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73화>
[맞네. 내가 세 번째지.]
동방삭의 수염을 불태운 상대.
그는 순순히 자신이 세 번째 종이라고 인정했다.
“무신께서 당신을 억제했을 텐데…….”
[인류종의 진화로,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네.]
“종의 진화로?”
인류종의 진화로 여유가 생기다니.
동방삭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인간 개개인이면 모를까, 성좌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을 텐데…….’
실제로 성좌가 된 동방삭 자신도, 인류 진화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까.
무신의 종 중 눈에 띈 발전상을 보인 건 길가메시가 유일했다.
하나 그건 인류의 왕이라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현상.
“인류 진화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당신도 왕인가? 그러고 보니 인도의 아소카 왕이라고 했나.”
[아소카 왕이라……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것도? 또 다른 게 있나?”
어째 대답이 시원치 않은데.
동방삭이 눈썹을 꿈틀대자, 다시 세 번째 종에게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것도 있네만. 자네도 강상으로 불리는 걸 꺼려 하지 않는가? 나도 비슷하네. 이해해 주게.]
“음…….”
조곤조곤 말하는 것치고는,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
동방삭은 그가 강상을 거론하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더 이상 추궁은 하지 않았다.
“알겠네. 일단은 더 묻지 않지. 헌데…… 이 진을 왜 해체하지 말라 하는 건가?”
[그대가 열면, 모든 것이 파괴될 거야.]
“……내가 열면?”
[그렇다네. 나는 이미 보았다네. 자네가 구궁팔괘도를 연 결과를.]
연 걸 봤다고?
동방삭은 서해 밑바닥에 파견보낸 영체로 의식을 돌렸다.
외곽만 부서진 구궁팔괘도.
진이 열렸다기엔 멀쩡한데 언제 이걸 열었다는 건가?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진은 열리지 않았네만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너도 예언자인가?”
[그렇지 않네. 나는 다만 지나간 과거를 읽을 뿐이네.]
“…….”
이자의 말을 신뢰해야 하나.
동방삭은 영체를 두고 갈등했다.
그때, 세 번째 종이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곳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가?]
“그건…….”
[기억이 완전히 봉인되었다면 이곳의 위치조차 알지 못했을 터. 하나 진의 일부가 붕괴되자, 봉인된 기억의 일부가 떠오른 것이겠지.]
“……나도 그렇게 추측한다.”
그리고 아마도 진을 붕괴시킨 건, 성지한이겠지.
동방삭은 일주일도 안 돼서 지배코드를 완성한 그를 떠올렸다.
[봉인을 부순 이에게, 계속 그 일을 맡기게.]
“성지한보고 구궁팔괘도를 와해시키라고?”
[그러네. 자네가 그곳에 손을 대면, 모든 것은 끝이 나네. 하지만 그가 진을 해체한다면,]
“그가 하긴 힘들어 보인다만.”
동방삭은 구궁팔괘도를 바라보았다.
붕괴된 것은 외진뿐.
중간부터 안쪽까지의 방비는, 단단하기 짝이 없었다.
동방삭도 진의 주인이니, 영체 상태로 해체가 가능한 거지.
이런 케이스가 아니었다면 본신으로 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정도도 못한다면, 이번 세계도 무신의 뜻대로 끝이 나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 간곡히 부탁하지. 진을 그가 부수도록 잠시만 기다려 주게. 어차피 자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진은 하루아침에 부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음…….”
동방삭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세 번째 종.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도.
진을 왜 건드리면 안 되는지, 자세한 이유에 대해선 밝히지도 않고.
그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원래의 자신이라면, 이런 제안 따위 당연히 무시했겠지만.
‘이상하게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
목소리만 들려오는 세 번째 종.
하나 그 음성에는,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동방삭조차도 당연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그는 그런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부탁만으론 그 말을 들어 줄 수 없다.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라.”
[역시 그냥 넘어가질 않는군. 자네는. 이럴 때를 대비해, 자네가 보여 주라는 게 있었지.]
“내가?”
이 자는 왜 자꾸 기억에 없는 소리를 하는 건가.
동방삭은 의아한 눈으로 반문했지만.
화르르륵……!
눈앞에 작은 불이 떠오르며.
거기서 뿔이 드러나자 미간을 좁혔다.
붉은 뿔 위에는, 동방삭 자신의 필체로.
구세제민救世濟民이 쓰여 있었다.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 이것이 자네가 내게 준 증표였다네.]
* * *
성지한 채널에 외계 시청자가 늘어난 지 4일째.
