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67화>
구궁팔괘도 안.
세계수의 옆, 호수가에서 낚시를 하던 강상은 성지한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손님이 오셨군…….”
스으윽.
대나무 낚싯대를 어깨에 멘 채, 성지한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노인.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누군가?”
“기억 안 납니까?”
“기억이라니? 자네와 난 초면이네만.”
강상은 눈을 깜빡이면서, 성지한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저번에 구궁팔괘도 안에서 한참을 다투었던 건,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눈치.
‘다시 진입하면 리셋이 되나 보군.’
잘됐네.
성지한은 자신을 지켜볼 뿐, 바로 전투에 들어가지 않는 강상을 보면서.
일단 세계수에서 생명의 기운을 흡수했다.
[스탯 ‘영원’이 1 오릅니다.]
세계수 옆에만 있으면 팍팍 성장하는 스탯 영원.
성지한이 생명의 기운을 빨아들이자, 강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흉물의 생기를 흡수하다니. 아무래도 자네, 저 흉물과 관련이 있나 보구나…….”
“흉물이라니. 저 나무 말입니까?”
전투에 돌입하기 전, 생명의 기운을 충분히 빨아들이기 위해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말을 건 성지한.
하지만 강상은 그런 그의 의도를 대번에 간파했다.
“알면서도 시간을 끌려 하는군.”
휘리리릭!
낚싯대에 감기는 낚싯줄.
그것은 어느새 대나무 봉으로 변해, 강상의 손에서 무기로 변했다.
‘생명의 기운을 더 흡수해야 하는데, 아쉽군.’
스으으으…….
성지한은 바로 덤벼들 기세인 동방삭을 보며, 왼손에 이클립스를 소환했다.
“호오…… 좋아. 한번 놀아 보세!”
휙!
일직선으로 뻗어 오는 봉.
이건, 성지한에겐 익숙한 공격이었다.
‘매번 이 공격으로 시작했지.’
공허의 수련장에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 보았던 강상의 첫 공격.
성지한은 이를 쉽게 피하곤,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검과 봉이 교차하고.
쾅!
세상이 뒤흔들리며,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를 시작으로, 수없이 맞부딪치는 검과 봉.
“흠, 강하군……!”
착.
치열한 격돌 속에서, 먼저 뒤로 물러난 건 강상 쪽이었다.
애초에 가진 힘 자체는 성지한이 우위였던 데다가.
공허의 수련장에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 강상의 공격에 익숙해진 상태였으니.
그가 유리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시뮬레이션의 강상에 비하면, 확실히 무가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이는군.’
공허의 수련장 속의 강상에 비하면.
현재의 상대는 확실히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재밌구나…….”
자신보다 강한 적, 성지한을 눈앞에 두고 두 눈을 반짝거리며 투지를 불태우는 노인.
강상이 사용하는 천마신공도, 맨 처음에 비하면 발전 속도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공허의 수련장 속에선 힘을 똑같이 설정했을 시 반반이었는데, 여기선 그러다간 패배하겠군.’
성지한은 시뮬레이션 때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강상을 보면서, 어디 한번 힘을 제약해 볼까 생각했지만.
‘……아니다. 길가메시가 내린, 왕의 명령을 제거하는 게 먼저야.’
호승심은 접어 두고, 일의 우선순위를 잊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 쫓겨나면, 또 2주 후에나 들어올 수 있는데.
힘을 제약하고 여유롭게 강상과 전투를 벌이기엔 상황 여건이 따라 주질 않았으니까.
[스탯 ‘영원’이 1 오릅니다.]
한편, 싸우는 와중에도, 영원 스탯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지만.
[‘봉인된 세계수의 파편-1’에서 영원을 5 획득했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영원을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저번에 얻은 +3까지 카운트가 된 건지.
봉인된 세계수에서 영원을 5 얻고 나자, 더 이상은 영원이 오르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다.
