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79화>
‘인류의 군림 성좌라니.’
성지한은 예전에 군림 특성을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군림 LV.1
종족 ‘인류’의 종합적인 평가 수치와, 성좌로서 후원하는 플레이어의 성장도에 따라 추가 보너스를 얻습니다.
보너스 수치는 현 행성의 군림자의 숫자에 따라 나뉘어집니다.
현 행성의 군림자는 4명입니다.
성지한 포함해서, 군림자가 4명이라던 시스템 메시지.
‘그럼 나 빼고 총 3명의 군림 성좌가 있다는 건데, 후보군으론 길가메시밖에 떠오르질 않았지.’
그나마 한 명 더 후보군으로 추론할 만한 것은, 불을 상징하는 3번째 무신의 종 정도.
여기에 무신도 혹시나 군림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3명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생뚱맞은 성좌가 나올 수도 있는 건가.’
녹색의 관리자가 주도하여, 직접 부여한 성좌 게임.
녹색이 제안한 게임이니, 뭔가 함정이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은 성지한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등의 실루엣만 보이는 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을 테니까.
‘근데 누가 누군진 전혀 모르겠군.’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3인의 군림 성좌.
그들의 실루엣은 모두 동등한 크기에, 안개처럼 희끄무레한 운무가 일렁여서 상대가 누군지 전혀 알아보질 못했다.
[3인의 군림 성좌 중, 1인을 지목하여 왕위를 계승하세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선택을 하라는 시스템 메시지.
‘이번 기회에 3인의 군림 성좌에 대해 다 파악해 보고 싶은데…….’
성지한이 실루엣 속에서 누가 누군지 어떻게든 파악해 보려고 할 때.
[흑색의 관리자가 플레이어의 선택을 위해, 군림 성좌의 정보 공개를 제안합니다.]
‘응?’
흑색의 관리자가 그런 성지한의 궁금증을 아는 것 마냥, 시의적절한 제안을 했다.
[백색의 관리자가 기권합니다.]
[녹색의 관리자가 반대합니다.]
[동의 1표, 기권 1표, 반대 1표로 군림 성좌의 정보가 일부분만 공개됩니다.]
여전히 기권하는 백색.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녹색.
모든 표가 동등해서 그런지, 성좌 정보는 일부분만 공개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인류의 군림 성좌라…… 성지한 제외 3명이나 있었구나.
-대체 누구지? 1명은 길가메시일 테고.
-정복왕들 넣어 줘야 하는 거 아님?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같이 ㅋㅋㅋ
-땅덩어리 크기로 군림 성좌 되는 거면 길가메시가 어떻게 됐겠어 ㅋㅋㅋ
–아 그럼 옛날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
인류 시청자들은 ‘배틀넷 관리자’라는 존재들의 무게감을 실감하지 못한 채.
3인 중 2명이 누구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지만.
-와, 뭐냐? 관리자 셋이 출동했어……??
-흑색과 백색은 외부 활동이 거의 없지 않아?
-그러니까. 성지한…… 채널 주인이 이 정도였어? 관리자의 주목을 살 정도로?
-적색의 관리자가 실종이라 표가 저렇게 111 나오면 저렇게 결론이 나는구나…… 오늘 처음 알았네.
-오늘 방송은 무조건 본다.
정작 난리가 난 곳은 외계인들이었다.
외계의 채팅창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은.
[종합시청자 수치가 기준치를 돌파합니다.]
[‘스타’ 버프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종합시청자 평가치가 ‘조금 유명해진’ 등급입니다.]
[스타 버프 발동 시, 모든 능력치가 80퍼센트 증폭됩니다.]
[종합시청자 평가치가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아니, 벌써?’
얼마나 숫자가 많았는지, 스타 버프를 한 단계 더 올려 버릴 정도로.
외계의 존재들이 배틀넷 관리자들에 대해 지니는 관심은 지대했다.
그것도 녹색과는 달리 외부적으로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 백색과 흑색이 등장해서, 제안을 직접 냈으니.
소문이 빛보다도 빠르게 퍼지며, 성지한의 배틀튜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유입인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특수 조건만 아니었어도 두 번은 더 종합시청자 평가치가 올랐겠군.’
그만큼 배틀넷 전역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성지한 채널.
-근데 뭔 성좌 세 명 정보 열람 가지고 관리자들이 직접 나설 정도야? 뭐 상급 종족도 아니고, 여기 하급 종족의 세계잖아.
-그러게. 관리자 권한으로 금방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런 절차가 필요한가?
-여기 뭔가 좀 이상해…… 정보가 너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 정확히는 없다기보단 알아내기가 너무 힘들어. 외부와 단절된 것 같아.
-너도? 나도 따로 저 행성 조사하려다가 막혔음.
-하급 종족 주제에 특이하단 말이지…….
