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56화>
이종무해.
이종족의 무예와 권능을 자신의 종에 맞게 연구하고 흡수하게 해 주는 이 클래스는.
성지한이 이미 마켓에서 이종족의 영상구를 보면서, 쏠쏠하게 써먹었다.
‘뭐 그중 95퍼센트가 이종족 교미 영상이긴 했지만.’
남은 5퍼센트의 영상구에서 나름대로 자극을 받아, 무혼을 올릴 수 있었던 성지한.
하나 일정 수준 이상 능력을 얻고 나니, 그 이후부터는 영상구 가지곤 이종무해의 자극점에 들어오질 못했다.
그래서 이 클래스를 써먹을 방법이 끝났나 생각했는데.
‘이종족의 경험. 이미 내가 써먹을 만한 게 있었어.’
이번에 3이 더 오른 스탯 영원.
그것은 성지한의 내부에서 세계수의 형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2였을 때와는 달리, 확실히 존재감이 커진 세계수는.
성지한 내부의 공허와 예전보다 더 강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안에, 목신족의 정보도 일부 깃들어 있다.’
동방삭의 구궁팔괘도에 봉인된 세계수에서 생명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가.
거기서 같이 봉인되어 있던 목신족의 정보가, 성지한에게도 들어온 상태였다.
이 사실은 구궁팔괘도에서 나올 때만 해도, 그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강상과의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죽다 보니 알게 되었지.’
강상에게 수만 번을 죽어 가며, 무혼을 발전시켜 나갈 때.
그의 영원은 몸을 몇 번이고 원래대로 재생시키려고 했다.
힘을 제약하고 강상과 싸우려 했던 성지한은 매번 이를 막아섰지만.
수도 없이 진행되는 재생과정 중에, 목신족의 정보도 일부 흘러들어 왔던 것이다.
‘잊어버리기 전에 이종무해로 목신족의 데이터를 분석해야겠어.’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목신족의 정보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적의 일족에서 진화한 형태인 목신족.
그들이 지닌 힘은 인간에 비하면 압도적인 편이었지만.
‘개개인의 힘 자체는 이렇게 보니, 드래곤에게 밀리는 케이스도 몇몇 보이네.’
종 자체의 스펙은 용족과 동등한 케이스도 여럿 있었다.
이들은 목신족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종의 힘이 신급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용족에게 없는, 차별화된 특징이 있었으니.
‘목신족은 영혼 상태에서 재생이 가능하단 말이지.’
바퀴벌레 저리 가라 할 재생력을 지닌 엘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젠 영혼 상태에서도 원형으로 재생하는 목신족.
종족 스펙 자체는 용족과 비슷하지만, 이 규격 외의 재생력 때문에 저들은 신족이라 칭할 만했다.
‘어디…….’
이종무해를 통해, 성지한은 본격적으로 이들에 대해 분석을 시작해 보았다.
아무래도 파편화된 목신족의 정보라 그런지, 처음엔 써먹을 수 있는 걸 바로 발견할 수 없었지만.
‘공허 수치에 따라, 이종무해의 클래스 보정 수치가 더 효율적으로 변했었지…….’
성지한은 이종무해의 클래스 설명을 떠올리고는, 인벤토리에서 반가면을 꺼냈다.
그렇게 강상과 싸울 때도 쓰지 않았던 공허처리장을, 이종무해의 효율 증폭을 위해 써먹자.
‘확실히 다르네.’
목신족의 정보가 조금 전과는 달리, 확실하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가면을 오래 끼면 안 되니까, 지금 최대한 집중해야지.
그렇게 성지한은 공허를 증폭시킨 상태에서 목신족의 정보를 분석했고.
[공허가 2 오릅니다.]
공허가 2 더 오를 때쯤, 분석을 끝냈다.
‘파편화된 정보라 영혼 재생까진 익히지 못해도…… 육체 재생과 생명의 기운에 대해선 좀 알겠군.’
목신족의 영혼 재생은, 적의 일족이 갖은 실험을 통해 진화하려 했던 목표.
이건 그리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그 하위 단계인, 육체 재생과 생명의 기운 활용법은 익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재생력이 좋긴 하지만.’
생명의 기운을 무한정 내뿜는 영원을 지닌 터라, 지금도 성지한은 엘프 부럽지 않은 재생력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이제까지는 신체가 생명의 기운에 의해 자동적으로 재생하는 것에 가까웠다면.
‘이젠 내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겠군.’
목신족의 정보를 체화한 후에는, 성지한이 주도적으로 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이 깨달음, 이클립스에도 적용이 가능하겠어.’
아이템명 ‘태양의 그림자’에서 ‘생명의 그림자’로 변했던 이클립스.
등급 EX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던 생명의 그림자는, 아직 그 정도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이와 연동되어, 그림자의 힘을 다루는 암영신결도 발전이 정체 상태였지만.
