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72화>
=저거, 성지한 선수의 소용돌이로군요! 도망치는 웨어울프들을 모두 잡으려는 걸까요?
=하지만 상대편 플레이어들. 이미 저 멀리로 도망치고 있는 상태입니다. 기동력이 엄청나요!
=이러면 아무리 저 검은 소용돌이라고 해도, 늑대들을 잡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이미 해설자에게도 익숙한 암혼와류.
이 거대한 그림자 소용돌이는, 성지한이 자주 사용하는 기술 중 하나였다.
시청자들이 이 소용돌이가 미치는 범위까지 대략적으로 알 정도였으니까.
-늑대들 째는 속도 장난 아닌데?;
-저거 닿을라나…….
-힘들 듯? 도망치는 게 너무 빨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때려잡아야겠네 ㅡㅡ
그런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성지한의 암혼와류는 이미 타이밍이 약간 어긋난 상태.
전력으로 도망치는 늑대들이 끌려오기에는, 이미 발동이 늦었다.
한데.
=어…… 성지한 선수의 스킬, 평소와는 모습이 좀 다르군요!
=원래는 완전히 시커먼 소용돌이였는데, 흰빛이 반반 섞였습니다!
처음에는 검은색 일색이던 암혼와류.
허나, 그곳에 평소와는 달리 백색의 빛줄기가 교차하기 시작하자.
“크르…… 르…….”
전력으로 도망치던 늑대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며.
흑백이 교차하는 와류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려 들어가는 건 늑대뿐만이 아니었다.
투두두둑!
대초원의 대지를 가득 메우던 풀이 뜯겨나가고.
풀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흙까지 같이 딸려왔다.
[무, 무슨…….]
[어떻게 이 멀리까지……!]
슈우우우!
대지와 함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늑대 무리.
그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안에서 갈려 나갔다.
=성지한 선수! 스킬이 업그레이드된 걸까요?
=범위가 평소보다 훨씬 넓습니다……! 적 선수들도 종족을 대표한 선수들인데, 소용돌이의 흠입력을 이겨 내지 못하는군요!
=이제는 저 흑백의 소용돌이가 아예 맵 전체를 빨아들일 기세입니다!
=저, 저희 거점도 파괴되었군요!
태극마검의 운용 묘리를 일부 섞어서 발전시킨, 흑백의 암혼와류.
그것은 어마어마한 힘으로, 저 멀리 있는 강철 허수아비까지 땅에서 뜯어내 버렸다.
[종족 ‘인류’의 거점이 3개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손으로 부순 거점만 세 개.
하지만.
[으…… 이, 이것은. 그들의 경고보다 훨씬 더 강하지 않은가…….]
거점이 더 파괴되기 전에, 마지막 늑대가 소용돌이 안으로 끌려왔다.
상대 팀의 감독 역할도 하던 푸른 털의 늑대.
가장 멀리 도망쳤던 그는, 결국 끌려와 암혼와류 속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상대 팀의 플레이어가 모두 전사했습니다.]
[2경기가 종료됩니다.]
[인류 측이 승리합니다.]
[2경기 MVP로, ‘성지한’이 선정됩니다.]
단번에 끝나는 게임.
성지한은 메시지창 너머에서,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흑백의 암혼와류를 바라보았다.
‘생명의 기운을 공허와 함께 섞어 쓰는 데 좀 익숙해졌군. 태극마검의 덕이다.’
암영신결을 발전시키는 단서는, 공허에 생명의 기운을 같이 사용하는 것.
하나 이 힘의 운용은 아무리 연습한다고 해도, 단번에 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상극이나 다름없는 두 힘을,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게 하여 증폭시키는 게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스탯 ‘영원’이 크게 성장한 데다가.
태극마검을 다뤄 보면서, 이쪽을 발전시킬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정작 태극마검은 공허를 사용하지 않긴 하지만…….’
영생을 누리기 위해, 공허를 다루지 않던 동방삭.
그가 사용하는 태극마검도, 그 무엇보다 공허와 같은 파괴력을 냈음에도.
공허의 힘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태극마검의 운용법을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알고 나니까.
영원과 공허, 두 힘을 다루는 것도 손쉬워졌단 말이지.
‘아레나의 주인이 했던 이야기가 연관이 있나.’
태극마검에 대해 아는 듯한 눈치였던 아레나의 주인.
그는 이것이 한 인간의 깨달음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동방삭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를 ‘창조’한 건 아니란 뉘앙스를 풍겼다.
‘레벨 500이 되어, 공허의 수련장이 업그레이드되면 본격적으로 파고들어야겠군.’
