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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로 회귀한 무신-346화 (346/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346화>

‘어비스의 주인이…… 나라고?’

성지한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앞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아레나의 주인이 그렇게 누나인 성지아를 내놓으라고 할 때도, 어비스의 주인은 끝까지 버텼지.

그때는 왜 이놈이 그렇게까지 누나를 안 내주나 의아했는데.

그가 자신이라서 그런 거였나.

‘아니…… 아직은 모른다. 단지 나와 비슷한 얼굴이 나왔을 뿐. 어비스의 주인 이름은 태극의 망혼이지 않는가.’

시스템에서 밝혀진, 어비스의 주인 이름은 태극의 망혼.

눈에서 태극의 문양을 띄운 것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상대는 아무래도 동방삭과 상당히 연관이 있어 보이는 존재였다.

그래.

아무리 성지한, 자신의 얼굴이 나왔다 한들.

눈앞의 존재가 꼭 자신과 일치하라는 법은 없다.

성지한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파아아앗!

눈앞의 얼굴이 다시 부서지며, 파편이 성지한에게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막으려고 들기도 전에, 순식간에 접근하는 성지한의 얼굴.

툭.

처음 얼굴에 부딪힌 건, 눈이었다.

그러자 성지한의 귓가에 들린 건, 환청.

-결국 반항을 택했는가…… 좋은 인연이 되리라 생각했거늘, 유감이구나.

-자네는, 무신께 갈 수 없네.

-태극마검으로, 끝을 내겠네.

-이것도 견디지 못한다면, 무신께 일초지적일 뿐.

동방삭의 음성이, 파편이 얼굴에 박힐 때마다 들려왔다.

그리고 얼굴에 박힌 조각이 많아질수록.

스으으으으…….

눈앞에서, 여러 장면의 환영이 동시에 보였다.

어느 배경은 투성.

어느 배경은 도시 한가운데.

어느 배경은 하늘 위.

그렇게 바탕이 되는 장소는 각기 다르나, 거기서 나오는 인물은 모두 동방삭이었다.

슈우우우…….

허공에 커다란 태극의 문양이 그려지더니.

역으로 돌아가는 태극에서, 백색 검을 뽑는 노인.

그가 검을 꺼낼 때면, 몸이 대번에 폭발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단 한 번도, 저것을 견딘 적이 없군…….’

얼굴에 대부분의 파편이 붙을 때까지, 태극마검에 의해 죽는 장면은 계속해서 나왔다.

어떤 때는 조금 버티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반격을 가하려 하기도 했지만.

백색의 검이 어둠을 토해 내는 단계까지 오면.

이를 이겨 내는 성지한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탁.

이마의 조각이 마지막으로 성지한에게 붙자.

사방에서 성지한, 자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많은 ‘내’가 무신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무신은 만나 보지도 못했다.]

[나를 죽인 것은, 동방삭.]

[이건, 너도 마찬가지다.]

스으으으…….

얼굴에 박힌 파편 조각에서 공허가 흘러나오고.

성지한의 육신을 금방 감싸기 시작했다.

하나, 몸을 뒤덮기만 할 뿐 강제성은 없어 보이는 힘.

성지한의 목소리는, 사방에서 또다시 울려 퍼졌다.

[인간 성지한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나와 합세하라.]

[태극의 망혼을 장악하여, 동방삭을 이겨 내야 한다.]

[이것이 가족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스으으으.

그러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형상.

사슬에 감긴 채 자물쇠에 잠긴, 누나 성지아의 모습이었다.

[망혼의 주인이 되자. 그러면 봉인을 부술 수 있다. 동방삭을 벨 수 있다.]

[이리하면 가족과 함께,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내가, 가족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

[너는 공허를,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동방삭에게 수도 없이 패배해 왔던 성지한.

그 파편들이 모인 의지가, 지금의 성지한을 설득하고 있었다.

상대는 인간의 몸으로 이길 수 없는 초강자.

적의 일족과 목신족의 힘이 들어 있는 ‘태극의 망혼’을 손에 넣고.

이걸로 강대한 동방삭에게 대항하자고, 성지한의 의지는 말했다.

“…….”

동방삭.

배틀넷에선 우주천마라 불렸던가.

그의 태극마검이야, 아바타 허우택의 몸을 통해 펼쳐진 검으로 한 번 겪어 보긴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로 강력할 줄은 몰랐다.

‘태극마검의 희생자 중엔, 현재의 나보다 강한 성지한도 분명히 있었다.’

수도 없이 펼쳐졌던 사망 장면.

