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10화>
“지금 며칠이죠? 스페이스 리그 경기, 혹시 시작했나요?”
“아니요. 이틀 뒤입니다!”
“다행히 시간은 맞췄군요.”
공허의 수련장 내부에선, 시간의 흐름 파악이 쉽지 않았기에.
혹시나 경기 일정을 뛰어넘었나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군.
성지한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커넥터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게…….”
“아직도 갇힌 상태 그대로네.”
“그래요?”
“응. 그리고 미국 대표팀도 상황은 마찬가지지. 그래서 말인데…….”
노영준 감독은 곤란하다는 듯, 성지한의 눈치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태초의 보물을, 왕에게 반납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네.”
“그래요? 근데 그거 제가 이미 흡수해 버렸습니다만.”
“그, 그런가?”
“아…….”
성지한의 말에 사람들은 탄식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서, 플레이어들을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흡수한 덕에 저에게 대처 방안이 생긴 것 같군요.”
“대, 대처 방안이 있다고?”
성지한의 말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게임 속에서, 세계 최고의 랭커들을 홀려 버린 태초의 왕.
이에 대한 대처법을, 성지한이 지니고 있다고?
“예,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시도는 해 볼 법 합니다. 선수들 커넥터는 여전히 그 룸에 있나요?”
“그, 그러네.”
“그럼 가 보죠.”
성지한이 먼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자.
노영준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믿기지 않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군. 생명의 기운 흔적이 느껴진다.’
성지한은 커넥터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태초의 왕의 권능이라며, 플레이어들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던 길가메시의 술수.
스탯 영원을 얻고 나니, 어렴풋이 눈에 보였다.
스르르륵.
성지한의 등 뒤편으로, 사슬이 튀어나오고.
슈슉!
그것은 모두, 배틀넷 커넥터를 향해 날아갔다.
“지, 지한아 그러다 부서지면……!”
워낙 거세게 날아가는 사슬에 노영준 감독이 급히 소리쳤지만.
철컹. 철컹.
사슬은 그대로 커넥터를 감더니.
슈우우우……!
그 안에 깃든, 생명의 기운을 뽑아내었다.
내부에 그려진 복잡한 술식과 함께, 사라지는 생명의 기운.
성지한은 이를 보며 생각했다.
‘길가메시, 아직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진 못했군.’
인류의 최정점에 다른 랭커들.
그들을 세뇌하는 건, 아무리 길가메시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임 맵, ‘투성’에서면 모를까.
현실 세계에서는, 성좌 후원을 받지 않은 이를 완전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 수련실에서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커넥터에 선수들이 아직 갇혀 있었군.’
투성에서처럼 이들을 충성스럽게 만들었으면, 선수들이 굳이 갇혀 있을 필요야 없겠지.
오히려 외부로 나와서 성지한에게 뿌리를 내놓으라고, 안 그러면 배틀넷 참가 안 하겠다면서 선동했으면 그게 더 크게 먹혔을지도 몰랐다.
성지한은 그렇게 커넥터 내부에서, 지배 코드를 어설프게 따라 한 길가메시의 술식을 해체했다.
그러자.
파지직……!
배틀넷 커넥터에서 전류가 피어오르더니.
치이이익…….
하나둘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 오……!”
“설마!?”
성지한이 사슬을 꺼낼 때만 해도 걱정하던 스태프들은, 놀란 눈으로 그곳을 쳐다보았다.
“으…… 으으…….”
거기서 하나둘씩 나오는 플레이어들.
어지러운지 몸을 비틀거리기는 해도, 신체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상태 확인 부탁드립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투입되고.
성지한은 남은 커넥터도 연속해서 해방하기 시작했다.
“아…… 머리야.”
“으, 길가메시의 사슬이 된 거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에는, 뭔 일이 있었지?”
“왕? 왕…… 잊어버렸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게 해방되고, 남은 커넥터는 두 곳.
“누가 남은 거지?”
“윤세진 선수와 하연주 선수만 남았습니다!”
“갇힌 선수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둘이 오래 걸리는군…… 혹시 하연주 선수도 후원 성좌가 태초의 왕인가?”
“그렇진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비록 한국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대표팀 선수 중에서, 세계에서 먹힐 급이라고 칭할 만한 이들은 얼마 없었다.
독보적인 플레이어 성지한을 필두로.
지금 갇혀 있는 윤세진과 하연주나, 미리 나온 윤세아와 소피아를 제외하고는.
