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12화>
3경기가 시작되기, 조금 전.
“그리고…… 3경기도 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데이비스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 놓고, 이번 경기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 감독님…….”
“저들은 성지한 선수를 처형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5경기 맵에 분명히 무슨 술수가 있는 거겠죠. 50퍼센트의 확률, 얼마든지 걸릴 수 있습니다. 동전 던지기에 인류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럼 결국 패배할 텐데요…….”
“예. 하지만 패배한다고 사람이 죽진 않죠. 특히 성지한 선수는 살아남을 겁니다.”
인류에 있어, 성지한은 이제 50퍼센트 이상의 전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스페이스 리그에서 중요 카드로 역할을 하는 것 외에도.
평소에 인류를 위해 포인트를 벌어 오는 것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으니까.
“50퍼센트 확률, 불안하긴 하죠.”
“성지한 선수라면 엘프들의 수작도 이겨 낼 것 같긴 하지만…….”
“그래요. 성좌 태초의 왕의 세뇌도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정말로 재수가 없어 5경기까지 가게 되도, 성지한이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대표팀 선수들은 믿고 있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혹시 성지한 선수가 처형을 당하기라도 하면, 인류에겐 끔찍한 결말만 기다릴 거야.”
“저는 감독님의 방침에 찬성합니다. 저번 조인족과의 게임,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성지한 선수가 없으니 리그 20위 종족에게도 졌죠. 그냥 1패 하는 게 낫습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피하고자, 선수들은 감독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찬성했다.
“성지한 선수도…… 괜찮으시죠?”
그리고 당사자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데이비스 감독.
성지한을 살리기 위해 이런 전략을 짠 거지만.
막상 본인이 나가고 싶다고 하면, 막을 수 없기에 그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성지한은 이를 묵묵히 듣다가, 그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패배할 생각입니까?”
“2군 선수들에게 미리 연습을 시켜 두었습니다. 독이 묻은 단검으로 자살할 겁니다.”
“아…….”
대표팀 선수들은 데이비스 감독을 보고 감탄했다.
역시 인류 대표팀 감독,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언제 그런 것까지 준비했대?
“자살이라…….”
“혹시, 뭔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성지한이 말끝을 흐리자, 데이비스 감독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지만.
“아닙니다. 그렇게 하시죠.”
성지한은 곧 고개를 끄덕여 승낙 의사를 밝혔다.
사실, 세계수 엘프가 그렇게 얌전하게 자살하는 놔둘까 싶었지만.
‘오히려 내 입장에선 실패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번 져 주기 시작하면, 인류가 브론즈 리그에서 승급할 만큼 승점 쌓기가 힘들 테니까.’
성지한은 일이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5경기에서 저들이 무슨 흉계를 꾸미든, 자신은 충분히 이를 돌파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네, 알겠습니다!”
성지한의 답에, 얼굴이 밝아진 데이비스 감독.
이건 마치 감독이 선수인 성지한의 허락을 받고 최종 결정이 이뤄진 모양새였지만.
지켜보는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한국 대표팀이나, 인류 대표팀이나 성지한 비중은 절대적이지.’
‘감독보다 위에 있는 선수니까 뭐.’
그렇게 계획되어 시작된 3경기.
처음엔, 데이비스 감독의 의도대로 게임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번쩍! 번쩍!
이번 경기에 출전한 선수 50명 중, 대다수가 로그아웃하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이게 뭐임?
-성지한은 안 나오고 왜 자살하고 있어?
-감독 설마 게임 던진 건가?
-아! 5경기 안 갈라고 그러는 듯; 거기서 재수 없으면 성지한 처형당할지도 모르잖아.
-아하…… 성지한 죽느니 패배하는 게 낫긴 하지.
-그치만 세계수 엘프랑 맞붙을 때마다 이렇게 지면 너무 손핸데…….
-그 전에 우리도 힘을 길러서 1,2경기 같은 상황에서 승리 따내야지.
처음에는 인류 대표팀의 자살에 당황하던 시청자들도 금방 사정을 파악하고는, 이를 지지했지만.
“이런…… 자살하시겠다?”
인류 진영으로 쏜살같이 날아온 엘프 하나가, 아직 죽지 않은 전사를 향해 급히 달려왔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요.”
그러더니 인벤토리를 열어서, 나뭇잎을 꺼내는 엘프.
그는 그걸 살아남은 인류 전사에게 바로 먹였다.
“으으…….”
그러자 독상이 금방 치유되는 인류 전사.
