 뻗은 건가.
진짜 끈질긴 놈이군.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사표도, 내겠습니다.”
길가메시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게 들켰으니, 사표를 내겠다는 상대.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후원을 받은 겁니까? 플레이어도 아닌 것 같은데.”
“후원이라니. 감히 태초의 왕께 제가 어찌 후원을 받겠습니까? 다만 그분의 전언을 들었을 뿐입니다.”
“어디서 들었죠?”
“……가족 중에, 종족 진화 후 귀가 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귀가 나왔다라.
“가족이 하프 엘프 커뮤니티에 들어간 겁니까?”
“예, 거기서…… 왕의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윤세아도 들어갔었던, 하프 엘프 커뮤니티.
거긴 ‘투성의 주인’이란 이름으로, 길가메시가 성좌명을 바꿔서 활동하며.
귀 나온 플레이어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하면서 세력을 넓히던 곳이었다.
‘배틀넷 연맹에게 이곳에 대한 대책을 부탁했는데 어째 세력이 더 커진 거 같군.’
역시 배틀넷 연맹.
일 처리가 빠릿빠릿하질 못하네.
‘그래도 이 일까지 내가 처리할 순 없어.’
안 그래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외국에서 만들어진 하프 엘프 커뮤니티까지 폐쇄하러 쫓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경고야 줄만큼 줬으니, 이러고도 처리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스태프가 나가고 얼마 안 있어.
부르르르…….
성지한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한아. 이제 시작한다.]
노영준 감독에게서 온 전화였다.
* * *
배틀넷 센터의 선수 대기실.
“서, 성지한 선수……!”
“오늘, 출전하시기로 하셨나?”
“감독님껜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
한참 게임을 준비하던 선수들은, 성지한이 들어서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와…… 성지한 선수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뭐야. 너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어?”
“네! 저 슈퍼컵 이후 들어왔거든요!”
슈퍼컵 이후에 국가대표에 들어온 선수들은 성지한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서도, 그는 이제 우상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으니.
신입 국가대표 선수 중에선, 성지한을 직접 보고 싶어서 국가대표를 꿈꿨다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흠…….’
성지한은 그런 선수들을 한번 둘러보다, 노영준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바로 준비하면 됩니까?”
“그래. 이제 바로 밴, 셀렉트 카드를 뽑을 시간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성지한이 출전 준비를 하자.
“오…… 진짜 같이 출전하는 거야? 성지한 님이랑?”
“중국전 걱정했는데 손쉽게 이기겠네.”
“그러니까. 지역리그 1등은 확정이다.”
1경기를 걱정하던 선수단의 분위기가 금방 풀어졌다.
하지만.
=자…… 드디어.
=1경기 밴, 셀렉트. 이제 시작합니다!
=어…… 중국 감독! 대표팀의 1위를 밴합니다…….
=이건 성지한 선수를 밴하겠다는 뜻이죠! 저번 경기에선 1경기부터 풀어 주더니, 이번엔 판단이 180도 다르군요?
=아무래도 중요한 경기라, 성지한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중국 감독이 성지한을 밴하자 선수단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떻게 알고 성지한 님을 밴한 거지…….”
“그냥 제갈헌도 강해졌겠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봉쇄하려고 그런 건가?”
“그래도 이상하네…….”
저번과는 180도 다른 중국 감독의 판단을 두고, 선수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성지한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길가메시는 분명, 중국전에 나오라고 했는데.
중국 감독이 어찌 알고 딱 밴을 해 버렸네.
‘아까 그 스태프는 길가메시의 명을 받고, 나에게 경기에 나오라고 했으니 범인이 아닐 테고…….’
감독실에 오기까지, 마주친 사람도 없으니.
중국 감독에게 성지한의 소식을 전할 사람은, 이 선수 대기실 안의 사람밖엔 없다.
‘지금이야 다들 놀란 척하지만…….’
스으윽.
성지한이 무혼을 통해, 감각을 증폭시키자.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 심장 박동이 필요 이상으로 빨리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봐 볼까.’
휙.
성지한은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던 남자의 옆에 섰다.
“히익? 뭐, 뭐…… 뭡니까?”
그러자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는 남자가 폰을 얼른 더 터치하려 했지만.
“실례 좀 하죠.”
스으으윽…….
그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저절로 빠져나가더니.
성지한의 눈앞에 둥둥 떠올랐다.
[긴급. 성지한 출전.]
폰 화면 위에 짧게 떠올라 있는 메시지.
성지한은 그걸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국가대표 선수가 경쟁국에 정보를 팔아먹을 줄은 몰랐네요.”
“아. 이, 이건…….”
“아니, 진수 너…….”
“설마 네가 보낸 거야? 저번에도?”
성지한이 문자를 만천하에 공개하자, 사람들이 경악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보가 새어 나가도 스태프 쪽이 루트가 아닐까 싶었는데.
국가대표 선수까지 되놓고 왜 정보를 팔아먹어?
“이분은 퇴출시키구요.”
“아. 저, 그게, 잠시만요. 그…….”
“스태프분들이 데리고 가긴 힘들겠군요. 점혈 찍어드리겠습니다.”
탁. 탁.
동방삭에게 배운 역천혼류를 남자에게 쓰자.
“억…….”
그대로 꼼짝도 못 한 채 픽 쓰러지는 범인.
무혼이 봉쇄돼도 움직일 순 있었던 성지한과는 달리, 이 사람한테는 효과가 너무 좋았다.
‘……그래도 호흡은 하네.’
성지한은 상대가 숨은 쉬는 걸 확인하고는, 스태프들에게 이 사람을 내보내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들것에 실려 쫓겨나가는 범인.
“와…… 중국팀. 준비 철저하네. 국가대표 선수를 매수할 줄은 몰랐어.”
일련의 소동을 지켜본 윤세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다가왔다.
“근데 삼촌…… 저 사람이 범인인 줄 어떻게 알았어?”
“심장이 좀 빨리 뛰길래 혹시나 해서 가 봤지.”
“……그게 느껴져?”
“알려고만 하면, 다 알 수 있지.”
“역시 성좌 후보님…….”
윤세아는 그러면서 입맛을 다셨다.
“중국전 삼촌 덕에 쉽게 이기나 했더니 아쉽게 됐네. 밴 당해서.”
“내 덕을 왜 못 봐?”
“응? 그야…… 못 나가잖아?”
“다른 방식으로 덕을 보면 되지. 세아야. 오랜만에 언데드 좀 되어 볼까?”
“아……!”
아무리 저쪽에서 성지한의 출전을 막아 보려 한들.
그가 써먹을 수 있는 카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치트키 쓰려고?”
“어, 첩자를 심은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오늘 경기, 빅매치라고 사람들이 기대 많이 했는데…… 게임 시시해지겠네.”
“그래서, 싫어?”
“아니. 완전 좋은데? 자고로 게임에선 꽁승이 최고잖아.”
씨익.
윤세아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삼촌을 대신해서, 다~ 박살 내고 올게.”
그리고, 곧바로 진행된 게임에서.
=어……!
=유, 윤세아 선수. 돌진합니다!
=이건, 언데드화인가요……!? 무지막지한 위력이군요!
=중국의 진영, 무너집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