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80화>
‘이건…… 3번째 종이 한 것인가.’
손가락이 나아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
계속 미세하게 반복되는 이 현상은, 성지한도 예전에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이 역전되는 현상.
이는 멸신결, 회광반조가 제대로 사용되었을 때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한데 이게 지금, 피티아의 왕위 계승식을 막기 위해 펼쳐지다니…….
‘마지막 군림 성좌는 3번째 종일 것 같군.’
성지한은 그렇게 판단하며, 동시에 의문을 가졌다.
‘왜 그가 피티아를 선택하는 걸 막는 거지?’
여기는 배틀넷 관리자의 등장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장소.
피티아가 말했듯, 이렇게 공개적인 데서 정보가 공개되면 3번째 성좌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었다.
한데 저쪽에서 이렇게 터치를 막다니.
‘뭐, 계속해서 손을 가져다 대면, 회광반조도 무한히 사용할 수는 없겠다만.’
관리자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현 상황.
회광반조로 미세한 시간까지는 조절한다고 해도, 이게 더 길어지면 관리자 측에서도 눈치를 채겠지.
정말 피티아의 군림 레벨 8이 욕심난다면,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굳이 그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하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하면서까지, 성지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세 번째 종.
정보 공개를 하면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
성지한은 곰곰이 생각하다, 결론을 내렸다.
“다음 성좌를 보겠다.”
“아, 아니, 잠깐만요……! 군림 능력, 그냥 드린다니까요! 절 선택하세요!”
피티아는 그런 성지한을 말렸지만.
“아니. 다음 성좌를 공개해 줘.”
성지한은 다음 성좌를 보겠다고 확언했다.
-?? 군림 레벨 8을 포기한다고?
-성좌가 아니어서 성좌 레벨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나 보네.
-그래도 군림 레벨 8이 그대로 내려가는 건 아닐걸? 올라 봤자 1, 2 오르겠지.
-1, 2가 어디야 ㅋㅋㅋㅋ 공짜로 주겠다는데 저걸 마다함?
-근데 저 여자 말 어떻게 믿냐. 저래 놓고 들어가서 뒤통수 칠 수도 있잖아.
-그건 그런데…….
그런 성지한의 선택에 대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시청자들.
그만큼 성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의문을 뒤로한 채, 진행되는 정보 공개.
[군림 성좌에 대한 정보가 공개됩니다.]
마지막 군림 성좌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자.
“하아…….”
피티아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 * *
새하얀 얼굴에,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세 번째 종은 젊은 청년의 외양을 하고 있었다.
성지한과 비슷한 큰 키에, 화려한 이목구비를 지닌 사내는.
“드디어 보는군.”
눈을 붉게 빛내며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반갑네. 나를 깨운 자여.”
“당신이 세 번째 종인가.”
“그러네. 세상에선…… 아소카라고 불리었지.”
피티아의 말대로, 아소카 대왕이 맞음을 긍정한 세 번째 종.
그런 그를, 길가메시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완전히 깨어난 건가? 아소카.”
“아직. 의식만 있을 뿐, 본신은 아직 봉인되어 있네.”
“무신이 아직도 널 억누르고 있는 건가?”
“비슷하지만 다르네. 나도,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아 일어나지 않았지.”
그러면서 아소카는 피티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안심하게. 예언자여.”
“……그게 무슨 말이죠?”
“경거망동은 하지 않을 것이니.”
“어디…… 지켜보죠.”
그렇게 둘과의 대화를 끝낸 아소카는, 다시 성지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자네. 나를 선택하겠는가?”
[내 시험을 받게.]
아소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음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본심은, 이렇게 전음처럼 전하는 건가?’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글쎄다. 당신 군림 성좌 레벨은 몇이지?”
“그건 말해 줄 수 없네.”
[지금 제공할 수 있는 군림 레벨은 8. 피티아와 동등하네.]
“흠…….”
[다만 시험을 통과해야 하네.]
이러면 공짜로 준다는 피티아가 더 좋은 거 아닌가?
하나 아소카는 성지한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전음을 이어 갔다.
[피티아…… 평소에는 그녀를 믿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믿지 말게.]
결정적인 순간.
그것은 지금 이때를 이야기하는 건가.
‘갑자기 군림 레벨이 생긴 게 이상하긴 했지.’
군림 성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피티아.