다들 스페이스 리그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강력한 선수들은, 더 오래 붙잡고 있는 건가.’
노영준 감독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치이이익……!
커넥터가 하나 더 열리며, 하연주가 지친 얼굴로 밖에 나왔다.
“왕, 왕…… 진짜 지겨워 죽겠네. 요즘 시대에 무슨 왕이야.”
“하연주 선수, 괜찮으십니까?!”
“네, 아…… 역시 지한 씨가 풀어 준 거였나요? 덕분에 살았네요.”
그녀는 남은 사슬로 윤세진의 커넥터에 집중하는 성지한 쪽을 힐끗 보고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그렇게 남은 선수는 단 한 명.
성지한의 천수강신이 윤세진의 커넥터에 온전히 모여들자.
번쩍……!
그곳에서, 황금의 빛이 반짝거렸다.
* * *
“으, 으으…… 화, 황금……”
“모, 모두 보지 마!”
“시선을 회피해!”
이제 황금빛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선수들.
코칭스태프와 의료진도 모두 그걸 보곤 주저앉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길가메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소멸 코드도 작성하더니, 나의 분신도…… 역시 이겨 냈나.]
“별거 없더라. 네 분신.”
[아까운 뿌리 하나만 소모했군.]
그러면서 황금의 빛은 더 강렬하게 빛났다.
[이자는 나에게 후원을 받는 자. 다른 이들과는 달리 충성심을 쉽게 제거하진 못할 것이다.]
과연 길가메시의 말대로.
다른 플레이어와는 달리, 생명의 기운을 뽑아낸다고 해결되지 않는 윤세진.
‘매형의 후원 성좌가 길가메시라 그런가. 까다롭군.’
그래도 방법이 없지는 않지.
성지한은 내부의 영원에, 천수강신을 뻗어 냈다.
[스탯 ‘영원’의 봉인이 일시적으로 풀립니다.]
그러자 풀리는 봉인.
거기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생명의 기운을 바탕으로, 성지한은 커넥터에 지배 코드를 작성했다.
예전에 길가메시의 분신에게 썼을 때는, 힘이 부족해 지조차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지까지는 되는군.’
이왕 하는 김에 뒷글자까지 써 볼까 했지만.
‘배’에 해당되는 글자부터는 아무리 생명의 기운을 사용해도, 작성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지’까지 쓴 것이 큰 효과가 있었는지.
윤세진을 얽매던 커넥터 내의 술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 이 코드까지 쓰다니……!]
강렬하게 번쩍거리던 황금의 빛마저, 이 문양에 서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물러나야겠구나.]
분신 때도 그렇더니, 지배 코드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길가메시.
황금의 빛은 마치 도망치듯, 재빨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치이이익……!
마지막으로 열리는 윤세진의 커넥터.
거기서, 윤세진이 핼쑥한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빠!”
성지한이 돌아왔던 연락을 받고 소드 팰리스에서 급히 온 윤세아는 그 모습을 보며 얼른 달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윤세진을 부축하기도 전에.
“주…… 인님!”
그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성지한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 아빠?”
“이제부터, 주인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성지한은 절까지 하려는 윤세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배 코드 때문인가?’
한 글자밖에 작성되지 않은 지배 코드.
하나 그 효과는 발군이었다.
“삼촌이 뭔 주인이야?!”
윤세아는 얼른 달려들어, 그의 몸을 붙잡았지만.
[성좌 ‘공허의 마녀’가 그냥 저 상태로 놔두라고 합니다.]
[‘공허의 마녀’가 저놈 어디 가서 맨날 세뇌나 당하는데, 그냥 성지한이 맡고 있는 게 나을 거라고 일갈합니다.]
[‘공허의 마녀’가 꼭 자신의 말을 성지한에게 전해 달라며, 두 번 세 번 강조합니다.]
그녀의 눈앞에, 냉정을 잃은 공허의 마녀의 성좌 메시지가 팍팍 떠올랐다.
시즈루에 이어, 길가메시까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당해 버렸으니.
오죽 답답했으면, 그냥 저 상태로 놔두라는 건가.
“에이, 그래도 그럴 순 없지! 삼촌, 아빠 이 상태에서 못 풀어 줘? 풀어 줄 수 있지?”
“……그래, 풀어야지.”
잠깐 침묵을 지켰던 성지한은, 다시 손가락을 들었다.
누나인 성지아와 마찬가지로, 그도 비슷한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매형을 종처럼 부리긴 그렇지.’
성지한은, 길가메시처럼 왕 놀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지배 코드를 해제하자.