이젠 목신족의 데이터를 통해 생명의 기운 운용법을 더욱 업그레이드했으니.
암영신결을 본격적으로 연구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밖에 가야겠군.’
강상과의 전투 시뮬레이션으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상황.
들어온 후부터 며칠이 흘렀는지 감도 안 올 정도니, 성지한은 지구에서 무슨 일이 있나 한번 파악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공허의 수련장에서 나서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는 거실로 나섰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거기서 그를 맞이한 건, 아리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림자여왕이었다.
“내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 괴물한테 이겼나?”
힘을 제약한 상태에서, 강상과 맞붙는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그림자여왕을 지구로 보내 뒀었다.
그녀는 조용히 있다가도 중요한 순간에 한마디씩 훈수를 둬서, 수련에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아니. 공세가 비등한 상태에서 더 나아가진 못했어.”
“역시 우주천마…… 인간 시절부터 괴물이었군. 그래도 그와 동수를 이룬 것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야.”
“아직은 부족하지.”
성지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림자여왕이 틀어 둔 TV 화면을 힐끗 보았다.
화면에선 그에게 익숙한 얼굴들.
한국과 미국, 양 팀 대표팀 감독이 나오고 있었다.
“뭐야. 왜 우리나라가 미국이랑 붙고 있어?”
“슈퍼컵? 뭐 그런 경기가 있다는데. 1, 2차전이 초장기전이 외 버려서 지금 2박 3일 동안 경기 진행 중이다.”
“하루에 한 경기씩 했나 보군.”
성지한이 출전하는 대표팀 경기야, 그가 상대를 압살해 버리는 바람에 빨리 끝났을 뿐.
국가대표 경기 중에, 맵에 따라 이렇게 게임이 오래 끌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 객관적인 전력은 미국이 앞서는데, 너희 가족이 꽤 끈질기게 저항하더군. 그래서 2차전까진 1승 1패였다. 근데…….”
=아아. 성지한 선수. 밴에 풀립니다!
=3차전에서 50퍼센트 확률이 제대로 들어맞는군요!
=이러면 한국 대표팀에게 승리가 돌아가는 걸까요?
=이것 참, 미국 입장에선 안 좋게 되었습니다. 4, 5경기에서 성지한 선수가 다 밴을 당해야 승리할 가능성이 생기겠군요…….
=1차전에서의 패배가 뼈아프네요!
배틀넷 0번 채널.
세계의 국가 랭킹 1위가 미국이었기에, 이 채널에서는 미국 해설진이 해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설자들이 미국 출신이니만큼, 자국의 입장에 맞게 해설을 하는 이들은.
3경기에서 성지한 밴이 풀린 걸 보면서, 1경기에서 패배한 아쉬움을 계속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운이 없었군.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4, 5경기에는 꼭 성지한 선수를 밴하도록 하지요.”
“…….”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성지한이 밴에서 풀렸음에도, 얼굴 표정이 밝지 않은 노영준 감독.
-아니 성지한 살았는데 왜 저래?
-ㄹㅇ 꽁승인데 ㅋㅋㅋ
-설마…… 지금 성지한 없는 거 아니겠지?
-에이 뭔 ㅋㅋㅋㅋ 재수 없는 소리 ㄴㄴ해
-근데 예전에도 수련하다가 조인족이랑의 경기 성지한이 결장한 적 있잖아.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설마!
한국 시청자들은 노영준 감독의 표정을 보면서 설마를 연발했다.
그리고, 시작된 3경기.
=어?
=뭐죠?
=성지한 선수가……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성지한 선수 경기에 나서지 않았던 겁니까?
=분명히 출전 선수 리스트엔 있었는데요!
=플레이어 성, 수련 중인가 봅니다!
패배를 직감했던 미국 해설진의 목소리가 밝아지고.
양국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안 가?”
“3경기 출전하긴 늦었지. 4경기 때나 가 봐야겠군.”
“그래…… 나도 갈까?”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림자여왕.
소파 옆자리에는 이미 다 먹은 과자 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누군 강상한테 목이 날아가는 와중에, 여기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구만.
“근데 이런 경기에 사실 내가 딱히 필요는 없지 않아? 솔직히 그대가 주먹으로 패도 다 이길 텐데.”
“아니, 와라. 검 좀 쓸란다.”
“에이…… 남 노는 꼴을 못 보네.”
그림자여왕은 피식 웃자.
그녀의 형태가 무너지며, 그림자기운으로 변환이 되었다.
그 상태로 성지한의 팔에 빨려 들어가는 검은 기운.
=미국 대표팀. 3경기에서 벌써 승기를 잡고 있습니다!
