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84화>
“……금륜? 그게 뭐지?”
길가메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묘한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이것은 너와의 계약과는 관련 없는 사항. 네게 알려 줄 의무는 없다.]
하나 무신은 길가메시에게 그리 통보한 후.
[아소카, 지금 당장 금륜적보를 꺼내라.]
아소카에게 다시 한번 명령했다.
그러자.
스으으으…….
피티아가 만들어 낸 얼음의 벽 뒤에, 아소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연한 얼굴로 무신과 그의 종을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명령, 지금 당장 이행하기는 힘드오.”
[뭐…… 네가 나의 말을 거역한다고?]
“관리자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히 모인 때요. 지금 급히 금륜을 돌리다가는, 그들의 개입으로 실패할 수도 있소.”
[허튼소리 하지 마라. 관리자의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 집중될 것이다. 지금이 가장 적기이다. 아소카. 당장 돌려라. 계속 거역한다면…… 내가 직접 돌릴 것이다.]
무신이 눈을 붉게 번뜩이자, 그의 몸에서 검붉은빛이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것이 곧 투성의 상공에 별처럼 떠 있는 무구에 닿자.
화아아악!
무신의 힘이 크게 증폭하기 시작했다.
검붉은빛에 연결되어, 무신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성좌의 무기.
‘이 무슨…….’
무신에게 뭐라고 말을 더 해 보려던 길가메시는, 그걸 보고는 입을 닫았다.
하늘에 수놓은 성좌의 무구.
저걸 무신이 그냥 기념으로 놔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를 강화해 주는 수단이 될 줄은 몰랐다.
‘……그가 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인류가 하급으로 성장하고 나서.
군림 성좌로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힘을 기르다보면 무신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재의 무신을 보니, 그건 완전히 판단 착오였다.
성좌의 무구 일부만 흡수해도 저 정도인데, 투성에 있는 모든 무구를 흡수한다면…….
‘무신을 이겨 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군…….’
그렇게 길가메시가 무신의 진정한 힘을 한 꺼풀 더 보고, 생각에 잠겼을 때.
아소카는 용솟음치는 무신의 기운을 마주하고도 태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거 아시오? 투성의 별…… 어느 순간부터 숫자가 늘어나질 않는다는 걸.”
[…….]
“무신. 당신의 계획은 그동안 효과적이었지만, 이제는 발전에 한계가 봉착했소이다.”
[아직, 한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면, 우리는 무한히 금륜을 굴려야겠지…… 당신도 답보 상태임을 알고, 인류의 진화를 도운 것 아니오?”
[……그렇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관리자들은 지금껏 인류가 최하급이라 개입하지 못했을 뿐, 사실은 이곳을 계속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성지한의 채널에 등장했던 세 관리자.
이 중 녹색의 관리자야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관리자라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백색과 흑색의 관리자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한데 인류가 하급 종족이 되자마자, 얼굴을 비추다니.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야, 겉으로는 성지한을 주목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관리자의 주목은 형식상의 이유일 뿐. 실상은 성지한을 통해 투성의 사정을 조사하려는 것이겠지. 증거도 없이 관리자가 이곳을 직접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잘 아시는구려. 그러니 지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오. 저들의 시선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
[한 번 시작된 관리자의 감시는 끊기지 않는다. 그들은 집요하게 이곳을 살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초기화해야 한다. 아직은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
‘초기화?’
초기화라니.
길가메시는 무신의 말에서 의미심장한 단어를 포착했다.
금륜을 돌려라.
그리하여 모든 것을 초기화해야 한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 설마.’
길가메시가 눈빛을 가라앉혔을 때.
“관리자의 눈이 될, 성지한이 사라지면 되지 않소?”
[……성좌 후보자인 그를 없앴다간, 관리자의 더 큰 개입만 불러온다.]
“성좌가 된 후 죽인다면?”
[그게 원래 생각한 방법이었으나, 관리자의 눈이 그에게 부여된 이상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손으로 죽이지 않고, 제3자의 손에 죽으면 어떻겠소?”.
화르르르……
그러며, 아소카의 앞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고 찬란하게 타오르는 적색의 불꽃 속에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 붉은 눈이 박혀 있는, 보랏빛의 거대 거인.
하나 보랏빛의 몸과는 달리, 머리는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비스의 주인. 그가 성지한을 죽일 것이오.”
[……그놈이 어비스의 주인과 싸운다고?]
“그렇소. 그의 친족이 어비스의 주인에게 억류되어 있지. 그리고 내가 제안한 것도 있었소. 그를 이긴다면, 무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겠다고.”
[…….]
자신의 정보를 팔았다고 아소카가 이야기했건만.
무신의 기운은, 오히려 전보다 한결 침착해졌다.
어비스의 주인.
그가 지닌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에 대해서는, 그도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성지한이 강해졌다 한들, 어비스의 주인 만큼은 이기지 못한다.
슈우우우…….
성좌의 무구와 연결되었던 검붉은빛이 사라지고, 무신의 힘은 예전와 같은 정도로 축소되었다.
[그가, 어비스의 주인과 싸워 죽는다라…….]
“관리자의 눈도 사라지고, 그들의 개입도 힘들어질 것이오. 그리고, 이번엔 성지한과 같은 특수한 자가 있었으니.”
아소카는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투성의 별도, 다음에는 더욱 늘어나지 않겠소?”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얻는 것도 클 거라는 건가.]
“그렇소이다.”
무신은 두 눈을 붉게 번뜩이며, 아소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며 곧, 길가메시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강렬한 살기가 피어올랐지만.
아소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짝 숙여보았다.
[……좋다. 하지만, 이번만이다. 다음에는 방종을 용납하지 않겠다.]
“충언을 들어주어 감사하오.”
