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2화>
슈우우우……!
롱기누스의 몸에서, 핏빛의 혈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금방 시뻘겋게 물드는 하늘.
성지한은 그 안에 담긴 강렬한 힘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성좌급은 다른가.’
지금까지 롱기누스와 맞붙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것은 블라디미르에게 현신한 아바타였다.
확실히 본체가 현신한 지금은, 힘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나도 많이 강해졌지만…… 아직은 힘들다.’
성지한은 냉정히 현 상황을 판단했다.
아무리 초월적인 스탯을 지닌 성지한이라고 해도, 눈앞의 상대 롱기누스에게는 확실히 밀렸다.
이대로 맞붙는다면, 몇 분 지나지 않아 롱기누스에게 패배하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아.’
그에게 전력을 부스트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성좌 특성 ON을 통한, 전 능력 향상.
그리고 두 번째는, 고엘프가 넘겨준 반가면이었다.
‘이거 둘 다 세계수 엘프 덕에 얻었군.’
저번 생에서는 참 미운 상대였는데.
이번에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단 말이야.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벤토리.”
스윽.
그러자 그의 손에 쥐어지는 반가면.
성지한은 그걸 바로 얼굴에 썼다.
그리고, 동시에 성좌 특성을 ON 하자.
[배틀넷에서 에러를 감지합니다.]
[성좌 도달 레벨이 774로 낮아집니다.]
스으으…….
성지한의 전신에서, 공허의 힘이 폭발하듯이 치솟았다.
모든 능력이 증폭된 상태에서, 더 강하게 성지한의 몸을 잠식한 공허.
‘어마어마한 양이군. 능력 증폭에 공허 수용 한도 증가가 없었으면, 이미 공허의 의지에 귀속되었겠어.’
성지한은 기존보다 몇 배는 강해진 몸의 기운을 가만히 관조했다.
증폭에 증폭을 거듭한 기운.
하나 이것은 한계 시간이 정해진 힘이었다.
오래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자신.
증폭된 힘을 날카롭게 버무려서, 상대를 일시에 제압해야 한다.
“네놈. 이 정도 힘이라니…… 공허에 몸을 맡긴 것인가? 하나 부질없는 짓이다.”
한편.
롱기누스는 가면을 쓴 성지한에게서 피어오른 공허를 보며.
혈십자를 등 뒤에 둔 채, 손가락을 뻗었다.
치이이익……!
그러자 피의 십자에서, 무수히 튀어나오는 십자검.
“십자검 크라니온이여. 그를 죽여라.”
슈슈슉!
수백, 수천의 혈검이 일제히 성지한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격이 다른 속도.
성좌가 펼친 공격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용뢰龍雷
파지지직……!
봉황기에서 뻗어 나가는 거대한 용뢰.
그것은 기존의 성지한이 사용하던 것에 비해, 한층 더 강렬한 힘을 품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혈검에도 밀리지 않는, 여러 줄기의 붉은 벼락.
검과 뇌전은 하늘 위에서 팽팽하게 맞붙었다.
그리고.
‘힘이 남는군. 특히 공허가.’
초강화된 성지한은, 성좌와 맞붙으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스으으윽.
빈 왼손에서 피어오르는 그림자기운.
그것은 공허를 품은 상태로, 곧 그림자검 이클립스를 형상화했다.
기존의 검은, 그림자여왕이 들어간 상태라 흑검의 표면에 사슬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지만.
[이 무슨 힘인가…… 이그드라실의 뿌리, 내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건만. 저절로 사라지네…….]
화르르륵……!
수십 개의 끊어진 사슬 중, 절반 정도가.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보랏빛 불길에 타올라 사라졌다.
그만큼 막대한 양의 공허가 담긴 이클립스.
혼원신공混元神功
삼재무극三才武極
횡소천군橫掃千軍
검이 가로를 긋자, 공허의 검기가 하늘을 절단 내고.
용뢰와 팽팽하게 맞붙던 십자검 무리가 급격히 밀려 나갔다.
“흠……! 이 정도로는 안 되는가.”
그걸 본 롱기누스는 뒤편의 거대 십자에 손을 뻗었다.
파스스…….
그러자, 그의 손을 삼키더니 합쳐지는 거대한 혈십자.
“내 검을 직접 들겠다.”
스으으으…….
그것은 곧, 롱기누스의 몸에 맞게 크기가 작아져, 십자 형태의 거검으로 변했다.
휙!
거검이 한 번 움직이자, 파도치는 혈기.
동시에 롱기누스의 모습이 사라지고.
[왼쪽이다.]
그림자여왕의 경고와 함께,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성지한의 옆에 나타났다.
쾅!
