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299화>
월드 챔피언스 리그.
성지한에게 이 토너먼트는, 사실상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스페이스 리그의 인류 순위였으니까.
거기에 롱기누스와의 격돌을 대비하기 위해선, 매일같이 수련에 힘을 써야 했기에.
성지한은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 정도는, 한국의 다른 플레이어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시기가 맞으면, 그냥 밴 카드를 소모하는 용도로 앉아 있으려 했는데…….’
하나 이번에 받은 퀘스트 때문에, 월드 챔피언스 리그를 바라보는 성지한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좌 후보자에 관한 건, 피티아가 제안한 것이었지.’
성지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피티아는 성좌 후보자에 오를 수 있는 ‘별을 쫓는 자’ 옵션을 알려 주었다.
인류의 1등 성지한과 2등간에는 아직도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에, 별을 쫓는 자 옵션은 계속 적용된 상태로.
이대로면 시간만 지나면, 성지한은 성좌 후보자에 오를 수 있게 되는 상황.
특히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결정될 때쯤에는, 성좌 후보자로 오를 수 있는 기한도 똑같이 다가왔기에.
셀레스티얼 큐브의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성좌 후보가 되는 건 시간상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보상으로 준다는 게 의미심장하군.’
셀레스티얼 큐브가 정말로 사용자의 상황에 적합한 보상을 주는 거라면.
성좌 후보자를 한두 달 미리 당기는 게, 매우 중요한 일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흠…… 혹시 롱기누스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은 건가?’
신살의 창을 지닌 성좌 롱기누스.
아무리 강력해진 성지한이라고 해도, 성좌가 직접 강림해 오면 승패의 추는 저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셀레스티얼 큐브의 보상은, 이를 막기 위한 것인가.
‘일단, 우승은 무조건 해야겠어.’
성좌 후보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성지한은 월드 챔피언스 리그에 진지하게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가 확실히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둘씩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TV를 보며 성지한이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자.
“오, 삼촌 관심 없는 것 같더니…… 역시 조 편성 보니까 가슴이 뛰지?”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대로 가장 중요한 건 운이라고 합니다. 성지한 님이 밴 되냐 안 되냐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구요.”
“1, 2번째 밴은 필수적이고. 3번 째부터는 50퍼센트 확률로 들어가니까…… 정말 재수 없으면 오너님 5경기 다 밴당할 수도 있긴 하네요.”
“거기에 서포터 맵도 무조건 뽑을 거래. 삼촌이 저번에 서포터 역량을 보여 주긴 했지만, 삼촌 밴 당한 상태에서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서포터 전력이 부족하니까.”
“서포터 전력이 저희랑 비슷한 영국은 마법사 맵만 꺼낼 거라고 하네요. 아무래도 메이지랑 서포터, 그게 우리나라의 약점이니까요.”
다들 챔피언스 리그에 대해 한마디씩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을 상대로, 외국에서 준비하고 있는 전략은 크게 두 갈래로.
첫 번째는 성지한 필밴과.
두 번째는 서포터나 메이지 맵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그럼 메이지랑 서포터 클래스의 인재를 한국에서 영입하면 되겠군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국가대표급 역량의 선수를 그렇게 쉽게 찾기란…….”
이하연이 말끝을 흐리고 있는 사이.
“저요, 저!”
부엌에서 자기 접시를 가지고 온 소피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국가대표급 역량의 선수! 한국에 부족한 서포터! 여기 있어요!”
“아…….”
“서포터는, 소피아 님이 있긴 하죠.”
“근데 소피아 미국 대표팀에서 콜업 안 했어? 라인업에 들면 중복 출전 불가능하지 않아?”
“아, 아직 레벨이 부족해서 안 불렸어. 미국 대표팀은 레벨 제한이 아주 높거든.”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미국 대표팀.
거기 국가대표로 뽑히기 위해선, 아무리 기프트가 좋더라도 대표팀에서 설정한 레벨 제한을 넘어야 했다.
소피아의 경우에는, 거기에 살짝 못 미치는 상태여서 미국 대표팀의 라인업에 끼질 못했다.
“근데 지한이 맨날 뭐 하러 굳이 귀화하냐고 그랬는데…….”
“검왕님 케이스 때문에 그랬죠.”
작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한국 대표팀에게 큰 피해를 입혔던 검왕의 케이스 때문에 그런지.
성지한은 외국 선수가 굳이 귀화해서 오는 걸 달가워하질 않았다.
애초에 스페이스 리그가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굳이 국가 대항전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그동안 소피아의 귀화도 찬성하지 않은 그였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소피아, 올래요? 한국으로.”