[마음 같아서는 널 다시 봉인하고 싶지만…… 그렇게 힘을 낭비할 때가 아니군.]
무신의 형체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봉인되어 있을 때처럼, 조용히 있도록.]
“그리하겠소.”
[너희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도록 하라.]
그러면서 특히, 길가메시를 지그시 바라보는 무신의 눈.
길가메시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에게 반문했다.
“넌 뭘 할 셈이지?”
[관리자의 감시를 차단할 것이다.]
스으으으…….
그러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무신.
아소카는 그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은…… 벌었다.’
방랑하는 무신.
그는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과했다.
그렇게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작은 변수 하나에, 시간을 되돌리는 금륜적보를 사용할 만큼.
그런 그가 아소카에게 설득이 된 건.
성지한이 싸워야 할 상대가 어비스의 주인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성지한의 재능이 과연 태극의 망혼을 넘을 수 있을까.’
애매하군.
아소카는 성지한이 뽑았던, 태극마검을 떠올렸다.
검 손잡이만 튀어나왔지만, 가능성은 나름대로 보여 주었지.
‘……아니. 생각해 보면 그만한 사람도 지금껏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오긴 힘들 터. 이번에 어떻게든, 끝을 보아야 한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저벅. 저벅.
아소카를 향해, 무신의 종 셋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성지한을 도울 수 있는 변수는…….’
아소카의 눈이 그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가 그중 유심히 살핀 건, 피티아도 동방삭도 아니라.
‘그가 되겠군.’
무신의 힘을 보고는 기세가 한풀 꺾인 길가메시였다.
* * *
[스타 리그로 올라선 성지한. 전인미답의 길을 계속 걷다.]
[외계인이 경악한 관리자의 강림. 조작설을 잠재운 건 ‘빛의 눈’.]
[업그레이드된 성지한 채널의 기능은?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보다 다양해져.]
[인류의 군림 성좌로 드러난 세 사람의 정체. 가장 의아한 사람은 역시 피티아.]
스타 리그로 가는 승급전, ‘왕위 계승식’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이 게임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은 상태였다.
-외계인들 죄다 조작조작 거리더니 빛의 눈 생기니까 모두 입 다물던데 ㅋㅋㅋ
-관리자가 근데 그렇게 대단한 거임?
-그냥 걔들이 배틀넷의 신 아니야?
-근데 배틀넷에 나름 신들도 있었잖아. 예전에 뇌신도 그렇고.
-걔네들보다 몇 급 더 위겠지 외계인 놈들이 저 난리 치는 거 보면 ㅋㅋㅋ
관리자에 대해서는 외계인들보단, 그다지 존재감을 체감하지 못하는 인류 시청자들은.
그것보다는 성지한의 채널 변경 쪽이나, 인류의 성좌 쪽으로 관심을 집중했다.
-성지한 채널 봄?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자기 혼자 새하얗게 반짝거리더라 ㅋㅋㅋ
-근데 빛의 눈도 그렇고 채널 옵션도 그렇고…… 변경점이 뭔가 엄청 체감은 안 되네.
-방송을 해 봐야 알 거 같음 ㅇㅇ
-근데 인류 군림 성좌들은 좀 뜬금없지 않았냐?
-아소카 왕은 뭐 그렇다 치는데 피티아는…… 그냥 그리스 예언자 가리키는 말이라는데? 예언자가 왕들 다 제치고 군림하네 ㄷㄷ
시청자들이 보기엔, 채널 겉이 반짝이는 거나 세부적인 기능이 몇 개 추가된 게 끝이었던 성지한 채널.
빛의 눈 마크도 화면 옆에 생성되긴 했지만, 막상 이게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는 체감할 수가 없었다.
하나 그렇게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시청자들과는 달리.
‘뭐 이리 추가 기능이 많아.’
성지한은 백색의 관리자가 업그레이드해 준 자신의 배틀튜브 채널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채널 업그레이드라고 해서 뭐 별거 있겠나 싶었는데.
채널 개설자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나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성지한은 채널에 대해 좀 공부해 보려고 하다가.
‘……세부적인 건 하연 씨한테 맡겨야겠군.’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상세 옵션을 보고는 분석을 포기했다.
복잡한 건, 그냥 길드 마스터에게 넘기는 게 낫겠어.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빛의 눈이야.’
어제 게임에서, 시청이 차단돼서 스타 버프를 받지 못했던 성지한.
능력치 +80퍼센트가 사라지니, 확실히 태극마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의 부재가 뼈아팠다.
‘무의 재능이 부족한 것도 검을 완성시키지 못한 원인이겠다만…….’
성지한의 재능을 애매하다고 이야기했던 아소카.
이 말을 들었을 당시만 해도 사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하루가 지난 후, 그는 이를 순순히 긍정하고 해결 방법을 찾았다.
‘동방삭처럼 천부적인 무재를 지니지 않은 이상, 다른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부족한 재능을 메운다.’
뒤떨어지는 무재를 키우기 위한 정공법은, 아무래도 수련이겠지만.
성지한의 눈앞에 놓인 현실은 그렇게 한가하질 않았다.
어비스의 주인이나, 동방삭. 그리고 무신 등.
상대해야 할 강적들이 즐비했으니.
수련은 수련대로 한다고 쳐도, 이들과의 격차를 메울 만한 수단도 똑같이 마련해야 했다.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스타 버프겠지. 저번처럼 안 막히는지 보기 위해, 빛의 눈을 테스트해 보고 싶은데…….’
실험을 해 보고 싶어도, 일단 채널 시청이 막혀야 하는데 말이지.
성지한이 어떻게 방법이 없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레나의 주인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공허의 수련장 수리가 끝났습니다. 한번 와 보시겠습니까?
‘호오.’
마침 테스트하기 적당한 장소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