두 검이 맞부딪치자, 성지한의 몸이 하늘에서 주르륵 밀려났다.
“흥. 꽤 버티는구나.”
휙!
그런 성지한을 향해 순식간에 뻗어 오는 십자의 혈검.
검은 상하좌우, 모든 방위를 점한 채, 수십 갈래로 나뉘어 성지한을 노렸다.
그 모든 공격에, 필살의 힘이 담겼지만.
[위가 진짜다.]
그림자여왕은 그 가운데서도 진짜를 찾았다.
펑!
성지한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는 핏물.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롱기누스의 투구가.
치지직……!
그 짧은 순간 가해진 성지한의 반격에 의해, 일부 베였다.
“허…….”
핏빛의 갑주 사이, 잠깐이지만 드러난 롱기누스의 붉은 피부.
그것은 금방 차오르며 회복된 투구 덕에 가려졌지만.
“꽤 까부는구나.”
롱기누스의 분노에, 불을 지핀 상태였다.
“죽여 주마.”
순식간에 뻗어 오는 혈검.
[아래.]
그림자여왕의 경고와 함께, 다시 격돌이 시작되었다.
* * *
[성좌 도달 레벨이 773으로 낮아집니다.]
‘5분이 지났군.’
성지한은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고는,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열세로 진행된 전투.
특히 초반에는, 그림자여왕이 아니었다면 롱기누스의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지만…… 힘의 총량이 밀리는 건 여전하다.’
아무리 성지한이 두 번 힘을 증폭했다고 해도, 직접 강림한 성좌에게는 아직 부족한 상황.
그나마 버틸 수 있던 건, 그가 지닌 초월적인 스탯과.
[위, 아래 동시에 들어오는군.]
그림자여왕의 적절한 어드바이스 덕분이었다.
펑! 펑!
검과 창에 가로막혀, 허공에서 폭발하는 혈검.
“……빠르게 강림하길 잘 했군.”
스윽.
5분간 성지한과 치열하게 다투었던 롱기누스는, 이번 공격도 막히자 몸을 뒤로 물렸다.
“창은 쓰고 싶지 않았건만.”
롱기누스가 들고 있던 혈검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고.
휘이이이…….
핏빛 기운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롱기누스의 갑주.
혈기로 이루어진 갑옷은 하나둘씩 해체되면서, 롱기누스의 신체를 보여 주었다.
[몸이 대체 왜 저래? 저놈 너희 종 출신 맞나?]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피를 콸콸 흘리고 있는 롱기누스의 몸.
특히 가슴팍 중앙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튀어나오며 혈기를 보충하고 있었다.
저렇게 출혈이 일어나면, 몸의 피가 금방이라도 고갈될 법한데, 계속해서 피를 토해 내는 롱기누스.
그의 몸은 핏물에 젖어, 시뻘건 상태였다.
“신살의 권능. 여기서 사용하겠다.”
슈우우우!
회오리가 더욱 강하게 회전하더니, 그것은 곧 길쭉한 형태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난 건, 피로 이루어진 창.
스윽.
롱기누스가 이를 들어 성지한을 겨누었다.
“죽어라.”
휙!
롱기누스의 손에서 떨어져, 천천히 날아오는 혈창.
이건 어린아이라도 피할 수 있을 만한 속도였지만.
정작 타깃이 된 성지한의 몸은, 딱딱히 굳은 상태였다.
[……뭐 하는.]
성지한이 가만히 있는 걸 보고 뭐라고 하려던 그림자여왕의 목소리도 중간에 뚝 끊기고.
성지한의 세상은, 완전히 멈춰 버렸다.
단지 하나.
혈창만이, 느릿하게 날아올 뿐이었다.
‘……타깃 정지 코드가 발동했는가.’
롱기누스가 아바타로 보여 주었던 신살의 창.
그때 타깃팅당했을 때는, 체내의 기운이 그래도 미약하게 움직였다.
하나 성좌인 롱기누스가 직접 사용하는 신살의 창은 완벽히 성지한을 봉쇄하여, 몸 안의 힘이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
이대로 가다간, 꿰뚫리는 건 확정이었다.
그때.
피시시시…….
혈창의 끝에서, 미약하게 피어오르는 핏빛 연기.
그리고 그 위에는 보라색의 글귀가 떠올랐다.
[타깃 조건, 일부 일치]
[소멸 코드 발현]
여기까지는 예전에도 떠올랐던 문양.
하지만.
그 아래에 곧, 태양 마크가 떠오르더니 붉은 글씨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타깃 정지 코드 실행 중]
스탯 적을 얻기 전까지는, 태양 마크에 숨겨져 있던 글씨.
이것은 성지한을 시간 정지 상태로 만든, 숨겨진 명령어였다.
