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08화>
천수강신을 사용했다가, 역으로 끌려간 세계수의 뿌리 가닥 안.
그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천수강신의 사슬은 사라졌는데…… 몸은 움직일 수가 없군.’
체내의 기운도 사라진 채, 몸도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그저, 이 어두운 공간 안에서는 그는 보고 듣는 것만 가능했다.
그때.
번쩍!
저 멀리서 녹색의 빛이 나타나더니.
그것은 곧 빙글거리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었다.
‘뭐지?’
저게 뭔가 하고 잠시 지켜보자니.
스으으…….
소용돌이의 가운데에, 붉은색의 빛이 번뜩이더니.
그것은 곧 원형으로 뭉쳐, 눈동자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넣어라.]
그 붉은 점 안에서, 성지한으로서는 처음 들어 보는 언어가 울려 퍼졌다.
처음 들어 보는 언어였지만, 이상하게도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는 상대의 말.
그렇게 그의 말이 끝나자.
툭! 툭!
위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잖아?’
저 위쪽에서 떨어진 백여 명의 사람들.
남녀와 노소, 성별과 나이대가 다양한 그들은,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
“#[email protected]$…….”
붉은 눈의 말은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여기 떨어진 인류의 말은 하나도 못 알아먹은 성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성지한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다가.
스윽.
그가 있는 자리를 그대로 통과했다.
‘흠…… 여기, 설마 환영 속인가.’
성지한을 인지하지도, 부딪치지도 않는 사람들.
그는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가지고 왔다.]
녹색 소용돌이가 다른 쪽에서 하나 더 생기더니.
툭! 툭!
사람들이 또 백여 명 정도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3번 더 반복되자.
500여 명이 이 어둠의 공간에 갇히게 되었다.
“@[email protected]!#!”
“@#*…….”
그렇게 500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혼란스러워할 때.
[500이 모였다.]
[실험을 시작한다.]
목표치를 채운 소용돌이 속, 붉은 눈이 일제히 눈을 번뜩였다.
그러자.
뚝. 뚝…….
위쪽에서 붉은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닿았고.
치이이익……!
그 물방울을 맞은 사람들은, 몸이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퍼센트[email protected]$!!”
붉은 액체에 닿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사방팔방으로 뛰었지만.
하나씩 떨어지던 물방울은 곧 비처럼 내리며, 500인 모두에게 닿았다.
그러자, 금세 사라지는 사람들.
성지한만이 이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번뜩.
[이게 한계를 지운 대가인가.]
[한계를 없앤 대가가 참혹하군. 어떻게 이렇게 약하단 말인가.]
‘한계를 없앴다고?’
성지한은 그 말에, 셀레스티얼 큐브를 떠올렸다.
종족의 한계를 늘려 주는 아이템이, 인류에겐 먹히지 않았지.
[한계 설정을 폐지하지 말고, 그냥 늘리는 게 어떻겠나? 그리고 종의 기본을 튼튼하게 만드는 거다.]
[그러면 의미가 없다. 설정된 한계에는, 결국엔 도달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런 허약한 종으로는 실험 실패 아닌가? 뿌리의 수액, 한 방울도 못 견디는데.]
[벌써 실험 실패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계속 진행하자.]
스으으으…….
소용돌이들은 사라지더니.
또다시 실험을 재개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붉은 액체에 타올라 사라지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화르르르……!
금방 재가 되던 사람들은 불길을 어느 정도 버티기 시작했으며.
“아아아악!”
이에 따라,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는 케이스도 늘어났다.
‘실험자들 입장에선 한 방에 죽었을 때가 오히려 편했겠군.’
한 방울 닿자마자 순식간에 타오를 때에 비하면, 고통의 시간만 늘어난 인류.
거기에 처음에는 500명이던 실험은 점점 규모가 늘더니.
[더 넣으면 깔려 죽을 텐데.]
[그렇게 해서 죽을 정도면 어차피 쓸모없는 실험체다. 더 넣어.]
[맞다. 수액 아깝다.]
나중에는 수천 명에서, 1만이 넘는 인원이 한 번에 쏟아졌다.
겉으로 보기엔 한계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자, 어느 선에서 탁 막힌 채 더 펴지지 못하는 인류.
거대한 통 안에 서로 뭉치고 깔려서.