“저, 정말요?”
“예, 이번에 우승을 해야겠습니다.”
“와!”
자기가 이야기를 꺼내고도 성지한이 받아 주자 놀랐는지, 소피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삼촌 웬일이야? 그렇게 오지 말라고 하더니.”
“우승 퀘스트를 받아서.”
“……그런 것도 퀘스트가 있어? 삼촌 우리랑 다른 게임 해?”
“갑자기 주더라.”
퀘스트 받았다는 말에, 주변에서 놀란 얼굴로 성지한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퀘스트 때문이면, 아예 세상에 이를 공론화하는 게 어떨까요?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 상대로는 오너님의 밴 유무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잖아요.”
만약 결승에서 미국과 만나게 되었는데.
미국 감독의 운이 좋아서 성지한 5밴이 현실화되면, 그 게임의 승패는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까 아예 이걸 공론화해서, 우승 내놔를 시전하자는 이하연.
“그렇게 까지 될까, 언니?”
“오너님이 퀘스트 깨야 한다는데, 사람이면 당연히 받아 줘야지. 거기에 이번에 대기 길드 효과가 대폭 늘어서, 다들 눈치 보기가 심화됐어. 우승 한 번 정도야, 양보받을 수 있을 거야.”
인류에게 성지한과 대기 길드의 중요도가 워낙 컸기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정도는, 충분히 협상을 통해 양보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자신했다.
하나.
“아니, 대놓고 전 세계에 퀘스트에 관한 내용을 드러내긴 좀 그렇습니다.”
성지한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대놓고 우승을 내놓으라고 해서, 괜한 경계를 살 필요는 없지.’
투성에 있는 무신의 종들은, 인류의 상황도 지켜보고 있었으니.
굳이 그들에게 성지한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가지고 무리한 일을 벌이는 걸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소피아의 영입도, 한국 협회에서 적극 추진해서 일어난 일로 하죠.”
“아하…… 오너님이 수련하는 도중에 감독님이 영입한 것처럼요?”
“예, 그런 그림이 낫겠습니다.”
“네, 그럼 바로 연락을 드릴게요.”
* * *
=B조가 확정되었습니다! 한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군요.
=조 편성 결과, 어떻게 보시나요?
=아주 좋습니다! 영국이 강팀이긴 하지만, 저희에게는 미치지 못하죠.
=맞아요. 만약 성지한 선수가 수련 중이라 조별 경기에 출전을 못 한다고 해도, 16강 진출은 어렵지 않게 하겠어요!
B조의 조 편성이 끝나고, 이건 한국에 유리한 결과라고 코멘트하는 해설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감독님. 저, 이하연입니다…….”
이하연은 그 자리에 바로 소피아의 대표팀 합류를 추진했다.
다음 날.
[16강은 이미 확정? B조 조 편성 결과, 대한민국에게 웃어 줘.]
[노영준 감독, 대표팀 라인업에 소피아 선수를 포함시키겠다고 깜짝 발표!]
[소피아 선수는? 기프트 ‘트리니티’를 지닌 서포터 유망주.]
[깜짝 영입 발표에 미국 배틀넷 협회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
조편성 결과에 대한 낙관적인 기사가 나오는 것도 잠시.
노영준 감독이 대표팀에 미국의 소피아를 데려오겠다는 발표에, 세간의 시선은 온통 이쪽으로 쏠렸다.
-헐; 소피아 진짜 귀화함?
-아니 온다온다 말만 하고 안 와서 기대 안 했는데……
-성지한이 굳이 귀화할 필요 있냐고 그런 거 아니었음?
-ㅇㅇ 검왕 케이스 이야기하면서 그랬을걸. 그런 거 싫다고.
-에이 근데 소피아가 뭐 검왕이랑 같나? 미국 대표팀에 뽑히지도 않았잖아 ㅋㅋㅋ
-어쨌든 성지한 반대에도 감독이 깜짝 발표한 거임? ㄷㄷ
-에이 설마. 뭔가 조율이 있었겠지
-ㄹㅇ 성지한 뜻과 반대되는 일은 아무리 노영준 감독이라고 해도 못할걸.
소피아 영입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한국 대표팀의 고질적인 약점인 서포터 전력을 한 방에 보충해 줄 수 있는 카드였으니까.
사실 성지한과 그녀의 특수한 관계성이 아니었다면.
미국이 한국에서 영입해 가면 영입했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올 인재가 아니었다.
이하연이 노영준 감독의 이름을 빌려, 영입 제안을 발표하긴 했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성지한도 이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냐고 말하고 있었다.