세계수가 내뿜는 생명의 기운이야 계속 흡수되지만, 성지한 내부에 있는 영원은 더 이상 크질 않는 상황.
‘가만히 꿀 빨게 놔두질 않는군.’
성지한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러면, 지배 코드의 뒷글자도 완성시키지 못할 거 같은데.
‘세계수의 파편-1이라는 네이밍을 보니, 2와 3 같은 후속 넘버도 있는 건가. 그럼, 뒷번호에서는 영원을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파편 2나 3을 접하기 위해선, 일단 눈앞의 상대부터 제압하는 게 순서인가.
‘일단, 끝을 내자.’
성지한은 힘을 본격적으로 개방해, 강상을 몰아붙였다.
콰직……!
이클립스와 맞부딪친 봉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흠……!”
이를 본 강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눈앞의 상대.
자신이 이겨 내기엔 너무나도 강적이었으니까.
“자네를 이겨 내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군. 원래라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자네 같은 강자에게 계속 가르침을 받겠네만…….”
강상이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거인이 부활하면, 인간에겐 다시 없을 재앙이 닥치겠지…… 나는, 봉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네.”
그 말과 함께, 그가 들고 있는 대나무 봉이 흐물흐물해지며 채찍처럼 변했다.
저번에 성지한을 구궁팔괘도에서 쫓아냈던 타신편.
그것이 또다시 재현되며, 허공을 향해 뱀처럼 움직였다.
휘리리릭!
그렇게 세상을 부수고, 상대를 강제로 추방하는 절기가 바로 펼쳐졌지만.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은 허초고…….’
툭!
암검 이클립스가 현란히 움직이는 채찍이 아닌 허공을 베자.
타신편의 움직임도 급격히 둔해졌다.
‘대기를 가르는 기의 흐름이 진짜였구나.’
공허의 수련장 속에서도 타신편에 대해선 제대로 다루질 못했기에, 강상이 이를 꺼내 들자 대처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막상 이를 다시 마주치자, 성지한은 타신편의 숨겨진 움직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타신편…… 태극마검과 관련이 있었군요.”
태극의 망혼을 통해, 태극마검을 얻어 사용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강상이 사용하는 타신편은, 태극마검의 복잡한 묘리를 일부 담고 있었으니까.
태극마검을 한 번 스킬로 흉내만 내 보았던 성지한이었지만.
그런 경험으로도 상대가 쓰는 타신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지한의 입에서 태극마검이 나오자.
“태극마검……? 그걸 자네가 어찌 아는가?”
강상이 놀란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멸혼을 위해, 생각만 해 두었던 검이거늘…….”
멸혼이라.
그가 없애려는 건, 거인의 혼이었나.
강상 시절부터 태극마검을 구상하고 있는 줄은 몰랐군.
“나름 견식이 있습니다.”
성지한은 그렇게 대답하며, 이클립스를 움직였다.
그림자가 잠시 일렁이나 싶더니.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세상이 반으로 갈라졌다.
횡소천군.
가로를 베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초식.
하지만 타신편의 운용이 막힌 강상에게는, 이를 막아 낼 힘이 없었다.
툭!
흰수염이 반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지고.
스으윽.
강상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 이걸 어떻게 기르고 다듬었거늘…… 너무 볼품없이 잘라 버렸구나.”
“죄송하게 되었군요.”
뚝. 뚝.
그리고 갈라진 수염의 너머에선.
가슴에 깊게 파인 혈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원래의 대나무 형태로 돌아간 타신편.
강맹하던 강상의 기운은, 어느덧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지 말게. 내진의 존재는 절대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네…….”
그 말을 끝으로, 강상의 상체가 기울어지더니.
툭…….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
[구궁팔괘도의 외진이 붕괴하여, 구궁九宮, 팔괘八卦, 칠성七星이 해제됩니다.]
[‘봉인된 세계수의 파편-1’이 봉인진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저게 나온다고?’
성지한은 그 메시지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 * *
봉인된 세계수.