엘프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살은, 저희가 하죠.”
들고 있는 목검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푹!
그러자, 검이 그대로 엘프를 꿰뚫더니.
슈우우…….
엘프의 육신 전체가 갈라지며, 그래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와, 엘프 속도 뭐임??
-맵이 너무 소형 맵이었네…… 자살하는 거 너무 빨리 들켰다 ㅠ
-아니 근데 저쪽에서 바로 알아채고 지들이 죽는 거도 소름이네 ㅋㅋㅋ
-나뭇잎 먹고 죽는 거 봐라 ㅡㅡ
그리고 그를 필두로 시작되는, 엘프들의 자살 퍼레이드.
푹! 푹!
인류의 진영을 향해 달려오던 엘프들은, 선두의 엘프가 자살하자 모두 진군을 멈추고는.
목검을 꺼내 자신을 찔렀다.
=아. 이게 대체 무슨 광경입니까……!
=이렇게 기묘한 경기가 있을까요? 3경기, 양 진영 플레이어들이 모두 자살합니다……!
=사, 살아남는 것은 단 한 명. 응우옌 선수밖에 없습니다!
=인류, 3경기에서 승리합니다!
=이러면 3경기 MVP로 자동으로 선정되겠군요…… 하지만, 선수 자신은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엘프들이 너무 빨리 죽었거든요!
엘프들이 순식간에 자살해 버린 덕에, 눈 깜짝할 사이에 3경기에서 승리한 인류.
데이비스 감독은 이 결과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친 엘프 놈들……!”
대체 5경기 때 뭘 준비했기에,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자살한단 말인가.
거기에.
“엘프가 지닌 그 미친 재생력…… 이번엔 왜 적용이 안 된 거야?!”
“아까 보니 목검으로만 자살하던데. 그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거 같습니다. 마법사들도 인벤토리에서 작은 목검을 꺼내 목을 찌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후우, 정말 징글징글하군!”
데이비스 감독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자살로 패배해서라도 인류 최대 전력 성지한을 살리려 했는데.
3경기의 결과를 보면, 4경기에서도 승리를 당할 것 같았다.
“4경기 때, 엘프보다…… 더 빨리 자살할 순 없겠나?”
“……최대한 시도해 보겠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죽어 보자.
인류 대표팀은 그렇게 생각해서, 선수들 중 체력이 가장 낮은 플레이어들, 주로 마법사 라인만 뽑아서 4경기에 내보냈지만.
=4경기 시작합니다!
=이번 맵은 던전 맵이군요! ‘일곱 개의 동굴’. 이 맵은……
4경기 시작 전, 맵 설명을 하려던 해설진들은.
[상대 종족 ‘세계수 엘프 200’이 전멸했습니다.]
[종족 ‘인류’가 4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4경기가 종료됩니다.]
순식간에 종료된 게임을 보면서, 잠시 말문을 잃었다.
=4경기…… 1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제가 해설한 경기 중, 이 경기만큼 빨리 끝난 경기는 보질 못했어요.
=3경기가 역대급이라고 생각했는데, 4경기가 이를 갱신하는군요.
3, 4경기 합쳐서 10분도 채 안걸린 초고속 스페이스 리그 경기.
-미쳤네 오늘 진짜 ㅋㅋㅋㅋ 스페이스 리그에서 서로 지겠다고 자살하는 꼴을 보다니.
-아놔, 이제 치킨 시켰는데 오기 전에 끝나는 거 아님?
-5경기가 남아 있잖아. 그게 메인 디쉬야.
-으 5경기에서 별일…… 없겠지?
-엘프놈들이 함정 팠겠지만, 성지한님이 해결해 주실거야…….
인류가 자살을 하면서까지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던 5경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스페이스 리그의 감독실.
5경기의 밴픽을 위해, 양 팀 감독은 그곳에 소환되어 있었다.
“후후. 감독님, 머리를 좀 쓰셨군요. 하마터면 저희가 이길 뻔했잖아요?”
엘프 대신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스를 바라보았다.
“이런 전략을 쓰는 종족, 없었던 건 아니랍니다. 리그 중, 후반기쯤 되면, 저희 세계수 엘프에게 사형당하기 싫어서 종족들이 게임을 포기하니까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나.”
“그래요. 다들 리그를 진행하다보면, 주제를 아는 거죠. 애꿎게 5경기까지 가서 사형을 당하느니, 그냥 빨리 패배하자구요. 그리고 저희는 그런 주제를 아는 종족한테는…… 자비를 베푼답니다. 3경기에서 게임을 끝내 주죠. 하지만.”