외계의 존재들은 관리자가 총출동한 상황과 함께, 인류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다는 데에 주목했다.
‘흑색의 도움은 예상외지만, 녹색이 반대한 걸 보면 나에게 유리한 것 같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정보 공개를 기다렸다.
그리고.
[군림 성좌에 대한 정보가 한 명씩 공개됩니다.]
스으으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운무.
셋 중, 가장 먼저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맨 왼쪽의 인물이었다.
몸을 가리는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스으윽.
그가 등을 돌렸다.
“관리자가 직접 나서다니…… 하급 종족이 된 것이 꼭 좋지만은 않구나.”
갈색의 곱슬머리에, 긴 수염을 지닌 그을린 피부의 남자.
그 얼굴은 성지한도 피티아를 통해 한 번 보았던 이었다.
* * *
“길가메시인가.”
“그렇다. 태초의 왕이자, 인류의 시작점. 그것이 나다.”
고개를 든 채, 성지한을 내려다보는 길가메시.
그의 눈빛은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식은 언제나 아비의 것을 탐하기 마련. 나의 왕위가 탐나느냐?”
“……뭐?”
“나의 아들 중에선, 네가 가장 뛰어나지만…… 왕위는 아직 물려줄 수 없구나. 아직은, 나에 비해 한참 부족하니까.”
“내가 언제 네 아들이 됐냐?”
성지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꾸하자, 길가메시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태초의 때. 내 세계 전역에 씨를 뿌렸으니. 뛰어난 이는 모두 나의 자식이요 후손이다.”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불행히도 나의 피를 이어받지 못한 이들이지.”
-와, 아버지 넘하시네! 기프트 못 받으면 길가메시 아들 탈락임?
-뛰어난 인재면 그래도 인정해 주시는 듯여 조상님이 ㅋㅋㅋㅋ
-ㅅㅂ 인종이 다른데 뭔 조상이여 ㅋㅋㅋㅋ
-태초의 왕 태초의 왕 그러더니 진짜 지 잘난 맛에 사네 ㅡㅡ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듣고.
일반인이 대다수인 인류 채팅창에서 비아냥이 넘쳐흐를 때.
그가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성지한. 아직 귀가 발현하지 않았구나. 일부러 억누르는 것인가?”
“왜. 귀가 발현되면, 네 피가 짙기라도 한 거냐?”
“그렇다. 태초의 때, 나의 몸에 각인되었던 세계수의 흔적이 유전된 것이니…… 아. 이미 너에겐 너의 세계수가 있어서 발현이 안 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귀 튀어나온 사람이 너와 관련되어 있다니. 그래서 하프 엘프 모임 같은 걸 만들어 활동했군.”
길가메시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이를 긍정했다.
“아비로서 경고하지. 나를 선택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아비 소리 한 번만 더하면 너 선택한다.”
“훗…… 네 뿌리에 대한 의문과 방황은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지. 다만, 나에 대한 반역은 용납하지 않는다.”
반역이라니.
성지한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길가메시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식 진심으로 자기가 태초의 왕이고, 인류는 죄다 후손이나 부하 정도로 생각하는구나.
“전략적으로도 나를 선택하는 것은 하수다. 나는 무신과 다툴 자. 적의 적은, 아군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길가메시는 옆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 나 말고, 나머지 두 군림 성좌도 봐야 하지 않겠느냐?”
“뭐, 그건 그렇다만…….”
선택받기 진짜 싫어하네.
성지한도 나머지 성좌가 궁금해서 바로 길가메시를 선택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가긴 아쉬워서, 질문을 하나 했다.
“그럼 다음 애들 보기 전에, 아까 전에 말한 이야기 설명해 봐.”
“무얼 말하는 거지?”
“하급 종족이 된 게 꼭 좋지 않다는 거.”
“아. 그것 말인가.”
스윽.
길가메시는 팔짱을 풀고, 손가락을 허공에 가리켰다.
“하급 종족이 되니, 관리자들이 모두 이곳에 관심을 보이지 않느냐.”
“그전에는?”
“우주 대부분의 종족은 최하급. 90퍼센트가 넘는 종족을 관리자가 하나하나 살펴보진 않지.”
“종족이 승급하면서, 관리자들도 주목했다는 거군.”
“그렇다.”
종족 진화되면서 배틀튜브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것처럼.
흑색이나 백색의 관리자도, 본격적으로 하급 종족부터 관리하고 지켜보는 건가?
‘그래도 종족 승급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셋한테 주목을 사고 있어? 이건 마치, 인류가 최하급 종족에서 벗어나길 기다렸다가 올라오자마자 집중하는 거 같은데…….’
성지한은 그렇게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닌 채, 관리자 메시지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다음 성좌를 보겠다.”
[군림 성좌에 대한 정보가 공개됩니다.]