거기서 마검의 힘에 버티던 성지한도 꽤 있었다.

그들이 그 위기상황에서 펼쳤던 무공은, 확실히 현재의 성지한을 뛰어넘곤 했지.

하지만.

‘이들 중, 스탯 적과 영원의 흔적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어.’

무혼과 공허.

이 능력은 많은 성지한이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스탯 ‘적’과 ‘영원’의 흔적까지는 찾아내질 못했다.

죽기 직전의, 찰나의 경험만 재생돼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확실히 적과 영원은, 없었다.

‘……’

성지한이 유심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에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세하라. 또 다른 나여.]

“합세라. 그래 봤자, 어차피 여기 게임 속인데?”

[네가 동의한다면, 현실의 너와 합일할 수 있다.]

그런 것까지 가능해?

그럼 확실하게 답을 해야겠군.

꽈아악.

성지한은 얼굴에 박힌 조각을 움켜쥐더니, 밖으로 떼 내었다.

그러자.

화아아아…….

몸을 감싼 공허가 벗겨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것이 네 대답인가.]

“어. 내가, 그에게 도전해 보겠다.”

[너와 똑같은 대답을 한 이도, 이미 여기 있었다.]

스으으윽.

성지한의 눈앞에, 여러 얼굴 파편이 떠올랐다.

광대 쪽의 살갗, 오른쪽 눈과 안구 주변.

입가와 턱까지.

이건 성지한의 파편 중에서도 잘게 쪼개지지 않고, 커다랗게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런 최후를 맞이하기 전에, 온전한 몸으로 합세하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의 몸으로 오면, 이 수많은 성지한 중에서도 네가 장악력이 가장 강할 테니까.]

“거절하지. 아직 눈깔 괴물의 몸으로 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수상쩍기도 하고.”

[그런가. 결국, 이번의 나도 파편이 되어 합세하겠군…….]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파편 조각.

그는 한 번 다짐한 성지한에게 더 이상의 설득은 통하지 않을 걸 잘 아는지.

[그럼, 기다리겠다. 새로운 조각이여.]

서서히 투명해졌다.

“가도 누나는 풀어 주고 가지 그래?”

[풀어 줘 봤자 결국 멸망의 순간 죽게 될 뿐…… 이것이 누나를, 세아를 궁극적으로 살리는 길이다.]

“인류가 멸망해서? 근데 너, 왜 인류를 멸망시켰지? 그리고 왜 이렇게 죽은 성지한이 많은 거냐?”

[대답할 의무는 없다. 어차피, 네가 조각으로 합세한다면 다 알게 될 테니…….]

투명해지던 상대는 그리 말하다, 문득 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 누나를 해방하고 싶다면, 어비스로 오도록 해라. 나를 이기면, 풀어 주도록 하지. 날 이긴 성지한이라면, 누나를 맡겨도 될 테니까.]

“그 눈깔 거인을 이기라고?”

[그래. 대신, 이번과 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전력으로 상대하여, 널 제압하지.]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유효타를 먹인 것도, 어비스의 주인이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전력을 다해서 대비하는 상대는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쉬엄쉬엄하지 그래.”

[어차피 태극의 망혼도 이기지 못하면, 동방삭의 벽은 뛰어넘지 못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성지한의 조각.

그리고,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비스의 주인은 사라졌으나, 인류의 멸망은 여전히 예정되어 있습니다.]

[미션에 실패합니다.]

[재도전 기회를 모두 소진했습니다.]

[스페이스 – 2에 승급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약점인 머리까지 노려서 어비스의 주인을 제압했음에도.

인류는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며, 미션 실패를 알리는 시스템.

성지한은 그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또 누가 멸망시키는 거야?

‘하…… 작작 좀 멸망해라. 진짜.’

그렇게 성지한은, 그랜드마스터 리그엔 무혈입성했지만.

최종적으로 스페이스 – 2 에어리어로의 승급에는 실패했다.

*   *   *

무신의 별 투성.

동방삭에 의해 여전히 억류되어 있는 길가메시는, 팔짱을 낀 상태로 성지한의 배틀튜브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류 멸망 시나리오까지는 큰 감흥 없이 보던 그는.

“호오…….”

거인의 몸에 박혀 있던 눈이 돌아가며 태극을 그리자, 큰 흥미를 보였다.

“동방삭, 왜 저 눈알이 네 태극과 비슷한 힘을 쓰는 거지?”

