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21화>
‘관상을 딱히 믿지는 않지만…….’
배신자의 상이라는 윤세진.
하나 그 평가는, 그에게 있어선 좀 억울할 법도 했다.
‘편집’ 능력을 가진 시즈루의 타깃이 돼서 그녀를 따른 것도 그렇고.
성좌 ‘태초의 왕’에게 지배를 당한 것도, 어찌 보면 사고에 가까웠으니까.
애초에 성지한도, 후원 성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윤세진보고 태초의 왕에게 후원을 받아 보라고 권유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동안, 자의가 아니더라도 사고가 여러 번 났으니까.’
윤세진이 그냥 재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성좌인 그림자여왕의 평가는 왠지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내가 성좌로 있으면서 중심을 잡아 주는 게 낫겠어.’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삼촌!”
그림자여왕에게 인류 플레이어들 보여 주겠다며 방 밖으로 나갔던 윤세아가 다시 들어왔다.
“여왕님이 아빠 후원하고 싶다는데?”
“아까 배신자의 상이라며?”
“내 상황이,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더군.”
그러면서 그림자여왕은 성지한을 스윽 바라보았다.
“근데 그대. 아까 혹시 무슨 일을 했는가?”
“왜?”
“갑자기 나의 능력이 증폭되어서, 몸에 남아 있던 사슬이 여러 개 끊어졌거든.”
성지한은 그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성좌 특성을 ON 했을 때, 200퍼센트 증폭한 전체 능력치.
그 덕을 그림자여왕도 봤나 보군.
“아, 잠깐 강화될 일이 있었어.”
“조금만 더 하면 안 되겠나? 이 사슬만 끊어 내면, 다시 성좌로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성좌로서 활동이라니. 이미 끝난 것 아니었나.”
모행성의 쉐도우 엘프가 전멸한 그림자여왕.
군림의 특성을 지닌 그녀로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성지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건 그렇다만…… 우리 쉐도우 엘프는 세계수 엘프가 결국 계속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엘프 타입이 완성되지 않으면, 모조리 폐기하는 건 여전하니까. 그 원혼을 규합하여, 다시 쉐도우 엘프를 세력화해야지. 그리고 날 이 꼴로 만든 세계수에 복수하겠다.”
복수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모행성은?”
“만약을 대비해 봐 둔 행성이 있다. 물론 그곳에 정착하기 전에, 적당한 숫자의 쉐도우 엘프를 휘하에 넣어야 하지. 세계수의 행성 하나 정도 기습해서 쉐도우 엘프를 해방한다면, 그 행성에 정착할 만한 숫자가 되겠지.”
“혼자서 그게 가능해?”
“지금이야 이런 신세지만, 나도 나름 LV.7의 성좌다. 힘만 회복한다면, 세계수 엘프 행성을 점령하진 못해도 기습해서 원혼을 규합하는 건 가능하다.”
레벨 7이라니.
군림 특성을 7까지 찍었다는 건가.
레벨 10이 대성좌라는 걸 생각해 보면, 7 정도면 성좌 측에서도 높은 위치.
생각보다 그림자여왕의 저력은 강했다.
“한데 재기를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걸림돌이 있다.”
그림자여왕은 자신의 몸에 달린, 끊어진 사슬을 만지작거렸다.
“내 몸에 아직도 박힌 이그드라실의 뿌리…… 이걸 없애지 않으면 내 위치는 언제든지 추적이 될 거야.”
“내가 없애 줄까?”
“아니, 이건 내가 스스로 극복하겠다. 네 덕을 보게 되면 나중에 뿌리에 감겼을 때 대처 방법이 없으니까.”
성지한이 지닌 권능으로, 대처가 가능한 이그드라실의 뿌리.
하지만 그림자여왕은 이것까지 그의 도움을 받고자 하진 않았다.
“해 보고 안 되면 이야기하고.”
“알았다. 그래서 말인데, 아까의 후원 건…….”
“아, 매형한테? 그거, 내가 하려고.”
성지한의 말에 그림자여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대는 성좌도 아니지 않는가. 레벨도 300대라며.”
“근데 5명은 후원할 수 있어.”
“아니, 성좌도 아닌데 성좌 후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난 되더라고.”
“……정말 특이한 플레이어군.”
그림자여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몇 번이고 갸웃하다가, 결국엔 검왕을 포기했다.
