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05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윤세진의 몸에 강림한 길가메시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아까의 열매와 잎, 세계수의 것이더군. 성능은 훨씬 떨어지지만.”
“성능이 떨어진다고…… 얼마나 부족하다고 느꼈지?”
“1/5 정도?”
“……그거밖에 안 되나.”
길가메시는 성지한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 네 추측이 맞다.”
바벨탑이 세계수와 연관이 있다는 걸 긍정했다.
“그럼 멸신결의 권능, 천수강신도 결국은 세계수와 연관이 있겠군.”
“훗…… 그건 옥상에 올라오면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저벅. 저벅.
길가메시는 등을 돌려, 계단을 올라갔다.
“다른 종들과는 달리, 무신의 무공은 나의 권능을 모두 담지 못했지. 네 무공은 내 권능에 비하면 반쪽짜리다.”
“그래? 친절한 설명, 고맙군.”
“끝까지 올라오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을 거다.”
계속 맨 위까지 올라오라고 권유하는 길가메시.
성지한은 피식 웃었다.
“옥상에 뭘 숨겨 두긴 했나 보군.”
“후후, 두렵나? 겁이 난다면 로그아웃해도 상관없다. 나는 올라와도 좋고, 아니어도 되니까.”
“아, 우승은 해야지.”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럼 위에서 보지…….”
스으으으.
윤세진의 몸에서 황금의 빛이 위로 뻗어 오르고.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분이 왔다 가셨나?”
“예, 올라가죠. 위에서 기다린답니다.”
인류의 랭커들을 모조리 자신의 광신도로 만든 태초의 왕.
그가 옥상에서 준비한 게 무엇이든 간에, 분명 범상치 않은 걸 준비한 게 틀림없겠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군.’
성지한은 소피아가 걸어 준 버프의 남은 시간을 바라보았다.
지속 시간 15분 정도 남은 버프.
이게 끝나기 전에는, 옥상을 가야 했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 그래?”
“예, 다른 분들은 천천히 따라오시죠.”
“지, 지한 님…… 그럼 왕의 하사품은…….”
성지한의 말에 대표팀 선수 중 한 명이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았다.
성지한이 혼자 올라가겠다는데도, 그를 걱정하기는커녕 하사품에만 관심을 쏟는 선수들.
어차피 많이 먹으면 사슬이 되어 사라지는데도, 욕심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알아서들 다 드세요. 전 안 먹고 갈 테니.”
성지한은 대표팀 선수들을 스윽 쳐다보더니, 먼저 바벨탑을 올랐다.
다음 층.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가지를 섭취하라. 그럼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럴 시간 없다.”
슉!
성지한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강철 거인들의 틈새를 찾아, 그대로 돌파했다.
철컹. 철컹.
그를 막기 위해, 강철 거인의 몸에서 사슬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통과시켜라.]
강철 거인의 눈빛이 황금으로 반짝이자, 뻗어 나오던 사슬은 다시 거둬졌다.
앞을 막는 이도 없으니, 신속하게 탑을 오르게 된 성지한.
그렇게 몇 층을 올랐을까.
‘여긴 그간의 모습과는 좀 다르군.’
그동안 황금빛이 가득했던 바벨탑의 층과는 달리.
핏빛으로 가득 물든 층이, 성지한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곳에 서 있는 강철 거인 엔키두는 단 한 기.
다른 엔키두와는 달리, 핏빛 갑주를 착용한 그는 벽면과 바닥, 천장에서 뻗어 온 황금 사슬에 꽉 묶인 채 있었다.
[누구냐.]
그는 성지한이 들어오자, 투구 속 두 눈에서 붉은빛을 발했다.
‘지금까지의 엔키두와는 확실히 이질적이고 강한 존재군. 한데 저 힘, 어딘가 익숙한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버프 끝나기 전에 옥상에 가려고 계단을 찾았지만.
“여긴 계단이 없네.”
눈앞의 존재를 쓰러뜨려야 올라갈 수 있는 건가.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저 만만찮은 존재와 투닥거리면 버프가 끝날 거 같은데, 그냥 천장 뚫고 갈까.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천장을 바라볼 때.
[성지한…… 어떻게 여기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르르르…….
성지한을 알아본 강철 거인의 뒤편에서 핏물이 뭉치더니, 거대한 십자 형태의 혈검이 생겨났다.