실험이 진행되기 전에,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러고는, 그 위에서 떨어지는 붉은 액체.
화르르륵……!
일만의 인류에게 불길이 붙으며.
내부는 금방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예전처럼 한 번에 소각되지 않아서 그런지,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진 안.
성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에게 인류는 단순한 실험체에 불과하군.’
그렇게 해서 소각된 1만의 인류.
번뜩.
이를 본 소용돌이 속 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최대한 강화해 줬음에도 수액조차 견디지 못하다니…….]
[실험은 실패다.]
[아쉽군. 이번 종족은 폐기하겠다.]
붉은 액체를 견디진 못한 인류에게 ‘폐기’를 선언한 소용돌이.
하나, 그때.
꿈틀…….
바닥에 살짝 고인 붉은 액체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더니.
슉!
1만 명이 녹아내린 공간에서, 작은 아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를 녹였던 붉은 액체에 감겨 있어도 멀쩡한 아이.
[실험체 1개체 생존.]
[돌연변이인가? 수액을 견디는 것은 물론, 이를 성공적으로 흡수했다.]
[그래도 아직은 형편없이 약하다만…… 그냥 새로 시작하는 게 어떻겠나?]
[일단은, 이 개체로 실험을 좀 더 진행하도록 하지. 이 개체가 죽으면 종족을 폐기하는 것으로.]
수많은 실험 끝에 생존자가 나와서 그런가.
소용돌이 속의 음성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돌고 있었다.
물론 이 개체가 죽으면 종족 인류를 폐기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이었지만.
[이번에도 살아남았군.]
[생각보다 쓸 만해.]
[이 존재를 중심으로 종을 번식시키자.]
[혼자서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겠지. 지배의 권한을 일부 줘야겠구나.]
아이가 계속해서 살아나고.
오히려 건강하게 성장하자, 그의 몸에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딱 보아도, 글자라기보다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문양이었지만.
[지배 코드 부여]
성지한에게는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이해되는 글자.
그것은 마치 소멸 코드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소멸 코드랑은 달리, 글자를 구성하는 요소에서 생명의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는군.’
성지한이 그렇게 글자를 분석하며, 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반짝!
성장한 아이의 몸에 새겨진 문양에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세상이 멈추며.
-나는, 죽지 않았지.
성지한의 귓가에, 음성이 들려왔다.
스으으…….
그리고 사라지는 성장한 아이.
어둠의 공간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현실감.
철컥. 철컥.
성지한의 팔과 다리에는, 스스로의 몸에서 뻗어 갔던 사슬이.
오히려 그를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뚜벅. 뚜벅.
“잘 보았느냐? 아이야.”
한 남자가 그에게 걸어왔다.
“……길가메시?”
* * *
피티아의 예언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인상의 남자.
성지한은 외모에 말투를 보고, 그가 누군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뿌리에 남긴 환영이네.”
“별짓을 다 하는군.”
“별짓이라니, 인류를 위해 용의주도한 것이지.”
성지한은 눈앞의 존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반투명해서 실체가 없는 길가메시.
그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환영은 맞군.
‘그래도 이놈,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대비는 해야겠지.’
성지한은 주변을 슬쩍 바라보았다.
갈색의 나무 벽으로 이루어진 공동.
성지한의 사슬은 이곳 사방에 꽂혀 있었다.
여긴, 세계수의 뿌리 안의 공간인가.
‘천수강신의 사슬에서, 생명의 기운이 계속해서 들어오는군…….’
사슬을 통해, 뿌리에서 무지막지하게 주입되는 생명의 기운.
아직은 성지한의 체내 허용 범위 내였지만.
이렇게 계속 기운이 쌓이면 아예 이것에 잠식될 것 같았다.
성지한은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놀란 체 길가메시에게 물었다.
“조금 전, 살아남은 자가 너였나?”
“맞다.”
“이게 태초에 일어났던 일이었나…… 그때의 일을 잘도 보여 주는군.”
“후후, 태초의 일은 무신과의 약속에 의해 발설이 금지되었지만…… 뿌리 속에 남겨 두었던 기억을 네가 우연히 목격했을 뿐이니, 이건 계약 위반이 아니지.”
무신과의 계약을 이렇게 피한 건가.