-아니…… 또 이렇게 끝나?
-맨날 한방에 터뜨리냐? 하 노잼이네.
-여기가 왜 추천 채널인지 이해가 안 되네.
-차라리 예전 영상이 재밌더라 여긴 ㅉㅉ
-구독 취소합니다.
그의 채널은 새로 유입된 외계인들의 악평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류와는 반응이 180도 다르군.’
인류에게 성지한은 세상에 다시없을 은인 그 자체.
종족도 진화시켜 주고, 배틀넷에서 최상위권으로 순항 중인 건 온전히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류 시청자들과는 달리, 외계 시청자들은 성지한에게 얽매인 것이 없었으니.
냉정하게 배틀튜브 컨텐츠를 평가하면서, 악플을 늘어놓고 있었다.
‘요 며칠간 컨텐츠가 없긴 했지.’
최근 4일간 진행한 게임은 모두 일반 게임.
여기서 만나는 상대야, 아무리 강하다 한들 성지한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외계인 놈들처럼 기괴한 컨텐츠를 하기도 그렇고…….’
성지한은 자신과 같이 화제의 채널에 올라가 있던 영상들을 떠올렸다.
거기엔 본격 이종족 해부하기 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컨텐츠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매운맛 영상만 보다가, 여길 오니까 심심할 만하지.’
성지한이 그렇게 외계의 채팅창을 띄워 놓은 채, 하나하나 이를 읽고 있자니.
“오너님! 이번 달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아…… 근데, 뭐 보고 계세요?”
펜트하우스에 들어선 길드 마스터 이하연이, 성지한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외계인 악플 보고 있었습니다.”
“외계인들이요? 아…….”
스으윽.
빠르게 외계인들의 채팅을 훑던 이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참나. 이거 오너님이 너무 강해서 질투하는 거예요! 그럼 한방에 이길 수 있는 상대를 한 번에 보내 주는 게 예의지, 무슨 컨텐츠를 원하는 거야? 이런 거 보지 마시고, 사람들 댓글 보세요! 인류는 모두 성지한 님을 지지하니까요!”
외계인들한테나 재미가 없지.
같은 편인 인류 입장에선, 한방에 적을 팡팡 터뜨려 주는 성지한이야말로 가장 보기 좋은 방송이었다.
이하연은 그렇게 인류 시청자들을 언급하면서 성지한을 위로했지만.
“하지만 외계인들이 더 와야, 제 버프가 강해지거든요.”
“아…… 그, 그런가요?”
“네. 화제의 채널일 때, 시청자들을 더 모아야 하는데 말이죠.”
스타 버프를 강화하기 위해선, 이런 외계인들도 흥미를 느낄만한 컨텐츠를 발굴해야 했다.
“으음…… 외계인들 취향 맞추기 쉽지 않던데.”
“별의별 영상이 많긴 하더군요.”
“그나마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게 GP 거는 거였어요. 아, 그러고 보니 엘프 괴롭히는 것도 은근 인기 많았다.”
“엘프를 괴롭혀요?”
“네…… 뭐. 괴롭힌다는 게 인간 기준이 아니라. 해부 대잔치였지만 말이죠.”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거북한지.
이하연은 얼굴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세계수 엘프랑 원수인 종족이 많긴 한가 봐요. 하이 엘프 처형 영상 조회수가 엄청나더라구요.”
“걔들이야 뭐 우리한테만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세계수 엘프가 일부러 밴, 셀렉트 카드를 안 쓰고 패배하다가.
마지막에 카드 다 쓰면서 상대 팀 선수들을 처형시키는 행동은 여기서만 하지 않았겠지.
그들에게 희생당한 종족이, 우주 전역에 넘쳐 흐를 터.
그러니까 엘프 증오 영상이 항상 배틀튜브에서 인기가 높을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오너님 채널이 외계에 처음 데뷔했을 때, 고엘프 죽는 거 영상 편집해 둔 게 있긴 했는데…….”
“아니, 그런 게 있었어요? 왜 안 풀었어요?”
“아, 그땐 아레나로 사람이 몰리기도 했고…… 오너님의 광명정대한 이미지와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냥 킵해 뒀어요.”
“……광명정대요? 내가?”
“그럼요!”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편집한 영상. 바로 좀 보내 주세요.”
“아…… 그 영상 재생하시게요?”
이하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반문했다.
고엘프가 뇌신과 폭사했던 걸 편집한 영상.
이런 걸 올리면, 성지한 채널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건 아닌지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험난한 배틀튜브 세계에서 점잔 빼고 있을 순 없지.’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별짓거리를 다하는 배틀튜브의 경쟁자들.