그런 그녀가 갑자기 군림 특성이 생긴 것도 이상한데, 레벨이 8이라는 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눈앞의 아소카를 쉬이 믿을 것도 아니었지만.
“피티아. 아소카가 드러났으니, 아까의 딜은 끝난 건가?”
“아까 거…… 왕위 물려주는 것 말인가요?”
그녀는 아소카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가능해요. 아직은.”
“아직은?”
“그가 나타났음에도, 아직 별일이 없었으니까요. 그와 왕위 계승식을 치르느니, 그냥 저랑 해요.”
아까는 정보 공개하면 왕위 계승 없다고 하더니, 또 말이 바뀌는 피티아.
성지한은 그런 그녀를 착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소카와 왕위 계승식을 진행해야겠군.”
“아니……! 왜죠?”
“이번 일과 관련해선, 네 말이 계속 바뀌니까. 신뢰할 수가 없어.”
“…….”
그 말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피티아.
“후후, 좋은 선택이다. 성좌 특성을 그냥 물려준다니. 말이 되는가? 불순한 의도가 있겠지.”
성지한의 선택을 받지 않게 된 길가메시는 웃음을 지으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왕위 계승식의 대상으로, 군림 성좌 ‘아소카’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래.”
성지한의 대답에, 두 성좌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소카. 경거망동하지 않겠다는 말, 믿겠습니다.”
“그러게.”
그렇게 두 성좌가 사라지자.
[왕위 계승식의 주체, ‘아소카’가 맵을 지정합니다.]
[특수 맵, ‘겁화劫火’로 플레이어 성지한이 소환됩니다.]
왕위 계승식이 치러질 맵.
겁화로 성지한이 소환되었다.
* * *
화르르르륵……!
특수 맵 겁화.
그 안에는, 맵 이름 그대로 불길만이 가득했다.
-겁화라…… 이게 지옥불인가?
-아니 그냥 타 죽으라고 이런 맵 지정한 건가 ㅋㅋㅋ 뭔 불밖에 안 보여.
-외계인들도 사정은 똑같나 봐? 쟤들도 불만 보인대.
-성지한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강렬히 치솟는 불길 탓에, 맵을 공략해야 할 성지한마저도 배틀튜브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그가 어디 있는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쯤.
‘이게 시험인가?’
정작 불 속에 있는 성지한은, 멀쩡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몸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옷도 하나도 타지 않고 있는 겁화.
소환되자마자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이곳의 불은, 나를 전혀 태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방어 준비를 한 게 무색하게, 불은 성지한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여기서 무슨 시험을 하겠다는 거지?
그때.
[이미 적을, 기대 이상으로 지녔군.]
또다시 아소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을 사용하여 나를 찾아오게.]
스탯 ‘적’을 명확하게 명시하는 아소카.
그는 이 능력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소태양과의 싸움에서 회광반조가 사용되었을 때 스탯 적이 영구적으로 소모되었으니…… 연관성이 있겠지.’
성지한은 봉황기를 꺼내, 적의 힘을 발현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용뢰龍雷
창끝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담은 붉은 전류.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듯싶더니, 겁화에 삼켜지고 있었다.
하지만.
‘용뢰가 살아 있는 루트가 하나 있군.’
강렬한 불길 속에서.
성지한은 용뢰가 잔존한 길을 따라 나아갔다.
그리로 가니, 확실히 주변에 비해 약한 겁화.
그렇게 용뢰가 뻗어 나가는 루트를 향해 쭉 나아가니.
“호오.”
성지한은 겁화 구역에서 벗어나서, 붉은 흙이 깔린 대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나, 이렇게 새로운 구역에 도착한 그와는 달리.
-아 뭐 불밖엔 보이질 않네. 뭐냐, 이 똥맵은 ㅡㅡ
-여기 채널 뭔가요? 관리자 나왔다고 해서 들어와 봤는데 불밖에 안 보이는데요…….
-그건 이미 지나갔음. 근데 또 나올 수도 있으니까 대기 타는 거지.
-에이 씨 장난해? 이게 뭐야?
배틀튜브에 나오는 영상은 아까와 똑같은지, 불만을 토로하는 외계의 시청자들.
‘아소카가 외부로 정보가 나가는 걸 막기 위해, 무슨 수를 썼나 보군.’
성지한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흙이 깔린 황량한 대지.
