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82화>
“나 같은 사람…….”
“그래.”
아소카의 눈이, 기이한 열기를 띠었다.
“자네는 놀라울 정도로 수명에 관심이 없어. 내가 공허를 사용하면 인류종의 수명으로 끝이 날 거라 경고했음에도, 태극마검의 완성을 우선시했지.”
“백 살이든, 천 살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어차피 무신이랑 그전에 싸우게 될 텐데, 그때까지 어떻게든 힘을 키우는 게 낫다.”
성지한은 무슨 유난이냐는 듯, 아소카를 바라보았다.
무신이라는 적이 있는데, 그를 이기기 전까지는 백 년이든 천 년이든 뒤가 어디 있나.
오히려 이렇게 어떻게든 힘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살아남는 데는 더 유리하지.
“하지만, 자네는 미혹도 없지 않았나.”
“그건…….”
“생명체라면, 계속 살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본능. 하나, 자네는 주저 없이 공허를 끌어올리더군.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말이야.”
성지한은 그 말에 조금 전을 떠올렸다.
아소카가 수명을 거론했을 때.
정말 이게 하나도 신경 쓰이질 않았지.
이건, 꼭 오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예전에 공허를 받아들였을 때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수명과 비슷한 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생각이 똑같았지.
‘지금 당장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지, 미래의 내가 얼마나 사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런 인식이 성지한에게는 확고했다.
“힘을 완성해야 무신을 극복할 수 있다. 난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만.”
“그렇게 목숨을 줄여 가며 힘을 추구하는 자네가, 아까의 쉬운 길은 왜 가지 않았나?”
“제물 바치는 걸 말하는 건가?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성지한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태극의 망혼 속의 ‘성지한’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힘을 기르다 거기로 가게 된 걸까.
“후후…….”
한편, 성지한의 대답을 들은 아소카의 입가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시험 2개를 모두 통과했군. 자네는, 지금까지 내가 기다려 왔던 사람이야.”
“……제물과 공허가 시험이었던 건가.”
“그렇다네.”
스탯 적을 얻어, 최하층에 있는 자신에게 오라던 아소카.
하나 그가 시험하고자 했던 건, 따로 있었다.
과연 힘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길로 빠져, 인간을 제물을 바칠 것인가.
그리고 검의 완성을 위해 수명을 포기해야 할 순간, 미련을 보이지 않을 것인가.
성지한은 두 가지 모두 아소카가 기대하는 바대로 통과했다.
그리고.
“무신에게 대항하기 위한 조건은 충족했지만…… 마지막 시험이 남아 있네.”
“마지막은 뭐지?”
“재능.”
아소카는 손가락을 폈다.
“무의 재능을 입증해야 하지.”
뭐야.
그게 결국 제일 중요한 거잖아.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태극의 안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용솟음치는 공허.
“이 안에서, 마검을 꺼내야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는 건가.”
“그러네. 자네가 검을 꺼내면, 군림의 왕위가 계승됨은 물론. 더 많은 보상을 주겠네. 꺼내기만 해 주게.”
어째 당사자보다도, 태극마검의 완성을 더 기대하고 있는 아소카.
성지한은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내부로 정신을 집중했다.
동방삭과는 달리, 공허를 검의 재료로 써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쉽지 않군.’
단서는 잡았어도, 검을 완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반가면을 통해서, 증폭된 공허가 계속 태극의 안으로 들어서고.
일부는 그 안에서 뭉치고, 일부는 아예 소멸하고를 반복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자.
[공허가 5 감소합니다.]
평소 가면을 쓰면 늘어나기만 하던 공허 수치가.
처음으로 감소세에 들어섰다.
‘공허가…… 여기서 없어지네?’
이러면 공허 수용 한도를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겠는데?
너무 올랐다 싶으면, 태극마검의 태극에 넣어 없애 버리면 그만이니.
성지한의 뜻밖의 효용을 보고 눈을 빛낼 때.