어떻게든 절하려고 하다가, 몸을 뚝 멈춘 윤세진.
털썩.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으…… 면목 없네. 처남, 매번 신세를 지는군.”
“어떻습니까. 상태는.”
“몸은 괜찮아…… 그리고. 후원 성좌에서 길가메시가 빠졌네…… 그가 도망쳤어. 처남이 사용한 그 무슨 코드?가 약점인 것 같아.”
“후원 성좌를 취소했다구요?”
“그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후원 성좌까지 버리고 갈 정도라니, 정말 길가메시는 지배 코드에 약한가 보군.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노영준 감독 쪽을 바라보았다.
“감독님. 미국에 연락해 주십시오. 그쪽 선수들도 해방해야죠.”
“아, 알겠네!”
세계수 연합과의 경기가 2일 남은 상황.
인류에겐, 미국 대표팀 선수들의 전력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이미 미군기지에 비행기가 대기시켜 놓고 있다 하네.”
“그렇습니까? 준비성 철저하군요.”
성지한이 대표팀 선수들을 해방했단 소식을 들은 미국은 이미 출발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몸만 오면 되니, 가능한 빨리 와 달라고 하는군. 대가는 무엇이든 주겠다고…… 미국의 리무진도 이미 와 있어.”
“리무진 타고 가면 늦지 않겠습니까? 그냥 달려가죠.”
“달려…….”
“네.”
성지한의 말에, 멍한 얼굴로 반문한 감독이었지만.
‘아, 예전에 시즈루 잡을 때 일본도 뛰어다녔지…….’
그때에 비해 훨씬 강해진 성지한이니.
진짜 차를 타는 거보다, 경공을 쓰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았다.
“그럼. 평택 미군 기지로 가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먼저 가 있죠.”
휙!
그 말을 하자마자 사라진 성지한.
좌중의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 * *
2일 후, 뉴욕의 배틀넷 센터.
“다, 다 해방되었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스페이스 리그, 참전 가능하겠어요!”
성지한이 배틀넷 커넥터에서 미국 선수들을 해방하자, 미국 스태프들은 열광했다.
“마이 로드!”
한편.
성지한은 커넥터에서 나와 자신에게 무릎 꿇는 배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로드 소리 듣는 게 대체 몇 번째야.
한국 대표팀과는 달리 길가메시를 후원 성좌로 둔 플레이어가 많았던 미국은.
그만큼 해제하는 데 있어, 지배 코드를 많이 작성해야 했다.
‘길가메시 이놈…… 확실히 미국 대표팀에 힘을 많이 썼군.’
한국 대표팀에 비하면, 평균 실력이 월등했던 미국 대표팀.
인재도 이쪽이 훨씬 많아서 그런가.
길가메시의 마수도 여기에 더 많이 뻗쳐 있었다.
성지한은 그런 이들에게 하나하나 지배 코드를 작성했다 없애면서.
“으, 으. 고맙군…… 성지한, 아까 말은 잊어 줘라.”
“성 덕분에 지배받을 뻔했는데, 살았습니다.”
미국 플레이어들에게 받는 충성도 해제했다.
“이, 이제 스페이스 리그 경기가 3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메디컬 팀에서 상태 체크 후, 바로 경기에 들어가야겠군요…….”
“가능하겠습니까?”
커넥터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들어가야 할 신세.
미국 대표팀 선수들 중 일부는 저 안이 트라우마라도 된 것인지, 이를 꺼려 했지만.
“가겠습니다.”
“이게 저희가 할 일인데요. 당연합니다.”
대부분은 다시 커넥터에 들어가겠다고 기꺼이 이야기했다.
미국의 코칭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준비를 시작하고.
거기서, 지구 대표팀의 감독 데이비스가 성지한에게 다가왔다.
“성지한 선수. 한국에 돌아가서 출전하긴 늦은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가능하시겠습니까?”
“미국 센터에서요?”
“예, 저희 측에서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 없으니, 그렇게 하죠.”
3시간밖에 남지 않은 세계수 엘프와의 일전.
이걸 한국에 가서 경기하기란 무리였으니.
성지한은 저번 생에서 오래 지냈던, 뉴욕 배틀넷 센터에서 게임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참전한 스페이스 리그 경기에서.
“인류 여러분, 저희의 목표는 단 하나랍니다.”
세계수 엘프의 대표는, 딱딱한 얼굴로 고했다.
“당신들의 1위. 오늘 확실하게 처형시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