하늘 위에는 성지한이 돌파해 온, 강렬한 겁화의 불길이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붉은 대지를 걸어가다 보니.
‘이건…….’
땅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가 봐야겠군.’
저벅. 저벅.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자니.
쿠르르르!
거대한 계단 한 부위의 땅이 파이면서.
[으…… 으…….]
그곳에서 붉은 뼈를 지닌 스켈레톤이 튀어나오며, 신음성을 발했다.
인류와 비슷한 크기의 붉은 스켈레톤은.
성지한 쪽을 향해 다가왔다.
[이제 그만, 날 풀어 줘……!]
쿠르르르!
그가 달려들자.
계단 여기저기서 땅이 파이며, 언데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에 좀비, 고스트 등.
언데드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붉은빛을 띠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움직임이 느린 게,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는군.’
이런 적이면, 굳이 강력한 무공을 쓸 필요는 없겠지.
성지한은 암검을 피워 올려, 허공에 가볍게 검을 그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촤아아악!
일검에, 일제히 갈라지는 언데드 무리.
하지만.
[이걸론…… 죽을 수 없어……!]
화르르르!
붉은 언데드의 몸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그들은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재생했다.
아무리 가볍게 검을 내뻗긴 했어도, 이걸 저렇게 쉽게 원상복구시키다니.
성지한은 붉은 언데드의 행동을 보다가, 창을 꺼냈다.
“그럼.”
파지지직!
창끝에 피어오르는 붉은 전류.
그것은 불의 힘을 더 강하게 품은 채로, 언데드들에게 일제히 쏟아졌다.
화르르르!
[아아…….]
[드디어, 죽는다!]
용뢰에 직격당하고, 몸이 타오르는 와중에도 환희를 쏟아 내는 언데드 군단.
그들은 자신의 죽음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적을 쓸어버린 성지한은,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굳이 이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냥 아래로 점프할까.’
처음엔 돌다리도 두드려 본다는 심정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갔지만.
여기서 나오는 적은, 스탯 ‘적’에 워낙 취약해서 그다지 위협적이질 않았다.
이러면 굳이 한 계단씩 내려가며 시간 끌 필요 없이 단숨에 끝내야지.
휙!
성지한은 끝없이 펼쳐진 계단 아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졌다.
쿠르르르!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야지, 어디 가나……!]
[나에게도 안식을 주어라!]
성지한의 점프에, 위에서부터 땅이 흔들리며 언데드들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그들을 굳이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언데드들이 죄다 일어난 상태에서, 지하의 끝까지 도달하던 때.
번쩍!
성지한의 몸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순서를 지켜, 계단으로 걸어와 주게.]
아소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이이익!
그러자, 다시 계단 초입으로 돌아간 성지한.
‘……순서를 지키라고, 시간을 되돌렸어?’
회광반조.
시간을 돌리는 이 능력을, 겨우 이런 데다 쓰다니.
성지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알겠다.”
일단은 그의 말에 따라 주기로 했다.
한 층, 한 층 천천히 내려가면서.
[드디어…… 죽는구나……!]
안식을 바라는 언데드 무리를 일제히 불태우는 성지한.
그렇게 몇십 층을 내려갔을까.
[나도 죽여 줘!]
화르르륵!
성지한은 용뢰를 직격당하고도, 몸이 사라지지 않는 언데드 무리를 발견했다.
[‘적’의 수치가 부족합니다.]
[스탯 ‘적’의 수치를 늘리겠습니까?]
아무리 적의 움직임이 느리고 연약해도, 스탯 적이 부족하면 죽지 않는 상대.
시스템 메시지는 그러면서 친절하게 수치를 늘리겠냐고 물어보았다.
“그게 늘린다고 쉽게 늘려지나.”
성지한의 대꾸에.
쿠르르르……!
계단 일부가 무너지며, 작은 제단이 그의 눈앞에 올라왔다.
사람 하나 누울 정도 크기의, 붉은빛 제단.
그 위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친인을 제물로 바쳐, 능력을 얻으세요.]
[추천 제물 : 윤세아]
[그녀를 제물로 바칠 시, 스탯 적이 100 오를 것입니다.]
윤세아를 제물로 바쳐서, 스탯 100을 얻으라고?
“미친놈인가?”
빵!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보고, 바로 제단을 발로 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