그건, 예전 러시아전에서 본 적이 있었던 십자의 혈검.
[싸울 거면, 상대해 주지.]
“너…… 롱기누스냐?”
[그렇다.]
성지한의 물음에, 핏빛 거인은 이를 긍정했다.
* * *
한편.
=아아, 분명 성지한 선수가 윤세진 선수에게 길가메시라고 물어본 것 맞죠?
=그렇습니다. 설마 ‘태초의 왕’의 정체가 고대의 왕 길가메시일 줄은 몰랐는데요.
=그가 성좌라면, 고대 인물들 중에서 성좌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결승전 중계화면에 모두 송출된 성지한과 윤세진의 대화.
이미 미국이고 한국 대표팀이고, 태초의 왕에게 경배하는 사이비 신도 모임이 된 5경기에서.
이제 방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정상인인 성지한 쪽밖에는 없었기에.
얼마 전부터 카메라는 성지한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인들은 태초의 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태초의 왕’이 길가메시라니…….
-근데 길가메시가 오래전 왕이긴 해도, 태초라고 할 정돈 아니지 않나?
-여러분, 왕정은 이집트가 먼저입니다.
-근데 바벨탑이 세계수란 이야기는 뭐임?
-몰라; 세계수 연합이랑 인류가 연관이 있었나.
-알고 보니 최하급 종족에게 숨겨진 비밀이…….
갑작스레 드러난 사실에, 이리저리 추측을 늘어놓는 시청자들은.
-아니 저 거인은 또 롱기누스라고?
-예수 찌른 롱기누스?
-근데 저 십자검 러시아전 때 블라디미르가 소환했던 거잖아. 자기 성좌가 강림해서 그랬다고 했는데…….
-그럼 롱기누스도 성좌야? 인류 출신 성좌 왜 이렇게 많음?
-그러게;
핏빛 거인의 정체가 롱기누스임이 드러나자, 혼란에 빠졌다.
“왜 네가 그 거인 안에 있냐?”
[길가메시의 도움으로 힘을 회복 중이다. 하루라도 빨리 지구에 강림해 너를 직접 죽여야 하니까.]
성지한은 그 말에 롱기누스를 묶고 있는 황금 사슬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선, 상당한 양의 생명의 기운이 붉은 거인에게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네 회복을 방해하면, 내가 시간을 더 벌겠군.”
[방해라…….]
휙!
그 말에 거인의 등 뒤에서, 혼자 날아 움직이는 혈검.
그 검은 성지한과 롱기누스의 사이에 떡하니 내려왔다.
[어디 할 테면, 해 보아라.]
펑!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으로 나뉜 혈검.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기세는, 꽤 강렬했다.
하지만.
혼원신공混元神功
천뢰용염天雷龍炎
용뢰龍雷
화르르륵……!
불의 힘을 품은 용뢰가 검을 휩쓸자, 순식간에 증발하기 시작하는 혈검.
하나 혈검은 증발한 만큼, 다시 증식하면서.
용뢰를 결국에는 막아섰다.
그렇게 첫 공격은 들어가질 않았지만.
‘몇 번 더 공격을 하면 확실히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겠어.’
성지한은 그 첫 격돌로, 상대의 힘을 파악했다.
그가 몇 차례 더 용뢰를 쏘자.
펑!
혈검은 결국 완전히 뚫리고, 용뢰가 핏빛 거인의 몸에 닿았다.
[이놈…… 더 성장했구나.]
화르르르……!
불길에 잠긴 핏빛 거인.
하나 그의 몸을 묶고 있는 황금색 사슬이 꿈틀거리자.
거인의 몸은, 금방 수복되었다.
용뢰로 인해 데미지가 없진 않아도, 사슬의 힘으로 바로 회복하는 롱기누스.
[하지만, 아무리 강해져도 나의 회복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원상복구된 몸을 보며, 성지한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 뭔 자신감이냐.”
[허, 사슬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 이 사슬이 풀리면 너 정도야 단번에 죽일 수 있다.]
“그래?”
[그렇다. 하지만, 힘의 회복을 위해 묶여 있을 뿐이지…… 이 공간에서 널 죽여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가상공간에서 성지한을 죽이느니.
힘을 회복한 후, 지구로 강림해서 성지한을 확실히 척살하겠다는 롱기누스.
성지한은 생각했다.
‘소멸 코드 멸을 사용하면, 확실하게 타격을 입힐 수 있어.’
