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18화>
=세계수 엘프 세 행성. 그들의 넘버는 71, 99, 200입니다.
=이들이 만약 모두 인류에게 패배해 준다면, 인류가 하위권에 머물 일은 없겠죠.
=약속의 이행을 전제로 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조건입니다.
인류가 속한 브론즈 리그에서, 지금껏 만난 세계수 엘프는 총 3개의 행성이었다.
이 중 셋이 인류에게 져 준다고 했으니.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로만 보기에는, 리그에 속한 세계수 엘프가 모두 패배해 준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브론즈 리그에 배치된 세계수 엘프. 3개만 있나?”
“그건…….”
“더 있을 거 같은데?”
확신을 지닌 성지한의 말에, 엘프 대신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대답했다.
“……두 곳 더 있습니다.”
“거기는 안 져 줘?”
“……좋습니다. 그림자여왕을 돌려주신다면, 다섯 행성 전부가 인류에게 패배하지요. 이번 브론즈 리그가 끝날 때까지, 저희는 인류에게 승리를 양보하겠습니다.”
대신관의 입으로 밝혀진, 리그 내 세계수 엘프 행성 숫자.
총 5개나 있다는 말에, 이를 보던 시청자들은 기가 찼다.
-아니 뭔 한 리그에 세계수 엘프가 다섯이나 있어 ㅡㅡ
-20종족 중 1/4이 말이 됨? ㅅㅂ ㅋㅋㅋㅋ
-사실 ? 스코어 보면 세계수 엘프 라인과 비슷한 애들 있어서 한두 개 더 있을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이 예측하긴 했어.
-그래도 진짜 있을 줄은 몰랐지…….
-와, 대신관 쟤는 은근슬쩍 3개로만 딜 치려고 했네 그럼.
-저런 엘프 믿고 약속하면 안 될 거 같은데 ㄷㄷ
-그래도 5팀에게 꽁승 받는 거 너무 개꿀이긴 함…….
-ㄹㅇ 성좌 건네주고 인류의 안위를 챙기면 완전 이득 아님? 인간도 아닌데.
반응이 다양하게 나뉘는 시청자들.
엘프의 말을 믿을 수 있겠냐는 의견과, 그럼에도 조건이 너무 좋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채팅창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5, 5팀이나…… 아니, 괜찮다! 어차피 이번처럼 이기면 되잖아?]
‘글쎄다. 이번엔 쟤들이 나 처형한다고 5경기까지 끌고 간 거고. 작정하고 나만 밴하면 졌을지도.’
[그, 그런가…… 그 정도인가?]
[여왕님. 생각하시는 것보다 인류의 수준은 더 심합니다.]
세계수 엘프가 경기를 굳이 5경기까지 끌고 가지 않고.
성지한만 밴하면서, 이기기 위해 경기를 끌고 갔다면 게임은 엘프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만큼 세계수 엘프와 인류의 차이는 극심했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잠깐의 자유, 고마웠다.]
그리고 아리엘에게 인류의 수준에 대해 들은 그림자여왕은, 생의 미련을 포기했다.
성지한이 없었을 때는, 20위에게도 지던 인류 대표팀.
그런 이들에게 엘프가 제시한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는, 리그를 경험해 보았던 그림자여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저 거래를 상쇄할 만큼, 네가 줄 건 없고?’
[줄 것이라…… 나는 별을 잃은 성좌. 쉐도우 엘프는 저들의 손에 전멸했고, 가진 것은 모두 빼앗겼다. 남은 것이라면 이 몸뿐인데…… 엘프에게 워낙 크게 당해, 회복까진 시간이 좀 걸린다. 내가 저만한 가치가 있을까…….]
종족은 전멸당하고, 별을 잃은 성좌.
거기에 엘프에게 공허 처리자 신세가 되어서 힘의 태반을 잃은 그녀는.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성좌로서의 경험은 어디 가질 않겠지.’
[그건, 그렇지만…….]
‘인류가 배틀넷에서 해방될 때까지만, 나와 인류를 도와라.’
성지한이 그림자여왕에게 제시한 조건은.
[겨우…… 그걸로 되겠나? 네 목적 달성을 위해선 저 거래를 받는 게 나을 텐데.]
‘엘프의 딜은 못 믿어. 확인해 볼까?’
스윽.
성지한은 그러며, 내부의 영원에 천수강신에 휘감았다.
그러자,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엘프 대신관.
“아……! 당신, 무슨 짓을! 이래서 대정령이 당신에게 굴복한 겁니까…….”