-이러면 진짜 우리 마법사만 약한 거네. 마시드는 어떻게 안 오나? ㅎㅎ
-마시드 저번에 결국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경기 나섰음. 그래서 이번 챔스엔 출전 못 할 거야.
-아깝네…… 다음 시즌에라도 영입하면 안 되나.
-근데 거기는 마시드가 아르헨티나 소년가장이라 좀 빼 오기 미안하긴 함 ㅋㅋㅋㅋ
-하긴 소피아는 레벨 부족해서 미국 국가대표도 못된 건데, 마시드는 케이스가 다르긴 하지.
-자체적으로 좀 키울 만한 마법사 없나?
-ㅇㅇ…… 이상하게 마법사 인재가 안 나오더라.
-성지한 나왔음 됐지 ㅋㅋㅋ 뭘 더 바람.
마시드까지 영입되면 이번 챔피언스 리그 최강팀 확정인데, 아쉬움을 토하는 사람들.
하지만, 소피아의 대표팀 합류로 인해 우승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 갔다.
그리고 그 이후 공개된 경기 일정은.
2, 4, 6일 후에 세 나라와의 경기가 연속적으로 잡혀 있었다.
상당히 타이트한 일정.
하나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뭐 이렇게 일정이 빡세?
-다음 달 초에 스페이스 리그 경기가 있어서 이런 듯
-이번 상대는…… 세계수 엘프네.
-아 또 그놈들이야?
-세계수 엘프 200. 랭킹 1위임 ㄷㄷ
7월 초에 열리는 스페이스 리그 경기.
이번 게임의 상대 종족은 또 다른 세계수 엘프였다.
그것도 스페이스 리그 내에서 랭킹 1위를 달리는, 넘버 200.
그들과의 경기 전, 챔피언스 리그가 끝나야 했기에.
이번 일정은 매우 타이트하게 짜여 있었다.
“그런 고로. 7월 초까지는 여기 배틀넷 센터에서 일정을 쭉 소화할 것이네. 모두들 강행군이겠지만, 우리의 목표인 우승을 위해 힘내 주게.”
“알겠습니다, 감독님!”
한편 한국의 배틀넷 센터에서는.
노영준 감독이 이번에 뽑힌 선수들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정 이야기를 끝낸 그는.
“아, 그리고 이번에 대표팀에 새로 합류한 소피아네. 다들 알겠지만, 서포터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 중 한 명이지. 이번에 참 쉽지 않은 결심을 해 주었어. 박수로 환영해 주게.”
대표팀에 합류한 소피아를 선수들에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소피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짝짝짝.
소피아가 고개를 숙이자,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국 대표팀과는, 사실 상당히 이질적인 컬러를 풍기는 외국인이었지만.
서포터 전력이 극히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은, 그녀를 커다란 박수로 환영하며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와, 억양이 진짜 한국인이네. 배틀튜브에서 볼 때랑 똑같아.”
“성지한 선수 때문에 귀화한 거, 사실일까?”
“그러지 않겠어? 그게 아니고서야 왜 미국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오겠어?”
“근데 성지한 선수…… 대기 길드 마스터랑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어?”
“뭐 그렇긴 한데…….”
선수들은 그리 이야기하면서, 슬쩍슬쩍 성지한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감히 그에게 물어보긴 그렇지만, 가십성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처남이 소피아를 대표팀에 들이다니 의외군. 그렇게 반대하더니…….”
성좌의 뜻에 따라, 유물 찾겠다고 집을 나섰던 윤세진도.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배틀넷 센터로 돌아와, 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 감독님이 영입한 거야.”
“후후, 지한이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감독님이 독단적으로 영입했겠어?”
“뭐…… 그건 그렇지?”
성지한은 윤세진 부녀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성지한이 찬성하지도 않았는데,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한국 배틀넷 협회에서 소피아를 영입한 것처럼 보이려고 했는데.
‘내 위상이 너무 높았군.’
성지한이 지금 배틀넷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너무 높아서 그런가.
사람들은 당연히 성지한이 이를 동의해서 그런 거라고 받아들였다.
사실 그가 반대하는데, 한국 배틀넷 협회가 무슨 힘으로 소피아를 영입하겠는가.
성지한은 윤세진에게 이번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이번에 우승을 해야 할 사정이 생겨서요. 확실한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래? 사정이라…… 소피아까지 합류할 정도면 보통 문제가 아니겠군.”
윤세진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에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황금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저 빛, 묘하군.’
성지한은 놓치지 않았다.