지금은 태극마검을 연습하고 싶어도 쓸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성지한은 그렇게 검에 대해 생각하며, 암혼와류를 거둬들였다.
* * *
스페이스 리그의 감독실.
“…….”
푸른 털의 웨어울프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2경기 대초원 맵.
웨어울프 종족 입장에선, 고르기만 하면 지질 않던 맵이었는데.
미친 괴물을 만난 덕에, 게임이 단번에 끝나 버렸다.
“카드 안 뽑나?”
“뽑아 봤자 어차피 질 것을…….”
데이비스의 물음에도,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털이 축 늘어진 웨어울프.
-왜 벌써 게임을 포기했냐 ㅋㅋㅋ
-2경기 때 그렇게 당했으면 포기할 만하지 뭐.
-성지한 소용돌이 범위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언제 발전함?
-근데 원래 매번 볼 때마다 범위 늘어 있음. 종족 진화도 했겠다 더 강해져도 이상하지 않지.
-ㅇㅇ 다른 사람 뛰어다닐 때 날아다니잖아.
매번 발전하는 성지한의 성취.
하나 종족 진화 때문일까.
시청자들 눈에는, 이번이 평소보다도 훨씬 강해 보였다.
자신들도 이럴진대, 성지한을 처음 본 상대 팀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후우.”
그래도 3경기를 진행하지는 않을 수 없는 노릇.
웨어울프 감독은 한숨을 쉬면서, 밴 카드를 뽑아 들었다.
랭킹 1위를 밴하는 카드.
=아, 이번엔 VIP 옵션이 통하지 않았나보군요!
=성지한 선수가 밴당합니다!
웨어울프 입장에선, 다행히 성지한이 밴당해서 사라졌지만.
맵마저 원하는 걸 뽑진 못했다.
=이번 맵은 사우스게이트군요!
=수성전과 공성전을 번갈아 가면서 하니, 웨어울프의 장점인 기동력이 완전히 봉쇄되겠어요!
=1경기처럼만 해 주면, 이번 경기도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우스게이트라…… 그 괴물은 밴당했나?”
“경기에서 확인해라.”
“……그래.”
데이비스 감독을 떠본 푸른 웨어울프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감독실에서 나섰다.
그리고 시작된 3경기.
=인류 대표팀…… 상대를 압도! 압도합니다!
=상대 웨어울프, 2경기의 여파일까요? 사기가 떨어져서 그런지, 영 힘을 쓰지 못하는군요!
=거기에 웨어울프 입장에선, 아무래도 맵이 상성 상 좋지 않죠! 공성전에 적합해 보이지가 않거든요!
=이번엔 MVP에 누가 돌아갈지 모르겠어요! 모든 선수가 고르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인류 대표팀은 상대를 완벽하게 압살했다.
1경기 때보다도 더한 완승.
경기를 지켜보는 인류 시청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어…… 자고 일어났더니 강팀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진화의 힘?
-상대가 좀 약하긴 해 ㅋㅋㅋ
-상대가 약하다고? 우리는 조인족에게 패배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ㄹㅇ 18위 무시 ㄴㄴ해.
그리고.
성지한 채널의 외계인 채팅방에는.
소수의 외계인들이 모여서 인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류, 이 종족 하급 되더니 확실히 강해졌군.
-이제 성지한이 없어도 강등은 안 당하겠네.
-오히려 종족이 여기서 더 성장하면, 배틀넷에서도 꽤 경쟁력이 있겠어.
-맞어. 인류는 숫자가 어마어마하잖아?
종족 ‘인류’에 대해 관심이 생긴 건지, 성지한이 바라보고 있는 게임을 같이 지켜보면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외계인들.
성지한은 그 채팅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숫자가 강점이라니…… 다른 종족은 숫자가 적나?”
-뭐야, 채팅도 보네?
-인류보다 숫자가 많은 종족? 스페이스 리그에선 없지 않지만, 플레이어가 이렇게 많은 종족은 드물지.
-그러니까, 이놈 시청자 찍히는 거 보면 어이가 없다니까. 배틀튜브를 이용 가능한 인구가 이 정도로 많을 줄이야…….
“플레이어 자체는, 다 되는 거 아니었나?”
기프트가 문제지.
배틀넷 시스템이야 성인이 되면 다 받지 않나.
하나 외계인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다 되다니…… 뭔 소리야?
-종족 내에서도 일부만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데;
-아니, 다 되는 종족 없진 않을걸? 근데 그 정도 되려면 관리자랑 연관이 있어야 할걸.
-그러면야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냥은 말도 안 되고 ㅇㅇ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림자여왕에게 물어보았다.