“알겠다. 배신의 상…… 아니, 검왕의 후원은 하지 않도록 하지. 다른 플레이어를 찾아보겠다.”
“잘 생각했어.”
“어…… 삼촌이 진짜 후원도 하는 거야? 성좌도 아닌데?”
“그렇게 됐다.”
“와…….”
윤세아는 눈을 깜빡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럼 아빠한테 다시 전화할게. 아깐 여왕님한테 후원받으라고 했었거든.”
“그래 그럼.”
“응, 아빠. 나 세안데…….”
* * *
“처남을 성좌로 맞으라고? 알겠네.”
집에 돌아온 윤세진은 별다른 고민 없이, 성지한의 후원 제안을 수락했다.
“아빠 바로 즉답하네. 그림자여왕님이랑 삼촌 둘 중에 고민도 하지 않고.”
“그간 처남한테 폐 끼친 게 얼만데. 어떻게 선택에 고민을 하겠어. 후원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처남을 성좌로 맞이한다는 게, 매형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시즈루에 이어서 길가메시의 종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기 때문일까.
윤세진은 당연하다는 듯 후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이제부터 성좌께 예의를 갖춰야 하나?”
“됐습니다. 가족끼리 무슨 예의예요. 오히려 거북합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성지한은 성좌 창을 열어, ‘플레이어 후원’ 항목을 열었다.
군림 특성 OFF라 그런지, 5개만 활성화되어 있는 슬롯.
그리고 플레이어 후원 항목의 맨 위에는, [투자 성향] 칸이 있었다.
“투자 성향? 여왕, 이게 뭔지 아나?”
“그대 정말…… 성좌로서 후원이 가능하구나? 그 항목은 성좌가 플레이어에게 얼마나 투자할 건지 결정하는 항목이다. 매우 적극적부터 매우 소극적까지 총 다섯단계로 나뉘지. 처음에는 투자 성향이, 모든 후원 플레이어 공통으로 들어갈 거다.”
“나중엔 달라져?”
“군림 레벨 3 이상이면 개별 플레이어에게 맞게 투자 성향을 조절할 수 있지.”
그럼 그전까지는, 플레이어 모두에게 일관된 성향으로 후원을 해야 하는 거군.
그림자여왕은 선배 성좌로서, 성지한에게 팁을 알려 주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어 후원에 드는 자원은 GP와 성좌 명성 수치다. 이 중 성좌에게 중요한 명성 수치는 ‘적극적’ 투자 단계부터 급격히 많이 소모되지. 웬만하면 투자 성향은 ‘보통’을 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결국 플레이어들을 후원하는 이유는 명성 수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니까.”
“명성치를 소모해서, 명성을 얻는 건가.”
“그래. 잘 키운 후원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명성 수치를 올려 주지. 그래서 많은 성좌들이 유망한 플레이어들을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 그림자여왕은 인류에 대해서도 코멘트했다.
“인류는 성좌들에게 큰 관심을 못 받는 것 같군. 배틀넷의 종족 보고서에서 평가가 워낙 안 좋은 게 한몫했어.”
“종족 보고서라.”
성지한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리그 잔류 가능성 3퍼센트에, 투자 가치는 전무라고 평가했던 배틀넷 관리자의 보고서.
성지한이 공개한 이 정보는, 예전에 꽤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그 보고서 때문에 인류의 투자 가치가 올라갔어. 보고서 때문에 쟁쟁한 성좌들이 여기에 눈독을 안 들이거든.”
“보고서 영향이 그렇게 큰가 보군.”
“물론이지. 배틀넷 보고서는 99.9퍼센트 정확성을 자랑하니까. 너희 행성은 운 좋게 너 같은 이레귤러를 소유한 덕에, 0.1퍼센트에 해당된 거지.”
“하기야. 그 보고서 정확하긴 해. 삼촌 없었으면, 20위한테도 졌던 인류잖아.”
“종족 인류가 배틀넷에 잘 잔류만 해도, 여기에 투자한 성좌들은 꽤 이득을 볼 거다.”
“너도 투자할 생각이고?”
“그래. 난 전 자원을 여기 투자할 거다.”
그러면서 눈을 빛내는 그림자여왕.
그녀는 재기를 위해, 성지한이 있는 인류에 몰빵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 별의 군림자인 네가 먼저 후원자를 정하도록 해. 나는 나머지 중에서 뽑을 테니까.”