싱긋.
엘프 대신관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인류. 당신들은 달라요. 당신들은 엘프들을 처형시키고, 위대한 고엘프님마저도 희생시켰죠…… 세계수 엘프 연합의 전원은, 인류의 싹을 말려 버릴 겁니다.”
“하. 실상은 너희들이 우릴 처형시키려다가 역으로 당한 것에 불과하잖나! 고엘프? 그놈도 자기가 먼저 쳐들어와 놓곤!”
데이비스 감독은 엘프 대신관의 말에 언성을 높이며 반박했지만.
엘프의 미소는 더 진해졌다.
“후후…… 약자가 주제를 알지 못한 것. 그게 가장 큰 죄랍니다. 오늘은, 랭킹 1위인 ‘그’부터 죽이죠.”
그러며 모아둔 셀렉트 카드를 꺼내는 엘프.
데이비스 감독도 질세라, 자신의 셀렉트 카드를 모두 꺼냈다.
그러자.
[두 종족의 대표가 셀렉트 카드를 모두 모았습니다.]
[맵 선택권이 두 종족 중 하나에게, 랜덤으로 배정됩니다.]
지이이잉…….
테이블 위, 허공에서 거대한 은빛 동전이 떨어졌다.
툭. 툭.
테이블과 부딪치자, 크게 튕겨 나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동전.
그것의 한 면에는 인간이, 한 면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이거 설마 동전으로 뽑기 가는 거야?
-나무가 엘프고 인간은 우린 건가…….
-자살 쇼에 이어 마지막엔 동전 뽑기라니…… ㅡㅡ
-아, 제발 인간 나와라!
시청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동전에서 인간이 뜨기를 기원했지만.
탁.
테이블에 안착한 동전의 윗면에 뜬 건.
“후후, 역시.”
나무였다.
번쩍!
나무가 뜨자, 인류 앞에 있던 셀렉트 카드가 사라지고, 엘프의 카드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남았다.
“으윽……!”
“그럼 당신네의 랭킹 1위와, 작별 인사라도 하시죠. 인류도 곧 따라갈 거라며 말이에요.”
대신관은 웃으며 셀렉트 카드를 만지작거렸고.
데이비스 감독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된 두 감독.
해설자들도 이를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아…… 행운의 여신이 이번엔 데이비스 감독을 외면합니다!
=세계수 엘프…… 다른 넘버의 세계수 엘프와도 동족 의식을 지니고 있군요. 정말 이들은 다 같은 편인 걸까요?
=대신관이 리그 중, 후반기를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들이 스페이스 리그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어요.
=대체 이런 종족이 브론즈에 있어도 되는 겁니까?!
=저쪽에서 무슨 맵을 꺼내올지, 걱정이 되는군요…….
그리고.
“셀렉트 카드를 사용하여, 게임 맵을 ‘성좌 연구소’로 고르겠습니다.”
대신관은 준비해 온 맵을 꺼내 들었다.
[‘성좌 연구소’ 맵은 특수한 설정이 걸려 있는 맵입니다.]
[설정을 모두 불러오겠습니까?]
[셀렉트 카드가 4장 필요합니다.]
“네.”
대신관의 대답에, 떠오르는 성좌 연구소 맵의 정보.
[성좌 연구소의 입장 조건.]
[종족의 랭킹 1위만 참여 가능합니다.]
이 조건을 본 데이비스 감독은 침음을 삼켰다.
“1위만…….”
“영광인 줄 아세요. 인류 같은 종족이 들어갈 곳이 아니랍니다. 원래는. 허나 당신네들의 1위가 종을 초월할 정도로 특별하니, 그에 합당한 무대를 마련해 준 거예요.”
어쨌든 성좌 연구소에 소환하게 되었으니, 이제 인류의 랭킹 1위는 끝이다.
대신관은 그리 자신했다.
그리고.
“성좌 연구소라…….”
성지한은 대기실에서, 맵 이름을 보며 싱긋 웃었다.
“삼촌……! 어떻게 해. 쟤들 작정하고 준비한 거 같은데!”
“오히려 좋은데? 맵 이름이, 약탈할 거 많아 보여.”
“야, 약탈?”
“응. 갔다 오겠습니다. 좀 이따 봐요.”
그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선수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5경기 만에 처음으로 스페이스 리그 게임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