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304화>
‘바벨탑?’
믿는 종교는 없는 성지한이었지만.
바벨탑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늘까지 쌓아 천국에 닿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의 분노를 사서 무너진 탑.
그러며 신화 속에서는 통일된 언어를, 여러 가지 언어로 뒤섞어 놓았다고 했지.
한데 길가메시의 거처가 그 ‘바벨탑’이라니.
“이 탑…… 위로 갈수록 위험할 거라고 해요. 아무리 지금 우리가 배틀넷 커넥터를 통해 들어온 아바타라고 해도, 성좌께서 로그아웃을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다시 한번 권유하셨어요.”
“흠.”
와삭.
성지한은 황금의 과일을 씹으며 생각했다.
꺼림칙하기 짝이 없는 바벨탑.
안전을 생각하면, 로그아웃을 하는 게 맞겠지.
성좌 후보야 이번에 안 돼도, 오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좀 올라는 가 봐야지.’
성지한은 황금의 과일을 주는 길가메시의 바벨탑에 흥미가 생겼다.
“일단은 더 가 보겠습니다. 둘은 위험하면 바로 로그아웃하세요.”
“음…… 아직은 있어 봤자 삼촌에게 방해겠지? 알았어. 튀랄 때 튈 게.”
“저도요. 그러고 성좌께서 또 말씀을 내려 주시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그의 당부에, 순순히 납득하는 두 사람.
“근데 삼촌 그 과일…… 안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난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어서 괜찮아.”
“오, 그럼 나도?”
“넌 안 되고.”
“쳇, 맛있어 보이는데.”
윤세아는 성지한이 계속 과일을 가져다 먹는 걸 부럽게 쳐다보았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어 보이는 황금의 과일.
엄마의 당부가 아니었으면, 자신도 벌써 저기 달려가 있었겠지.
‘이 정도 생명력이면, 세계수의 과육의 1/5정도인가.’
그리고 내부에 숨겨진 ‘은밀한 기운’도, 1/5정도로 확실히 세계수 것보단 열화된 황금의 과일.
성지한은 일부러 그 기운을 정화하지 않은 채.
슉. 슉.
과일을 가장 많이 집어먹었다.
“아니! 자꾸 누가 가져가는 거야!?”
눈이 벌게진 채 과일 먹기에 몰두하던 플레이어들은 자꾸 과일이 사라지자 성질을 냈지만.
“뒤, 뒤에 봐! 성지한 님이야……!”
“아…….”
“그, 그럼 어쩔 수 없지.”
“으, 으으. 그렇게 강하시면서…… 이것도 다 먹어야 하나…….”
과일을 가져가는 게 성지한인 걸 알자, 구시렁거리기만 할 뿐, 앞에서 뭐라 하진 못했다.
“와…… 삼촌한테 뒷담화하는 거 봐. 진짜 왜들 저런대? 아무리 이게 체력을 올려 준다고 해도.”
“그러니까. 감히 지한한테 저래도 되는 거야?”
“……근데 소피아. 너 왜 눈 감고 있어?”
“너무 맛있어 보여서. 그냥 안 보기로 했어.”
“나도 그래야겠다.”
그렇게 눈을 감고 버티는 둘.
성지한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과일을 본격적으로 먹어치웠다.
와삭. 와삭!
엔키두가 땅에 떨어뜨린 것 중, 거의 반을 가져와서 해치우자.
대표팀 선수들의 시선이 점점 그에게로 박혔다.
그리고.
“아, 조, 좀……!”
“성지한 님. 그만 드시면 안 됩니까……!?”
대표팀에서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던 성지한에게.
선수들이 대놓고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 내려 하고 있었다.
-와, 성지한한테 뭐라 그러네 ㅡㅡ 배은망덕한 놈들이구만
-아무리 체력 스탯 오른다고 해도, 개기는 건 좀 심한데?
-그냥 귀신에 씌인 거 같음. 눈 돌아갔어.
-그래도 우린 나은 거임. 미국 대표팀은 서로 싸운다 야;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황금의 과일도.
50명이 달려들어 미친 듯이 먹어치우자,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남은 과일 개수에 민감한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을 때.
[지나가라.]
강철 거인 엔키두가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자 그 등 뒤로 드러나는 계단.
황금 천지인 바벨탑 안이었지만, 계단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자.
“아…… 끝났구나.”
“아쉽네.”
“체력…… 3 올랐어.”
“난 5.”
“더 먹었음 좋았을 텐데…….”
사람들은 급격히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냉정을 되찾았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럼 바로 올라가죠!”
“윗층엔 또 무슨 보물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번엔 내가 다 먹을 거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빨리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면서.