쩌저적……!
반가면에 한 줄, 금이 갔다.
‘아니, 여기에 균열이 가다니…….’
세계수 연합에서 만든, 공허 처리장.
힘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지금껏 유용하게 써먹었는데.
얻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러는 건가.
스으으으…….
가면에 금이 가자, 흐트러지는 공허의 흐름.
아소카는 아래에서 그걸 보면서, 아쉬움을 토해 냈다.
“다른 건 다 충족했는데, 재능이 없는가…….”
인류의 정점에 누구보다도 빨리 섰던 성지한은, 재능 없단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거 은근 기분 나쁘네.
‘공허의 흐름부터 안정화시키자.’
금이 간 가면 속에서, 어지러이 움직이는 공허를 컨트롤하며.
성지한은 검을 만들어 나갔다.
처음 그가 만들고자 한 건, 자신이 가장 손에 익은 암검 이클립스를 닮은 검이었지만.
‘그 정도 크기는, 현 상태론 유지하지 못해.’
암검 정도의 크기로 검을 만들기엔, 공허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은 작게라도 완성한다.’
애초에 아소카의 시험은, 태극에서 공허로 만들어진‘검’을 꺼내는 것.
검의 형태야 중요하지 않았다.
성지한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지, 얼마가 흘렀을까.
슈우우우…….
크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태극이, 다시 불안하게 커지기 시작하고.
강렬한 기운이 그 안에서 사방으로 터질 듯이 튀어나왔다.
“……끝인가.”
아소카는 그런 태극을 보고는, 아쉬운 얼굴로 금륜적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바퀴의 끝을 이루는, 황금의 두개골.
지금까지는 저절로 돌아가던 바퀴를.
이번엔 아소카가 직접 돌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
치이이익!
일렁이는 태극 속에서, 성지한이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자.
“그건…….”
금륜적보를 밀려던 아소카의 손이 멈칫했다.
* * *
“음…… 뽑긴 했는데.”
푸슈우우…….
태극에서 오른손을 꺼낸 성지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보랏빛 기운이 일렁이는 검의 손잡이였다.
그것도, 그의 손 크기의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은.
“…….”
말없이 이를 지켜보던 아소카가 발자국을 떼자.
휘이잉!
최하층에 있던 그의 몸이, 어느덧 성지한의 옆으로 이동해 왔다.
“흠…… 애매하구나.”
“애매해?”
“그래. 네 재능이.”
아소카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로, 성지한이 꺼낸 물건을 유심히 관찰했다.
“종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의 무재는 아니나…… 인류의 범주는 그래도 쉽게 넘어서 있구나.”
“종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라니…… 바라는 게 그 급이었나?”
“그래. 동방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아래 정도이길 원했지.”
그럼 동방삭은 종을 아득히 초월하는 무재에서, 한 단계 더 위란 이야긴가.
‘그가 괴물인 건 진작에 알았지만, 무재를 저거보다 더 윗급으로 평가할 줄이야.’
성지한은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끼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시험은 탈락인가.”
“아니, 어디 한번…….”
휙!
아소카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최하층으로 돌아갔다.
성지한의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었던 움직임.
‘세 번째 종 아소카…… 이자도 상당한 재능을 지닌 것 같은데.’
그는 발걸음 한 번으로 공간을 뛰어넘는 아소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종을 아득히 초월하는 무재…… 설마 자기 자신의 급을 가리킨 건가?
“그 물건을 들고, 여기까지 와 보게.”
“그러지.”
성지한이 그렇게 보랏빛의 검 손잡이를 들고 내려가자.
드르르륵…….
아소카의 뒤에 있던 금륜적보가, 한바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 전만 해도, 저러면 시간의 흐름이 되돌아갔지만.
스으으으…….
검 손잡이에서 보랏빛 연기가 피어오르자.
“오……!”
성지한의 육신은, 시간 역행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드륵. 드륵.