그리고.
[명령어를 회수하시겠습니까?]
체내의 기운이 미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명렁어 회수를 물어보는 붉은 배경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그래.’
몸이 멈춰있는 성지한이 그렇게 의지만으로 회수에 동조하자.
[명령어를 회수합니다.]
슈우우우……!
세 번째 줄, [타깃 정지 코드 실행 중] 문자가 성지한에게로 날아오며.
그의 가슴 쪽, 적의 기운이 모인 문양에 쏙 들어갔다.
[명령어를 회수했습니다.]
[적의 수용 한도가 절반 이상 차오릅니다. 명령어를 1회 더 회수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부 다 수용하지 못했던 명령어.
하나, 그때에 비해 스탯 적의 수치도 오르고 증폭도 된 상태라 그런지.
이번엔 성좌 롱기누스가 직접 사용한 신살의 창이라고 해도, 1번은 더 명령어를 회수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움직이며.
[……는 건가. 가만히 있고! 어?]
그림자여왕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스탯 적으로 인해, 시간 정지는 확실히 파훼가 가능해. 하지만.’
지이이잉…….
날아오는 신살의 창에서, 또다시 태양 마크가 떠오르고.
[타깃 정지 코드 실행 중] 문자가 다시 쓰이고 있었다.
문장이 완성되면, 조금 전처럼 다시 시간 정지 상태로 들어가겠지.
‘이제 흡수할 수 있는 기회는 1번밖에 없다. 창 자체의 힘을 없애야 해.’
창의 힘을 없애기 위해선, 저 힘을 소모시켜야겠지.
“엔키두 소환.”
스르르륵!
성지한의 등 뒤로, 강철 사슬이 뻗더니.
철컥! 철컥!
그것은 한데 뭉치며, 강철갑주를 입은 존재로 변모했다.
인간보다 네다섯 배는 커 보이는 강철거인 엔키두.
그것은 길가메시가 알려 준, 신살의 창의 타깃으로 소모될 인형이었다.
“엔키두…… 길가메시. 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걸 본 롱기누스가 두 눈을 크게 뜨고.
[타깃 조건, 완전히 일치]
[타깃 변경]
[소멸 코드 발현]
롱기누스가 뻗어 낸 신살의 창은, 타깃을 강철거인에게로 바꾸었다.
푹!
창에 꿰뚫리자, 그대로 소멸하는 거인.
그리고 성지한은 그렇게 사라지는 그의 뒤에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공 중 하나를 발현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천룡뇌화天龍雷火
하늘에 구멍을 뚫어, 거대한 불줄기를 쏟아 내는 천룡뇌화.
하나, 힘이 강화된 성지한이 내보인 천룡뇌화는.
휙!
뜻밖에도, 너무나도 평범한 투창에 불과했다.
성지한의 손에서 떠나가, 날아가는 봉황기.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롱기누스에게로 날아가더니.
“이놈……!”
급한 대로 혈기를 모아 만든 롱기누스의 방패를, 그대로 꿰뚫었다.
새하얗게 점멸한 봉황기.
그것은 곧, 롱기누스의 방패에 불을 지피더니.
화르르륵……!
금방, 새하얀 불꽃이 폭발하며 그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원래는 드래곤의 브레스라고 착각할 정도로, 대지 전역을 휩쓴 무공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강해졌기에, 힘을 응축할 수 있었던 천룡뇌화.
“이…… 무…… 슨…… 힘이란 말이냐.”
불과 전격의 힘이 응축된 새하얀 불꽃 속에서, 롱기누스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신살의 창을 쓰기 전이었다면, 그래도 방어할 수 있었겠지만.
창을 소환하며 자신의 혈기를 많이 소모한 그로서는, 천룡뇌화의 화력에 맞서 겨우 재생하는 게 고작이었다.
“끈질기군.”
스윽.
성지한은 가면 속 공허를 빨아들이며, 재빨리 롱기누스에게 접근했다.
신살의 창이 막히고, 천룡뇌화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상대였지만.
어디까지나 힘의 총량이 더 강한 쪽은 롱기누스였으니.
지금 당장,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끝내야 한다.
‘소멸 코드를 사용하자.’
소멸 코드, ‘멸’.
성지한이 지닌 모든 힘 중, 상대를 없앤다는 점에 있어선 가장 강력한 권능이었다.
다만, 이건 타깃의 위에 직접 글자를 써야 했기에, 막상 강적에게 써먹기는 까다로웠다.
현재의 롱기누스 상황처럼.
불의의 반격을 얻어맞고 회복 상태에 들어갔을 때, 끝장을 내야 했다.
휙!
성지한은 자신이 피워 올린 불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