“그래. 사양하지 않고 먼저 뽑지. 그 전에.”
성지한은 빈 후원 슬롯을 눌러 윤세진을 넣었다.
[최초로 플레이어를 후원합니다.]
[성좌 명성 포인트가 100 오릅니다.]
첫 후원자가 생겨서 그런지, 명성치를 100 주는 시스템.
“오…… 처남 이름은 안 나오고, 무명의 성좌로 뜨네.”
“특성 레벨 1때는 성좌 이름이 대부분 주어지지 않지. 군림 레벨 1인가. 그대?”
“어.”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투자 성향을 ‘매우 적극적’으로 바꾸었다.
[투자 성향이 매우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성좌 후원 효과가 크게 늘어나며, GP와 성좌 명성 포인트가 더 많이 소모됩니다.]
그러자, 후원 효과와 자원 소모가 동시에 증가했다고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하나 정확한 수치로 콕 집어 나와 있지는 않는 소모량.
성지한은 윤세진에게 물어보았다.
“매형, 효과 어떻습니까? 투자 성향, 매우 적극적으로 바꿔 보았는데.”
“음…… 잘 모르겠네. 딱히 메시지는 뜨지 않는군.”
“그런가? 군림 레벨 1이라도 투자 성향이 매우 적극적이면 뭐가 뜨긴 할 텐데 이상하네.”
그림자여왕은 아무것도 안 뜬다는 윤세진의 말에 그리 이야기했지만.
‘특성 OFF라 후원 효과도 1퍼센트인 건가.’
성지한은 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건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만약 후원 플레이어에게 리턴 값도 1퍼센트라면, 슬롯에 억지로 플레이어들을 넣을 필요는 없겠어.
“아직 정식 성좌가 아니라서 후원 효과가 미약한 거 같군요. 매형, 후원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싶으면 여왕께 가셔도 됩니다.”
“아니, 괜찮네. 후원 효과…… 태초의 왕에게 호되게 당한 후 욕심이 없어졌어. 투자 성향도 그냥 매우 소극적으로 해 버리게.”
성지한의 제안에도, 윤세진은 후원 성좌를 바꾸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괜히 후원 효과를 더 받느니, 그냥 성지한 쪽에 소속되겠단 뜻을 보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왕. 후원할 플레이어들 네가 먼저 고르도록 해. 나는 후원을 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 좀 해야겠으니까.”
“그래? 우선권을 주는 건가? 나야 좋지.”
“그럼 거실로 갈래? 내가 아까 TV에 플레이어 자료 띄워 놓고 있었거든.”
“그러자.”
성지한 일행은 그렇게 다시 거실로 이동했다.
“이것 참 고민이네…… 이렇게 높은 등급의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가 많다니. 아무리 종족 보정이 들어간다지만 이건 너무 후해.”
“그런가요?”
상위 플레이어들의 분석 자료를 보던 그림자여왕은, 그들이 받은 기프트 등급에 감탄했다.
“그래. 그중에서도, 가장 탐나는 건 너다. 윤세아.”
“저요?”
“엄마가 혹시 잘해 주나? 가족이라고 오히려 인색한 경우도 있다. 내가 후원 성좌가 되면, 너한텐 ‘매우 적극적’으로 투자해 주지.”
“에이. 괜찮아요. 엄마를 성좌로 두는 건 후원 목적이 아니거든요.”
“그런가? 아쉽군…….”
윤세아의 대기만성을 고평가하는지, 그림자여왕은 아쉬운 눈빛을 보내다가 시선을 자료 쪽으로 돌렸다.
그렇게 그녀가 플레이어들을 뽑으려 할 때.
지이이잉…….
“음…….”
같이 자료를 보고 있던 성지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군. 위쪽에서.”
그림자여왕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창가를 바라보았다.
“응? 갑자기 왜 그래?”
“……잠깐. 하늘에 정찰 좀 하고 올게. 여왕, 다시 들어와.”
“알겠다.”
스으으윽.
성지한의 말에 순순히 그림자기운으로 변해, 왼팔로 들어가는 여왕.
그는 여왕을 회수하자마자, 바로 창밖으로 나가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드높은 펜트하우스의 위편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도 잠시.
파아아앗……!
허공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피의 십자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성지한.”
십자가 아래.
전신에 혈갑주를 착용한 이가 성지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롱기누스, 무신의 명에 따라 너를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