그러자 두 번째로 걷히는 운무.
그 안에서는, 새하얀 천을 두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발에 푸른 눈을 한 여인은, 이마에 새하얀 빛의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성지한으로서는, ‘떨어진 아폴론의 성역’에서 본 적이 있던 사람.
“너…… 설마 피티아냐?”
“마, 맞아요.”
그녀는 자기도 화들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도 군림 특성이었어?”
“아니에요. 예언자가 무슨 군림을 한다고…… 독존 특성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투성에서 감자칩 먹으면서 당신 채널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바타가 소환되었다니까요!”
억울한 마음을 가득 담아서 호소하는 피티아.
“아니 진짜! 예언에서는 이런 게임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왕위 계승식이 벌어지더니…… 뭐야 내가 소환되고! 이럼 예언자의 무게감이 떨어지잖아!”
투성의 주인이 길가메시라고 정체를 알려 주었던 피티아는.
-1등 보상이 나오면, 그중에서…… 가운데 걸 고르세요. 그걸 꼭 고르셔야 해요.
스타 리그 승급전에서 1등 하면, 가운데 보상을 고르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근데 정작 치러진 경기는 왕위 계승식에, 소환된 상대 중 하나가 피티아라니.
성지한은 불신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기 힘들겠군.”
“아 진짜! 제가 보여 드릴게요. 잠깐…… 어? 뭐야? 언제 군림 생겼어? 레벨은…… 뭐 이렇게 높아?”
그녀는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상태창을 공개하려 했으나.
그 안에 담긴 군림 특성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안 돼……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나한테?”
“피티아. 네가 군림을 지니고 있었다니…… 그간 잘도 속여 왔군.”
“와, 진짜 군림자였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간 성좌 명성 벌기 힘들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건 사기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성좌 특성이 갑자기 생겼다고 그녀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군림 특성이 갑자기 생길 리가 있겠느냐. 연기는 그만두어라. 피티아. 볼썽사납구나.”
“큭, 길가메시……!”
“아니…… 그래. 네가 정말로 억울하다면, 어떠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건?”
“뭐…….”
“어차피 네 것도 아니었던 군림 특성. 물려주어 봤자 상관없지 않겠느냐.”
길가메시는 피티아에게 그렇게 억울하면 왕위를 물려줄 수 있냐고 말하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좋아. 성지한씨. 날 선택해요. 갑자기 생긴 군림 특성 따위, 바로 물려줄 테니까.”
“……진심이냐?”
“네. 당신도 받는 게 좋을걸요? 레벨 8이에요 이거!”
“뭐?! 레벨 8?”
-아니 군림 레벨 8을 그냥 물려준다고?
-말도 안 돼……!
-애초에 무슨 하급 종족 출신 성좌에서 레벨 8이 나와?
-이거 알고 보면 잘 기획된 영상 아니야? 저 관리자들 다 만들어진 메시지창 아님?
-미쳤다고 누가 관리자를 사칭해…….
-와 내가 저 자리에 있고 싶다. 난 지금 레벨 3에서 백 년간 헤매고 있는데…….
피티아의 말에 경악하는 외계인 시청자들.
그만큼 군림 레벨 8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걸 그냥 물려준다니.
‘……너무 조건이 좋으니, 함정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군.’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
스윽.
피티아가 검지 손가락을 올렸다.
“대신, 다음 성좌는 정보 공개하지 말아요. 이게 제가 왕위를 물려줄 조건이에요.”
“호오. 다음 성좌를 공개하지 말라…….”
“예. 세 번째 종. 그의 정보가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알려져서는 안 돼요. 이 조건만 받아들여 주시면, 왕위 계승식 때 바로 제가 패배하죠.”
“공개하지 마라. 그건 네 예언인가.”
“……비슷한 거예요.”
세 번째 종, 아소카 대왕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가 세 번째 멸신결,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원래 주인이겠지.
소태양과의 싸움에서, 시간을 1분 전으로 돌렸던 무공 회광반조.
이것에 대해서는 그 후에도 계속 연구하려고 했지만, 영 실마리가 잡히는 게 없었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세 번째 종…… 하나 실리를 따지자면 그의 정보 공개보다, 군림 레벨 8이 낫지 않을까.’
군림 레벨 8을 계승한다고 그게 다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성좌 명성 모으기 쉽지 않은 지금, 레벨 한두 개만 올라도 대성공이었다.
‘……일단은 능력이 먼저다.’
성지한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시스템 창을 눌러 나갔다.
그리고.
[‘피티아’를 상대로 왕위 계승식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여기에 예를 터치하려고 했을 때.
뚝.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뒤로 돌아가?’
터치를 하러 나아가던 손가락이, 저절로 뒤로 물러나 있었다.
마치, 시간을 미세하게 조금 전으로 되돌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