“쉐도우엘프도 모두 플레이어가 안 됐었나?”
[아니. 우린 너희처럼 모두 플레이어가 됐다. 녹색의 관리자랑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종족이었으니.]
“아하. 관리자랑 연이 있으면 플레이어가 되는 건가.”
[나도 정확한 인과관계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냥 그렇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지.]
“흠…… 이건 의외군.”
맨날 인구수 많다는 게 장점으로 꼽혀서, 인간만 그렇게 개체가 많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종족은 배틀넷 시스템을 개방하는 거 자체가 쉽지 않았다.
‘관리자랑 연관이 있는 거라면…… 인류에게 엮인 관리자는 아무래도 적색의 관리자인 건가.’
세계수가 심어져 있던 걸 생각하면, 녹색과도 연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군.
뭐 이렇게 인류에 엮인 놈들이 많아.
성지한이 적색과 녹색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띠링.
-여긴 뭔 채널인데 이번 달 화제의 채널로 꼽혔어?
-인류 출신이라…… 인류. 최하급에서 하급 진화했다고?
-브론즈 리그가 어떻게 진화를 해…….
외계의 채팅방에, 갑자기 시청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화제의 채널’이 되었단 걸 보고 들어왔다는 외계인들.
그렇게 들어온 시청자들을 보면서, 기존에 있던 이들이 채팅을 띄웠다.
-배틀튜브에서 이달의 화제로 여기 띄웠나 본데?
-아, 그거 하급 종족부터 되는 거였음.
-화제라니…… 아레나에서 우승으로 뒤통수 칠 때에 비하면 요즘은 심심한 편인데 ㅋㅋ
-거기에 하급 종족 이상 채널부터 시청하는 애들이 많아서, 갑자기 유입이 는 듯.
-지금 물 들어올 때 노 저으시죠.
-아레나 한 번 더 가즈아!
하급 종족으로 업그레이드된 이후, 화제의 채널로 떠오르게 된 성지한.
그는 배틀튜브 메인화면을 열어 보았다.
외계인 채널까지 합쳐서, 수도 없이 범람해 있는 채널들.
이 중에서도 가장 맨 위, 메인에 있는 게 화제의 채널 탭이었다.
‘내 채널은 여기서도 맨 끝에 있는 거 같지만…….’
슥슥.
여러 채널들을 마구 넘기고 나서야, 맨 뒤에 쪼그맣게 있는 성지한의 채널.
그래도 말석이라도 여기 낀 게 유입을 불러 오는 효과가 있는지, 여기 뭐 하는 데냐고 들어오는 외계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급 종족이 되니 이런 부수 효과도 생겨났네.’
성지한은 채팅방에서 늘어나는 외계인들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확실히 아까 보았던 대로,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때인가.
‘스타 버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외계인 시청자는 늘려야 한단 말이지…….’
외계의 시청자 숫자가 많아야 발동하는 스타 버프.
이것도 지금 성능에서 안주해선 안 되었다.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고민해 봐야지.
‘노 저을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성지한은 배틀넷 커넥터가 열리는 걸 지켜보면서, 고민에 들어갔다.
* * *
구궁팔괘도가 그려진, 서해의 해저 밑바닥.
‘흠…….’
반투명한 형태의 동방삭은, 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성좌의 몸은 투성에 그대로 있는 채로.
영체의 일부만, 탐색을 위해 보낸 그는.
외곽이 파괴된 구궁팔괘도를 보면서, 눈빛을 가라앉혔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해저의 구궁팔괘도.
이에 대해선, 떠오르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분명 진을 보면 자신이 그린 게 분명한데.
동방삭은 이게 왜 여기 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된 기억만…… 마치 삭제된 것 같군.’
그는 예전에 길가메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왜 넌 영생을 살려 하냐는 물음에, 자신은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
그 이유와 더불어서, 이 구궁팔괘도까지.
과거의 기억 중, 일부분은 분명히 사라져 있었다.
‘이 진을 해체하면 떠오를까.’
구궁팔괘도가 온전했다면, 영체만으로 이 진을 부술 수 없었겠지만.
외곽이 부서진 이 진이라면, 영체 상태의 동방삭으로도 어떻게든 해체가 가능해 보였다.
통째로 사라진, 과거의 기억.
동방삭은 이 진을 풀면, 그것이 떠오를까 하여 손을 천천히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화르르륵!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투성에 있는 본체의 수염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흠!”
툭! 툭!
언짢은 얼굴로, 동방삭은 빠르게 불길을 털어 냈다.
건드릴 게 따로있지, 어딜 수염을 건드리나.
그는 범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멈추게나.]
“……너는.”
투성에서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세 번째 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