“네 약속, 확실히 지킬 것인가?”
“다, 당연하죠. 그림자여왕을 돌려준다면, 저희는 당신들에게 승리를 헌납할 겁니다.”
“너희의 뭘 믿고?”
“배틀넷에서 공인된, 계약서를 쓰면 됩니다.”
“계약서상에서 날 속일 방법은 없나?”
굳이 계약서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엘프에게 물어보는 성지한.
이건 마치 사기꾼한테, 저한테 사기 칠 방법은 없겠죠? 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그걸 엘프한테 물어보면 대답을 해 주겠어? ㅋㅋㅋ
-ㄹㅇ 그림자여왕한테 물어보는 게 낫지 않나.
-계약서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왜 더 의심스럽지.
-딜은 좋은데 상대가 신뢰 0%라 원 ㅋㅋㅋ
시청자들은 성지한이 왜 굳이 엘프에게 질문을 던졌는지 의아해했지만.
“그게…….”
정작, 상대 엘프 대신관은 성지한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상대가 일반 종족이었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속여 먹을 수 있는데.
스으으…….
상대에게서 뿜어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세계수의 것과 일치해서.
엘프인 그녀로서는 이를 거역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연히, 계약서상에서 속일 방법은 없죠……!”
“정말인가? 계약서만 작성하면, 이게 어긋날 가능성은 0%인가?”
처음에는 어떻게든 성지한의 말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짙어지는 생명의 기운에,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0%…… 는 아니에요. 제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림자여왕을 인도받은 후 죽으면…….”
“아하, 넌 계약서 쓰고 죽을 생각이고?”
“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아, 이건…… 아, 아닙니다. 누가 죽고 싶겠어요!? 여왕을 넘겨주신다면, 계약은 유지될 것입니다!”
멍한 눈으로 성지한의 질문에 대답하던 엘프 대신관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했지만.
-계약서 작성하고 자기가 책임자로서 죽겠다는 건가 ㄷㄷ
-역시 엘프 ㅋㅋㅋㅋ 믿을 수 없죠.
-성지한 근데 뭐 한 거임? 갑자기 쟤가 술술 부네 ㅋㅋㅋㅋ
-대정령들도 아까 게임에서 무릎 꿇었잖아. 그때랑 비슷한 능력 사용했겠지.
이제는 일반 시청자들도 알 정도로, 엘프의 의도가 투명하게 드러나 버렸다.
“거래는 거절하겠다. 승리는 우리가 스스로 얻어 내도록 하지.”
“……하. 인류 따위로, 저희에게서 과연 승리를 얻어 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만 밴하면 되는 것을요.”
엘프 대신관은 입술을 깨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일…… 후회하게 될 겁니다. 인류…… 꼭 멸족시키겠어요.”
그렇게 흉흉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퇴장하려는 대신관이었지만.
“야, 가기 전에 유리병에 든 게 뭔지 알려 줘 봐.”
“그건…… 윽. 로, 로그아웃합니다!”
성지한의 물음에 잠깐 멈칫하더니, 급히 감독실에서 몸을 내뺐다.
‘대정령과는 달리 그래도 저항은 하네.’
영원 스탯이 1만 더 높았어도 더 말을 잘 들었을까.
유리병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봐야겠군.
성지한이 아쉬워하는 사이.
[그건 내가 알아볼게!]
조금 전에 비해 확연하게 밝아진 목소리로 바뀐 그림자여왕이, 자신에게 맡기라고 나섰다.
“적극적이군.”
[덕분에 살았으니까! 너희 종족이 해방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근데 해방의 기준은…… 언제로 잡고 있지? 골드 리그까지 승급?]
“아니, 브론즈만 탈출하면 돼.”
[브론즈라……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하나? 상위 리그로 가면, 너희 종족 자체가 훨씬 진화할 텐데.]
마치 저번 행성 개척 맵 때처럼, 상위 리그로 가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인류라는 종 자체가 보다 더 건강해지고, 강한 힘을 지닐 수 있는 건가.
하나 성지한이 내린 결론은 확고했다.
“배틀넷에 더 남아 있을 생각은 없어. 탈 브론즈면 된다.”
[알았어. 브론즈 승급쯤이야 쉽지!]
성지한 같은 플레이어가 있으니, 아무리 인류가 약하다 해도 브론즈 승급쯤이야 손쉽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자여왕은 자신만만했다.
[그러면, 승급이 될 때까지 이클립스에 귀속되겠다. 아리엘과 융합하지.]
“이클립스로 들어온다고?”