그런 성지한을 뒤로 물리기 위해, 몇 번이고 저절로 돌아가는 금륜적보.
하나, 다른 건 다 복구되어도.
성지한만큼은 위치가 과거로 돌아가질 않았다.
그리고 방해가 들어오지 않자.
탁!
성지한은 최하층으로 바로 착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웠군.”
아소카가 시간을 되돌릴 때만 해도, 영원히 내려가지 못할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막히니 아래로 도달하는 건 금방이었다.
다만.
‘아소카가 아까 내려갈 때보단, 확실히 내가 늦었어.’
한 발자국을 떼자마자 공간을 아예 뛰어넘어 버리는 움직임.
그건 인류의 무공을 모두 익힐 수 있는 성지한으로서도, 알쏭달쏭한 움직임이었다.
동방삭이 만든 무공도 태극마검을 제외하곤 모조리 습득할 수 있었는데.
왜 저건 감도 안 오는 거지?
성지한이 그리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아소카가 그런 그를 복잡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되기는 되는구나…….”
성지한의 검 손잡이를 계속해서 바라보던 아소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폈다.
스으으으…….
그러자 그의 손에서 생성되는 황금의 왕관.
“약속한 왕위는 주겠네.”
그는 그걸 성지한에게 미련 없이 넘겼다.
성지한의 손에 황금 왕관이 닿자, 곧 떠오르는 메시지.
[성좌 ‘아소카’에게서 왕위를 계승받았습니다.]
[물려받은 아소카의 군림 특성이 플레이어에 비해 아득히 높습니다.]
[성좌 특성 ‘군림’의 레벨이 2 오릅니다.]
‘레벨이 2나……!’
아소카가 군림 레벨 8이라고 했던가.
비록 이걸 모두 계승받진 못해도, 현재 상태에서 군림 레벨이 2나 오른 건 엄청난 성장이었다.
“그리고 추가적인 보상과 정보는…… 아직은 넘길 수가 없다네.”
“검을 꺼내지 못해서?”
“그러네.”
아소카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더 많은 걸 주기 위해선, 금륜적보를 내 손으로 부수어야 하네만…… 아직은 자네에게 완벽한 확신이 없어.”
“흠…….”
“하지만 자네가 심연 속의 자신을 이겨 낸다면…… 확신이 생겨날지도 모르지.”
심연 속의 자신?
성지한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다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어비스에 있는, 태극의 망혼을 일컫는 건가?’
북쪽 어비스의 주인.
태극의 망혼 속에는, ‘성지한의 조각들’이 있었다.
아소카가 심연 속의 자신이라고 콕 찝어 말한 걸 보면, 그가 말한 상대는 아무래도 태극의 망혼이 맞겠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어떻게 아는지도, 알려 주겠네. 자네가 자신을 이겨 낸다면.”
“……허. 아는 것이 끝도 없군. 당신, 정말 아소카가 맞나?”
“아소카는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일 뿐. 나의 본질은…… 그저 우둔한 자이네. 깨닫지 못하여, 방황하는.”
우둔한 자라.
그런 이가 태극마검의 공허를 알려 주고.
어비스의 주인의 정체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건가.
성지한은 아소카의 뒤편에 있는 금륜적보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돌리는 힘을 지닌 물건.
‘저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성지한이 유심히 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금륜적보가 사라지더니.
-아니 뭐야…… 불 꺼지더니 게임 끝났네?
-심지어 성지한 승리야;
-뭔 일이 벌어진 거임…….
채팅창에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차단된 배틀튜브가, 다시 열린 것이다.
“그럼…… 좋은 결과 기다리겠네.”
아소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성지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끝나자, 단번에 사라지는 그의 신형.
‘……정체를 모르겠군.’
성지한은 아소카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성좌 게임 ‘왕위 계승식’을 클리어했습니다.]
[특수 맵 ‘겁화劫火’에서 로그아웃됩니다.]
게임 맵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