이건 태초의 왕이라기보다는, 사기의 왕 같은데.
성지한은 그를 보며 질문했다.
“이걸 내게 보여 준 이유는 뭐지?”
“흠…… 아직도 말이 짧구나.”
성지한의 물음에, 갑자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길가메시가 팔짱을 꼈다.
“왕이 명령하지. 이제부터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라.”
“싫은데?”
“……뭐?”
눈을 크게 뜨는 길가메시.
그는 놀란 듯 성지한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무혼을 지닌 자. 단 한 번에 지배받지는 않는 건가. 그럼, 다시 보라.”
스으으…….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조금 전 성지한이 보았던 장면이 다시 재생되었다.
500명으로 시작해서, 1만까지 실험에 참여하는 인류.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길가메시와.
성장한 그에게, 지배 코드를 부여하는 다섯 소용돌이까지.
봤던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게 된 성지한은.
“번거롭게 하는구나. 왕에게 절하라. 성지한.”
길가메시의 환영이 거만하게 말하자.
“너나 해라.”
태연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그러자, 표정이 일그러지는 길가메시.
“아니…… 아무리 무혼이라도, 어떻게? 인류라면 내게 지배를 받아야 할 것을……!”
“지배 코드 때문에?”
“지배 코드? 코드를…… 읽어?”
성지한의 말에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까 소멸 코드 쓰는 것도 본 놈이 왜 이래?’
성지한은 그런 그의 반응이 처음엔 납득이 되질 않았지만.
“아, 너 바벨탑에서 나랑 격돌하기 전에, 미리 준비된 환영이냐?”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탑에서 길가메시가 내가 코드를 쓰는 걸 봤으니까. 그걸 본 놈이 저거 읽은 거 가지고 이렇게 놀라진 않을 거거든.”
“코드를 써…… 네가?”
그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성지한을 바라보는 길가메시의 환영.
“말도 안 된다! 코드를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쓴단 말이냐! 나조차도, 아직 불가능한 것을……!”
“그래서 자꾸 코드 쓰는 거 보여 준 거냐? 네게 지배당하라고?”
직접 지배 코드를 쓰지는 못하니까.
일부러 지배 코드가 작성되는 걸 재생해 줌으로써, 성지한을 지배하려던 것이었나.
길가메시는 성지한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뿌리까지 도달한 너라면, 지배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한 가닥을 포기해서라도, 확실히 가져야겠다 마음먹었지. 성좌 후보자를 막지 못하고. 탑마저도 클리어한 너라면. 뿌리 하나를 써서라도 지배해야겠다고 결심했건만…….”
성지한은 환영의 말을 듣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자식, 대체 함정을 몇 개나 파고 사는 거야.
‘그런데…… 사슬이 지닌 생명의 기운은 줄었군.’
성지한은 자신을 역으로 옥죄던 사슬이 약해짐을 느꼈다.
환영의 동요 때문인지. 저 지배 코드 장면을 재생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터.
두둑!
성지한의 몸에서 뻗어 나갔던 사슬이 끊기자.
“큭…… 믿을 수 없다…… 다시, 봐 보아라……!”
길가메시의 환영은 뒤로 물러나면서, 또다시 아까의 장면을 재생했다.
성지한이 묶여 있지 않아서 그런가, 그의 앞에서 거대한 화면으로 뜨는 지배 코드 작성 장면.
이제는 아예 엑기스만 틀어서, 성지한을 얽매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 통한다니까.”
성지한은 그걸 보고는, 피식 웃으며.
“아, 그래. 써 볼까?”
화면 속에 나온 지배 코드를 따라 써 보았다.
그의 손을 따라, 허공에 새겨지는 글자.
생명의 기운이 베이스라 그런지, 힘이 턱없이 부족해서 문양은 1/5도 차지 않았지만.
“코, 코드를 쓴다고…….”
길가메시의 환영은 그걸 보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1/5밖에 쓰이지 않는 글자에.
슈우우우……!
사방에서 빨려 들어가는 생명의 기운.
‘지배의 지만 썼는데, 이런 효과가 있나?’
성지한은 무너지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불완전한 능력의 파편을 감지, 흡수합니다.]
[스탯 ‘영원’을 획득하시겠습니까?]
그에게, 메시지창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