이건, 강상이 ‘거인’이라고 부르는 목신족과 적의 일족을 계속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태극의 망혼에도, 파편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거인의 혼.
이들은 생존력 하나는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강력했다.
‘세계수의 파편이 세상에 풀리면, 그놈들도 부활하나?’
그럼 평화로운 세상에 재앙이 초래되는 건데.
영원 스탯 얻으러 왔다가, 일이 커진 느낌이군.
[내진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지이잉…….
세계수의 옆쪽 허공에 그려지는 문양.
그건 만귀봉신의 문양과 언뜻 보기엔 비슷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내진으로 갈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잠깐만.”
성지한은 생명의 기운을 마구 내뿜고 있는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자기가 풀리는 걸 아는 건지, 아까보다 더 강하게 생명의 기운을 방출하는 파편-1.
내진에 들어가기 전에, 저건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소멸 코드를 써 볼까.’
성지한은 일단 나무 위에 소멸 코드를 써 보았다.
스으으으…….
그러자 순식간에 세상에서 삭제되는 세계수.
과연, 소멸 코드의 위력은 세계수에게도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소용없네…….”
뒤에서 강상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으으윽…….
세계수가 있었던 곳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다시 나무가 재생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저걸 부숴 보지 않았겠나. 아무리 부숴도, 저 흉물은 다시 재생했지…….”
“살아 계셨습니까?”
“그래. 저 나무가 생기를 하도 내뿜어서, 잠시 목숨을 부지했어. 외진이 다 파괴되면 나도 사라지겠지만 말일세.”
“외진이…….”
성지한은 주변을 힐끗 바라보았다.
녹음이 푸르른 호숫가의 세상은.
세상의 끝에서부터, 바다 아래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 바닷물이 외진의 끝에서부터 안까지 들어오면, 진도 완전히 붕괴되는 건가…….’
빠르게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세계.
세상이 완전히 변하는 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 같았다.
그 전에 저 나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데.
“혼마저 멸하지 못한다면, 저 흉물을 제거할 수 없다네…….”
“멸혼이라…… 그게 되면 제거할 수 있을까요?”
“그럼, 가능성이 있겠지…….”
“해 봐야겠군요.”
멸혼의 힘.
그건 조금 전, 강상이 이야기했었지.
‘태극마검’이란 이름으로, 구상했다고.
성지한은 스킬을 사용했다.
“태극마검.”
스으으으…….
스킬명을 외치자, 성지한의 등 뒤로 떠오르는 태극.
그것은 끝없이 확장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이게 태극마검이라고……?”
“그렇습니다만.”
“음…… 아니야. 이건 아니야…….”
끝없이 커져 가는 태극을 보며, 상반신이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강상이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태극을 언제까지 확장시킬 셈인가? 설마 스스로가 내뿜은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태극마검의 핵심은, 마검이네. 지금은 음양의 흐름만 보이고 있어.”
“흐음…… 이상하군. 이상해. 힘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어. 대체 어떻게 펼친 건가?”
어떻게 펼치긴.
스킬 쓴 거지.
성지한은 뒤에서 강상이 태극 단계에서 잔소리를 퍼붓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한번 이렇게 해 보게…….”
강상이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하자, 표정이 진지해졌다.
‘태극마검을 만든 이에게, 운용 방법을 듣다니.’
영원 스탯 올리러 왔다가, 이게 뭔 횡재냐.
“알겠습니다. 가르침대로 해 보겠습니다.”
성지한은 공손히 대답하며, 강상의 말에 따라 태극마검을 운용해 보기 시작했다.
* * *
한편.
무신의 별, 투성에서는.
“음……!”
길가메시를 감시하고 있던 동방삭이, 갑자기 침음성을 토해 냈다.
“왜 그러나?”
“…….”
길가메시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던 동방삭은.
스으으윽…….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별일 아니네.”
그렇게 말하는 동방삭은.
무의식적으로, 수염의 중간 부분을 쓰다듬고 있었다.
“……별일, 아닐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