[그래. 종족 인류가 배틀넷에서 해방되면, 시스템이 부여한 너의 힘도 사라질 터…… 나는 저들과는 달리, 확실하게 약속을 지키겠다.]
스으으으…….
그간 그림자검 이클립스에 완전히 합치지 않고 섞여 있던 두 존재가 합치기 시작하고.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성좌 ‘그림자여왕’이 일시적으로 귀속됩니다.]
[성좌 후보자의 상태로 성좌를 휘하에 두었습니다.]
[특수 업적, ‘뒤바뀐 계급’을 클리어했습니다.]
[성좌 명성을 10000 얻습니다.]
‘1만?’
기존과는 달리, 업적을 깼음에도 업적 포인트 대신 주어진 성좌 명성.
아까 얻은 게 100이었으니, 1만이면 높은 건가.
[성좌 명성 - 10100]
성지한이 상태창에 새로 생긴, 성좌 명성 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성좌 명성 포인트가 1만을 초과합니다.]
[업적 상점이 명성 상점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그간 잘 써먹었던 업적 상점이 사라지고, 새로운 상점이 생겨났다.
* * *
무신의 별 투성.
길가메시가 깨어나면서, 황량한 대지에 우뚝 솟아올랐던 황금의 탑, 바벨탑 안에서.
[……이제, 때가 되었군.]
핏빛 갑주의 거인, 엔키두의 강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쩌저적!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강철의 파편.
그 안에서, 롱기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내가 도와줬다지만, 예상보다 회복이 빠르구나, 롱기누스.”
그 모습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길가메시는.
“그래도 조금만 더 일찍 나오지, 아쉽군.”
벽면에 띄워 놓은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아쉽다니. 왜 그렇지?”
“네 타겟인 성지한…… 또 강해졌다. 거기에 성좌까지 얻어 버렸지.”
“성좌를 얻었다고? 그가?”
“그래. 물론 아직은 성좌의 힘을 발휘하긴 힘든 상태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것이다.”
길가메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 참…… 나의 권능을 이용하여, ‘영원’을 저렇게 운용할 줄이야. 내가 그를 너무 많이 키워 주었구나.”
원래라면 성지한을 장악하기 위해 안배했었던 ‘개조된 세계수의 뿌리 가닥’.
하나 그가 ‘코드’를 작성할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예상치 못했던 그는, 역으로 그에게 스탯 ‘영원’을 안겨줘 버렸다.
그렇게 근래의 성지한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도를 차지한 길가메시는.
“100% 다 회복할 때까지, 지구로 강림은 미루는 게 어떻겠나.”
롱기누스에게 그리 권유했다.
“미루라고?”
“그래. 지금의 네 상태로 강림하면, 지닌 힘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할 텐데. 철저히 준비하고 가는 게 나을 거다.”
“…….”
“거기에 그는 성좌 후보자. 성좌 후보자를 잘못 건드리면 배틀넷에서 제약도 크게 들어오지. 아무리 네가 무신에게 소속된 종이라고 해도, 타격이 클 것이다.”
“아니, 당장 가겠다.”
하나 롱기누스는 길가메시의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
“저놈. 성좌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나. 시간을 끌어 봤자, 그의 전력만 더 강화되겠지.”
“그건 그렇다만.”
“거기에, 네 탑을 부쉈던 소멸의 권능…….”
롱기누스는 성지한이 탑을 무너뜨렸을 때를 떠올렸다.
천장에 문양을 쓰자, 바벨탑 전체가 사라졌지.
그것은 신살의 창이 지닌 힘과 흡사한 권능.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의 것이 그보다 위임을, 하루라도 빨리 증명하겠다.”
“만약 그가 위라면, 어쩔 셈이냐?”
스으으윽.
길가메시의 말에, 롱기누스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럼, 드디어 죽을 수 있을 테니…… 그것도 좋겠군.”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라는 건가.
길가메시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길을 열어 주지.”
“네가?”
“그래. 성좌 후보자를 노려서 얻는 제약. 내가 나눠 가지겠다.”
“그렇게 날 배려해 줄 줄은 몰랐군…… 알겠다.”
길가메시의 제안이 뜻밖인 듯 롱기누스는 눈을 약간 크게 떴지만.
어쨌거나 손해 볼 건 없었기에,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준비를 하고 오지.”
“그래. 다 끝나면 여기로 와라.”
롱기누스가 그렇게 자리를 뜨자.
‘잘 생각했다. 롱기누스.’
길가메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세 번째 종을 깨우기 위한, 제물이 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