“비슷하다니…… 네 안목은 그것밖에 안 되는가? 저건 모양만 그럴듯하게 따라 할 뿐, 실제 힘의 운용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그래? 그래도 꽤 강한 것 아닌가? 저 힘으로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았나.”

“이미 무너져 내려가던 세계다. 모조품으로도 멸망시키긴 어렵지 않아.”

동방삭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태극의 망혼이 펼쳤던 태극을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그리고 저 어비스의 주인은, 대강 알 것 같군.”

“그래? 뭐지 저놈은?”

“구궁팔괘도와, 태극에 의해 사라졌던 만귀萬鬼 중 저런 눈을 한 이들이 있었지. 그때 봉인한 귀신 중 일부가 진 안에서 사라졌는데, 그때 사라졌던 망령이 모인 것 존재 같다.”

“만귀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만귀를 읊조리던 길가메시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무신이 갈취해 간 네 업이 만귀봉신이라 했던가.”

“……그래.”

“무신이 업을 가져갔으니, 그가 만귀도 다 봉인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네가 만귀를 봉인한 거지?”

“무신께서 내게 직접 명하신 일이다.”

“후후…… 무신이 붉은 눈의 거인, 나무 거인 형태의 유령을 집중적으로 봉인하라고 했는가?”

“……어떻게 알았지?”

동방삭이 경계 어린 눈으로 길가메시를 바라보았다.

오래전.

고대에 창궐하던 만귀 중, 특정 종류의 귀신을 봉인하라고 명령한 건 무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

동방삭이 나직이 노려보자, 길가메시는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저 어비스의 주인 몸에 박혀 있는 눈알. 그게 두 거인의 눈이었거든.”

“적안을 지닌 존재가, 그렇게 희박하진 않을 텐데.”

“내가 저들은 대거 사냥해 봐서 알지. 저 눈은 특출나.”

“흐음…….”

저 붉은 눈이 그렇게 특이한 거 같진 않은데.

동방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채널 속 어비스의 주인을 보고 있자니.

길가메시가 시선을 그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동방삭, 너는 왜 영생을 추구했지?”

“영생을 원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너 같은 괴물은 굳이 무신의 종이 되지 않아도, 수백 수천 년은 살았을 거 같거든.”

“그 정도는 거뜬히 살았겠지.”

동방삭은 길가메시의 말을 긍정하며, 대답했다.

“하나 무신이 내게 보여 준 영생은, 단순히 육체적인 삶만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그는 제시해 주었지.”

“발전이라…… 발전해서 뭘 하려고?”

“오늘은 질문이 많군.”

“뭐 이 정도는 대답해도 되지 않겠나. 같은 종자끼리.”

“……무공을 완성시키려 했다.”

“무공의 완성이라. 태극마검은 완성품이 아닌가?”

“그렇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목표를 이루었지.”

길가메시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

“무공광 동방삭. 무신의 종이 되면서까지 추구한 목표를 이루었으면, 쉴 생각도 들 법한데. 그런 적은 없었는가?”

“……왜 그런 질문을 하지?”

“그냥. 의아해서 말이야.”

스윽.

길가메시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오래 살고 싶은 확고한 목표가 있다. 인류의 왕을 넘어서, 우주적 존재로서 군림을 하고 싶거든. 그래서 영생의 유혹에 넘어갔지. 한데 너는 딱히 그런 욕구가 크게 보이질 않아…….”

“…….”

“무공도 완성했는데도, 영생을 살고 싶다고 하면서 계속 무신의 종노릇을 한다? 자네 같은 무인이? 흐음…… 누가 무신인지 모를 판국인데.”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왜 나 자신이 영생을 추구했는지. 내면을 한 번 깊게 파고든 적이 있었나?”

촤아아악!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가메시의 목이 날아갔다.

그러자 목이 잘린 부위에서, 금방 올라오는 피와 살점.

새로 재생된 길가메시의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가는 머리를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멀리도 가네. 내 머리.”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마라.”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야? 충분히 생각할 만한…….”

휙.

동방삭이 검을 한 번 휘두르자.

길가메시의 몸이 수천 갈래로 쪼개졌다.

꾸물. 꾸물.

그리고 길가메시의 몸 조각 속에서, 입술이 움직였다.

“거참…… 알았다. 알았어. 이 주제는 그만 말하지.”

슈우우우…….

그러면서 한데 뭉쳐, 서서히 재생되는 길가메시.

동방삭은 그런 상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영생을 추구하는 이유라…….’

무공의 완성.

그저 오래 살고 싶은 욕심.

이 둘 말고도,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였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군.

동방삭은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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