웬만한 자극에는 미동도 안 하는 외계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선, 그런 영상도 필요했다.
“네. 그거 틀고, 아이템 설명회도 같이 가야겠습니다.”
“아이템 설명회요…….”
“이거요.”
스으윽.
성지한은 인벤토리에서 고엘프의 가면을 꺼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 *
고엘프의 폭사 영상.
그건 예전의 걸 편집한 것이었음에도, 금방 외계인들의 관심을 가져왔다.
-오…… 저 가면 엘프…… 성좌급 괴물들 아니었나?
-저렇게 죽을 줄은 몰랐군 ㄷㄷ
-확실히 이 채널은 예전 영상이 더 흥미롭단 말이지.
-이번 건 마음에 드네. 엘프 조지는 거 더 없어? 저 새끼들이 우리 형 처형시킴 ㅠㅠ
-너만 그러겠어? 엘프에게 원수 안 진 종족이 어디 있겠나…….
-빚 없는 종족도 없지 ㅋㅋㅋㅋ
-그러니까. 이 새끼들 브론즈에선 처형시키는데, 승급해서 올라오면 대출은행까지 운영함 ㅡㅡ
우주에서는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세계수 엘프.
하지만 워낙 연합의 힘이 강대한 데다가, 고리대금업무까지 주물럭거리는지라 그들에게 거역하는 종족은 거의 존재하질 않았다.
그 대신, 피해자들은 이렇게 엘프 죽는 거나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성지한이 올린 고엘프 폭사 영상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레어한 것이었다.
-외계인들 맨날 컨텐츠 노잼 노잼 거리더니 이런 거 좋아하네 ㅋㅋㅋ
-엘프 죽는 게 컨텐츠면 성지한한테 지금 산더미처럼 있지 않냐 ㅋㅋ
-세계수 엘프가 역으로 처형당한 거 올려 줘도 애들 좋아할 거 같은데?
-야, 컨텐츠 반년 치 뚝딱이다 ㅋㅋㅋㅋ
그런 외계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사람들.
성지한은 채팅을 쭉 둘러보다.
‘오. 역처형도 좋네.’
거기서도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끝났군요.”
그렇게 고엘프 폭사 재생이 끝나자.
툭.
성지한은 테이블 위에, 고엘프의 반가면을 올려놓았다.
“저 고엘프의 가면은 부서졌지만, 다른 데서 이걸 얻을 수 있었죠.”
-고엘프의 반가면…….
-저걸 얻었어? 어떻게?
-가짜 아냐?
-그러니까; 아까 놈 건 분명히 부서졌는데?
고엘프와 뇌신이 폭사할 땐, 산산조각나서 공허를 토해 냈던 반가면.
성지한은 열기를 띈 채팅창 반응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걸 얻게 된 경위에 대해선 다음 영상을 보도록 하시구요.”
휘리릭.
성지한은 테이블 위에서 가면을 한 바퀴 돌렸다.
“외계의 시청자들이 더 모이면, 이 아이템의 자세한 정보에 대해서 공개해 보려고 합니다.”
고엘프의 ‘공허처리장’.
이에 대한 정보는,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극비사항이었다.
하지만, 성지한 입장에서야 극비건 뭐건 스타 버프 업그레이드가 중요했으니.
컨텐츠 부족 현상도 때울 겸, 그는 세계수 엘프 쪽이나 이용할 생각이었다.
-가면의 정보를…….
-저거 시청자 더 모아오라는 거지?
-하 ㅋㅋㅋ 하급 종족 주제에 치사하게 구네 진짜 ㅋㅋㅋ…… 이번만…… 입니다?
그리고 성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하는 시청자들.
처음에는 일반 외계인이었지만.
-어…… 뭐야.
-엘프들 엄청 들어오고 있는데?
어느순간부터, 세계수 엘프들이 채널 안으로 총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우주수 이그드라실의 차단을 푸십시오.
-우주수 이그드라실의 차단을 푸십시오.
-우주수 이그드라실의 차단을 푸십시오.
엘프들이 죄다 이그드라실 차단을 풀라고 채팅창을 도배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은 뭔 맨날 도배네.’
어디, 뭔 소리 하나 들어나 볼까.
성지한은 예전에 이그드라실에게 했던 차단을 풀었다.
그러자.
[우주수 이그드라실이 적의 굴레를 끊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대신 그가 원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일족화입니다.]
‘적의 굴레…….’
그에게서 생소한 제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