순서도 지키지 않고 앞다투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이 게임이 결승전 5경기고, 자신은 대표팀 소속이라는 게 생각조차 안 나는 것 같은 플레이어들.
하나 그런 군중에 휩쓸리지 않은 한 명.
검왕 윤세진은, 팔짱을 낀 채 성지한을 돌아보았다.
“어디…… 올라갈 건가, 처남?”
“가야죠.”
“좋은 선택이네.”
씨익.
성지한의 결정에 웃음 지은 윤세진은.
“그럼, 가지.”
먼저 계단 위로 올라갔다.
* * *
=투성, 이건 대체 무슨 맵인지 감이 안 잡힙니다…….
=조금 전, 한국 대표팀 쪽에서 소식이 들어 본 바에 따르면, 플레이어 소피아의 성좌가 이곳을 에테멘앙키, 바벨탑이라고 했다는군요.
=바벨탑이요? 제가 알고 있는 바벨탑과는 뭔가 많이 다른 거 같군요. 바벨탑이 언제 이렇게 화려한 황금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던전 맵이라더니, 플레이어들에게 혜택만 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나온 장면만 보면 말이죠.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 5경기.
그 무엇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게임은,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벨탑을 오르는 두 팀은, 서로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건지 전혀 마주치지 않은 채.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엔키두에게서 하사품을 받았다.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잎을 섭취하라. 그럼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아이고, 이런 걸 또 주시고. 감사합니다!”
“태초의 왕께 경의를!”
과일 때는 검왕이 먼저 나서서 절을 했다면.
이제는 앞다투어서 나가는 플레이어들.
그들은 모두 초식동물이라도 된 양, 거대한 잎사귀를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저건 그렇게 맛있어 보이진 않네.”
“그래? 한국 사람들, 고기에 상추 싸 먹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고기가 주야.”
과일 때에 비하면 참을 만한 건지.
사람들의 광기를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윤세아와 소피아.
성지한은 탑 천장까지 쌓인 잎사귀를 무혼의 힘으로 끌어왔다.
‘이것도 세계수 계열과 연관되어 있다면 세계수의 잎사귀일 텐데.’
와작.
씹어먹어 보자, 과연 회복 효과가 존재하는 바벨탑의 잎사귀.
하나 이번 것의 효과는, 과일만큼 크지는 않았다.
거기에 애초에 세계수의 잎사귀는 상태이상을 치유하는 쪽이 주 효과였는데.
“너무 맛있어……!”
“왕이시여, 감사합니다!”
“절하고 먹어야 스탯이 오른대!”
“오, 올랐나!?”
잎사귀 뜯어먹는 대표팀 선수들은, 어째 상태이상이 풀리기는커녕 광기가 더 심해지는 거 같았다.
잎사귀 앞에서 자기 조상님한테보다 절을 더 열심히 하는 건 물론.
“성지한 님! 너무하십니다! 그만 가져가시지요!”
“맞습니다……! 왕의 하사품을 혼자서만 그렇게 가져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야! 내가 형이니까 한마디 한다. 그만 좀 독식해라!”
이제는 급기야 성지한에게 항의까지 했다.
평소엔 성지한 선수라고 공손히 말하던 플레이어까지, 나이로 찍어누르려는 모습에.
-야? ㅋㅋㅋㅋㅋ 성지한한테? ㅋㅋㅋㅋ
-진짜 정신줄 놨구나…….
-바벨탑 이거, 누가 누가 더 제정신 유지하나 실험하는 맵인가, 여기?
시청자들은 어이가 털렸다.
고대하던 결승전 5경기에서, 이렇게 아군끼리 자중지란을 보이는 모습을 보다니.
그들은 금방 끝난 1, 2경기나 나름 치열하게 다투었던 3, 4경기가 그리워졌다.
그때.
[그는 왕이 총애하는 자.]
[왕께서는 하극상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잎사귀만 넘겨줬던 강철 거인이, 성지한에게 삿대질하는 플레이어를 휙 움켜쥐었다.
“어……?”
강철 거인이 손을 움켜쥐자.
펑!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풍선처럼 폭발하는 플레이어.
나름 강력한 전사인 그가 어째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터져 버리자.
=아, 아니……!
=엔키두. 처음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플레이어 성에게 대들었다고 대신 나서다니, 바벨탑의 주인인 ‘왕’과 그는 무슨 관계죠?
=한국 대표팀 측에서 먼저 전투가 벌어지겠습니다……!
해설자들은 흥분한 채, 포커스를 한국 대표팀 쪽으로 돌렸다.