지금 성지한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은 소멸 코드.
그것을 롱기누스에게 사용한다면, 확실히 그에게는 궤멸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다만.
‘그러면, 최상층에서 쓸 힘의 여유가 사라진다.’
성장한 성지한이라도, 지금 한 글자도 쓰기 버거운 소멸 코드.
비록 지금은 소피아의 버프가 있기에, 예전처럼 글자 하나 썼다고 그로기 상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쓰고 최상층에 가서 또 쓸 정도로 체력이 남진 않을 것이다.
소멸 코드를 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여기서 소멸 코드를 사용해서, 롱기누스에게 피해를 입히고 로그아웃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한데…….’
지금 성지한에게 가장 직면한 문제는, 바로 지구에 강림할 롱기누스.
신살의 창을 지닌 이 성좌는, 아무리 성지한이 강력하다고 한들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원래는 5경기를 승리로 이끌어, 성좌 후보자가 돼서 그에게 대비하려 했지만.
여기서 롱기누스의 회복을 소멸 코드로 막고, 로그아웃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면, 비록 성좌 후보자는 바로 되지 못해도.
롱기누스의 지구 강림을 늦추고, 그 여유 시간 동안 성좌 후보자로 오르면 되었으니까.
‘확실히, 이번에 안 돼도 성좌 후보자는 곧 되긴 해.’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성좌 후보자.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서 바로 성좌 후보자로 낙점받는 게 가장 좋겠지만.
롱기누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 두 번째 수단도 나름 하나의 길이었다.
거기에, 이 방법은.
‘최상층을 안 가도 된다.’
길가메시가 무슨 흉계를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바벨탑의 최상층.
거기에 굳이 발을 디디느니.
여기서 롱기누스에게 피해를 입히고, 지구로 가는 게 어쩌면 더 안전한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성지한이 그렇게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뭐 하고 있지? 공격…… 더 이상 하지 않나?]
황금 사슬에 묶여 있던 롱기누스가 성지한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맞고 싶어?”
[그 시시한 공격 정도면, 얼마든지 맞아도 상관없다.]
“호오, 그래?”
굳이 맞겠다면서, 자신을 도발하는 롱기누스.
성지한은 그렇게 나오는 상대를 보며 일단 두 번째 방법은 패스했다.
생각해 보면, 사슬에 묶인 롱기누스에게 데미지를 입힌다고 회복이 더뎌질 거라는 건 저쪽 말만 들어서 그렇게 판단된 거지.
성좌 본체에 실질적으로 피해가 갈지는, 사실 미지수였으니까.
“시시하다니까 안 때리련다.”
[……하. 그래?]
“어, 올라가는 길. 어디 있냐?”
[나도 모른다.]
그러면서 핏빛 갑주의 두 눈이, 벌겋게 번뜩이며 성지한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가 알겠지.]
저벅. 저벅.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단을 올라오는 윤세진.
그의 두 눈은 이제 숨길 기색도 없는지, 황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지한. 신중하구나. 하지만 저 롱기누스는 총애하는 너에게 주는 선물…… 여기서 그에게 피해를 입혀, 회복을 늦추거라.”
“왜? 날 총애하면 네가 저놈 회복시키지 않으면 되잖아.”
“후후, 같은 종끼리 해를 입힐 수는 없지…… 네가 직접 처리를 하라고 마련한 무대다. 여기서 그에게 타격을 입히면, 강림이 꽤 미뤄질 것이야.”
대놓고 빨리 롱기누스를 치라는 길가메시.
그는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가 적절한 피해를 입었을 때. 내가 최상층으로 연결하는 계단을 만들어 주지.”
“그놈의 최상층…… 언제 나오냐?”
“다 왔다. 바로 위층이거든.”
윤세진의 손가락이 바로 위를 향했다.
한 층만 더 올라가면, 최상층.
“저놈 처리 안 하면, 못 가고?”
“그렇다. 선물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
꼭 롱기누스에게 피해를 입혀야만 길을 터준다는 길가메시에게.
성지한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내가, 알아서 올라가지.”
휙!
천장을 향해 달려드는 성지한.
“쓸데없는 짓. 이 안의 길은, 내 허락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길가메시는 그걸 보고, 피식 비웃음을 흘렸지만.
성지한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핏빛 천장 위에 문자가 그려지자.
“너, 대체 무슨 짓을…….”
처음으로 표정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