=더 고무적인 일은, 플레이어 성지한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이 경기를 패배한다고 해도, 이제 4, 5경기에서 검왕이나 윤세아 선수를 밴하면 게임은 미국의 승리로 돌아가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내주었지만, 슈퍼컵은 가져가겠군요!
이미 승리를 확신했는지, 잔뜩 신난 미국 해설자들.
“슈퍼컵이라…… 큰 의미는 없긴 하지만, 남 주긴 아깝지.”
성지한은 TV를 끄고는,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나섰다.
* * *
한국의 배틀넷 센터.
“망했군…….”
노영준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3경기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성지한이 있는 척, 블러핑을 해서 적의 밴카드를 소모시켰지만.
이제 4경기부터는 그것도 통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감독님. 어차피 슈퍼컵 경기이지 않습니까. 이벤트성 경기니…….”
“아니. 이거 완전히 이벤트성 경기는 아니야. 배틀넷 국가 순위와도 연관이 있어.”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배틀넷 국가 순위에서 랭킹이 가파르게 상승한 한국.
지금은 4위에 랭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만약 슈퍼컵까지 딴다면, 3위인 인도와 순위가 역전될지도 모르는 상황.
감독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고 싶은 경기였다.
“하필 거기서 밴이 풀려서…… 차라리 4, 5경기 때 풀리지.”
왜 자리에 없을 때만 운이 좋은 거냐.
노영준 감독은 작게 푸념하며, 3경기 진행 상황을 바라보았다.
“성지한이 없다! 대표팀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어!”
“그놈 없으면 한국 따위야 손쉽지!”
“결승전의 복수를 하자!”
성지한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기가 크게 오른 미국 대표팀은 3경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초상집 상황.
“아 씨 들켰네…….”
“망했다, 야.”
“1경기 이길 때만 해도 혹시나 했는데…….”
“다음 경기에 검왕님 밴 당하면 이제 희망이 없네.”
3경기를 이겨도, 4, 5경기에서 밴 카드가 수정되면 남은 경기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
한국 대표팀의 의욕은 뚝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프로 선수들이니만큼, 어떻게든 미국에 대항은 하고 있었지만.
=또다시 검왕과, 그의 딸만 남는군요!
어느덧 선수는 둘만 남았다.
=윤세아 선수는 이제 ‘검왕의 딸’이라고만 보기엔 너무나도 강력한 플레이어입니다! 아처 중에선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선수로 성장했어요!
=워리어와 아처. 심플한 강력한 이 조합이 1경기 때 미국을 패배로 이끌었죠. 대표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 해설진의 바람대로.
승기를 잡은 미국 대표팀은 윤세진 부녀를 천천히 압박해 나갔다.
아무리 초강자 반열에 든 둘이라 해도.
미국 대표팀 선수들도, 강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으니.
“큭…….”
“에이, 치사하게 숫자로 밀어붙이네, 진짜!”
윤세진 부녀는 오랜 시간을 저항했지만, 결국 전사하게 되었다.
=3경기, 미국이 승리합니다!
=이번 경기, 이기긴 했지만 한국의 두 부녀에게 잘못했다간 역공을 당할 뻔했어요!
=맞습니다. 1경기도 이런 상황에서 졌었죠! 다행히 1경기 패배의 경험을 토대로, 대표팀 선수들 차분하게 압박을 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1경기와는 달리, 소피아 선수를 재빨리 커트한 게 컸죠!
=성지한 선수가 출전 불가능한 상태인 만큼, 둘 중 한 명은 꼭 밴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4경기는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겠군요!
3경기를 가져오자, 이미 승리를 확정 짓는 미국 해설진.
그리고 이건, 해설진뿐만이 아니라 이 경기를 보는 시청자 모두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슈퍼컵 초장기전에서 결국 패배하네…….
-소피아를 좀 더 지켰어야 했는데 아쉽다.
-ㄹㅇ 버프 개꿀이었는데 3경기에서 미국 애들이 집요하게 서포터부터 잡더라
-이제 윤세진 윤세아 소피아 조합 깨지는 건가…….
-100퍼센트 저 중 한 명 밴할 듯.
-난 검왕 밴 본다.
-나도 ㅋㅋㅋ 윤세아 성장 빠르긴 하지만 아직은 윤세진이 제일 강해.
그리고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4경기 밴 카드로, 검왕 윤세진을 꺼낸 미국 감독.
“누굴 밴할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검왕이 제일 신경 쓰이는군요.”
미국 감독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어두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노영준 감독.
하지만, 그의 입가는 자꾸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국 감독의 물음에 애써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짓는 노영준 감독.
미국 감독은 그걸 보고 약간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마지막 블러핑인가.’
그는 밴 카드를 현행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시작된 4경기.
=……어?
=잠시만요…….
지금껏 승리를 확신하던 미국 해설진들은.
=왜, 왜 그가 나옵니까……!
4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성지한을 보고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