대표팀 선수 한 명이 엔키두에게 죽었으니, 분쟁이 일어날 거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아…… 성지한 선수가 왕께서 총애하는 자셨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말조심하겠습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동료가 죽었음에도.
오히려 엔키두의 말에 납득하면서, 성지한에게도 예전보다 더 공손해졌다.
강철 거인에게 대항하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대표팀.
“아니…… 선수들 진짜 왜 저래? 같은 편 죽었는데…….”
“이래서 성좌께서,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한 거 같아. 이거 완전히, 마리오네트인데…….”
과일을 먹지 않은 둘은 이런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보면서 경악했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발생했다.
“으, 으아……?”
잎사귀를 먹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더니.
철컹. 철컹!
황금 사슬로 변해서 강철 거인 엔키두에게로 뻗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슬은, 강철 거인의 몸 안으로 그대로 흡수된 채 사라졌다.
순식간에 플레이어 한 명은 터져서 사망.
한 명은 사슬이 되어 흡수되어 대표팀의 인원이 48명으로 줄은 상황.
하나.
쩝. 쩝…….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옆에서 죽거나 말거나 나뭇잎을 먹느라 관심이 없었으며.
“왕의 진정한 신하가 되었군.”
옆을 흘깃 보며 윤세진이 그리 코멘트하자.
“아, 저게 진정한 신하가 된 거구나…… 좋겠다.”
“나도 되고 싶다.”
“빨리 더 먹어야지!”
오히려 잎사귀를 뜯어먹는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리고.
철컹. 철컹!
7명의 플레이어가 더 사슬이 되어 사라지고 나서야.
[지나가라.]
엔키두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걸 허락했다.
-아니, 결승전 마지막 경기가 왜 이렇게 찝찝해…….
-치킨 한 마리 더 시켰는데 식욕 확 떨어지네
-미국 대표팀도 8명 사슬로 사라짐 ㅡㅡ;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맨 위층까지 가야 우승하는 건가?
-으으, 그냥 힘 싸움으로 쾅 붙는 게 낫지 이건 뭐……
대표팀 선수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태초의 왕에게 광신적 면모를 보이는 걸 지켜보며.
이제는 불쾌함까지 느끼는 시청자들.
“삼촌…… 계속 갈 거야?”
“성좌님 말씀대로, 로그아웃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점점 광신도 집단이 되어가는 대표팀 선수들을 보며, 윤세아와 소피아는 성지한에게 그리 권유했지만.
“저는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두 사람은 먼저 로그아웃하세요.”
“……삼촌이 아까 말했던 위험한 상황이야?”
“지금까지는 괜찮았지만, 다음 층부터는 확실히 그럴 거야.”
“지한은요?”
“저는 아직 알아볼 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지한은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철컹!
그의 손에서, 아까 플레이어들이 변했던 것과 같은.
황금의 사슬이 튀어나왔다.
“어. 이, 이건. 지한도 설마 저것에 잠식된 건가요……!?”
“아뇨. 이거 연구 가치가 있어서 일부러 키워 주는 중입니다.”
멸신결의 마지막 무공, 천수강신.
그것이 내뿜는 사슬과, 이 황금 사슬은 확실히 동류였다.
‘완벽하게 분석하지 못한 천수강신을, 이 바벨탑 안에서 좀 알아볼 수 있겠어.’
“알겠어요. 짐이 되느니 로그아웃하는 게 맞겠죠.”
“네, 다음 층부터는 짐이 될 겁니다.”
“윽…… 쓸모없다고 면전에서 이야기하니까 가슴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가기 전에 풀버프 드리고 갈게요!”
성지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괜히 있어서 발목을 잡진 않겠다며.
둘은 성지한의 로그아웃 권유에 순순히 따랐다.
번쩍!
윤세아와 소피아가 로그아웃하자.
“둘을 잘 보냈네. 이제 걱정할 게 없겠군.”
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윤세진은 그리 말했다.
“가죠, 꼭대기까지.”
“좋은 생각이네.”
그러며 다음 계단을 향해 걸어가는 윤세진.
성지한은 그의 등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놓았다.
“야, 근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한테?”
“어, 매형 말고. 너 길가메시한테 말이지.”
“훗, 뭔가?”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는지.
황금의 안광을 반짝이며, 웃는 얼굴로 성지한을 돌아보는 윤세진을 향해.
성지한은 멸신결을 사용했다.
혼원신공混元神功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철컹. 철컹.
성지한의 몸속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사슬.
그것이 이 황금의 탑 2층에 가득 닿자.
스으으으…….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에 가득했던 황금빛이 금방 색이 바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계단과 같은, 갈색의 나무 재질로 변했다.
“바벨탑 이거…… 세계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